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재응. AP/연합뉴스 | ||
탬파베이 2선발로 입지를 다진 서재응, 어렵게 선발 자리를 꿰찬 백차승, 비슷하면서도 다른 메이저리거 2인방은 미국 야구에 확실한 ‘점’을 찍겠다는 목표 의식만큼은 분명하다. 두 선수와의 릴레이 인터뷰를 정리해 본다.
서재응 - 탬파베이 데블레이스
여전하다. 특유의 호탕한 웃음소리와 씩씩한 목소리가 태평양 건너에서까지 그의 기분 상태를 파악하게 해준다. 통산 100번째 선발 등판에서 팀 6연패를 끊고 시즌 2승을 거둔 서재응. 전화 인터뷰 당시 20일 김병현이 옮겨 간 플로리다 말린스와의 경기를 앞둔 상황이었지만 서재응은 3승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올시즌 10승 달성을 향한 장기 레이스에 더 큰 자신감을 나타냈다.
“시범 경기 동안 몸 상태가 너무 좋았다. 9승을 올렸던 2003년 때만큼이나 컨디션이 최고였다. 그런데 정작 시즌이 시작되자마자 얻어맞기 시작했다. 다행히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조금씩 감각이 살아나고 있다.”
서재응은 올시즌 첫 선발로 등판한 양키스전과 그 이후의 텍사스전이 이상 저온 현상으로 인해 몸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줬다고 설명했다. 너무 추운 날씨에 적응을 못했고 그로 인해 팔 각도가 틀어지면서 제구력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
서재응은 ‘올시즌 최고의 피칭을 선보였다’고 지역 언론의 찬사를 받았던 지난 14일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원정 경기(7이닝, 무실점 호투)에 대해서도 “썩 좋은 투구 내용이 아니었다”고 평가한다.
“토론토전은 스플리터로 승부를 냈다. 썩 좋은 투구 내용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체인지업을 기다리던 상대 타자들이 스플리터에 적응을 못해 무실점 호투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려운 상황에서 2승을 거뒀고 그 경기가 전환점이 될 것 같아 기분은 좋았다.”
서재응은 올시즌 첫 등판에서 만난 뉴욕 양키스와의 악연(?)에 대해서도 이렇게 풀어냈다.
“양키스전에서 잘 던진 기억은 두세 번밖에 되지 않는 것 같다. 나머지는 모두 힘들게 풀어나갔고 한 번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이 수렁에 빠지게 된다. 1번에서 9번까지 만만한 선수가 없다. 알렉스 로드리게스, 데릭 지터, 제이슨 지암비 등 모두 특급 타자들 아닌가. 일본의 마쓰이까지 있으니 한국 팬들이 관심있게 지켜보는 것 같은데 투수인 내 입장에선 마쓰이든 로드리게스든 모두 힘든 상대들이다.”
공적인 야구 얘기로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다 서재응 특유의 입담을 들을 수 있는 질문을 던졌다. 서재응은 최근 해외파 선수들의 국내 복귀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한국으로 복귀하기까지 참으로 많은 고민과 갈등을 했을 것이다. (최)희섭이가 기아에 입단하는 걸 보면서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물론 돈도 작용하겠지만 웬만큼 미국 물 먹으면 쉽게 그 ‘물’을 포기하기 어렵다. ‘조금만 더 하면 되겠지’ ‘버티다보면 좋은 결과 있겠지’ 하면서 발길을 돌리지 못하는 것이다. 이전에 내가 그랬다. 기아에서 입단 제의가 있었지만 미련 때문에 미국 야구를 포기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모든 걸 다 감수하고 한국 프로야구에 발을 내딛었다면 그 자체를 용기로 인정해주고 따뜻하게 받아줬으면 좋겠다. ‘실패’ 운운하면서 씹어봤자 한국 야구에 득 될 게 없다.”
최희섭이 한국에서 어느 정도의 성적을 거둘 수 있는지에 대해서 묻자 서재응은 오히려 기자에게 ‘성격이 급한 것 같다’며 뼈 있는 멘트를 남겼다.
“벌써부터 언론에선 희섭이가 홈런을 몇 개 칠 수 있는지에 대해 관심을 모으고 있더라. 그런데 너무 이른 기사 아닌가. 1년 정도는 지켜보고 평가를 해도 늦지 않다. 오랫동안 산전수전 겪은 선수다. 한국 야구에 적응하는 부분이 남아있지만 많은 경험을 한 선수라 큰 어려움 없이 성공 시대를 구가할 것이라고 믿는다.”
서재응은 플로리다 말린스로 팀을 옮긴 김병현에 대해서도 따뜻한 기대를 나타냈다.
“말린스로 가면서 병현이가 전화를 했더라. 아주 오랜만에 밝은 목소리를 들려줬다. 뭔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 보였다. 병현이는 같은 남자 입장에서 봤을 때 매력 덩어리다. 타협도 모르고 자기 주관 확고하고(물론 꽉 막혔다는 비난도 듣지만), 속정 깊고 바보처럼 착하다. 이렇게 괜찮은 친구가 선입견 때문에 손해를 많이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오는 6월 22일이면 둘째 아이를 갖게 되는 서재응. 담당 의사가 아들이라고 귀띔을 해준 바람에 서재응은 벌써부터 ‘서재응 주니어’에 대한 기대로 한껏 부풀어 있다.
“올시즌 대박 터트려야 분유 값 댈 수 있다(웃음). 솔직히 지금 내 실력으로 다른 팀에 있었다면 2선발은 고사하고 5선발도 위험하다. 뉴욕 메츠라면 당장 불펜으로 밀려났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 주어진 기회를 잘 살리고 싶다. 올 시즌 한 번도 이루지 못한 10승 달성을 목표로 뛰고 있는데 관심있게 지켜봐 달라. 올해는 일 좀 한 번 저질러 보자.”
▲ 백차승. AP/연합뉴스 | ||
지난 16일 오후 3시(한국시간), 전화 인터뷰를 통해 오랜만에 만난 백차승은 다음날 LA 에인절스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이 예정돼 있었다. 지난 10일 디트로이트와의 원정 경기에서 생애 첫 완투승을 거둔 터라 마이크 하그로브 감독을 비롯해 지역 언론에서도 백차승의 다음 경기에 대해 많은 기대를 나타냈다. 그러나 정작 백차승은 “하던 대로 하면 된다”며 별로 달라질 게 없다는 얘기를 전했다. 17일 경기에서 백차승은 6⅓회 동안 6안타를 내주며 3실점했지만 팀이 한 점도 뽑아내지 못한 채 0-5로 져 패전의 멍에를 썼다. 그러나 마이크 하그로브 감독은 경기 후 AP 통신과 인터뷰에서 “1회가 지난 이후부터 백차승은 정말 훌륭했다. 점점 적응했고 이후 완전히 달라졌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올시즌을 마이너리그에서 시작한 백차승은 오랜 시간 동안 메이저와 마이너를 오락가락하는 ‘널뛰기 인생’에 대해선 어느 정도 초연한 듯했다. 현재 832만 달러짜리 제프 위버가 부상자 명단에 오르면서 선발 자리를 차지한 백차승으로선 앞으로 자신의 야구 인생에 일희일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올시즌 빅리그 통보를 받을 때만 해도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 펠릭스 에르난데스가 다치고 제프 위버도 부상자 명단에 있기 때문에 몇 게임 던지다 다시 마이너로 내려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상 외로 오래 버티는 중이다(웃음). 다시 마이너로 떨어진다고 해도 이전처럼 상처를 받진 않을 것이다.”
매 경기 마치 수능시험을 치르는 살벌한 긴장감을 느끼며 등판한다면 하루하루 얼마나 피가 마를까. 그러나 백차승은 너무나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마이너리그에서만 헤매다 생애 처음 메이저리그 승격을 통보받았을 때는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다. 어렵게 올라간 빅리그에서 절대 내려오지 말자는 다짐을 숱하게 하며 그 자리에 집착했다. 그러나 내가 집착한다고, 욕심을 낸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더욱이 빅리그는 연봉 많이 받는 선수 순으로 올라가기 때문에 그 선수한테 큰 문제가 없는 한 그 자리를 비집고 들어가기가 굉장히 힘들다.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다보니 오르고 내리는 야구 인생에 대해 크게 마음 쓰지 않게 됐다.”
그래도 빅리그 잔류는 백차승의 간절한 염원이다. 아무리 즐기면서 투구하자고 마음 먹어도, 아무리 마음 비우고 초연해지자고 애써 봐도 ‘빅리그’는 백차승의 모든 것이 담겨 있는 희망의 무대라는 건 감출 수 없는 사실이다.
“지난 5일 뉴욕 양키스전을 앞두고 컨디션이 최고로 좋았다. 올시즌 첫 승을 올릴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그런데 몇 차례 바가지성 안타(빗맞은 안타)를 맞고 위기에 처하자 조금씩 소심한 피칭을 하게 되더라. 완투승을 거둔 디트로이트전에선 더 이상 도망 다닐 수가 없었다. 오히려 양키스전에서의 망신이 디트로이트전 승부에 오기를 심어줬고 공격적인 피칭을 하면서 자신감도 상승됐다. 나뿐만 아니라 양키스를 상대하는 투수들은 모두 부담을 가질 수 있다. 잘 던지면 ‘대박’이고 못 던지면 ‘피박’ 아닌가.”
백차승은 팀 내 포수인 조지마 켄지와의 호흡에 대해서 만족감을 나타냈다. 일본 최고의 포수라고 평가받았던 조지마가 지난해 시애틀에 합류한 이후 역사상 빅리그 최초의 ‘한-일 배터리’란 타이틀로도 관심을 받았던 백차승은 “조지마는 머리가 똑똑한 선수”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지 2년밖에 안 됐는데 상대 선수들에 대해 파악이 다 된 것 같다. 항상 선수들에 대해 연구하고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같이 운동하면서 많이 친해졌고 내가 어떤 구질을 좋아하는지 잘 알고 있어 투수 리드를 편하게 잘 한다.”
백차승은 올시즌 가장 달라진 점으로 빅리그 클럽하우스에서의 여유를 꼽았다. 이전에는 마이너에 있다가 메이저에 올라가면 클럽하우스 내에서의 생활이 ‘손님’처럼 불편하고 부담스럽기만 했는데 지금은 선수들이랑 장난도 치고 대화도 나누는 등 한결 편안해지고 자연스러워졌다는 것.
“지난 시즌 마치고 3개월가량 한국에서 가족들과 함께 지낼 수 있었다. 미국에 건너온 후 가장 오랫동안 한국에 머무른 것 같다. 모교에서 운동하고 시간되면 친구들 만나고, 평소 너무 그리워했던 부분들이라 매 순간이 소중하게 다가왔다. 그렇게 충만한 생활을 하고 돌아오면 야구하는데 굉장한 힘이 된다. 조바심, 걱정, 고민의 무게가 한결 줄어들고 생각도 굉장히 긍정적으로 바뀐다. 고마운 건 이전보다 백차승을 비난하고 욕하는 분들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부분이 또 다른 용기를 준다.”
백차승은 해외파 선수들의 국내 복귀에 대해 “좋은 거 아닌가요?”라는 반응을 나타냈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그거야말로 가장 행복한 일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래서 인터뷰 말미에 “한국 프로팀에서 ‘러브콜’을 받는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다. 백차승의 답변은 짧았지만 확고했다.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난 오래 전에 미국에서 유니폼 벗을 각오를 했기 때문에 한국에서 ‘콜’이 오지도 않겠지만 한국에 야구선수로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