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G 부임 후 첫 시즌을 맞은 김재박 감독. 삼성 선동열 감독과의 라이벌 구도가 자못 흥미진진하다. | ||
매해 정규시즌 직전이면 각 팀 순위를 점치는 평가들이 많이 나온다. 전체적으로 8개 구단이 혼전 양상을 띨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뚜렷한 강자도 뚜렷한 약자도 없다는 의견이 대세다. 그나마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팀 삼성과 SK, 한화 등이 전력상 조금 나은 것으로 거론되고 있다. 순위를 예상하는 것 못지않게 흥행 요소를 기억해두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올해 프로야구에서 눈여겨봐야 할 점은 무엇일까.
김재박 vs 선동열
가장 관심이 큰 대목이다. 지난 겨울 화려했던 두 감독의 ‘말싸움’이 곧 야구장에서 벌어질 실전에서 결판난다.
작년 가을 김재박 감독이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삼성처럼 돈으로 선수를 끌어 모아 우승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요지의 발언을 해 큰 화제가 됐다. 한국 시리즈 2연패 직후 파티 분위기의 삼성과 선동열 감독에게 직격탄을 날린 셈. 별 다른 반응이 없었던 선 감독은 지난 2월 오키나와 전훈캠프에서 “LG 투수진이면 우승해야 한다. 팀을 바꿔서 운영해보자. LG 선수들 데리고 우승할 수 있다”고 되받아쳤다.
평소에도 프로야구계에서 김 감독과 선 감독은 그다지 왕래가 많은 사이가 아니다. 만약 8개 구단 감독들의 정서적인 친밀도를 지도상에 표시한다면 김 감독과 선 감독을 가장 멀리 떨어져 있게 그려야 할 것이다. 그다지 친하지 않은 사이인 데다 현재 야구뿐만이 아니라 가전 업계에서도 치열한 라이벌을 형성하고 있는 삼성과 LG를 대표하는 사령탑이기에 두 감독의 말싸움은 상당한 파급 효과를 냈다.
결국 야구장에서 결론이 날 것이다. 삼성과 LG는 올해 18차례나 맞대결을 펼친다. 일본 프로야구의 경우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안티-요미우리’의 대표 주자인 한신 타이거스가 맞붙을 때마다 불꽃 튀는 승부가 벌어진다. 얼마 전 일본 취재를 갔을 때 두 팀 간의 시범경기를 지켜볼 수 있었다. 시범경기인 데도 초반에 선두 타자만 출루하면 양 팀 벤치는 무조건 희생번트 사인을 냈다. 두 팀 모두 적어도 요미우리만큼은, 한신만큼은 시범경기에서도 짓밟아야 한다는 경쟁의식이 치열했다. 삼성과 LG의 올 시즌 대결도 비슷한 양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팬들만 재미있게 됐다.
‘만수행님’ 효과
SK가 5개월 전 이만수 수석코치를 영입했을 때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신임 김성근 감독과 함께 효과적인 화음을 낼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이었다. 이만수 코치는 90년대 후반부터 오랫동안 미국 야구를 경험했다. 김성근 감독은 알려졌다시피 일본 야구를 추구하는 스타일.
일본 야구에선 선수가 지도자에게 절대 복종해야 하는 철저한 사제 관계다. 반면 미국에선 코치와 선수가 다양한 의견을 나누며 문제점을 고쳐나간다. 이만수 코치는 최근 “선수들이 나를 무서워하는지 도무지 말을 걸지 않는다”라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카리스마 넘치는 엄한 감독과 ‘형님’이 되고자 하는 수석코치의 조합인 셈.
▲ 선상 팬미팅에서 이만수 코치가 막춤을 추고 있다. | ||
다행스러운 점은 이 같은 공격적인 스포테인먼트 전략이 김성근 감독과 이만수 수석코치의 상반된 스타일에서 오는 괴리를 줄여주며 긍정적인 효과를 낳고 있다는 점이다. 김성근 감독은 과거 LG 사령탑 시절 때와 비교하면 공개적인 자리에서 놀랄 만큼 자유로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전훈 캠프에선 선수들에게 “지나치지 않은 수준에서의 술과 담배를 허용한다”고 말해 “예전 김성근 감독이 맞나?”란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선상 팬 미팅 때 ‘막춤’을 췄던 이만수 코치도 팬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애쓰고 있다.
롯데 올 가을엔…
3월초 일본 가고시마에서 돌아온 한국야구위원회(KBO) 소속 심판원들은 한결같이 “롯데가 여전히 선수들 기량과 집중력에서 떨어진다”는 평가를 내렸다. 롯데와 현대는 가고시마에 캠프를 차린 바 있다. 익명을 전제로 한 모 심판원은 “솔직히 롯데가 올해 꼴찌를 면할 수는 있겠지만 4강 진출은 역시나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런데 이 같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롯데는 시범경기에서 3월 27일 현재 7승1패의 성적으로 1위를 달리는 등 예상 밖의 선전을 펼치고 있다. 물론 시범경기 성적이 정규시즌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과거 시범경기 1위가 정규시즌에선 8위로 둔갑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때문에 아직까진 롯데의 올 정규시즌 순위에 대해 언급하기 어렵다.
KBO가 올 8개 구단 흥행 목표를 400만 명으로 늘려 잡았다. 롯데의 선전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부산은 여전히 야구 열기가 높은 도시다. 롯데가 2000년대 들어 변변한 성적을 못 냈기에 많이 시들해지긴 했다. 하지만 워낙 야구에 대한 충성도가 강한 곳이기 때문에 롯데가 올해 4강권에만 든다면 사직구장에는 구름 관중이 몰려들 전망이다. 롯데의 부활이 곧 프로야구 인기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 자명하다.
삼성 선동열 감독의 경우 “롯데는 기본적으로 투수력이 좋기 때문에 약간의 운만 탄다면 충분히 4강에 들 수 있는 저력이 있다”고 말했다. 그게 올해가 될지, 향후 언제쯤이 될지는 알 수 없다.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대 유니콘스의 시즌 성적도 관심거리다. 현대는 곤란에 처해있지만 지난해 정규시즌 2위를 차지했던 전력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다.
▲ ‘괴물’로 떠오르는 SK의 신인투수 김광현(왼쪽). KBO는 올해 관중 유치 목표를 400만 명으로 잡았다. 롯데의 선전 없이는 불가능한 수치다. | ||
안산공고 출신의 SK 신인투수 김광현. 그가 지난해 신인 최초로 투수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하며 정규시즌 MVP를 따낸 한화 류현진의 명성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역대 팀 내 최고액 계약금(5억 원)을 받은 것도 화제지만 실전에서 나름대로 싱싱한 구위를 뽐내고 있다. 김광현은 3월 27일 현재 시범경기서 7⅓이닝 동안 3안타 6볼넷 7탈삼진 무실점으로 좋은 기록을 남겼다.
시범경기 동안 한화 김인식 감독을 비롯해 여타 구단 감독들은 “김광현 공을 직접 보니 아직 류현진에 비하면 한참 떨어진다”는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하지만 작년에도 시즌 직전에 류현진이 3관왕을 차지할 거라고 예측한 야구인은 없었다. 김광현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김광현은 특히 김성근 감독으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올 초 스프링캠프 때의 일이다. 김성근 감독이 일본 전훈 캠프를 찾은 국내 취재진들에게 “개막전 일정 때 팬들을 위해 김광현과 한화 류현진의 선발 맞대결을 성사시켜 보자”면서 공개 도전장을 내밀었다. 한화와 SK가 대전에서 개막 3연전을 벌이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그만큼 김성근 감독에겐 자신감이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나 김인식 감독은 ‘말려들지’ 않았다. “필요 없다!”면서 한마디로 딱지를 놨다. 류현진과의 라이벌 구도를 만들어 김광현에 대한 관심을 높이려는 김성근 감독의 작전 실패. 또 한 번은 김성근 감독이 국내 감독들을 고스톱 스타일에 따라 분류하면서 김인식 감독을 ‘기다림 뒤 한방으로 승부를 뒤엎는 승부사’로 표현한 적이 있다. 그러자 이를 전해들은 김인식 감독은 “나랑 직접 고스톱을 쳐본 일이나 있느냐?”라며 일축했다. 한마디로 ‘엮이는 게 기분 나쁘다’는 뜻이다.
지난해 류현진의 3관왕 등극에는 신인 투수에게 선발 한 자리를 맡겨 기회를 준 김인식 감독의 ‘믿음야구’가 큰 힘이 됐다. 김성근 감독은 김광현을 밀고 있다. 두 젊은 투수의 대결에는 두 60대 베테랑 감독의 자존심 대결 구도가 숨어 있기도 하다.
커진 공인구
KBO가 프로야구의 투고타저 현상을 완화하기 위해 올해부터 공인구의 반발 계수를 높이고 크기도 조금 키웠다. 공인구의 크기 변화는 하드웨어적인 측면에서 프로야구에 변화를 불러올 것이다. 우선 투수들이 기존 공인구와 비교해 새 공에 대해 다소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공을 잡았을 때 손에 쏙 들어오는 느낌이 적기 때문에 부담감을 느낀다는 얘기가 있다. 또 예전에 비해 실밥의 도드라짐이 더해졌기 때문에 “평소 손가락에 물집이 자주 잡히는 투수는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고 하소연도 한다. 반면에 변화구를 잘 던지는 투수들은 각이 더 꺾이는 긍정적인 효과를 얻을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마운드 높이도 낮췄는데 이 때문에 정통파 오버핸드 투수들은 마치 평지에서 던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고 있다. 위에서 아래로 찍어 던지는 스타일의 투수들은 심리적으로 위축감을 느끼게 될 것이고 반대로 타자들은 이전에 비해 위압감을 덜 느낀다. 이같은 변화가 실제 홈런의 증가, 활발한 공격 야구로 이어지길 KBO는 기대하고 있다.
스트라이크존도 기존의 가로로 긴 형태에서 일본처럼 세로로 긴 형태로 바뀌었다. 시범경기를 통해 타자들은 투 스트라이크 이후 볼이라 판단했던 낮은 공이 스트라이크로 선언돼 고개를 갸웃하는 사례가 눈에 많이 띄었다.
김남형 스포츠조선 야구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