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난 민심을 확인한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요즘 지역구 관리에 바쁘다. | ||
열린우리당 의원들에게는 ‘8월 국회’도 달갑지 않다. 당 지도부는 재산세 경감 조치를 비롯한 민생 법안을 처리하기 위해 8월 임시국회 소집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의원들에게는 ‘민생법안’보다 당장 ‘조직재건’이 급선무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조직 관리에 매달리는 이유는 5·31 지방선거에 나타난 ‘성난 민심’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당장 내년 대선에서 정권 재창출이 불투명하고, 2008년 18대 총선도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정기국회 이후 진행될 정계개편을 감안하면 지역구를 관리할 여유도 많지 않다. 그래서 여당 의원들은 6월 임시국회가 끝난 직후 ‘고향 앞으로’ 행렬에 동참했다.
충북에 지역구를 둔 한 초선 의원은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이후 당내 의원들의 고민은 대선보다는 총선에 쏠려 있다”며 “자신이 당선된 지역구에서 돌변한 민심을 바라보면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에 전패한 수도권의 경우 위기감이 더하다. 특히 단체장과 지방의원도 거의 대부분 한나라당 소속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면 소름이 돋을 정도다. 조직 확대가 아니라 조직 보존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경기 양주·동두천의 정성호 의원은 지방선거 직후 보좌관 한 명에게 지역구 관리를 전담시키고, 두 달 계획으로 지역구를 돌고 있다. 고양 덕양의 최성 의원은 지역 담당 보좌관을 한 명에서 두 명으로 늘렸다. 또 비서관 한 명도 수시로 지역을 돌도록 하고 있다. 지역구 관리에 총력을 쏟아부은 셈이다.
경기 안산의 장경수 의원은 매년 가던 해외 시찰을 이번 여름에는 포기했다. 대신 임시국회 폐회 직후부터 보좌관 한 명과 함께 지역구의 식당, 역전, 경로당 등을 구석구석 헤집고 다닌다.
경기 지역의 한 초선 의원은 “지역을 돌아보는 일은 표밭 관리라는 측면도 있지만 지역구 의원으로서 민생을 직접 챙긴다는 의미가 더 강하다”며 “서민들을 직접 만나면서 지방선거에 나타난 민심을 피부로 체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의 지지기반이던 호남 지역에서도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은 전남·광주에서 민주당에 대패했고, 전북에서도 역시 민주당에 추격을 당했기 때문이다. 전북 남원·순창의 이강래 의원의 경우 지방선거 기간 동안 지역구에 살면서 표밭 관리에 전념했지만 민주당의 거센 공세를 극복하지 못했다.
▲ 장경수 의원(왼쪽), 주승용 의원(가운데), 박상돈 의원 | ||
충남 천안의 박상돈 의원은 최근 ‘자전거 투어’를 시작했다. 자전거를 타고 지역구 구석구석을 돌겠다는 계획이다. 제주의 강창일 의원도 8월까지는 제주도에서 살 생각이다. 강 의원은 “주민들이 열린우리당에 대해 물어보면 곤혹스럽지만 무소속으로 나와도 이길 수 있도록 주민들과 자주 만나 대화하며 조직관리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재 열린우리당의 상황에 대해 지역구 의원들이 가지는 심정이 ‘위기’라면 비례대표 의원들의 느낌은 ‘절망’에 가깝다. 비례대표 연임을 금지한 당헌·당규에 따라 재선을 위해서는 현직 야당 의원이 버티고 있는 지역구를 뚫어야 하기 때문이다.
당내 기획통으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민병두 의원은 최근 ‘이미지 컨설팅’을 의뢰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구에 뿌리를 내리기 위한 전략 개발에 앞서 자신의 대중적 이미지를 분석하려는 것이다. 민 의원은 이미 서울 지역의 한 지역구를 18대 출마 지역으로 점찍어 놓은 상태다.
김영주 의원도 영등포갑에 사무실을 차리고 5·31 지방선거에 참여했던 자원봉사자를 비롯한 주민 및 당원들과의 접촉을 유지하고 있다. 또 매달 민원의 날을 지정, 동별로 민원상담 활동도 벌인다.
비례대표로서 경기도당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현미 의원은 한나라당 김영선 의원의 텃밭인 경기도 고양 일산서구를 노리고 있다. 김 의원은 지난달 지역 주민 60여 명과 금강산을 방문한 데 이어 8월에는 당원 워크숍을 개최할 예정이다. 유승희 의원은 ‘정치 1번지’로 꼽히는 서울 종로에 도전장을 내밀고 동별 의정보고회를 개최하고 있다.
한편 당내에는 이처럼 텃밭 관리와 지역구 개간에 열중하는 의원들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도 없지 않다. 서울의 한 재선 의원은 “지난 지방선거가 주는 교훈은 개인적 조직이나 인기로는 당 지지율을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이라며 “지역의 조직을 다지는 일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당을 살리는 데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런 관점에서 여당 일각에서는 9월 정기국회를 통해 여당의 달라진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일부 의원들은 벌써 국정감사 준비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묵묵하게 일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국민의 가슴에 다시 다가서겠다는 것이다.
정무위 소속의 초선 의원은 “참여정부를 감싸는 국정감사는 기대하지 말라고 이미 피감 기관에 통보했다”며 “올 국감에서는 여당 의원들의 활약을 기대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정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