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오랜 세월 동안 참으로 자주 만나 인터뷰를 했었던 이봉주와 이번에는 술자리에서 해후했다. 잘 안 마셔서 그렇지 한 번 먹기 시작하면 ‘말술’로 유명한 이봉주는 소주잔을 앞에 두고 지난 시간들을 떠올리며 희로애락을 풀어놓았다.
지난 11월 10일 수원 영통 8단지 먹자골목의 한 고깃집에서 작은 해프닝이 벌어졌다. 분명 밖을 등지고 앉아서 인터뷰를 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지나가는 여고생들이 우르르 몰려들어와서는 이봉주에게 축하 인사와 악수를 건네며 파이팅을 외치고 나간 것이다. 그 후로도 여기저기서 사인 공세가 벌어졌고 심지어 한 젊은 남자는 여자 친구를 데리고 와서 같이 사진을 찍기도 했다. 인터뷰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정도였다. 많은 사람들이 중앙마라톤대회에서 뛴 이봉주의 선전을 화제 삼아 꺼냈고 너무 감동한 나머지 눈물까지 흘렸다는 팬도 등장했다.
사실 이봉주의 기록과 순위는 이전의 것들에 비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만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으로 서른여섯 살이라는 마라토너로는 환갑을 넘긴 나이에, 은퇴 대신 힘들고 지루했던 슬럼프를 이겨내고 기록 세계로 돌아온 그에게 많은 사람들은 진심으로 축하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고맙죠. 이런 팬들이 있기에 진짜 힘이 나요. 사실 이번 대회는 준비하는 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가장 힘들었던 게 올 초에 생긴 족저근막염이 완치되지 않고 계속해서 절 괴롭힌 부분이에요. 대회 막판에 스피드를 높이기 위해 강도 높은 훈련을 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못했거든요. 이번 대회는 제 마라톤 인생에 중요한 의미가 될 것 같아요. 좌절 속에서 희망을 본 대회니까요.”
이봉주에게 슬럼프를 안겨준 대회는 지난 3월에 있었던 일본 비와코마라톤이었다. 당시에도 발바닥 부상으로 인해 중도 기권하면서 생애 35번째 풀코스 도전이 실패했고 그 즈음 이전부터 나돌던 은퇴설이 들끓었다. 더욱이 일본의 한 스포츠신문에선 삼성전자 육상단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이봉주가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다는 보도까지 내보낸 바 있다.
“전 막바지까지 내몰렸다가 가까스로 기사회생하는 ‘오뚝이’ 타입이에요.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그런 인생이었어요. 롤러코스터를 탄다고나 할까? 하여튼 막다른 골목길까지 달려갔다가 포기와 극복의 양 갈래 길에서 어떤 계기로 인해 극복을 택하는 삶의 반복이었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고요. 한 번도 쉽게 살아보질 못한 것 같아요. 제3자가 보기엔 스릴과 재미를 느끼겠지만 당사자인 전 피를 토하고 싶을 만큼 고통스런 시간들이었습니다.”
이봉주는 만약 이번 대회에서 기록이 저조했거나 또 다시 중도 기권하는 사태가 발생했다면 다시 일어서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한다. 젊을 때의 좌절은 훌훌 털고 서는 데 큰 어려움이 없지만 나이 먹은 이후의 절망은 털고 일어설 힘과 용기조차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지난 3월의 비와코마라톤대회에서 쓰라린 좌절을 맛보고 귀국하면서 더 이상 욕심내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이젠 주위의 많은 사람들의 바람(?)대로 은퇴를 해야 할 것 같더라고요. 깨끗이 실력 부족을 인정하고 물러나려 했어요. 그런데 귀국해서 며칠 지나니까 여기서 그만두기가 너무 아깝고 억울하더라고요. 아무리 곱씹고 돌이켜봐도 지금은 아니었어요. 다시 달리고 싶었죠.”
▲ 태극기 휘날리길 지난 5일 서울중앙마라톤에서 국내 선수 최고기록을 세우며 재기한 이봉주. 그는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새로운 달리기 인생을 꾸리고 있다. 이 선수 뒤의 태극기가 베이징 하늘에도 휘날릴까. | ||
“발바닥 부상 있잖아요. 그게 운동선수들한테는 흔한 병이지만 전 그런 거 모르고 달렸거든요. 그런데 뒤늦게 부상이 생기니까 마음이 약해졌을 때는 이제 발바닥마저 나더러 쉬라는 신호를 보내는구나 싶었어요. 마치 발바닥이 그만 달리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죠.”
이봉주는 선수 시절의 황영조가 했던 말을 빗대 자신의 심경을 토로했다. 마라톤이 너무 고통스러워 달리는 차 속으로 뛰어들고 싶을 때가 있었다는 황영조의 말을 수백 번 공감했다는 것이다.
“용기가 없어서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을 뿐 그런 충동은 가끔씩 찾아와요. 아마도 마라톤을 그만둘 때까진 그런 고통들이 반복되겠죠. 오죽하면 자기 발바닥을 자해하고 싶은 생각이 들까요. 제 동기 중에 한 명은 발바닥을 찢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대요. 어떤 것에도 기댈 수 없는 게 마라톤이잖아요. 오로지 자신의 발을 의지해 골인 지점까지 달려가야 하니까.”
이봉주는 유명한 연습벌레다. 서른여섯 살의 나이까지 달릴 수 있는 배경에는 마라톤을 시작할 때부터 습관처럼 지켜온 ‘연습 중독’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재미있는 일화도 있다. 코오롱 시절 백승도 감독(현 대우자판 감독)과 함께 숙소 생활을 할 때의 일이다. 두 사람이 자의반 타의반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는데 이봉주는 매일 새벽 5시 30분이면 숙소를 나서 달리기를 시작했다. 백 감독은 이봉주를 따라잡기 위해선 이봉주보다 30분 빠른 훈련만이 살길이라고 판단, 그 다음 날부터 새벽 5시에 훈련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봉주는 그 후론 새벽 4시 30분에 숙소를 나서는 게 아닌가. 새벽 4시와 3시 30분까지 ‘30분 싸움’을 벌인 두 사람 중 승자는 이봉주! 결국 백 감독이 두 손을 들고 만 것이다.
“조금이라도 더 뛰어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생활을 같이하다보니까 은근히 라이벌 의식이 강했어요. (황)영조요? 그 친구는 팀은 같았지만 숙소가 달랐어요. 당시만 해도 전 영조와 비교 대상이 안 됐죠. 워낙 유명한 스타였으니까. 제가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서부터 매스컴에선 영조와 절 라이벌로 붙이더라고요. 그런데 영조와 제 성격이 완전 딴판이잖아요. 성격 차이에서 오는 갈등이 조금은 있었죠. 지금은 거의 연락 안하고 지내요. 그 친구는 감독(국민체육진흥공단)이고 전 선수잖아요.”
이봉주는 황영조 감독 덕분에 지금의 아내 김미순 씨를 만났다. 코오롱 시절 숙소를 뛰쳐나와 방황하고 있을 때 황 감독의 고향에 갔다가 우연히 김 씨를 소개받은 것이다. 황 감독과 김 씨는 중학교 동창이다.
‘불타는’ 갈빗살과 시원한 소주를 앞에 놓고 시작한 인터뷰는 두 시간을 훌쩍 넘겼다. 이봉주는 예상대로 술을 잘 마셨다. 4년 전에 이봉주 집에서 ‘취중토크’를 한 적이 있었는데 아내가 지켜보고 있던 자리보다 지금이 훨씬 편해 보였다. 어느새 두 아들의 아버지가 된 이봉주는 요즘 술 마실 기회가 거의 없다고 한다. 엄마보다 아빠를 더 좋아한다는 큰아들 우석이가 수시로 전화를 걸어 귀가 시간을 확인하는 통에 친구들을 만나도 일찍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 여기서 말하는 술은 휴가 때나 사용 가능한 ‘단어’다.
몇 년 전 대전에서 싸움을 말리다가 주동자로 오인 받아 경찰서로 연행됐던 일, 이봉주가 싸움질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방송 카메라가 들이닥쳤던 일, 그래서 화장실로 숨었던 일 등 평소 이봉주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 얘기들이 ‘안줏거리’로 등장했다. 술을 마시면 아침에 떠오르는 해를 보며 들어가야 했고 음주가무에 능하다는, 직접 보지 않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얘기들도 흘러나왔다. 그러나 이 모두가 아버지가 되기 이전, 총각 이봉주의 삶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들이다.
소주 세 병째…. 이봉주는 이렇게 ‘시’를 읊고는 ‘원샷’을 외쳤다.
“후회 없이 해보고 싶어요. 아쉬움 없이. 제 스스로 ‘이젠 됐다’ 싶을 때 미련 없이 은퇴할 겁니다. 힘들다는 거 알아요. 하지만 주위에서 절 뭐라고 손가락질 하든 신경 쓰지 않고 목표를 이룰 때까지 달리고 싶어요. 목표요? 세계 최고의 정상에 서 보는 거죠. 하하.”
2008년 8월 8일 중국 베이징에서 올림픽이 개막된다. 이봉주는 대회 마지막 날 자신의 마라톤 인생의 마지막 레이스를 펼칠 것이다.
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