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시즌중 장기 무단 이탈로 구단으로부터 임의탈퇴 요청을 받은 김진우. 그는 재기를 꿈꾸며 남해에서 홀로 맹훈련 중이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예상과 달리(기자를 보고 도망갈 줄 알았다) 반갑게 인사를 건넨 그는 남해 야구캠프 안에서 기다려 달라고 했고 결국 20여 분 후에 기자 앞에 나타났다. 처음엔 인터뷰하기를 무척 부담스러워했지만 몇 차례 얘기 끝에 다소 불편한 표정으로 기자와 마주 앉았다.
지난해 시즌 중 장기 무단 이탈로 KIA 타이거즈로부터 임의탈퇴 공시 요청를 받은 김진우(25), 그가 남해에서 새로운 부활을 꿈꾸고 있었다.
다소 통통해진 볼 살이 눈에 띄었지만 체중은 예전보다 그리 많이 나가지 않는 듯했다. 오히려 까칠해 보이는 수염에다 다듬지 않은 머리 스타일 등이 김진우의 ‘오늘’을 대변해줬다.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고 맨 처음 꺼낸 말이 ‘어떻게 지냈느냐?’였다.
“아시다시피 팀에서 나온 이후로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 다녔어요. 주로 강원도 지역을 여행하며 야구를 잊으려고 발버둥쳤는데, 결국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겠더라고요. 서울에서 잠시 머물다 광주로 내려간 뒤 11월 말부터 다시 운동을 시작했어요. 하지만 광주에서 운동하니까 자꾸 약속이 생기는 거예요. 스케줄에 차질이 생기는 것 같아 3주 전에 남해로 내려왔습니다.”
이토록 훈련에 절실함을 가졌을 때가 있을까. 친구를, 사람을 피해서 운동에만 전념하기 위해 남해로 장소를 옮겼다는 김진우는 지금 있는 남해가 훈련하기엔 제격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여긴 워낙 외지고 온통 야구장으로 둘러 싸여 있어서 눈만 뜨면 운동하고 싶은 마음이 샘솟았어요. 오후엔 금산에 오르며 하체훈련에 집중하고 점심 먹고 오후엔 가벼운 캐치볼을 해요. 그 다음은 수영장으로 직행하죠. 지금까지 이렇게 운동에 집중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왜 이제야 이런 모습을 찾게 됐는지 저도 안타깝지만, 그래도 늦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난 2004년 12월 3일, 김진우의 결혼식 전날 광주에서 인터뷰를 가진 적이 있었다. 예비 신랑의 풋풋한 설레임과 다음 시즌에 대한 기대를 부풀리던 김진우에게 ‘부디 행복하게 잘 살라’는 덕담을 건넸던 장면과 2008년 2월 19일 남해에서 홀로 고군분투하고 있는 김진우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가슴이 아렸다. 프로 데뷔 후 ‘바람 잘 날 없었던’ 그의 행보도 답답했고 바닥까지 내려간 이후에 ‘깨달음’을 얻었다는 그의 현재도 안타깝기만 한 나머지 이렇게 소리쳤다.
“도대체 팀에서 왜 나간 거죠? 그땐 야구를 완전히 포기할 생각이었나요?”
“뭐랄까 야구에 정이 떨어졌다고 할까요? 야구에 실망했고 제 자신에 대해 실망했어요. ‘내가 왜 여기 있을까? 내가 왜 욕을 먹으면서 야구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자, 그런 제 모습이 너무 너무 싫더라고요. 누구 탓을 하진 않습니다. 모든 건 제 탓이니까. 저로 인해 이런 일들이 벌어졌으니까요. 어렸을 때부터 좋은 얘기만 듣고 야구를 해서 그런지, 주위에서 조금이라도 이상한 얘기를 하거나 욕을 하면 참지를 못하는 거예요. 지금요? 많이 후회 되죠. 어떻게 후회가 안 되겠어요.”
김진우는 이렇게 인터뷰하는 게 또다시 이상한 ‘안줏감’이 될까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그냥 가만히 운동만 하고 있으면 욕은 안 먹을 텐데 기사화되고 인터넷에 전파되면 또 다시 안티 팬들의 공격을 받을까 두렵다는 것이다.
“안티성 댓글이나 비난들에 자유로워져야 하는데 아직 쉽지가 않네요. 그래도 운동에만 전념하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됐어요. 여기선 인터넷도 잘 안 보거든요.”
김진우는 2002년 역대 신인 최고 계약금인 7억 원을 받고 KIA에 입단했다. 당시 LA다저스와의 계약을 앞둔 상태에서 어머니가 미국에 가지 말라고 붙잡는 바람에 포기했고 KIA를 선택했지만 어머니는 KIA와 계약을 맺는 날 사고로 운명을 달리했다. 하지만 김진우는 충격적인 상황을 야구로 극복했다. 2002 시즌 탈삼진왕과 12승을 따내며 KIA의 에이스로 자리잡게 된 것. 그 후 5년여 동안은 희비쌍곡선을 내달리며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키다 지난해 7월 10일 2군행을 통보받은 뒤로 팀 훈련에 참가하지 않은 채 행방을 감춰버렸다. 김진우의 복귀를 기다리던 KIA는 7월 31일 한국야구위원회(KBO)에 무단 이탈 중인 김진우를 임의탈퇴 선수로 공시해 줄 것을 요청했고, 그로 인해 김진우는 1년간 복귀가 불가능해졌다.
김진우가 야구에 복귀하려 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그를 좋아했던 많은 팬들이 응원을 보냈다. 그동안 잠잠했던 김진우의 팬 카페에는 하루 1000여 명이 접속하면서 김진우에게 격려의 메시지를 남겼다. 그때까지만 해도 야구로 복귀하는 데 대해 반신반의했던 김진우는 팬들의 넘쳐나는 응원의 물결을 접한 뒤 눈물을 쏟아냈다고 고백한다.
“제가 좀 눈물이 많은 편이에요. 팬들의 메시지를 읽으면서 깨달은 게, ‘나한테 욕하는 사람도 많지만 날 기다리는 팬들은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이었죠. 제가 그 분들께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 그제야 알았던 거예요. 그날 제 미니홈피에 이런 글을 올렸어요.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듯이 저도 야구만 하겠습니다. 도와주십시오’라고….”
강원도로 여행을 다니며 한때 죽음을 떠올린 적이 있다고 말한다. 물론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기 때문에 기자가 김진우를 만날 수 있었겠지만 그 정도로 정신이 피폐해졌다는 사실에 기자 또한 가슴이 먹먹해졌다.
“혼자 버스 타고 춘천까지 갔었어요. 강릉으로 가는 버스를 갈아타고 앉아 있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나는 거예요. 이 세상에 나 혼자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앞으로 살아가는 의미가 전혀 없다는 걸 떠올리자 제가 목숨을 이어가야 할 이유가 없었어요. 제가 타고 있는 버스가 전복됐으면, 가다가 소양강 댐에 빠져 버릴까 하는 생각 등등을 하면서 강릉까지 갔었어요. 돌이켜보면 너무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었죠.”
김진우가 지난해 2군으로 내려가기 전에 일부 언론에선 김진우를 스티브블래스증후군(투수가 스트라이크존에 공을 던지지 못하는 증상) 증상을 나타낸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김진우는 왜 그런 기사가 나왔는지 이해가 안 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 그 기사를 보고 해당 신문사에 전화를 걸었다가 기사 쓴 기자가 구단 담당 기자라는 걸 알고 그냥 전화기를 내려놓은 적이 있었어요. 기자에게 막말했다가 그 화를 어떻게 감당하겠어요? 그런데 그 후에도 자꾸 절 ‘환자’로 몰고 가더라고요. 야구장에서 그 기자를 보면 얼굴도 쳐다보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웃긴 게 계속 ‘스티브블래스 스티브블래스’하는 소릴 들으니까 저도 모르게 그렇게 돼 버리는 것 같다는 겁니다. 2군에선 볼이 148까지 나오고 스트라이크도 잘 들어가는데 이상하게 1군에만 올라가면 죽을 쑤는 거예요. 결국 전 ‘환자’가 된 셈이죠.”
야구를 포기하기 전 심리치료상담을 받으며 나름대로 야구에 대한 ‘끈’을 이어가고 싶었다는 김진우는 방황의 나날 동안 프로축구의 ‘돌아온 천재’ 고종수의 부활을 유심히 지켜봤다고 털어놨다.
“그 선배님도 많은 아픔이 있었잖아요. 그래도 그 분이 찾은 곳은 축구장이었고 결국 그라운드에서 다시 우뚝 섰어요.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저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찾았습니다. 저랑 차원은 다르지만 비슷한 부분도 있고 또 제가 닮고 싶은 면도 있는 터라 그 분의 부활이 제게 큰 힘과 용기를 줬어요.”
일면식도 없는 고종수의 재기를 통해 야구에 대한 애정을 확인했다는 김진우의 간절함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남해에서 훈련을 시작한 이후 술은 입에도 안 댔다는 김진우는 운동이 힘들고 피로가 쌓일 때는 맥주 한 잔이 생각날 때도 있다며 모처럼 웃음을 터트렸다.
기자가 찾아간 날부터 한화이글스 2군 선수단이 남해에서 전지훈련을 시작했다. 김진우는 가급적이면 다른 팀 선수들과 부딪치지 않을 생각이라고 한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창피해요. 자존심도 상하고. 굳이 선수들이랑 어울려서 운동할 필요는 없잖아요”라며 시선을 돌린다.
“날씨 따뜻해질 때까진 여기서 계속 운동하고 싶어요. 오는 6월까지 제대로 몸 만든 다음 구단에 찾아갈 생각입니다. 무릎 꿇고라도 용서를 빌어야죠. 언론 플레이한다는 말은 더 이상 듣기 싫어요. 이전의 김진우가 아니라는 사실을 꼭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7월 이후 제가 어디에 있는지 꼭 지켜봐 주세요.”
남해=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