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후암 초등학교 5학년 때 축구를 시작한 김 감독은 강릉농공고와 명지대를 거쳐 국민은행에서 선수생활을 했다. 국민은행에서 은퇴해 코치로 변신한 김 감독은 IMF 외환위기로 1997년 12월 31일 축구단이 해체되면서 축구계를 떠나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7개월 동안 은행 과장으로 근무하다 1998년 지금은 고인이 된 차경복 감독 밑에서 성남 코치로 다시 축구와 연을 맺었다. 비주류 출신인 그가 설 라인은 없었다. 스스로 쌓은 실력이 학맥과 지연 등으로 촘촘히 얽힌 축구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동아줄이었다. 매일 오전 2~3시까지 연구에 집중하는가 하면 비시즌에는 외국에 나가 선진축구의 흐름을 배우며 김 감독은 스스로를 혹독하게 단련했다.
김 감독은 퇴계로 지점에 은행원으로 근무할 때 ‘예금실적 1위상’을 받은 적이 있다. 틈만 나면 뛰어다니며 예금을 유치한 덕분이다. 김 감독은 명장 소리를 듣던 2006년 8월에는 모교인 명지대에서 체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명장이라는 주위의 칭찬에 취해 적당히 지도자 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스스로 느낀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불혹의 나이에 공부를 시작해 학위를 땄다. 어떤 라인에도 서지 않은 비주류 김 감독의 성공신화는 바로 그 부지런함과 배움에 대한 열정에서 출발했다.
스포츠칸 축구팀 전광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