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정규시즌 성적은 10승-16세이브-11홀드. 사상 최초의 ‘트리플 더블’을 기록했고 두산과의 한국시리즈에선 MVP가 됐다. 올 시즌에도 14일 현재 41세이브로 구원 단독 선두를 달리고 있다. 2000년 진필중(당시 두산)이 세운 한 시즌 최다 세이브 기록(42세이브) 경신을 눈앞에 두고 있다. 아시아 기록인 주니치 이와세의 46세이브에도 도전하고 있다. 지난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선 메이저리그 선수들과 스카우트로부터 ‘최고의 직구를 가졌다’는 찬사를 듣기도 했다.
오승환의 괴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리고 그의 매력은 무엇인가. 스물네 살 젊은 투수 오승환을 분석해본다.
▶‘괴력’을 감춘 청년
이완 맥그리거가 영국 대사관 소속의 비밀경찰로 등장하는 <아이 오브 비홀더>란 영화가 있었다. 살인 용의자 애슐리 쥬드를 조사하다 오히려 사랑에 빠지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슐리 쥬드를 돕는다는 줄거리였다. 여기서 이완 맥그리거는 ‘너무나 평범한 인물처럼 보이기에 비밀경찰 역할이 제격인’ 캐릭터로 설정돼 있다.
지난 2004년 말 서울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대한야구협회의 한 시상식에서 오승환을 처음 만났다. 단국대 졸업반인 오승환은 이날 투수 부문에서 상을 탔다. 삼성 라이온즈가 2차 1순위로 지명한 선수였기 때문에 다가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그때 첫 느낌은 너무나 평범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실제 키가 175㎝에 불과한 오승환을 보면서 ‘이렇게 체격도 작은 투수를 삼성이 왜 2차 1순위로 뽑았을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차분하고 공손해 보였지만 마운드에서 홀로 싸워야 하는 투수로서의 힘이 느껴지진 않았다.
물론 이 같은 생각이 착각이었다는 것은 그로부터 정확히 10개월 정도가 지난 뒤 확실해졌다. 오승환이 2005년 후반기부터 마무리 투수 임무를 맡으면서 그에 대한 인상이 싹 바뀌었다. 9회에 마운드에 올라 타자를 호령하는 오승환의 모습은 2004년 시상식장에서 봤던 유순하고 착해 빠진 이미지가 아니었다. 평범함 속에 감춰진 괴력. 그게 바로 오승환의 진짜 힘이었다.
▲ 지난해 한국시리즈 4차전. 우승이 확정되자 ‘돌부처’도 흥분했다. | ||
일상 생활에서도 남들을 웃길 수 있어야 성공하기 쉬운 요즘이다. 그러나 오승환 최대의 약점은 도무지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오승환과 한 번이라도 인터뷰를 해 본 언론사 기자들은 한결같이 난감해 한다. 꽤 오랜 시간 얘기를 나눴건만 대부분의 경우 속된 말로 ‘건질 게’ 없는 것이다.
“구원왕에 욕심이 있습니까?” “그냥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누가 가장 상대하기 힘든 타자입니까?” “모두가 어렵습니다.”
“경기 출전이 잦아서 무리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는데?” “감독님께서 알아서 등판 간격을 조절해주시니 괜찮습니다.”
은근히 자극적인 대답을 유도하는 질문을 해도 오승환은 한결같다. 심지어 기자가 “평소에 재미난 일이 있으면 기억해두거나 좋은 코멘트를 생각해 두는 것도 프로 선수로서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다”라고 충고하자 “그게 정말 안 되더라구요”라는 하소연만 돌아왔다. 결국 오승환으로부터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를 뽑아내는 일을 포기했다.
지난 2002년 한국에서 월드컵이 열렸을 때였다. 단국대 1학년 때인 2001년에 오른쪽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은 오승환은 2002년에는 내내 재활에 매달렸다. 잠실에 있는 재활원과 옥수동의 단국대 숙소를 오가는 지루한 일과였지만 오승환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재활 훈련에 충실했다.
당시 한국축구 국가대표팀의 4강 진출 덕분에 온 나라가 떠들썩했는데도 오승환은 한동안 월드컵이 열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하루는 재활원에서 돌아오다 옥수동의 주택가를 지나는데 갑자기 “와~” 하는 함성이 들려 어리둥절했다고 한다. 숙소에 도착해서야 한국 대표팀이 폴란드와 경기를 치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월드컵을 무색케 한 그의 재활에 대한 집념은 결국 오늘의 ‘돌 같은 직구’를 낳게 한 힘이었다. 유머 감각,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화술이 약하지만 대신 한번 정한 목표를 향해선 묵묵히 돌진한다. 비록 일상에서 썰렁하고 재미없는 오승환이지만, 마운드 위에선 항상 최고의 장면을 팬들에게 선사할 수 있는 이유다.
▶마운드에선 10년차급
오승환 최대의 강점은 튼튼한 심장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기죽거나 당황하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일찌감치 ‘돌부처’란 별명을 얻었다.
덕분에 ‘반상의 돌부처’라 불리는 바둑계의 스타 이창호와 비교되기도 한다. 한 명은 마무리의 달인, 또 한 명은 끝내기의 달인이다. 이창호는 반집 승부의 대가다. 오승환은 1점 승부의 대가다.
‘청출어람’을 상징한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삼성 선동열 감독이 오승환의 대학 시절 투구폼을 비디오로 본 뒤 “독특하다. 저 선수로 뽑자”고 지시해 그의 삼성 입단이 이뤄졌다. 이창호는 어린 시절 바둑 황제 조훈현 9단의 집에 들어가 문하생으로 수업을 쌓은 뒤 천재성을 내보이기 시작했다. 둘 모두 스승의 업적을 뛰어넘을 것으로 기대된다.
삼성 고참 선수들은 오승환에 대해 “쟤는 속에 뭐가 들었는지 알 수가 없다”는 말을 자주 한다. 이제 2년차에 불과한 선수가 마운드 위에서 하는 행동이 10년차 베테랑이나 마찬가지라는 의미다.
때론 무덤덤한 표현력 때문에 네티즌들로부터 오해를 받기도 한다. 예를 들어 “42세이브 기록을 깨는 게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요?”라는 말을 했다 치자. 오승환의 본 뜻은 기록을 의식하기보다는 매 경기에 충실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 게시판에선 팬들이 ‘건방진 것 아니냐’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물론 모두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선동열 감독은 “오승환이 없었다면 올해 삼성이 어떻게 1위를 하고 있겠는가”라고 말한다. ‘국보급 투수’ 출신인 선 감독도 오승환에 대해서만큼은 절대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김남형 스포츠조선 야구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