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새 결혼 7년차인 이혜원 씨는 안정환의 영원한 팬이 되겠다는 각오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억대 연봉을 받는 프로 스포츠 선수들. 그리고 그 아내들. 겉으로 보기엔 더할 나위 없이 화려한 커플로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공인 부부의 말 못할 고민도 수두룩하다. 더욱이 남편의 라이프스타일에 100% 맞춰 살아야 하는 운동선수의 아내는 그 고민의 깊이가 남다르다.
<일요신문>에선 운동선수 아내로 가장 큰 관심을 받고 있는 프로축구 안정환의 아내 이혜원 씨, 프로야구 두산베어스 홍성흔의 아내 김정임 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만의 남다른 세상’을 가까이 접할 수 있었다. 공인의 아내이기 때문에 쉽게 노출할 수 없는 그들의 고민을 직접 들어본다.
[안정환 아내] 이혜원
서울에서 인터넷 쇼핑몰 대표로 활동하다 안정환이 부산 아이파크에 입단하는 바람에 주거지를 부산으로 옮긴 이혜원 씨는 어느새 결혼 경력 7년차의 중참 주부로 단단한 입지(?)를 굳히고 있었다.
“결혼할 무렵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몇 년이나 버틸까?’였어요. 금세 이혼할 것이란 예상이었죠.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지금도 모르겠어요. 결혼하는 커플을 앞두고 이혼을 먼저 떠올린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거잖아요. 그 후로 전 끊임없이 이런저런 구설수에 시달렸어요. 평범한 남자와 결혼했다면 전혀 문제되지 않는 부분까지 스포츠 신문 1면 톱기사로 장식될 만큼 이상한 주목을 받았죠. 만약 남편에 대한 사랑이 없었다면 정말 힘든 상황이 됐을 겁니다.”
이 씨는 안정환과 결혼할 당시만 해도 안정환이란 축구선수가 그렇게 유명한 사람인 줄 몰랐다고 한다. 안정환의 일거수일투족과 안정환의 가족사가 공개됐고 심지어 불미스런 일로 시어머니가 경찰서에 구속된 부분까지 기사화되는 걸 보면서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고 토로한다.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파란만장했어요. 어떤 기자는 제가 시어머님 면회를 갔느니, 안 갔느니 하면서 비난했어요. 명품 모피 코트 운운하는가 하면 친정엄마 치맛바람 등등 별의별 사적인 얘기들이 공개됐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죠. 그 부분이 너무 너무 힘들었어요. 그런 점에서 외국 생활은 큰 도움이 됐어요. 한국에서 상처받았던 부분들을 외국 생활을 통해 치유받고 회복 상태로 만들었거든요.”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이 씨는 안정환이 이탈리아 페루자에서 활약할 때는 이탈리아의 요리를 배웠고 일본 프랑스를 거쳐 독일에서 생활할 때는 디자인 학원을 다니며 자신의 미래를 준비했다고 한다.
“제가 운영하는 ‘리안’의 로고를 독일에서 만들었어요. 나중에 한국에 들어가면 제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미리 준비했던 거죠. 결국 레스토랑을 오픈하고 쇼핑몰 사업에 뛰어들면서 조금씩 제가 하고 싶었던 일을 시작한 셈이에요. 물론 남편의 적극적인 지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죠.”
유명한 운동선수의 가족은 말 못할 고민이 많다. 아무리 가까운 친구라고 해도 자신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속 시원히 꺼낼 수가 없다. 소문 때문이다.
“자칫 잘못했다간 이상한 소문으로 확대될 수 있기 때문에 친구들한테조차 제 고민을 털어 놓지 못했어요. 독일의 한 바닷가를 찾아가 맘껏 소리 지르고 울기도 했던 기억이 나요. 너무 너무 가슴이 답답해서. 그렇게 하고 나면 좀 개운해지더라고요.”
독일에서 귀국한 뒤 한동안 팀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남편을 보면서 이 씨는 또다시 아린 가슴을 부여잡았다. 남편을 ‘한물간’ 선수로 평가하는 주위의 시선도 버거웠고 그로 인해 괴로워하는 남편을 보면서 가슴이 먹먹해지는 느낌도 받았다고 한다.
“선수가 나이 들면 체력과 상관없이 조금씩 자신감을 잃는 것 같아요. 그런 상황에서 은퇴 운운하며 다 끝난 것처럼 주위에서 바라보면 의욕상실이 돼요. 하지만 다른 사람은 어떻게 봐도 전 남편이 다시 축구를 할 것이라고 믿었고 남편이 어떤 결정을 해도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어렵게 수원에 안착한 안정환. 이 씨는 딸 리원과 함께 경기장으로 응원을 다니며 또 다른 문제에 부딪혀야 했다. 바로 다른 선수 아내와의 관계였다.
“남편이 수원 입단을 결정한 후 제게 한 말이 있어요. 경기장에 가서 선수 가족들을 만나면 무조건 인사를 하라고. 그래서 전 누가 선수 가족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지만 얼굴만 마주치면 무조건 인사를 했어요. 그런데 나중엔 이혜원이 예의가 없다는 얘기가 들리더라고요. 모 선수 와이프와 마주쳤는데도 인사를 안 했다면서. 전 그때 분명 인사를 했거든요. 아, 이 세계가 이렇구나. 또 다른 이쪽만의 세계구나 하는 깨달음을 갖게 됐죠.”
기자가 봐도 이 씨는 유독 이런저런 보이지 않는 ‘태클’들로 인해 마음의 상처가 많았다. 그래도 꿋꿋이 버티며 예쁘게 가정을 꾸리고 있는 모습이 대견할 정도였다. 이 씨는 남편이 부산에 내려온 후 이전과는 달리 안정되고 편안한 모습을 보여준다며 부산 생활에 대해 만족스러워했다.
▲ 팬클럽 회원들과 선수들 경조사까지 챙기며 홍성흔의 일급 비서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 아내 김정임 씨. | ||
두산베어스 홍성흔의 4세 연상 아내 김정임 씨는 화통하고 친근한 면면을 보여준다. 바쁜 남편을 대신해 팬클럽 회원들을 챙기고 선수들 경조사에 화환, 축의금, 조의금 등을 보내며 남편의 일급 비서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다.
지난 겨울내내 두산과 트레이드 문제로 인해 마음 고생을 했을 때도 낙천적인 성격의 김 씨는 “계약 안 되면 같이 장사나 하자”며 남편의 짐을 덜어주려 애썼다.
“팀 전지훈련을 못가고 배재고에서 훈련할 때 정말 눈물이 나더라고요. 후배 선수들과 함께 20여 명이 모여 자는 방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집에 들르는 등 혹독하게 자신을 내몰았어요. 올시즌이 야구 인생의 마지막 기회라고 말하더라고요. 그 기회를 다시 잡으려면 야구에 올인해야 한다면서요.”
김 씨는 지난 4월 6일 문학경기장에서 벌어진 두산과 SK와의 경기를 잊지 못한다. 그날이 바로 남편 홍성흔의 복귀전이었기 때문. 홍성흔은 그날 부상으로 빠진 채상병을 대신해 포수 마스크를 쓰고 선발 출전했다가 4타수 3안타에 두 차례 도루 저지에도 성공하는 등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그 경기 보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처음엔 너무 기뻐서 울었고 그 다음엔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살이 쏙 빠진(-8kg) 모습에 마음이 아파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성흔 씨가 가장 괴로워했던 건 팀으로부터 소외당하고 버림받는 느낌이었어요. 몸이 좋을 때나 아플 때나 희생을 각오하고 뛰었던 선수한테 예전 같지 않다고 해서 그냥 버려지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죠. 트레이드 요청을 했다가 다시 두산과 재계약했지만 가족들이 받은 상처는 쉽게 사라지질 않네요.”
홍성흔-김정임 커플은 야구계에서도 인정받는 잉꼬 부부다. 김 씨도 그 부분은 인정하는 눈치. 술, 담배를 하지 않는 홍성흔은 부부동반을 즐기는 애처가인데다 종종 후배들에게 ‘다시 태어나도 지금 아내와 결혼하겠다’라고 말할 만큼 닭살 애정을 과시하는 바람에 주위로부터 적잖은 시기와 원성을 들어야만 했다.
“제가 결혼 전 모델 일을 했는데 출연료 문제로 소속사와 마찰을 빚으니까 성흔 씨가 전지훈련 떠나기 전에 통장과 도장을 주더라고요. 일 그만두고 마음 편히 지내라면서요. 그리고 돈이 필요하면 통장에서 꺼내 쓰라는 얘기에 크게 감동 받았죠. 결혼하지도 않은 여자에게 통장 맡기고 떠난 사람은 우리 신랑밖에 없을 거예요.”
김 씨는 사회 생활을 해본 경험 탓인지 사람들과의 관계가 친밀하고 활기차다. 홍성흔의 선후배들과도 격의 없이 지낸다. 선수보다 와이프가 인기있다는 말이 들릴 만큼 김 씨의 인맥은 전국구다.
“두산 선수들보다는 다른 팀 선수의 아내와 친해요. KIA 서재응 선수의 아내 이주현 씨와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어요. 물론 남편 때문이지만. 이종범 선수의 아내 정정민 씨랑은 언니 동생하며 지내고요. 같은 팀은 아무래도 부담스럽잖아요. 다른 팀 가족들은 편하게 만날 수 있어 좋은 것 같아요.”
현재 임신 4개월 째인 김 씨는 홍성흔의 어렸을 적 모습을 그대로 닮은 네 살된 딸 화리가 있다.
인터뷰를 마칠 즈음 화리가 유치원에서 돌아왔는데 엄마와 함께 사진 촬영을 하자 온갖 포즈를 취하며 ‘예쁘게 찍어달라’는 주문을 해온다. 아빠가 야구장에서 보여주는 ‘끼’가 화리한테 그대로 묻어났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