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C서울의 주장이 된 이을용. 터키 리그서 뛰던 경험을 살려 귀네슈 감독과 선수들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 ||
3월 4일 개막전을 앞두고 허리 부상을 당해 귀네슈 감독을 놀라게 했던 이을용. 오는 9월이면 셋째가 태어난다며 함박웃음을 짓는 이을용을 지난 3월 2일 구리 GS챔피언스파크에서 만났다.
―허리 괜찮아요?
▲네. 많이 좋아졌어요. 개막전 얼마 안 남기고 부상당해 많이 놀랐어요. 감독님께 말씀 안 드리고 치료 받으려 했다가 결국 알게 되셨죠.
―지난해 7월 K리그 복귀 후 오랜만에 터키로 전지훈련까지 다녀왔는데 이젠 좀 K리그 상황이 파악 됐나요?
▲제가 지난해 뛴 경기 수를 세어 보니까 모두 50게임을 뛰었더라구요. 보통 1년에 46게임 뛰는 게 일반적이거든요. 그것도 터키와 독일, 그리고 한국을 오고 가며 뛴 기록이니까 다른 때보다 체력적인 부담이 훨씬 더 컸겠죠. 그래서인지 막상 K리그 복귀 후 체력 저하로 많이 힘들었어요. 이번부터는 좀 달라질 겁니다. 이을용의 진가를 보여드려야죠.
―K리그 복귀 후 가장 부대낀 부분이 있었다면 뭘까요?
▲K리그 선수들이 유럽 선수들에 비해 순간 동작이 엄청 빨라요. 반면에 게임 흐름을 읽는 눈과 템포가 많이 느리죠. 유럽에선 패스 위주의 경기로 진행해 가는데 K리그에선 팀에서 잘 하는 선수들의 볼 점유율과 소유욕이 큰 나머지 게임의 리듬이 끊기는 일이 많더라구요. 그 부분에 적응하기가 힘들었어요. 제가 지적하고 고치려 한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저도 선수일 뿐이니까요.
―후배들과 그 부분에 대해 얘기를 해봤나요?
▲해봤죠. 조언과 충고도 곁들이면서. 그런데 프로 경력은 많은데 진짜 프로가 어떤 것인지를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얘기를 해줘도 잊어버리는 건지 관심이 없는 건지 달라지지가 않아요. 젊은 나이에 돈을 너무 많이 벌었어요. 연봉이 높으니까 아쉬운 게 없어진 거죠. 앞을 내다볼 줄 모르는 후배를 보면 많이 안타까워요.
―주장을 하라는 제안이 나왔을 때 솔직히 어떤 심정이었어요? 하기 싫었을 것 같은데….
▲당연히 하기 싫었죠. 누가 제 얼굴보고 잘 따라오겠어요? 제가 먼저 다가서야지만 후배들이 마음 문을 열죠. 하지만 귀네슈 감독이 온 이후론 운명처럼 ‘주장’을 받아들였죠. 터키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통역 말고 누가 있겠어요? 그런데 너무 힘드네요. (김)남일이가 왜 주장을 하지 않으려고 했는지 이제야 알겠어요. FC서울이나 수원삼성 같은 팀에서 주장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에요. 이유는 알아서 상상하시구요.
―귀네슈 감독이 강도 높은 훈련을 시킨다고 들었어요.
▲어휴! 말 마세요. 어떤 분이라는 건 터키에서 이미 터득했지만 새로운 팀을 맡고 의욕이 넘치시다보니 훈련을 굉장히 힘들게 시키세요. 오전 오후 훈련을 거의 빼놓지 않고 돌려요. 애들이 거의 초죽음 상태가 됐어요.
▲ 사진=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당연히 말씀 드렸죠. 그랬더니 원래 그런 거라면서 이런 상태로 서너 게임 뛰다보면 저절로 풀어진다고 절 설득시키더라구요. 제가 유럽 선수들과 아시아 선수들의 몸 상태가 많이 다르다며 또 다시 휴식 시간을 달라고 간청했지만 묵사발되고 말았답니다. 하하.
―이장수 감독이 가고 귀네슈 감독이 오면서 선수들 사이에서 작은 흔들림이 있었을 것 같은데.
▲이장수 감독님이 계실 때 주전으로 뛴 선수들은 많이 아쉬워한 반면 그렇지 못한 선수들은 새 감독님에 대해 기대를 가질 수밖에 없었어요. 심지어 어떤 선수한테는 ‘아버지가 떠나서 어떡하느냐?’는 우스갯소리로 그 선수의 신분 변화를 얘기한 적이 있어요. 이번에 터키 전지훈련 가서 보니까 장난 아니더라구요. 선수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경쟁 의식이 대단했거든요. 베스트 11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서로 주전 자리에 들려고 치열한 싸움을 벌인 거죠. 어느 정도 베스트 11의 윤곽이 나오니까 그 리스트에 들지 못한 선수들이 의기소침해 하는 것 같아요.
―귀네슈 감독과의 인연이 보통 아니에요.
▲귀네슈 감독이 온다는 소릴 듣고 솔직히 기분이 좋았어요. 1년 동안 터키에서 같이 생활하면서 그분의 축구 스타일을 훤히 꿰고 있었으니까요. 워낙 꼼꼼히 잘 가르치시는 분이에요. 게임이나 훈련을 아기자기하고 재미있게 하는 스타일이라 배울 게 많아요. 재미있는 얘기 해드릴까요? 감독님이 소식가예요. 아침엔 요구르트로, 점심은 공부하신다며 건너 뛰고 저녁은 먹는 둥 마는 둥 하세요. 감독님이야 그런 식생활에 익숙해 있겠지만 주위 코치나 통역은 고역이죠. ‘배고파 죽겠다’는 소리가 절로 나온대요.
―지난해 9월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잖아요. 원래는 독일월드컵 직후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더 이상 대표팀에서 뛰지 않겠다’라고 말했었는데 아시안컵 예선전에는 출전했어요.
▲핌 베어벡 감독에게 말할 기회가 없었어요. 그런 가운데 아시안컵 예선전 대표팀 명단에 이름이 올려졌는데 못 간다고 버틸 수가 없더라구요. 그래서 이란전이 끝난 뒤 말씀 드렸고 아시안컵 본선까지 같이 뛰자는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원래는 지난해 9월 6일 대만과의 아시안컵 예선전이 끝난 뒤 기자회견 자리에서 감독이 자연스럽게 발표를 할 예정이었어요. 그런데 그만 잊어버리신 거예요. 파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통역에게 이을용이 은퇴한다는 걸 깜박 잊고 말하지 못했다며 당황해 하셨대요. 그래서 다음날 매니지먼트사에서 발표를 한 거죠.
―어때요? 시원섭섭했나요?
▲섭섭보단 시원했고 조금도 아쉬움이나 미련이 남지 않았어요. 지금도 마찬가지구요. 은퇴 발표하기 전에 농담삼아 (이)운재 형과 (김)남일이한테도 같이 (대표팀을) 은퇴하자고 권유(?)했는데 더 할 일이 남았다고 동참하지 않더라구요.(웃음) 독일월드컵 때는 (안)정환이에게 동반 은퇴하자고 말했는데 별로 관심을 두지 않던데요?
―홍명보 코치가 많이 반대했잖아요. 많이 아쉬워하는 것 같더라구요.
▲베어벡 감독이 아닌 홍 코치 아니, 명보 형에게 먼저 상의를 했더라면 분명히 붙잡혔을 거예요. 그럴 것 같아서 감독에게 바로 말씀 드린 거예요. 전 뭐든지 사람들이 아쉬워할 때 그만두는 게 바람직하다고 믿어요. 현역 은퇴도 마찬가집니다. 잘하면 2~3년 뒤에는 그만두게 될 거예요. 그렇다면 이제부터 슬슬 준비를 해야 하는 거죠. 아무리 볼을 잘 차도 젊은 애들한테는 당해낼 수가 없어요. 노련미로 버티는 것도 하루 이틀이죠.
▲일본에서 뛰고 있는 (윤)정환이 형이 이런 얘기를 하더라구요. 이번 시즌 끝나면 겨울에 파주에서 3급 지도자 연수를 받으라고. 그래야 은퇴 후에 시간을 벌 수 있다구요. 그래서 제가 뭐라 한 줄 아세요? 만약 제가 3급 지도자 연수를 신청했다는 소식이 알려지기라도 하면 그날 바로 ‘이을용 은퇴’라는 기사가 헤드라인을 장식할 거라구요. 그런데 정환이 형은 이미 따 놨대요.
―안정환의 K리그 복귀를 가장 소원했던 사람 중 한 사람이잖아요. 안정환에게 많은 조언을 해줬다고 들었어요.
▲조언보다 결정을 빨리 내리라고 닦달했죠. 유럽이 안 될 것 같으면 빨리 포기하고 일본이든 한국이든 제 갈 길 찾아가야 하는데 자존심을 내세우며 계속 지켜보는 입장만 취해서 좀 안타까웠어요. 수원 삼성 입단을 결정해 놓고 정환이가 전화를 했더라구요. 전화에 대고는 “나 조금 있다가 또 나갈 거야”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했어요. “야 인마! 나가긴 어딜 나가? 수원에서 마무리 해”라구요.
―안정환과 이을용…. 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에요. 둘이 어떻게 친하게 된 건가요.
▲대표팀에서 동기라곤 둘밖에 없었어요. 정환이가 낯가림이 심하고 말수가 적다 보니 동기생인 절 룸메이트로 붙이곤 했죠. 말 많이 안 하는 놈들끼리 방을 쓰니까 처음엔 조용했어요. 그러다 심심한 나머지 조금씩 얘길하기 시작했고 대표팀 끝나면 밖에서 따로 만나 술도 한잔씩 하고 그러면서 친해졌어요. 정환이가 처음만 그렇지 친해지면 아주 재미있는 친구예요. 남일이랑도 많이 가까워진 것 같더라구요. 후배들에게 먼저 다가가야 하는데 아직 그런 점이 좀 부족해요.
―K리그에서 은퇴를 안 할 수도 있다는 얘기는 뭐예요?
▲은퇴하기 1년 전쯤 호주나 미국 등 영어를 배울 수 있는 나라에 가서 공부하면서 축구를 했음 좋겠어요. 주위에선 돈 좀 더 벌라고 얘기하지만 돈 더 벌어서 뭐해요? 앞을 내다보고 살아야죠. 세미리그 수준에서 생활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연봉만 준다면 (서)정원이 형처럼 축구와 공부를 겸하는 생활을 해보고 싶어요.
―참, 2002년 월드컵 이후 히딩크 감독이 에인트호번으로 오라고 제의한 적 있었어요?
▲하하. 맞아요. (이)영표나 (박)지성이가 가기 전에 먼저 러브콜을 받았어요. 그런데 테스트를 받고 입단하라는 말에 테스트 받고는 가지 않겠다며 협상을 거부했죠. 그후 피스컵 때인가? 에인트호번을 이끌고 히딩크 감독이 다시 방한했는데 그때 하얏트 호텔로 절 부르시더라구요. 두 번째 러브콜이었죠. 그때는 에이전트사에서 거절했어요. 그쪽에서 제시한 협상안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봐요. 후회요? 에이 그런 거 없어요. 영표와 지성이가 잘 됐으면 된 거죠.
이을용은 K리그에 있는 동안 FC서울이 우승하는 걸 보는 게 소원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주장을 맡는 동안 우승한다면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는 일’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인터뷰할 때마다 참으로 많은 ‘느낌표’를 선사하는 그와 헤어진 뒤 돌아오는 길에 같이 갔던 사진부 선배가 이런 소감을 전했다.
“그 친구 직접 보니까 정말 ‘진국’이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