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2007년 4월 21일. 현대 유니콘스의 정민태는 롯데 자이언츠의 4번 타자 이대호에게 홈런을 맞자 2군을 자청했다. 곧 사람들은 정민태의 몰락을 수군거렸고 노장의 재기 불발을 이야기했다. 과연 그런 것일까. 지난 4월 27일 금요일. 정민태를 만나기 위해 현대 유니콘스의 원당 2군 구장을 찾았다.
2003. 10. 25 - 한국시리즈 7차전
5회 말, 현대가 공격을 시작했다. 하지만 5회 초까지 1안타 무실점의 호투를 해오던 선발투수 정민태가 오른쪽 허벅지 통증을 느낀다. 허벅지근육파열이었다. 정민태가 김시진 투수코치에게 귓속말을 한다.
정민태: 허벅지근육이 찢어진 것 같아요. 바늘 좀 갖다 주세요.
김시진 투수코치가 트레이너를 조용히 불러 속삭인다. 트레이너는 바늘 하나를 꺼낸다. 그리고 정민태의 오른쪽 허벅지 뒤쪽을 찌른다. 검은 피가 흐르고 트레이너는 정민태의 허벅지에 압박붕대를 동여맨다.
김시진: 너, 진짜 계속 던질 수 있겠냐?
정민태: 네. 오늘 경기는 끝까지 제가 책임지고 싶습니다.
현대는 7 대 0으로 SK를 이기고, 한국시리즈 3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2007. 4. 21 - 부산 사직야구장
롯데의 염종석과 선발 맞대결을 시작한 정민태. 1회 1사 2루 상황에서 롯데 4번 타자, 이대호가 타석에 들어선다. 정민태, 다섯 번째 와인드업. 126㎞짜리 체인지업이다. 이대호가 놓칠 리 없다. 딱. 150m짜리. 사직구장 건립 이후 첫 장외홈런이 터졌다. 그날 밤, 정민태가 혼자 생각에 빠진다.
정민태: 직구를 던져야 되는데 못던지겠어. 내 팔은 괜찮다고 하는데, 머리가 아픈 걸 기억하고 있어. 아, 내가 이러고 있는데 김시진 감독은 어떨까. 내가 말하자. 어려울 때 감독이 된 형님에게 부담을 줄 수는 없어.
생각을 끝낸 정민태가 김시진 감독의 방문 앞에 선다. 똑똑~
김시진: 웬일이야, 쉬지 않고.
정민태: 죄송합니다. 홈런을 맞는 건 견딜 수 있지만, 제 투구내용은 부끄럽습니다. 감독님께 도움이 못돼서 진짜 죄송합니다. 2군에서 직구부터 다시 만들어 오겠습니다.
김시진: 하, 그래. 그래도 내가 여기까지 오는 데 네가 있어서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는 너도 알고 나도 안다. 너를 도와주고 싶다는 것만 알고 있어라. 갔다 와라, 기다릴게.
▲ 2003년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정민태. 당시 그는 팀 승리를 이끌고 MVP에 등극했다. | ||
부인: 선호야. 아빠, 어제 1회에 홈런 맞고 내려오셨어. 그러니까 집에서 조용히 있어.
선호: 엄마, 엄마는 아빠가 수술한 지 얼마나 됐다고 잘하길 바라세요. 지금도 잘하시는 거라구요.
부인: 암튼 아빠 아침에 일어나시면 선호 너 조용히 해야 한다.
일요일 아침, 정민태는 2군 원당구장으로 가기 위해 짐을 쌌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방을 나온다.
선호: 아빠, 부산에 잘 다녀오셨어요.
정민태: 그래, 선호는 야구 잘하고 있니? 아빠는 어제 1회에 홈런 맞고 내려왔는데, 봤냐?
선호: ….
서울 학동초등학교의 투수이자, 6학년인 큰아들, 선호가 꾸벅 인사를 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부 인: 뭐하게 선호한테 그런 말을 해요, 당신은….
정민태: 아냐, 선호도 투수인데. 내가 홈런 맞고 강판당할 때마다 집에서 말 안하고 성질내고 기운 빠져 있어봐? 똑같이 따라한다. 당신 그거 어떻게 볼래? 잘할 때도 있고 못할 때도 있는 거야. 누구 보고 배우겠어, 선호가.
현대 2군 선수단이 구리에 있는 LG 2군 구장으로 원정경기를 떠난 날, 점심 이후 정민태가 원당 2군 숙소에 홀로 앉아있다. 컴퓨터를 켠다.
누리꾼 1: 정민태 돈 아깝다. 먹튀. 븅~
누리꾼 2: 고마해라, 마이 무웃다 아이가.
누리꾼 3: 너 때문에 현대가 이렇게 됐다.
정민태는 후배투수, 전준호와의 전화통화를 생각한다.
전준호: 형님이 내려가시면 안되는데 걱정입니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형님이 있는 거랑 없는 거랑은 다른데.
장원삼도 전화를 걸어왔었다.
장원삼: 선배님, 힘내세요. 파이팅입니다.
정민태는 한숨을 쉰다. 한때는 악플을 다는 누리꾼들을 만나고도 싶었다. 일본 요미우리의 44세 최고령 투수 구도는 아직도 존경을 받는다.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존중은 받고 싶다. 야구를 향한 나의 열정을 그들은 모른다. 정민태는 다시 혼자 생각에 빠진다.
정민태: 내년이 마지막이다. 내년에 안 되면 깨끗이 물러나겠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는 명예롭게 은퇴하고 싶다. 욕먹으면서, 떠밀려서, 언론이나 팬들에게 시달리기 싫어서 은퇴하기는 싫다. 그러면 분명히 후회하게 될 거다. 아, 제발 내 은퇴는 나 스스로 결정하게 해달란 말이다.
2007. 3. 28 - 수원 시범경기 후
정민태: 선호야, 오늘 잘 던졌냐?
선호: 3이닝 던지고 5실점 했어요.
정민태: 아빠는 오늘 5이닝 2실점이었는데. 얌마, 잘 좀 해. 아빠랑 캐치볼 하러 갈까?
정민태는 투수의 길에 이제 막 접어든 아들 선호가 다치지 않고 행복하게 야구를 하길 바란다. 지금 2군 생활도 감사하다. 인생이 그렇기 때문이다. 내리막길 없는 인생이 있을까. 정민태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만약 야구를 안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끔찍하다. 야구 덕분에 얼마나 행복하고 뿌듯했는데. 정민태는 다시 생각한다. 나는 복 받은 사람이다. 지금은 이렇게 마지막 발버둥을 치고 있는 ‘지는 해’지만, 지는 해도 그냥 지지는 않는다. 불타는 노을을 보여줄 테다. 누가 정민태를 안락사시키려 하는가.
김은영 MBC 라디오 아이러브스포츠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