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03년 일본으로 귀화해 충격을 던져주었던 한국 여자 농구의 기대주 하은주가 한국인으로 다시 돌아왔다.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지난 2003년 한국 여자 농구를 이끌 차세대 대형 스타로 주목받다가 갑작스레 일본으로 귀화, 농구 관계자들과 팬들을 충격에 빠뜨렸던 하은주(23).
하지만 그녀는 국적을 바꿨다고 해서 이름까지 일본 이름으로 바꾸지 않았다. 일본이 몇 차례에 걸쳐 대표팀에 선발했지만 하은주는 단지 일본 농구 문화와 환경이 좋았을 뿐이었다. 일장기가 그려진 유니폼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조국을 버렸다”는 국내 농구 관계자들과 팬들의 온갖 비난을 감수하고도 국내의 스파르타식 국내 농구 문화에 염증을 느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했던 하은주. 그녀가 일본으로 귀화한 지 3년 만에 고국의 품으로 다시 돌아왔다. 소속팀 일본 샹송화장품과의 계약을 해지하고 최근 신한은행에 입단한 하은주는 조만간 법무부에 국적 회복을 신청할 계획이다.
무거운 짐을 벗어낸 뒤 찾아온 홀가분함 때문일까. 지난 8월 4일 수원의 한 카페에서 만난 하은주의 얼굴에 연신 웃음꽃이 피어났다. 샹송화장품 소속으로 국내를 찾을 때마다 남의 집에 온 것처럼 어색한 표정으로 일관했던 지난날과는 사뭇 대조되는 모습이다.
기자가 <일요신문>에서 출판하는 패션 잡지 <앙앙>을 선물하자 예상치 못한 ‘애교’ 박수로 잡지를 받아든다. 그러더니 인터뷰 시작도 안 했는데 잡지부터 뒤적거린다. 하지만 인터뷰가 시작되자 차분하면서도 명쾌한 어조로 얘기 보따리를 풀어 나갔다.
다가올 한국 여자 농구 제2의 도약에 하은주가 중심에 서게 될 날을 내심 기대하면서 리얼 토크를 나눴다.
―3년 만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큰 결심을 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일본으로 귀화할 때도 그 방법밖엔 없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한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요. 비난을 받으면서도 일본으로 귀화한 건 좋은 환경에서 농구를 배우고 경험을 쌓아 미국 여자프로농구(WNBA)에 진출하려고 했던 목적이 있어서였죠. 그런데 막상 미국 LA 스파크스와 계약을 맺자 팀은 나를 놔주기 싫어했어요. 팀이 이적 동의 만료 시한(4월 31일)까지 동의서를 발급해주지 않는 거예요. 어차피 여름 리그를 미국에서 뛰고, 9월에 일본으로 돌아와 뛸 수 있는데도 말이죠. 문제될 게 없는데 팀에서는 혹시 내가 부상이라도 당할까봐 부담스러웠나봐요. 그러더니 결국엔 팀과 일본농구협회가 이적 동의 시한 바로 직전에 ‘일본대표팀에 합류하면 미국에 보내주겠다’며 압박하더라고요. 쇼크를 받았죠. 3년간 힘들게 나의 ‘아이덴티티’(정체성)를 지켜오면서 꼭 미국에 진출해 나를 아껴준 팬들에게 보답할 날만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아버지(하동기 씨)와 상의 끝에 샹송화장품과의 계약을 포기하기로 결정했죠. 사실 한국에 돌아올 것이라는 건 생각하지 못했어요. 한국에 들어가서 운동을 다시 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 어떻게 생각하면 운동을 계속할지 아니면 그만둘지 잘 몰랐거든요. 그런데 문득 일본에 있어도 아무 소용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계속 팀에선 포기하라고 할 거잖아요. 그때부터 (한국으로 들어오는 것에 대해) 심사숙고를 했죠.
하동기 씨는 딸이 이적 절차를 순조롭게 밟고 미국으로 오는 줄 알고 아들 하승진(밀워키)과 함께 미국 현지에서 딸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팀에서 이적 동의를 해주지 않자 곧바로 일본으로 날아갔다고. 하 씨는 소속팀과 일본농구협회가 끝까지 일본대표팀 합류를 이적에 대한 조건으로 내세우자 딸의 일본 선수 등록을 포기하고 샹송에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충격이 컸겠어요. 온갖 비난을 감수하고 떠난 일본이잖아요.
▲내가 한국에서 태어난 것도 사실이고, 가족들도 한국 사람들이잖아요. 팀과 계약할 때 이 점을 확실히 했어요. 일본으로 귀화하면서 마음고생이 심했지만 나름대로 팀에서 열심히 노력해서 미국에 진출한다는 꿈을 위안으로 삼았죠.
▲ 지난 1일 신한은행 입단식 모습. 연합뉴스 | ||
일본은 줄기차게 하은주를 대표팀에 선발했다. 중요한 길목에서 한국과 중국에 밀려 번번이 고배를 마신 일본은 하은주를 가세시켜 아시아 정상을 정복하겠다는 야심을 품었다.
때문에 그간 하은주의 행보는 일본 내에서는 커다란 화두였다. 하은주가 한국과 일본 중 어느 나라의 대표팀 유니폼을 입느냐는 건 아시아 여자 농구 판도에 지각 변동을 몰고 올 만한 대형 뉴스였다.
국내 농구계도 하은주의 선택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특히 아시아선수권 등 중요한 대회를 앞두고 하은주가 일본 대표팀에 선발될 때마다 국내 여자 농구 관계자들은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하지만 정작 하은주 본인에게는 어느 나라를 선택하느냐는 것은 애초부터 질문거리가 될 수 없는 것이었다. 당연히 자신은 한국 사람이고, 귀화는 농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을 선택하기 위해 동원된 ‘조건’이었을 뿐이니까.
―일본 대표팀 명단에는 뽑혔지만 정작 일본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훈련을 하거나 대회에 나간 적은 없네요.
▲일본 대표팀에 3~4번 정도 뽑혔는데 그때마다 아프다는 등 이런 저런 핑계 대면서 합류를 거절했죠. 계약서에도 내가 원하지 않으면 대표팀에 합류시킬 수 없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어요.
―8년간의 일본 생활을 본의 아니게 접었지만 그래도 일본에서 느끼고 배운 점이 있었을 텐데요.
▲가장 중요한 것은 일본에서 농구의 매력을 알았다는 거예요. 농구가 정말 재미있다는 거. 한국에 있을 때는 농구를 정말 싫어했었거든요. 왜 농구를 하는지 동기부여가 전혀 안됐어요. 고교 때 일본으로 간 것은 공부와 무릎 치료를 위해서였어요. 농구를 다시 하게 된 건 이노우에라는 선생님 때문이었죠. 보통 한국에서는 제자들에게 거의 명령을 하잖아요. 그런데 그 선생님은 보통 학교 수업처럼 농구를 가르쳤어요. 나는 논리적인 생각과 사고를 좋아하는데 선생님이 그렇게 농구를 가르쳐주시니 신이 나서 농구를 배웠죠.
외국 특급 용병들에 버금가는 체격과 실력을 갖춘 하은주가 신한은행에 입단하면서 각 팀들은 벌써부터 안절부절이다. 일부에서는 신한은행 입단 과정에 대해 불만을 터트리기도 한다.
―신한은행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전엔 신한은행팀 경기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샹송과 자매결연을 맺은 국민은행은 잘 알지만 나머지 팀들은 전혀 몰랐어요. 여자 프로 농구 플레이오프전을 보면서 신한은행이 눈에 띄었어요. 팀 분위기가 너무 좋아 보였거든요. 특히 중학교(선일여중) 대선배인 (전)주원 언니와 함께 뛰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주원 언니와 같은 가드랑 호흡을 맞추면 농구가 정말 재미있을 것 같아요.
▲물론 준비해야 될 게 많죠. 그러나 잘 됐어요. 저는 안주하는 환경을 좋아하지 않아요. 과제가 주어지고 그것을 풀어내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것 같아 좋아요. 이 점이 한국에 오게 된 이유이기도 해요. 준비해야 하는 점이 많은 게 오히려 나의 발전에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지금까지 해온 것들은 다 버리고 신인처럼 배운다는 생각으로 임하면 잘 적응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심각한 얘기만 했네요. 공부를 잘한다고 들었는데 욕심이 많은 것 같네요.
▲선수생활 하면서도 앞으로 많은 분야의 공부를 하고 싶어요. 공부는 하면 할수록 모르는 게 더 많아지는 것 같아요. 해야 할 것도 많아져요. 그게 매력이에요. 일본에서 정말 공부 열심히 했어요. 사실 수준이 우리보다 낮긴 해요.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영어, 수학 책을 봤는데 이미 한국 중학교에서 다 배운 것이더라고요.
―한국에 온 이후 인터뷰하는 모습이 너무 자연스럽고 편해 보여요.
▲전에는 괴로운 질문을 많이 하셔서 경계를 많이 했어요. 일본 실업팀에서 뛰는 상황에서 일본 대표팀 합류(거부)에 관한 얘기를 공식적으로 하기가 애매모호했어요. 그렇지만 본래의 신념만 변하지 않는다면 나중에는 사람들이 내 마음을 알아줄 것이라고 생각했죠.
―NBA에서 활약 중인 동생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떤 생각이 들어요.
▲정말 대견해요. 어린 나이에 최고의 무대에서 최고의 선수들과 경쟁한다는 게 안쓰러울 때도 있어요. 하지만 본인 스스로 마음가짐이 대단해요. 그들과 함께 연습하고 경기를 뛴다는 자체를 즐기면 좋겠어요. 어떤 시련이 있어도 마음의 중심을 잡고 있으면 꼭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봐요.
―일본에서 뛸 때는 배번이 33번이었는데 신한은행에서는 34번을 달게 됐네요.
▲일본에서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자는 의미에서 기존 번호에 ‘+1’을 했어요. 원래 7이라는 숫자를 좋아하는데 ‘3+4’는 7이기도 하잖아요(웃음).
―혹시 자기만의 징크스가 있나요.
▲경기 당일에는 TV를 절대로 켜지 않아요. 호텔 방에는 누구도 못 들어오게 하고 숙소 출발 1시간 전에 꼭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해요. 그래야 마음이 편해져요(이때 부친 하동기 씨가 동생 승진이는 ‘징크스가 없는 게 징크스’라고 귀띔했다).
인터뷰는 화기애애하게 진행됐다. 하은주는 “어느 때부턴가 부정적인 생각을 안 하는 습관이 생겼다”고 한다. 그 습관은 그대로 말과 행동으로 묻어났다. 심각한 얘기를 하다가도 이내 재미있는 화젯거리를 꺼내 놓으며 오히려 기자를 즐겁게 했다.
특히 한류와 관련, 일본의 기혼 여성들이 아닌 젊은 여성들은 배용준보다는 조인성과 권상우에 열광한다는 것에서부터 한국 드라마가 일본에서 인기가 있는 이유까지 나름대로의 생각을 재치 있게 설명했다.
미국 진출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하자 꿈은 계속 갖되 당분간은 신한은행만 생각하고 싶다고 한다.
“언제 미국에 가겠다는 마음은 아직 없어요. 눈앞에 닥친 것부터 해나가는 게 순서라고 생각해요. 빨리 팀과 한국 농구에 적응하는 게 우선이고, 의무라고 봐요. 그러다보면 몸도 좋아지고 한국 농구에 적응하게 되면 미국 진출 기회가 오든가 대표팀에서 뛸 수 있는 다음 단계가 오겠죠. 지금은 신한은행만 생각하고 싶어요.”
하은주는 ‘포기’라는 말을 싫어한다고 한다. 고교 때 일본 학교로 전학하면서 한국에서 다니던 중학교에 ‘농구를 하지 않겠다’는 포기 각서를 써야 했고, 미국 진출을 노리는 과정에서도 샹송화장품과 일본 농구협회로부터 한국에 대한 미련을 포기해야 한다는 종용을 받았다.
하지만 ‘포기’라는 압력과 맞서 모두 이겨냈다. 이제 그에게 남은 건 ‘도전’이라는 단어뿐이다.
유재영 기자 elegan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