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월 11일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박근혜 전 대표가 환호하는 당원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위),지난 6월 30일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서울광장에서 이임식을 마친 뒤 직원들과 기념사진을 찍으며 손을 흔들고 있다. | ||
그렇다면 한나라당의 계보는 어떨까. 열린우리당의 계파가 대권 주자들의 품속을 떠날 준비를 하는 반면 한나라당의 계보는 박근혜라는 가장 확실한 대권주자의 ‘블랙홀’로 급속하게 빨려들어가고 있다.
지난 전당 대회 이후 한나라당의 의원들과 국회를 출입하는 관계자 등을 통해 종합해본 결과는 이런 사실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친박’으로 분류되는 의원들의 수가 전체 당소속 의원 126명 가운데 최소 60명에서 최대 80명이 넘는 것으로 파악된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숫자는 큰 의미가 없다. 한나라당 계파는 정책보다는 ‘될 사람에게만 모이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그만큼 휘발성도 강하다고 볼 수 있다. 한나라당의 계보 정치 그 이면을 살펴보았다.
“이시장님, 몸은 여기에 있지만 마음은 언제나 그곳에 있습니다. 제 마음 잘 알고 계시죠? 허허허”.
한나라당 A 의원은 대표적인 ‘친박’ 인사로 분류된다. 박근혜 전 대표 재임 당시 주요 당직을 맡은 바 있는 중량급 의원이다. 하지만 그는 낮과 밤의 생활이 다르다. 그는 수시로 이명박 전 서울시장에게 전화를 넣는다. 별 얘기는 없고 단지 안부 인사를 하는 정도다. A 의원의 그런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이 전 시장 측은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달라질 수 있나”라며 그의 ‘낮과 밤’ 인생에 혀를 내두른다고 한다.
이것이 현재 한나라당 계파의 현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책과 이념에 따라 계파가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차기 권력을 잉태할 가능성이 높은 인사를 중심으로 베팅하고 줄서기를 하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7·11 전당대회를 거치면서 박근혜 전 대표를 지지하는 주류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지지하는 비주류로 크게 재편되고 있다. 그런데 박 전 대표는 계보정치를 체질적으로 선호하지 않아 친박 계파모임도 없다.
<일요신문>은 한나라당의 B 의원과 함께 친박으로 구분되는 의원들을 가려보았다. 물론 B 의원의 주관적인 판단이 많이 가미되었겠지만 그가 7·11 전당대회에서 특정 주자의 선거운동을 하며 대부분의 의원들을 접촉했기 때문에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B 의원이 가려놓은 친박 의원은 모두 61명이었다. 주관적 선택이기 때문에 그 명단은 공개하지 않는다. 현재 한나라당 소속 의원이 126명임을 감안하면 절반가량이 친박으로 분류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일부 누락된 의원들도 있기 때문에 한나라당을 출입하는 다른 정보 관계자들과 다시 분류작업을 해 보았다. 그 결과 최대 80명 정도가 범 친박 계보로 분류되었다.
한 관계자는 “지난해 청계천 효과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주가가 한창 높았을 때 그를 지지하는 의원들 숫자도 굉장히 많았다. 하지만 전당대회 뒤 박근혜 대세론이 입증되자 이번에는 다시 친박 의원들 숫자가 많아졌을 뿐이다. 두 대권 주자를 지지하는 핵심 의원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앞으로 또 어떻게 계파 변화가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라고 밝혔다.
한나라당 내 계파 모임은 나름대로 목적과 설립 취지를 갖고 있다. 의원들도 그 취지에 따라 2~3개의 모임에 참석하기도 한다. 따라서 모임만으로 그 성격을 구분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한나라당 계파를 살피기 위해서는 우선 박근혜 전 대표의 계파를 분석해야 하지만 친박 그룹의 계파 모임은 없다. 가장 대표적 친박 의원으로는 전여옥 최고위원을 들 수 있다. 여기에 유승민 의원은 박 전 대표의 비서실장을 지낸 바 있는 확실한 친박 계보다. 김무성 의원도 측근으로 분류되지만 원내대표 경선에서 확실한 지원을 받지 못한 까닭에 ‘박심’에서 조금 멀어진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이들 외에 유정복 전 비서실장은 당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계속 박 전 대표의 정치적 입장을 대변하는 등 지근거리에서 보좌하고 있다. 또한 최경환 유기준 곽성문 의원 등은 ‘떠오르는’ 신 측근그룹으로 평가받고 있다.
친박 그룹은 조직적인 모임이 없는 반면 ‘반박’ 그룹은 다양한 계파 모임을 가지고 있다. 그 대표적 모임이 중도성향 의원들의 모임인 ‘국가발전전략연구회’(발전연·공동대표 심재철 박찬숙). 이 모임은 지난 2004년 5월 이재오 홍준표 김문수 의원 등 3선급 당선자들이 주축이 돼 만들어졌다. 이명박 전 시장을 지지하는 의원들이 많기 때문에 당내 대표적 친이 그룹으로도 불린다. 친이 그룹의 핵심 인사로 꼽히는 이 전 시장의 친형인 이상득 국회부의장이 구심점 역할을 맡고 정두언 의원은 ‘대변인’을 자임하고 있다. 고려대 후배인 권오을 이병석 김병호 의원 등도 친 이명박 계로 분류된다.
그런데 친이 그룹은 친박 그룹과 달리 서서히 분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이 전 시장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한 의원은 “이명박 진영은 이미 이완됐다. 대표적 사례가 홍준표 의원이다. 그는 서울시장 경선 과정에서 이 전 시장의 지원을 받지 못하자 상당한 배신감을 느꼈다. 그 뒤엔 오히려 박 전 대표 계보로 보는 게 맞다. 또한 이재오 최고위원도 전당대회 이후 확실한 이명박 계보로 분류되고 있지만 그것은 자신의 의지라기보다 정치적 상황에 따른 것이다. 이 최고위원 본인은 이 전 시장과 가깝지만 향후 독자적인 세를 형성하고 싶은 생각이 더 강한 것 같다”고 밝혔다.
또한 발전연 공동대표인 심재철 의원도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지방선거 결과에 대해 “한나라당 출신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열심히 일했기 때문”이라고 평가한 것과 관련해 “착각도 유분수”라며 직격탄을 날려 친이 그룹의 대표라는 말을 무색케 한 바 있다.
심재철 대표가 조직을 이끌어오다가 지난 7월 모임 때 박찬숙 의원이 공동대표를 맡기로 잠정합의한 상태라고 한다.
소장파들의 모임인 ‘새정치수요모임’(수요모임)도 당내 중도개혁 세력들의 집합체인 미래모임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들만의 ‘개혁’ 성향을 더욱 확고히할 채비를 하고 있다. 전당대회에서 권영세 의원의 최고위원직 입성 실패로 큰 타격을 받았지만 앞으로 개혁성을 더욱 강화해 대권 후보 선출에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계획이다. 그런데 수요모임은 손학규 전 경기도 지사와 심정적으로 가까운 편이다.
최근 남경필 신임 대표가 “최소한 세 명의 대선후보(박근혜 이명박 손학규)가 어느 정도 세력 균형을 이루면서 서로 경쟁할 수 있는 정도까지는 손 전 지사가 평가받을 필요가 있다. 손 전 지사가 지금부터 더 평가를 받도록 (소장파가) 도와줄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뒤부터는 손 전 지사와 더욱 적극적으로 연대할 계획을 갖고 있다. 수요모임은 손 전 지사 띄우기 등을 통해 당내 대권 구도를 양자 대결에서 다각 구도로 전환시킬 계획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이밖에 제3세력으로 중도보수 성향 의원들이 주축이 돼 만든 ‘국민생각’(대표 김성조)도 당 일각에서 존재를 과시하고 있다. 국민생각은 박희태 전 국회의장과 맹형규 의원, 강재섭 대표최고위원 등이 당내 특정 계파에 줄서기를 하지 않겠다며 만든 모임이다. 강재섭 대표가 주축이 됐기 때문에 범 친박 계열로 분류된다. 하지만 향후 친박-친이 사이에서 일종의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할 것으로도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