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 열린우리당에서 한창 논란이 일고 있는 오픈 프라이머리에 대해 한나라당 주자들도 관심을 기울이며 손익 계산이 분주하다. 사진은 지난 7월 11일 한나라당 전당대회 전경. | ||
사실 정치권에서는 내년 대선의 최대 화두가 양극화 문제와 함께 ‘국민 참여, 국민 중심’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이런 점에서 열린우리당은 오픈 프라이머리가 내년 대선에서도 ‘제2의 노풍’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오픈 프라이머리와는 거리가 멀다. 한나라당은 지난해 당헌 당규를 개정하면서 당심과 국민참여 비율을 5:5로 하는 경선 방식을 이미 채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이 전국을 돌며‘국민후보’를 선출하게 될 경우 한나라당도 외부의 변화 요구를 어쩔 수 없이 수용하게 될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만약 한나라당이 오픈 프라이머리를 실시하게 될 경우 박근혜 이명박 손학규 등 빅 3의 손익 계산서는 어떻게 될지 따져보았다.
오픈 프라이머리(Open Primary)란 개방형 예비선거라는 뜻이다. 당원이 아닌 국민들의 손으로 특정 정당의 대통령 선거 후보를 뽑는 것을 말한다. 이 제도는 현재 한국 정치권이 안고 있는 고질병을 해결해 줄 대안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정치권에서는 “사회가 점점 복잡해지고 다양해지면서 이념과 계급적 이해, 지역을 기반으로 한 종래의 정당체제가 더 이상 당원들의 이해와 관심사를 대변하지 못하기 때문”에 정당의 정책 조정과 결정 기능이 크게 떨어졌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과거 독재 타도와 민주화를 부르짖던 시대에서는 정당이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지만 지금과 같은 다원화된 사회에서는 이념이나 계급에 치우친 정당이 정책 결정의 조정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지지정당이 없다’는 답변이 40%대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점도 기존 정당에 대한 국민들의 강한 불신을 반영하는 것이다. 또한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 때 당내 유력 주자였던 맹형규 홍준표 후보가 ‘오세훈 돌풍’에 맥없이 떨어져 나간 것도 민심이 당심을 압도한 사건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시대흐름의 연장선상에서 열린우리당이 친노그룹을 중심으로 오픈 프라이머리를 활발하게 논의하고 있는 점을 주목해봐야 한다. 열린우리당의 한 전략 관계자는 “지금 당은 죽느냐 사느냐 기로에 서 있다. 오픈 프라이머리는 당의 지지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그리고 당내에는 ‘한나라당이 집권하지 않게 하는 것이 개혁이다’라는 분위기도 팽배하다. 개혁색이 떨어지더라도 보수적인 외부 인사들을 수혈해와 참여정부의 개혁성을 그대로 이어가는 게 더욱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오픈 프라이머리는 권력 재창출의 핵심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추진 배경이 ‘정략적’이라는 견해도 있다.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은 이에 대해 “열린우리당이 추진하는 오픈 프라이머리는 다분히 정계개편을 염두에 둔 전략적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외부 인사의 수혈을 통해 현재의 대권 후보 경선 구도를 다각화하자는 것이다. 이는 권력 재창출을 위한 ‘반 한나라당’ 구도를 만들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오픈 프라이머리 때문에 당 정체성 핵심이었던 기간당원제까지 포기하려고 한다. 이는 개혁도 안 되고 권력도 창출할 수 없는 최악의 수로 보인다”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은 어떨까. 먼저 한나라당은 풍부한 대권 주자 후보군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열린우리당보다 급할 게 없다. 그럼에도 소장파 등을 중심으로 한 개혁 진영에서는 완전 국민경선제를 받아들이자는 입장이다. 한나라당의 한 소장파 의원은 이에 대해 “오픈 프라이머리를 열린우리당이 채택한다면 한나라당 역시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본다. 2002년 노무현 후보는 전국 경선을 통해 유력 후보로 떠올랐다. 그리고 열린우리당이 내년 경선에서도 전국을 돌며 국민후보 띄우기에 나설 경우 그 파급력은 상당할 것이다. 반면 한나라당은 ‘체육관 후보’ 논란에 빠질 것이다. 또한 ‘오세훈 돌풍’의 위력을 실감했기 때문에 결국에는 오픈 프라이머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 전대에 참석한 이명박 전 시장(왼쪽) , 손학규 전 지사 | ||
여기에 정치 일정상 한나라당의 오픈 프라이머리 추진은 너무 늦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정치컨설팅 업체 ‘민기획’의 박성민 대표는 “제도와 상관없이 한나라당이 오픈 프라이머리를 해야 하는 이유는, 이 보수 거대야당이 어쨌든 꼭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고 전제하면서도 “하지만 내년 6월 경선이 예정되어 있는데 오픈 프라이머리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내년 초에는 그 제도에 대한 완벽한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당헌 당규를 모두 바꾸어야 하는데 과연 지금의 역학 구도상 그때까지 공감대가 형성될지 회의적이다”라고 밝혔다.
그런데 ‘우여곡절’ 끝에 한나라당이 오픈 프라이머리로 대권 후보 경선 방식을 바꾼다면 누가 가장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될까. 여러 전제 조건이 있어야 하고 정치적 상황이 가변적이기 때문에 그 예상은 힘들지만 도식적으로 보면 박근혜 전 대표는 ‘안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쾌청’, 손학규 전 경기도 지사는 ‘맑음’ 정도로 표현할 수 있다.
먼저 박근혜 전 대표의 경우는 ‘안개 속’이라 할 정도로 유 불리를 논하기가 쉽지 않다. ‘민기획’ 박성민 대표는 이에 대해 “현행 경선 방식인 당심과 민심 비율 5:5 아래에서는 박 전 대표가 유리하다. 여기에는 내년 경선 때 박 전 대표가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연대’를 전제로 호남 충청권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게 될 경우 대선 후보 선정이 매우 유력하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 진영이 그런 좋은 구도를 깨고 완전 국민경선제로의 전환에 쉽게 동의해줄 수 있을 것 같은가”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박 전 대표의 대권 후보 선호도 조사 지지도가 높기 때문에 박 전 대표 진영이 전격적으로 오픈 프라이머리를 수용할 가능성도 제기하기도 하지만 그런 ‘위험한’ 길을 가려할지는 미지수다. 실제로 박 전 대표의 한 측근은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지난 2002년에도 경험했지만, 한나라당 방식대로 흥행을 해야지 여당 방식에 끌려 다녀 이득을 볼 것이 없다. 기존 주자들 간 싸움이 치열하면 얼마든지 흥행에 성공할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반면 이명박 전 서울시장 측은 겉으로 표현은 하지 않지만 매우 유리한 입장에 서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먼저 조해진 보좌관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제도를 하더라도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입장이다. 제도가 어떻게 가느냐 그것은 당에서 잘 알아서 결정해 줄 것으로 생각한다. 대선 예비주자 입장에서 그것에 대한 의견을 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게 이 전 시장의 생각이다”라고 밝혔다.
▲ 박근혜 전 대표. | ||
그럼에도 이춘식 전 정책특보는 최근 한 언론에 “당심과 민심의 일치”를 강조하며 “100% 국민투표로 진행되는 오픈 프라이머리의 도입을 생각해봐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전 시장측에서 내심 오픈 프라이머리 추진을 공식화하고 한나라당 의원들을 개별 접촉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런데 오픈 프라이머리가 본인의 강력한 부인에도 불구하고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노무현-이명박 연대론과 맞물려 해석되기도 한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오픈 프라이머리에 열성을 보이고 있는 열린우리당 내 친노그룹과 한나라당 내 이 전 시장 측과 비주류, 소장파 등이 오픈 프라이머리 적극 추진을 매개로 향후 전개될 정계개편에서 ‘코드’를 맞추려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데 주목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오픈 프라이머리에 대한 손학규 전 지사의 손익계산서는 ‘맑음’을 기대하는 정도다. 이는 현재의 낮은 지지도 때문에 완전 국민경선제를 주장할 만한 근거가 약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손 전 지사는 이 문제에 대한 입장 표명을 유보하고 있다. 손 전 지사는 “국민이 먹고 사는 문제보다 절박한 게 어디 있느냐. 지금은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니다. 민심대장정이 끝나고 그 문제를 짚어볼 기회가 있을 것이다”라며 말을 아꼈다. 하지만 손 전 지사 측은 “대선후보 선출 과정에 국민들의 참여가 폭 넓게 확대되도록 해야 한다는 게 기본 입장”이라고 밝혔다. 현재의 지지율을 볼 때 “이것저것 가릴 것은 없다”고 보고 있지만 “현실에 맞는지 좀 더 연구 검토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손 전 지사 캠프의 또 다른 전략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번에 손 전 지사가 민심대장정을 하는 것은 일회성에 그치는 게 아니다. 이것은 앞으로 정치의 아젠다를 대중정치, 생활정치로 규정해나가려는 손 전 지사 식 새 정치의 첫 걸음이다. 과거 상명하달 식 후보 선정이 아닌 국민 참여 완전경선제 방식은 바로 손 전 지사가 국민의 이야기를 현장에서 직접 듣고 실천하려는 생활정치와도 맥이 닿아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의미가 깊다. 언젠가 우리 정치권이 오픈 프라이머리로 완전하게 방향을 전환할 것으로 보고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열린우리당은 오픈 프라이머리 공론화를 통해 이미 본격적인 대선 체제로 전환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 내에서는 “현행 경선 제도로도 충분하다”며 내심 느긋해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문제는 한나라당 대권주자들이 백지상태에서 새 출발하는 오픈 프라이머리를 전격 수용할 마인드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