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인터뷰하는 내내 ‘그는 왜 이렇게 불운했을까’ ‘그는 왜 이렇게 지지리도 복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양경민(36). 지난 시즌까지 원주 동부 유니폼을 입고 코트를 누볐던 그가 결국 은퇴 수순을 밟고 동부의 전력분석원 겸 스카우트로 새 출발을 시작했다. 용산고와 중앙대를 졸업 후 삼성전자 농구팀에 입단했다가 곧바로 98년 원주 나래(현 동부)로 트레이드된 후 10여 년간의 파란만장한 농구 인생을 써내려 왔다. 끝까지 선수 생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은퇴를 거부하려 했지만 소속팀의 재계약 포기 후 다른 팀에서 불러주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은퇴를 결정했다는 양경민. 그는 인터뷰 자리에서 처음으로 ‘그 사건들’에 대해 털어놓았다. 선수 때는 자신보다 주위를 더 신경 써야 하는 까닭에 하고 싶은 말도 속 시원히 말할 수 없었던 그는 농구인생의 ‘오점’으로 기록될 그 일들 속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했다.
“왜 은퇴하기 싫었냐구요? 그냥 이렇게 어정쩡한 상태로 운동 생활을 끝내면 양경민이란 이름 뒤에 그 ‘꼬리표’가 영원히 따라다닐 것 같았어요. 농구 선수니까 코트에서 뭔가 제대로 해 본 다음에, 선수로서 인상적인 플레이를 펼치고 성적을 올린 다음에 마감한다면 불미스런 사건들의 이미지는 조금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24년을 농구만 하고 살아왔는데 그 마지막도 여전히 ‘그 사건들’속에서 헤어나질 못하네요.”
FA가 된 후 원주 동부로부터 재계약 포기 방침을 들었을 때 양경민은 내심 다른 구단의 입단 제의를 기다렸다고 한다. 그러나 단 한 군데서도 양경민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
“문제아 선수를 데려갈 수 있는 팀은 없었을 거예요. 각 팀마다 샐러리 캡이 꽉 차 있는 상황에서 절 불러들이는 게 어려웠겠죠. 무엇보다 제가 다른 팀으로 갈 경우 해당 팀 게시판은 절 비난하는 글들로 도배가 됐을 거예요. 실제로 어떤 농구 팬이 각 구단에 ‘양경민을 받지 말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더라고요. 아, KBL 총재한테도 보냈다고 들었어요. 물론 동부 게시판에도 글을 올렸고요. 지금까지 수만 가지 악플은 다 참고 견뎠는데 그것만은 도저히 못 참겠더라고요. 처음으로 그 편지를 보낸 사람에 대해 수사 의뢰를 했습니다. 사실과 다른 내용이었으니까요.”
고백1 양경민은 3년 전 자신의 팬클럽 회장에게 2004-2005 4강 플레이오프 2차전의 토토를 대리 구매시켰다는 사실이 밝혀져 100만 원의 벌금을 선고받았다. 유죄가 확정되면서 KBL로부터 36경기 출전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아(나중에 21경기 출전정지로 징계 완화) 오랫동안 코트에 설 수 없었다. 양경민은 이 일을 거론하며 자신은 토토와 관련해선 하늘에 맹세코 결백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만약 그때 농구를 그만뒀다면 끝까지 무죄를 주장하며 싸웠을 거예요. 그러나 시즌 중이었고 이미 한 차례 ‘낙인’이 찍힌 몸이라 빨리 일을 마무리하려 했고 재판 때문에 들락날락하다 카메라에 잡히기라도 하면 선수 생활이 또 다시 힘들어질 것 같다는 생각에 그냥 100만 원 벌금을 받기로 한 거예요. 검찰에서도 이 사건은 문제될 게 없다며 안심을 시킨 터라 전 그 일이 이슈화될 줄 꿈에도 몰랐어요. 그런데 결국 언론을 통해 알려지게 됐고 KBL에 들어가서 해명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다음날 징계를 내리더라고요. 다시 얘기하지만 전 토토를 대리 구매시킨 적이 없어요. 이건 진짜 사실입니다.”
양경민이 농구 토토를 대리 구매시켰다고 고발한 팬클럽 회장은 이전에 충격적인 뉴스로 사람들의 관심을 모은 ‘양경민, 팬클럽 회장 성폭행 사건’의 당사자다. 양경민이 자신에게 15만 원을 주고 토토를 구입하라고 지시했다는 내용으로 양경민을 코너로 몰고 간 것이다.
양경민은 이 부분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3월 24일이 플레이오프였고 3월 27일이 그 친구 생일이었어요. 이전에 있을 수 없는 일들을 겪으며 많이 미안했던 터라 생일에 만나서 친구들과 맛있는 거 사먹으라고 용돈을 선물 대신으로 줬어요.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싶었거든요. 즉 경기가 있는 날 돈을 준 게 아니라 생일에 돈을 준 거였고 토토와는 전혀 관계없는 생일 선물 대신이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경기하는 날 토토를 구입하라고 돈을 줬다고 우기니까 기가 막혔죠. 그 친구가 당시 날 부도덕한 놈으로 몰고 갈 수밖에 없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지만 자세한 내용은 여기서 밝힐 수가 없네요.”
한 방송에서 양경민의 책상 옆에 토토 용지가 발견되었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 책상은 선수들이 공용으로 쓰는 거실 컴퓨터용 책상이었어요. 전 토토 용지가 거기 있었는지도 몰랐고 방송국에서 선수들 숙소 생활을 찍고 싶다고 하기에 잠시 컴퓨터 앞에 앉아 연출을 했을 뿐이에요. 그런데 토토 사건이 터지면서 이전 촬영 장면에 토토 용지와 함께 있는 내 모습이 발견되었고 그 모습이 방송을 탄 거죠. 정말 미치고 환장할 것 같았어요. 일을 빨리 마무리 지으려고 쉽게 혐의를 인정한 부분도 너무 잘못된 거였죠. 사회를 모르고 운동만 하며 살다보니 세상이 얼마나 무섭고 위험한지 잘 몰랐던 겁니다.”
▲ 선수 생활을 접고 동부에서 전력 분석원으로 새 출발을 시작한 양경민. 그간 힘겨웠던 시간들을 토해놓으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연합뉴스 | ||
“제 농구 인생이 엇박자를 내기 시작한 건 그 사건 이후부터예요. 비록 무죄가 확정됐지만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긴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선수들 보기도 면목 없었고 감독님한테도 죽일 놈이었고요. 무엇보다 가족들, 특히 아내와는 이혼 위기까지 갔었어요. 마치 핵폭탄이 떨어진 것처럼 엉망진창이 된 상황에서, 끝까지 제 옆을 지켜준 아내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고마워요. 만약 아내까지 등을 돌렸다면 전 아마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양경민은 소주를 들이키며 당시의 상황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차마 지면으론 옮길 수 없는 내용들이지만 운동선수의 신분으로 스포츠면이 아닌 사회면에 이니셜로 이름이 오르내리며 숨죽이고 살았던 시간들이 고스란히 기자의 마음에 와 닿았다. 자신을 믿고 따랐던 팬클럽 회장과 불미스런 일들이 벌어지면서 양경민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아니 지금까지 그 질긴 끈을 안고 살면서, 배신감을 곱씹으면서, 참회와 고통의 시간들을 보내야만 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시즌 중에는 가급적 술을 마시지 않아요. 원래 담배를 피우지 않았던 탓에 술만 안 마시면 좋은 컨디션으로 시즌을 보낼 수 있었죠. 그러나 그 후론 연일 술독에 파묻혀 살았어요. 새벽까지 술 마시고 두세 시간 자다가 나가서 훈련한 적도 많았어요. 술이 없으면 미칠 것 같더라고요. 맨 정신으론 도저히 밤을 보낼 수 없었어요. 술이라도 마셔야 잠이 드니까. 1년 정도 헤매다 겨우 마음을 추스르려고 할 즈음에 또 다시 토토 사건이 터진 거였죠. 전 행복하게 살면 안 되는 놈인가 봐요. 나도 좀 행복하고 싶은데 신이 그런 기회를 주지 않네요.”
고백3 엄청난 사고에 연루된 선수를 감싸주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동부 게시판에는 양경민을 은퇴시켜야 한다는 내용의 글들이 차고 넘쳐났다. 구단에서도 난감할 수밖에 없고 더욱이 감독은 선수의 생명줄을 놓고 심각한 고민에 빠져야 한다.
“전 평생 전창진 감독님한테 짐만 되었어요. 물론 운동만큼은 열심히, 최선을 다해 뛰었지만 사생활 문제로 감독님을 몹시 괴롭혀 드렸잖아요. 다른 감독님이었다면 절 감싸줄 수 없었을 거예요. 하지만 감독님은 자신의 자리를 내놓고 절 보호해줬습니다. 감독님은 제가 어떻게 자랐고 어떻게 농구를 시작했으며, 그리고 어떻게 그런 사건에 휘말렸는지 너무 잘 알고 계셨기 때문에 절 불쌍하게 보신 거였죠. 이번에 은퇴 문제를 놓고도 감독님께 많은 신세를 졌어요. 팀을 나올 생각도 했는데 그건 전 감독님 때문이었어요. 저 때문에 구단과 많이 불편하셨을 텐데 감독님 어깨를 좀 가볍게 해드리려고 했지만 결국 다시 신세를 진 셈이네요.”
전력분석원 겸 스카우트로 새출발을 시작한 양경민은 여전히 농구에 대한 미련을 떨쳐내지 못했다.
“전 평생 떼어낼 수 없는 ‘주머니’를 차고 살 수밖에 없어요. 그 ‘주머니’를 떼어내려고 선수 생활을 고집했지만 이젠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제 인생의 전부가 농구였고 농구 때문에 인생을 포기할 뻔한 순간에 마음을 다잡은 거였는데 사람들은 제가 농구하는 게 그렇게 보기 싫었나 봐요.”
소주 다섯 병을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양경민이 세상에서 제일 존경한다는 전창진 감독한테도 다 못한 얘기들을 쏟아냈다는 ‘고백4’가 이어졌다. 인터뷰 자체가 부담스러워 아예 기자들을 만나지 않았다는 양경민은 자신의 얘기가 어떻게 활자화돼 전달될지 걱정을 토로했다. 솔직히 기자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풀어내야 안티를 몰고 다녔던 양경민이 조금은 그 숱한 오해와 편견과 시선들 속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젠 선수가 아닌 사회인으로 첫 발을 내딛은 만큼 양경민이 차고 있는 ‘주머니’가 조금은 가벼워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그와 헤어졌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