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두 사람은 선수 시절부터 종목을 초월한 각별한 선후배 사이다. 그리고 해당 종목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의 달변가다. 그래서인지 두 사람의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입담에 진행 기자들이 ‘쓰러지기’를 반복하는 등 고깃집에서 벌어진 ‘남자들의 수다’는 통제 불능의 웃음 폭탄을 선사했다.
“우리(레슬링 선수들)는 여자를 안고 63빌딩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다” vs “탁구 특유의 섬세한 심리전을 바탕으로 눈빛만 봐도 지금 이 여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다”. 심권호는 레슬링 경기처럼 쉴 새 없이 여자를 즐겁게 해주고(빠떼루), 유남규는 종목의 특성을 십분 이용해서 고단수 연애 기술을 펼친다(다양한 서브). 지금까지는 운동에 푹 빠져 사느라 좋은 배필을 찾지 못했지만 2007년 황금돼지의 해에는 반드시 인생의 금메달(결혼)을 따겠다는 ‘금메달 노총각’들과 두 남녀 기자와의 유쾌한 토크를 소개한다.
사회(남녀 기자): 먼저 바쁘신데 이렇게 귀한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 남자 선수들 중에 30대 중반을 넘긴 노총각은 황영조 감독과 유남규 감독, 그리고 심권호 코치예요.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사람들이라면 여러 가지 조건을 두루 갖춘 스타플레이어 출신들이 ‘노총각’이란 꼬리표를 떼지 못한 걸 궁금해 할 것 같은데요.
유남규(유): 정말 결혼할 시간이 없었어요. 아니 연애할 만한 여유가 없었다는 게 맞을 겁니다. 탁구는 1년에 국제 대회만 16회나 열려요. 1년 내내 가방 싸들고 이 나라 저 나라를 넘나들다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리죠. 좋은 여자를 만나서 막 교제를 해보려고 해도 잦은 이동 때문에 관계 유지가 너무 힘들어요. 그런 일이 반복되다보니 어느새 이 나이가 되고 말았네요.
심권호(심): 전 형한테 미안한 얘기지만 지금 마음 ‘꽂힌’ 여자가 있어요. 태어나서 이런 기분 든 적 처음이에요. 그 여자 앞이라면 무슨 짓도 다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무릎을 꿇으라면 꿇을 수도 있어요. 그 사람이 할머니가 돼도 지금처럼 사랑할 수 있을 만큼 제 마음을 빼앗아간 여자입니다.
유: 진짜야? 와 권호한테 이런 면도 다 있네. 그런데 한 가지 물어보자. 그 여자 분도 네 마음을 아냐?
심: 그럼요. 아직 마음의 정리를 못 해서 대답을 못 하고 있지만 제 마음을 잘 알고 있죠. 전 여자를 위해 제 자신을 포기할 수 있는데 남규 형은 그런 면이 부족한 것 같아요.
유: 난 말이야, 여자가 한 달만 참아준다면 성공할 수 있어. 데이트를 하다가도 중요한 시합이 열리면 거기에 집중해야 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시합과 훈련으로 하루 종일 전화 한 통 못할 때도 있고 신경 못 쓸 때도 있는 건데 그걸 기다려주질 못하더라구. 자꾸 보채고 왜 연락 안 하느냐고 투정 부리면 괜히 짜증만 나.
사회(여): 그건 여자의 마음을 너무 모르시는 말씀이네요. 오래 만나서 신뢰도 쌓고 하는 일에 대한 이해도 깊어져야 연락이 잘 안 돼도 믿고 기다릴 수 있는 거지 만난 지 한 달 만에 2~3년 사귄 사람처럼 배려해 달라고 하는 건 무리 아닌가요?
유: 그래서 제가 여자를 만나면 3개월을 못 넘겨요. 그 전에 이미 다 정리가 돼 버리니까.
심: 형은 심리전의 대가예요. 레슬링 선수들은 심리 파악보다 일단 들이대고 보는데 탁구 선수들은 수싸움에 아주 능하거든요.
유: 우린 나름대로 얼굴과 이름이 알려졌잖아요. 첫 만남에선 그게 먹혀요. 유명세 때문에. 하지만 두 번째 만남에선 새로운 걸 보여줘야 해요. TV를 통해 유남규를 강한 이미지로만 인식한 여자라면 제가 얼마나 부드럽고 섬세한 남자인지 보여줘야 새로움과 호기심이 생기거든. 권호도 방송 오락 프로그램을 통해 재미있는 면이 많다는 게 알려졌다구요. 그런데 정작 만나서도 여전히 장난기 가득한 철없는 이미지로 비친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심: 형, 난 한우물만 팔 거야. 내가 지금 마음 쏟고 있는 여자에게 최선을 다할 거라구. 열 번 찍어서 안 넘어가면 스무 번, 서른 번도 찍어 보려구.
사회(남): 두 분 다 혼기를 넘기긴 했어도 이상형이 있을 것 같은데요.
유: 전 5년 주기로 이상형이 바뀌었어요. 이전에는 전인화 씨, 심은하 씨 등 동양적이고 순수한 매력이 풍기는 이미지를 좋아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얼굴보다 제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여자를 만나고 싶어요. 참고 기다릴 줄 아는 차분하고 지적인 여자가 나타났으면 좋겠는데 뭐, 기다려 봐야죠. 어머니가 어디서 뭘 보셨는데 올해 안에는 장가를 간다고 하시더라구요.
▲ 유남규(왼쪽), 심권호 | ||
유: 권호야, 네가 아직 세상을 잘 모르는 것 같은데 그 사람들이 부담스럽다는 건 네 명성 때문이 아니라 네 얼굴 때문이야. 솔직히 우리 같은 얼굴이 일반인이었다면 누가 쳐다보기나 하겠냐? 안 그래요?(일동 그대로 쓰러짐)
사회(여): 어휴 자학은 그만하시구요(웃음), 두 분 말씀을 들어보니까 종목 특성이 데이트하는 데도 그대로 묻어나는 것 같아요.
심: 전 63빌딩 꼭대기까지 여자를 안고 올라갈 수 있는 힘이 있어요. 힘 좋아하는 여자는 레슬링 선수가 최고예요. 블루스 출 때 보통 남자들은 여자 허리를 껴안지만 우린(레슬링 선수) 그냥 조이거든 하하.
유: 탁구는 테크닉이 기본이죠. 레슬링처럼 힘으로만 밀어붙이면 여자들은 다 도망가게 돼 있어요. 우린 세븐 세트(7세트)까지 갈 수 있는 지구력이 돋보이죠. 절대로 지루하게 하면 안 돼요. 매 세트마다 새로움과 감동을 줘야 합니다.
심: 그래도 막판 자세는 레슬링이 최곱니다(또 다시 모든 사람들이 쓰러지고 말았다).
유: 제가 만약 결혼을 일찍 했더라면 지금까지 현역으로 뛰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다른 데 기를 안 빼앗기잖아요. 탁구 선수는요, 3개월 만에 ‘쇼부’ 쳐야 해요. 안 그러면 힘들어요. 연애, 오래가면 안 됩니다.
심: 그건 저도 인정해요. 전 연애는 짧게, 그리고 결혼을 연애처럼 오래했음 좋겠어요.
사회(남): 유남규 감독은 선수 시절 현정화 감독과 복식조였는데 선후배 이상의 감정은 없었나요?
유: 주위에서 많이들 부추겼지만 저랑 정화랑은 정말 오빠 동생 사이였어요. 열 살 때부터 봐 왔는데 무슨 이성적인 감정이 있었겠어요. 결혼해서 잘 살고 있는 정화를 보면 그냥 흐뭇해요. 전 운동 선수와의 교제에는 관심이 없었어요.
심: 전 배구 선수들이 생활력이 강해서 남다른 호기심은 있었지만 ‘사이즈’ 상으로 맞질 않잖아요. 관심만 두다가 말았죠. 사격 선수들은 대부분 집안이 빵빵해요. 양궁 선수들은 ‘보험’든 거나 마찬가지구(메달은 떼논 당상이기 때문). 하지만 저랑은 전혀 인연이 없었습니다.
사회(여): 가장 나이 차이가 많이 났던 여자는?
유: 열네 살 차이요. 어휴 왜들 이렇게 웃으세요. 처음만 이상하지 자주 만나다보면 서로 대충 맞춰지게 마련이에요. 전 좀 철이 없어지고 여자는 좀 더 어른스러워지고.
심: 전 말 못합니다(지금의 여자에게 알려지면 안 되기 때문이란다).
사회(남): 결혼하려면 경제력도 중요하잖아요. 재테크는 어떻게 하세요?
심: 제가 주택공사에서 부장이거든요. 정년 때까지 잘리지 않고 계속 갈 수 있어요. 술만 안 마시면 돈 많이 모아뒀을 텐데… 지금은 사랑하는 여자랑 먹고 살 만큼은 모아뒀어요.
유: 고향이 부산이다 보니 부산에 주로 투자를 했는데 그 돈을 서울에만 쏟아 부었어도…. 재테크엔 재작년부터 관심을 기울였어요. 집을 사고 파는 재미가 꽤 쏠쏠하더라구요. 돈도 이전보다 아껴쓰는 편이구요. 대한민국에선 돈 없으면 살기 힘들잖아요.
사회(여): 이제 마무리해 보죠. 오늘 얘기를 나눠 보니까 2007년 안에 두 분으로부터 좋은 소식이 들릴 것 같은데 맞나요?
유: 올해 안에는 꼭 갈 겁니다. 만으로 마흔을 넘기면 안 되잖아요. 기대해 주세요.
심: 가야죠. 꼭 갈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돼지해에 살아남은 자가 진정한 승리자가 되는 거잖아요. 하하.
사회(남녀): 우리 모두 두 분의 탈총각을 위해 건배하죠. 결혼은 하기도 어렵지만 결혼 생활을 잘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잖아요. 오래 기다리신 만큼 행복한 가정 꾸리시길 진심으로 소원합니다.
정리 및 진행=이영미 기자·유병철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