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5일 마산에서 전지훈련 중인 이장수 중국 궈안 감독이 인터뷰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FC서울 유니폼 대신 궈안팀의 심볼 마크를 단 점퍼를 입은 이 감독의 모습이 조금은 생경스러웠지만 가무잡잡한 피부와 해학적인 멘트들, 감정을 숨긴 채 말하는 것에 익숙지 않은 것 등은 여전했다. FC서울과의 재계약 협상 과정부터 결렬되기까지 깔끔하지 못한 뒷맛을 남긴 탓에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왜 그가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다양한 추측과 소문들이 난무한다.
어느 감독보다도 K-리그에서 보낸 3년여의 시간들이 파란만장하기만 했던 이장수 감독. 중국으로 발걸음을 돌리기까지 그동안 내색하지 않았던 속사정을 털어 놓은 그는 FC서울에 대한 안타까움과 깊은 애정을 가감 없이 쏟아냈다. 지난 15일 마산공설운동장에서 이장수 감독을 만났다.
지난 7월 FC서울이 컵대회에서 우승한 직후 이장수 감독을 인터뷰한 이래 오랜만의 만남이었다. 그 새 유니폼을 바꿔 입게 됐지만 중국 선수단을 이끄는 모습에서도 여전히 K-리그 감독의 여운이 진하게 남아 있었다.
이 감독은 여전히 FC서울에 대한 얘기를 꺼낼 때마다 ‘우리 팀’이라고 불렀다. 이미 다른 팀 감독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FC서울에 대한 미련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그만큼 FC서울에서 발을 빼는 게 어떤 결정보다도 힘들었던 것이다.
“지난해 시즌이 끝나면서 구단(FC서울)과 재계약하는 걸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전에 동계훈련 계획이나 전지훈련 장소(일본)까지 확정해 놓고 구단과 스케줄을 조절하고 있었기 때문에 계약서에 사인을 안했을 뿐이지 계속해서 다음 시즌을 끌고 나갈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구단과 (재계약) 협상 과정에서 의견 차이가 났다. 아무리 감독 자리에 대한 욕심과 미련이 있다고 해도 자존심상 구단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연봉 차이에 이견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이 감독은 돈 문제가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몇몇 언론에서는 연봉 차이 때문에 구단과 마찰이 빚어졌다고 보도했지만 이 감독은 거듭 돈 문제가 아니었음을 강조했다.
“계약 기간에서 양보할 수 없는 조건을 내걸었다. 구단 측에선 재계약을 하려는 감독에게 1년의 기간을 제시했다. 2년을 원했던 난 구단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내가 만약 FC서울과 처음 계약을 맺는 거라면 충분히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재계약을 하면서 1년을 제시하는 건 납득이 안 됐다.”
이 감독은 2년을 주장했고 구단 측에선 1년을 고집하다가 수정안을 내놓은 게 ‘1+1’. 즉 2년 계약을 하되 중간에 성적이 좋지 않으면 경질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감독은 구단의 최종안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결국 FC서울 감독직을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그런데 이 감독은 FC서울과 재계약 협상 이전부터 끊임없이 중국 복귀설이 나돌았었다. 중국에서 뛰어난 성적으로 실력을 증명한 바 있는 이 감독을 향한 중국 프로팀의 구애는 이미 오래 전부터 반복되는 부분이었다. 그러다보니 이 감독이 FC서울과 중국행을 두고 저울질을 한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 지난해 7월 FC서울 감독 시절 인터뷰 모습. | ||
그런데 구단 고위층에서 밤늦게 호텔에 있는 이 감독을 찾아와 재협상을 하자고 요구했고 새벽부터 마라톤 협상을 벌인 끝에 48시간 만에 궈안팀 사령탑을 맡기로 최종 결론을 지었다고 한다.
“1박2일 일정으로 중국에 갔다가 2박3일 만에 들어왔다. FC서울 선수들과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팀을 나왔기 때문에 중국으로의 복귀가 착잡하기만 했다. 오죽했으면 궈안과 1차 협상이 결렬되는 순간 ‘잘 됐다’ 싶은 생각이 들었을까. 마음이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협상을 완성시키고 귀국하는데 여러 가지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짧은 시간 동안 다시 짐을 꾸려 중국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면서 갑자기 지도자 인생이 덧없이 느껴졌다. ‘보따리 인생’이나 다름없는 게 아닌가. 베이징으로 다시 출국하려고 비행기에 오르는데 정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 감독은 전남에 있을 때에 비해 FC서울은 ‘외풍’이 심했다고 토로했다. 모든 게 성적과 연결됐다. 성적이 좋다가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이런저런 ‘근거없는’ 소문들이 팀 분위기를 어지럽힐 정도였다.
“FA컵 대회 우승 후 정규리그에서 3승1무로 선두를 달리다 1무2패가 되며 3위권에 머문 적이 있었다. 그 시기에 나를 둘러싼 이상한 소문이 나돌았다. 이미 중국의 상해 팀과 10억 원에 계약이 돼 있다는 얘기부터 이장수가 컵 대회 우승 후 팀을 소홀히 한다는 내용 등 주로 중국과 관련이 있었다. 좀 전에도 말했지만 다음 시즌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중국 팀과 접촉을 하겠나. 구단에서 제시한 1년 계약 기간을 거부한 가장 큰 이유가 이런 ‘외풍’ 때문이었다. 1년으로 계약하면 또 다시 시즌 중에 중국 진출설 등 다양한 ‘외풍’들이 발생할 것이 분명했다. 그런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갈 자신이 없었다.”
이 감독은 중국에서 화려한 지도자 생활을 마무리하고 곧장 전남 드래곤즈 팀을 맡았다. 부임 첫 해에 전남을 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켰지만 용병 문제로 본의 아니게 구단과의 관계가 불편해졌고 결국 계약 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팀을 나오게 된다. 곧바로 FC서울 사령탑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FA컵 대회 우승과 4강 플레이오프 진출이란 성적을 올렸지만 재계약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 ‘충칭의 별’이었던 이장수 감독. 이번엔 ‘궈안의 별’이 되길 기대해 본다. | ||
박주영에 대한 기대와 걱정도 감추지 않았다. 언론이 만든 ‘천재 스트라이커’에서 또 다시 언론에 의해 ‘별 볼일 없는’ 공격수로 비춰진 부분이 이 감독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고 한다.
“(박)주영이는 정말 좋은 선수다. 프로 데뷔 첫 해에는 상대팀 수비수들이 적극적으로 달려들지를 못했다. 그래서 주영이가 마음껏 실력 발휘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듬해부터는 상대 수비수들의 움직임이 달라졌고 주영이가 그 부분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하지만 타고난 실력이 있고 워낙 성실한 선수이기 때문에 조금만 참고 기다려준다면 분명 이전의 모습보다 훨씬 더 좋은 플레이를 할 수 있다고 본다. 그 나이에 그만큼 할 수 있는 선수는 대한민국에서 박주영밖에 없다.”
FC서울 감독 재임 중에는 선수들에 대한 칭찬이 인색했던 이 감독이었다. 그러나 젊은 선수들, 조금만 끌어주면 더 많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선수들이 FC서울에 많다고 말하는 이 감독의 눈에는 회한이 가득했다.
인터뷰를 하다 보니 궈안 팀에 대한 질문보다 FC서울에 대한 안타까움들이 더 많이 흘러 나왔다. 과거를 벗어나 현실로 돌아와 궈안 팀 사령탑 이장수를 만나야 할 시간이었다. 지난해 정규리그 3위를 차지한 베이징 궈안 팀의 문제점을 열거하는 이 감독이 눈빛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궈안의 문제점은 중간층의 선수들이 없다는 점이다. 팀의 주축 멤버로 뛰는 선수들 나이가 대부분 27세 이상이다. 나이 어린 선수들은 주전으로 뛸 만한 실력이 안 된다. 즉 감독 입장에서는 좋으나 싫으나 주축 선수들을 기용해야 하기 때문에 선발 자리 경쟁을 붙일 수가 없다. 그래도 선수들이 내가 ‘독한 놈’이란 걸 익히 알고 있어서인지 잘 따른다. 좋은 용병을 뽑는다면 한 번 해볼 만하다.”
베이징은 축구 열기가 가장 뜨거운 도시다. 그러다보니 궈안에 대한 팬들의 관심이 대단하다 못해 폭발적이다. 성적이 좋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만약 조금이라도 부진한 성적을 낼 경우 팬들의 질타를 각오해야 한다. 이 감독은 이 점이 조금은 부담스럽지만 올 시즌은 어렵다고 해도 내년에는 반드시 우승을 차지할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마지막으로 이런 질문을 던졌다. “한국 지도자로 언제쯤 복귀할 것인가?” 그러자 이장수 감독은 의미있는 대답을 내놓았다.
“내 고향은 한국이고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그러나 그 시기를 못 박을 수는 없다.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느낀 점이라면 진로는 자의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일단 궈안과 2년 계약을 했으니까 한국 복귀는 그 이후에 생각하겠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