여왕과 천재는 띠동갑
2003년 10월 어느 날. CJ나인브릿지클래식에 출전한 위성미(미셸 위)의 아버지 위병욱 씨는 ‘여왕과 천재’라는 제목의 신문 기사를 열심히 읽고 있었다. 여왕은 박세리. 천재는 위성미였다. 박세리는 디펜딩챔피언으로, 당시 14세 소녀 위성미는 골프 천재소녀로 한국대회에 첫 출전했다.
“이 기사 누가 썼어요? 정말 재미있네요. 둘 다 뱀띠인 걸 저도 몰랐네요. 12년차라….”
그렇다. ‘한국의 영원한 골프여왕’ 박세리와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천재소녀’ 위성미는 띠동갑이다. 둘 다 뱀띠. 전자는 77년생, 후자는 89년생이다.
최근 세계 최고의 여자골프대회인 US오픈에서 둘은 나란히 공동 3위를 차지했다. 둘 모두 좋은 성적이고 각기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었다. 박세리는 6월 맥도널드챔피언십 우승으로 화려하게 부활한 후 다시 메이저대회에서 3위 안에 들어 온 국민이 걱정해온 슬럼프에서 확실히 벗어났음을 보여줬다. 위성미는 지난 해 10월 프로 선언 후 3차례 메이저대회에서 모두 톱5 안에 드는 위력을 보여줬다. 메이저대회 성적인 일반 대회의 두 배 이상이다. 이 정도면 ‘우승을 못한다’는 폄하를 떨쳐 버리고도 남을 정도다.
동시에 벌어진 박세리의 부활과 위성미의 승승장구. 이는 한국을 넘어 세계 여자골프에 큰 의미가 있다. 2003년만 해도 박세리는 독보적이었다. 김미현 박지은 한희원 등이 있었지만 성적, 지명도 그 어떤 부문에서도 박세리에게 못 미쳤다. 박세리가 극도로 부진했던 2년여 수많은 코리언 뉴 페이스들이 미LPGA에서 이름을 떨쳤다. 파괴력에 있어서는 월드와이드급인 위성미가 그 대표 주자다.
박세리 없이도 올시즌 미LPGA 대회의 50%를 휩쓸었던 한국 여자골프. 이제 박세리가 가세하고 영 파워의 계속되는 성장이 계속된다면 그야말로 아니카 소렌스탐을 넘어 ‘세계 최강 여자골프’로 대접받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미국의 주요 언론도 한국여자골프의 경이적인 성적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2003년 기사는 박세리를 잡초 출신의 여왕, 위성미는 화초로 길러진 천재에 비유했다. 둘은 장타 성대결 승부근성 등 닮은 점도 많지만 이미지 국적 등 확연한 차이점도 있다. 중요한 것은 잡초든 화초든, 한국이든 미국이든, 한국여자골프는 뱀처럼 후퇴 없는 전진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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