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일 서울대에서 만난 정운찬 전 총장. 야구와 그의 삶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말하고 있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61). 총장에서 물러난 후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지난 3월 30일 프로야구 정규시즌 개막전에서 일일 야구 해설가로 깜짝 데뷔하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평소 친분이 있던 이준호 TBS(교통방송) 본부장의 부탁으로 마이크 앞에 앉은 그는 두산 베어스와 우리 히어로즈 개막전에 이병훈 해설위원, 김동연 캐스터와 함께 해박한 야구 지식과 구수한 입담을 자랑하며 남다른 ‘끼’를 선보였다. 성공적인 해설가 데뷔전을 마치고 다시 ‘본업’으로 돌아간 정 전 총장을 이번엔 이병훈 해설위원이 ‘취재기자’의 신분으로 서울대를 찾아 인터뷰를 했다. 지난 4월 3일 정 전 총장의 연구실에서 이뤄진 인터뷰에서 정 전 총장은 “평소 인터뷰 잘 안 하는데 이 위원에게 신세 진 걸 갚으려고 응한 것”이라며 개막전에서 해설할 당시 이 위원의 도움으로 큰 실수를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질문은 기자와 이 위원이 병행하며 진행한 탓에 지면에선 <일요신문>으로 표기한다.
일요신문(일): 처음 해설하실 땐 긴장하신 듯하다가 2회 지나니까 해설을 즐기시는 것 같더라고요. 너무 재미있게 해설을 들었습니다.
정운찬(정): 사람들이 그러대. 7회부턴 목이 쉰 것 같았다고(웃음). 1회 때는 몸과 목소리가 너무 안 풀렸고 7, 8회부턴 좀 피곤해지더라고요. 3시간 넘게 한 가지 일에 몰두하긴 힘들어 정말.
일: 가족들, 지인들 반응이 어땠어요?
정: 처제와 집사람, 제자들 그리고 서울대 직원들이 (방송을) 많이 들었더라고요. 가족들이 더 긴장했나봐. 내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고 안타까워 하대. 김동연 캐스터와 이병훈 해설위원은 목소리 톤이 1회부터 9회까지 일정한 반면에 난 오락가락했어. 처음엔 긴장해서, 나중엔 지쳐서 힘들었죠(웃음).
일: 워낙 강의와 강연을 많이 하신 분이라 라디오 해설이 크게 긴장되거나 어렵게 느껴지진 않았을 것 같아요.
정: 전혀 그렇지 않아요. 사실 긴장이 많이 됐어요. 격식을 따져서 대답해야 하니까 부자연스러웠죠.
일: 이참에 아예 TV쪽으로 나가 해설을 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정: 어휴 무슨 말씀을. 외도는 한 번으로 족해요. 시간도 넉넉하지 않고. 무엇보다 아는 게 많지 않아서 여러 번 하다보면 바닥이 보이거든. 이번에 해설할 때 보니까 이 위원은 중계석에서 투수의 구질을 파악하더라고. 난 전혀 보이지 않던데. 그 멀리서 투수가 무슨 공을 던지는지 어떻게 알아요?
일: 라디오보다 TV는 오히려 편해요. 모니터를 보면서 할 수 있으니까. 평소 야구광, 야구 마니아로 유명하시잖아요. 직접 야구도 하셨다면서요?
정: 동네 야구는 많이 했었죠. 경기중학교에 야구부가 있어서 들어갔다가 2학년 가을까지 유니폼을 입을 수 있었어요. 코치 선생님에게 “언제쯤 주전으로 뛰게 해주실 거죠?”라고 여쭤봤다가 “운찬이는 야구보다 공부하는 게 더 낫다”는 대답에 야구를 그만뒀어요. 완곡한 표현이셨지만 야구엔 소질없으니까 공부나 하라는 말씀이시잖아. 그 후에도 야구는 내 절대적인 취미 생활이었어요. 중·고등학교부터 대학, 그리고 미국 유학 생활하면서도 소프트볼을 계속 했거든.
일: 야구 때문에 박사 학위 논문이 늦어졌다면서요?
정: 1970년대 미국 프린스턴대학에서 박사 논문을 준비하며 프린스턴, 컬럼비아, 펜실바니아, 랏거스 대학에서 유학 중인 한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4개 대학 소프트볼대회를 만들었어요. 그때 제가 만든 대회가 20년 훨씬 넘게 계속됐었고요. 제가 다닌 프린스턴에는 한국 학생이 적었어요. 전체 8명 정도였나? 과거 외무부 장관을 하셨던 한승주 고려대 교수 아들이 찰스였거든(당시 중학생). 그 찰스를 ‘꿔다가’ 선수로 뛰게 한 적도 있어요. 찰스가 바쁘면 한승주 선생을 뛰게 하고. 선수가 모자라니 어떡해. 학생이 안 되면 부모라도 뛰어야지(웃음). 한 선생이 야구를 아주 잘했어요.
▲ 일일 야구해설을 한 정운찬 전 서울대총장(왼쪽)이 이병훈 야구해설위원과 사이좋게 포즈를 취하고 있다. | ||
정: 미국에서 생활할 때 뉴욕 양키스와 뉴욕 메츠 경기를 많이 봤어요. 일년에 200경기 정도는 봤을 걸요. TV로도 보고 야구장에 가서도 보고. 1959년부터 71년까지 60%는 서울운동장(동대문야구장)을 찾았어요. 지금도 프로야구 두산의 홈경기를 1년에 25게임 정도는 잠실에서 봐요.
일: 지난 번 해설하실 때 안경현 선수가 팀 전력에서 제외되는 부분을 놓고 안타까워 하셨어요.
정: 안경현 선수랑 김경문 감독이랑 무슨 사연이 있는 거죠(이에 대해 이병훈 위원이 ‘오프더레코드’를 전제로 두 사람 사이에 벌어졌던 일을 설명해줬다)? 만약 그렇다면 숨기지 말고 세상에 알려야 하는 거 아닌가. 겉으론 타구가 약해졌다, 전에만 못하다고 말하지 말고 솔직하게 드러내놓고 해결점을 찾아가는 게 옳다고 봐요. 그래야 팬들도 오해하지 않고 관심을 가질 테고. 난 이렇게 봐요. 두산에 도움이 될 만한 선수라면 감독이 고칠 수 있도록 유도해줘야 해요. 아무리 운동 세계라고 해도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니까. 또 한 가지! 감독은 선수 위에 있지만 감독 포함해서 전 구단은 팬 밑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걸 꼭 명심해야 해요. 10번 타자가 두산 팬들이라고 말만 하지 말고요.
정 전 총장은 충남 공주 출신이다. 연고지를 따진다면 한화 이글스 팬이 돼야 하지만 그는 두산과 오랜 인연을 맺고 있다. 이유는 서울대 재학 시절 동창회 장학금을 받았는데 상과대학 동창회장이 OB(두산)의 고 박두병 회장이었다고 한다.
일: 일부 야구인들 사이에선 정 전 총장님을 KBO 총재로 모시자는 얘기도 있어요.
정: 내가 ‘고사’하는데 일가견이 있어요(웃음). 1988~89년 메이저리그 7대 커미셔너로 재직한 바틀릿 지아마티가 예일대 총장이었어요. 따라서 대학 총장이 KBO 총재 되지 말란 법은 없겠죠. 하지만 총재는 정부를 상대로 각종 규제를 풀게 하고 미국, 일본처럼 좋은 야구장을 짓게 하고 수익 창출을 만들어야 하는 자리라 정치적인 역량이 있어야 해요. 난 그런 부분에선 힘이 없잖아요. 야구는 무척 사랑하지만 정치적인 힘이 없어서 총재가 되기 어려워요.
일: 혹시 관심은 있으신가요?
정: 안돼. 그런 유도 질문은(웃음).
일: 총장 재임 시절 학교 측에선 야구장을 자주 찾는 총장에 대해 좋지 않은 시선도 있었을 것 같아요.
정: 나도 직접 그런 얘기를 들었어요. 그러나 버트런트 러셀이 ‘부지런한 머리로부턴 기대할 게 없다’는 얘기를 했어요. 가끔씩 머리를 쉬게 해줘야 한다는 소리지. 주위에서 왜 자꾸 야구장에 가느냐고 물어보면 ‘그냥 가는 게 아니야. 머리를 쉬게 해주려고 가는 거라니까’라고 응수했어요. 다 근무 시간 후에 갔어요. 평일엔 야간 게임이고 토요일은 오후 2시부터니까 근무태만은 아니잖아요(웃음).
정 전 총장은 야구장을 자주 찾긴 했지만 학교 일에 소홀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대학 자율화를 위해 열정을 쏟았고 서울대를 위한 기금 모금에도 현금만 1600억 원을 모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 ‘빚’을 언제 다 갚느냐고 했더니 한창 ‘애프터 서비스’ 중이라며 웃는다. 한 예로 애써 거절해왔던 주례를 서는 파괴(?)로 고마움을 대신 전한다는 것. 가수 싸이의 주례를 섰던 정 전 총장은 “싸이 주례는 ‘애프터서비스’와 상관없는 일이었다. 싸이 어머니와 집사람이랑 친구고 싸이 아버지랑은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다. 처음엔 거절했다가 싸이 어머니의 간청에 승낙했다”라고 설명한다.
정: 이렇게 설명해 볼게요. 날 키워주다시피한 스코필드 박사님이 ‘정치는 하지 마라. 그러나 사회에 대해 건설적인 비판은 해라. 그러다 나라가 정말 위기에 빠진 것 같으면 몸과 마음을 바쳐라’고 자주 얘기하셨어요. 2006년 말에 한국이 위기에 빠진 것 같더라고요. 주위로부터 나라를 위해 일해 달라는 권유도 받았고요. 그래서 정치 진출을 진지하게 고민했었죠. 하지만 정치를 하려면 정치적 ‘집’이 필요하잖아요. 정당에 들어가야 하는데 기존 정당보다는 새로운 정당을 만들고 싶었어요. 새로운 정당을 만들기 위해 아는 사람들에게 연구를 시키다가 어느 순간 준비 부족을 실감했고 내 능력으론 이 판에 뛰어 들기가 힘들겠다는 결론을 내린 거죠. 그래서 접은 거야. 심플스토리예요.
일: 평생 들어보지 못한 음해성 소문도 있었어요. 그래서 상처도 받으셨을 것 같고.
정: 별 소문이 다 있었죠. 노무현 대통령이 협박했다느니, 기업 오너와 연관이 있다느니…. 전혀 아닙니다. 음해성 흑색선전은 사실과 다르니까 괜찮은데 더 끌다가 가족한테까지 영향을 미칠 것 같았어요. 부끄러운 건 없어요. 문제는 거짓말로 나오는 걸 사람들이 믿는다는 거였지. 그래서 관두려면 빨리 관두자 했던 거죠. 사람들의 왜곡된 관심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일: 정치와 야구를 접목시킨다면 어떤 설명이 가능할까요.
정: (웃으면서) 연결시키고 싶지 않아요. 그건 야구를 모독하는 거니까. 야구는 룰을 확실히 지키잖아요. 정치는 룰을 안 지켜도 버젓이 살아 남게 되고요. 그런데 내가 이런 얘기 한 줄 알면 정치하는 사람들이 ‘그래 너, 잘났다!’하겠네.
일: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고사해온 게 굉장히 많으셨을 것 같아요. 최근에도 새정부가 들어서면서 여러 가지 ‘자리’를 제의했다고 하던데.
정: 어머니의 가르침 중에서 두 가지가 기억나요. 하나는 밥 먹을 때 밥상에서 손에 닿지 않는 건 먹지 마라, 두 번째는 잔칫집에서 초대를 하더라도 3번 이상 간곡하게 초대하지 않으면 가지 마라. 그 가르침에 충실했을 뿐이에요.
일: 거절해온 ‘자리’들 중 아쉽거나 후회되는 제안이 있을까요. 지금 돌이켜 생각해 봤을 때 말이죠.
정: 준비가 안돼 거절했기 때문에 아쉬움은 없어요.
정 전 총장은 ‘내가 만약 대표팀 감독이라면 어떤 선수를 뽑겠느냐’는 질문에 굉장히 흥분(?)해서 선수들 명단을 내놓았다. 투수엔 류현진, 포수 홍성흔, 1루수 장성호, 2루수 안경현, 3루수 김동주(여기까지 말하다 ‘너무 두산 선수들이 많지?’라며 웃는다), 유격수 박진만, 좌익수 양준혁, 우익수 이진영, 중견수 이종욱, 그리고 지명타자론 롯데 이대호를 꼽는다. 이 리스트를 본 이병훈 해설위원이 한마디 건넨다. “이 선수들만 데리고 있으면 126게임 중 120게임은 이기겠네요(웃음).”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