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프인들은 김경태를 박태환 김연아에 견줄 만한 ‘괴물’이라고 극찬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다들 그래요. 화면으로는 커 보이는데 실제로 보면 작다고….”
너무나 소박했다. 평범한 체구(176㎝)에 낡은 청바지와 허름한 검은 색 티셔츠. 악의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작은 눈과 살짝 웃음을 머금은 얼굴. 상대를 편하게 해주는 나긋나긋한 말투까지. 도저히 전날 1만 명이 넘는 골프팬들 앞에서 포효했던 바로 그 젊은 골퍼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본격적인 인물탐구로 들어갔다.
“샷도 뛰어나지만 멘털(정신력)이 장난이 아니라고들 하더라구요. 본인도 그렇게 생각해요? 경기 때 모습 보면 완전 돌부처 같은데….”
“제가 경기 때 긴장하지 않는다고요. 웬걸요. 저 정말 많이 긴장해요. 어제도 떨려서 죽는 줄 알았어요. 겉으로 나타나지 않을 뿐이죠.”
의외였다. 자신의 최대 장점을 이렇게 쉽게 받아치니 말이다. 골프채나 볼까지도 특정 제품을 쓰지 않으면 불안함이 느껴져서 엄청난 후원 제의에도 불구하고 한 회사 것만 고집한다고 부연 설명을 곁들였다. 긴장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긴장을 잘 다스린다는 것이 적절한 표현이었다. 표정을 감추기 위해 경기 때마다 선글라스를 착용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큰 웃음과 함께 “아니에요. 제 눈 보세요. 햇볕이 강하면 아예 눈을 못 떠요”라는 소탈한 대답이 나왔다.
내친김에 예민한 질문으로 들어갔다. 먼저 성장과정에 대해 물었다. 김경태의 아버지 김기창 씨(54)는 프로골퍼가 되기 위해 젊음을 바쳤다가 실패했고, 어머니 조복순 씨(51)는 가사도우미를 하면서 선수 아들과 캐디 아버지의 골프를 후원했다. 힘들지 않았을까.
이 대목에서도 김경태는 담담했다.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부모님이 워낙 저를 위해 헌신한 까닭에 좌절은 없었어요. 오히려 어려운 환경은 어린 제가 책임감을 갖고 더 운동을 열심히 하도록 만든 효과가 있었어요. 지금도 그래요. 다른 선수들은 프로가 되고, 우승을 하면 풀어지기 쉽지만 저는 가족들 때문에 골프에 더 욕심이 생겨요.”
실제로 김경태는 시즌 개막전 우승으로 받은 상금을 보태 지난 4월 25일 부모를 모시고 고향 속초에서 경기도 용인의 수지로 이사를 왔다.
비거리 문제도 따졌다. 일본 아마추어 최고 대회인 재팬아마를 두 번이나 석권하고, 2006년에는 아마추어로 프로무대에서 2승을 거뒀고, 또 12월 도하아시안게임에서는 2관왕에 올랐다. 타이거 우즈 못지않은 화려한 아마추어 성적이다. 하지만 장차 일본을 거쳐 미PGA로 진출하는 것이 목적인 김경태는 ‘비거리가 짧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지난 6일 매경오픈 우승 장면. 사진제공=매일경제신문 | ||
김경태와 아버지 김기창 씨를 잘 아는 한 지인은 이렇게 말했다. 2대에 걸쳐 가난 속에서 골프에 대한 열정 하나로 살아온 부자의 마음 속에는 누구도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없는 큰 한이 도사리고 있다고. 김경태는 겉으로 드러난 소박함과 부드러움, 그리고 극도의 침착함 속에 남들이 상상도 못할 강한 근성을 갖고 있었다.
김경태는 프로골프협회의 시드 문제에 대해서 차분한 반응을 보였다. 최고의 성적에도 불구하고 시드권을 받지 못한 것은 협회가 자신을 박대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규정 때문이라고 이해한다는 반응이었다.
김기창 씨와 김경태는 지난해 신한은행과 스폰서 계약 체결 직전까지 갔으나 아마추어 시절부터 지금까지 큰 도움을 주고 있는 재일교포 기업가와의 의리 때문에 마지막 순간 포기하기도 했다. 김경태의 모자 옆에 그 재일교포의 회사 이름을 끝까지 넣어야 한다고 고집했고, 이를 스폰서 측이 받아들이지 않자 의리를 저버릴 수 없다며 포기한 것이다.
그러나 매경오픈 우승 직후 신한은행으로부터 다시 프러포즈를 받은 김경태는 조만간 특급대우를 조건으로 한 수억 원대의 스폰서 계약을 체결할 전망이다.
김경태는 담배는 물론이고, 술도 거의 마시지 않는다. 운동에 관한 한 성실함 그 자체이고, 아직 여자 친구도 없다.
8년째 그를 가르치고 있는 한연희 국가대표 감독은 “(김)경태는 성격이 참 차분하다. 골프에서 필요한 멘털로는 최고”라고 강조했다. 한 감독은 골프실력보다는 인격과 품행을 더 중요시한다. 최고의 유망주를 발굴했으니 인터뷰 좀 하자는 요청에 한사코 손사래를 쳤다. 그 제자에 그 스승인 셈이다.
김경태는 유독 파랑색을 좋아한다. ‘골프황제’ 우즈와 대조적이다. 평상시와는 달리 대회 마지막 날은 반드시 파랑색 계통의 티셔츠를 입는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블루’야말로 김경태를 가장 잘 표현하는 색이라고 입을 모은다.
김경태는 86년생 호랑이 띠다. 프로 데뷔도 타이거 우즈와 꼭 같은 만 21세에 했다. 우즈가 열정의 붉은 색이라면, 김경태는 외유내강의 차분함이 빛나는 푸른 빛깔이다. 골프인들은 김경태를 수영의 박태환,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에 견줄 만한 걸출한 스포츠코리아의 대표 신인으로 극찬하고 있다.
유병철 객원기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