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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 봄 국내 유력 A 재벌그룹 총수의 사무실. A 그룹 산하 프로농구팀의 코치가 우승인사차 총수와 만남을 가졌다. 대학은 달랐지만 총수는 코치의 고교 선배였다. “○○○ 알아? 나 걔랑 동기야. 나도 농구했어.” 사무실에는 농구공이 있었고 총수는 직접 드리블을 해보이기도 했다.
A 그룹 총수는 서울의 S 고등학교를 나와 명문 K 대에 진학했다. 전공은 물론 체육 관련 학과가 아니다. 하지만 농구계에서는 A 총수가 농구 체육특기자, 즉 ‘끼워넣기’ 방식으로 명문대에 진학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A 그룹 총수와 고교 동기인 한 농구지도자는 “그 당시(1970년대 말) S 고교 농구부는 전국 최강이었어. 나가면 우승이었지. 나는 Y 대로 스카우트됐고 A 그룹 회장은 당시 고교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었던 ○○○을 따라 K 대로 진학한 거야”라고 말했다.
‘코트의 마피아…’ 프로그램이 2004년 하승진(삼일상고→연세대)의 예를 들어 잘 설명했듯이 ‘끼워넣기’는 실력이 없는 운동선수가 특급선수의 스카우트(체육특기자 특례입학) 때 함께 같은 대학으로 진학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특급선수의 스카우트 비용이 ‘끼워넣어진 선수’로부터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엄청난 액수가 나오고 고교 및 대학지도자가 중간에서 일부분을 착복하는 경우도 있다. 프로그램에서 “입학과정에서 아파트 한 채 값이 들어갔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끼워넣기 입학은 불법이라기보다는 편법이라는 표현이 정확하다. 73년부터 시작된 체육특기생 특례입학의 허점을 교묘히 악용한 것이다. 전국대회 4강(혹은 8강까지) 이상의 입상성적을 가지면 체육특기생 자격을 얻고, 이어 수능에서 400점 중 60~80점(이것도 받지 못해 재수하는 경우가 있다)을 받으면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 문제는 단체종목인데 체육특기생 자격을 획득한 팀에서 실제로는 운동능력이 떨어지는 선수를 특급선수 스카우트 과정에 끼워넣어 대학에 보내는 것이다. 이렇게 끼워넣어진 선수를 ‘다끼와시(일본 은어로 추정)’라고 부를 정도로 학교체육 일선에 ‘끼워넣기’는 만연돼 있다.
체육특기생 선발 과정에서 금품수수 등 비리는 제도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지금까지 끊이질 않고 있다. 툭 하면 ‘비리의 온상’으로 사회문제가 되는 까닭에 보통 ‘다끼와시 선수’들은 겉으로는 운동부에 등록하고 훈련 등 합숙생활을 한다. 하지만 과거 극단적인 경우에는 명목상 운동부에 이름만 올려놓고 즉 농구로 치면 농구공 한 번 만지지 않고 농구특기생으로 명문대에 진학한 경우도 있다(일부 재벌 2세의 경우 이 방법을 많이 사용해 대부분 운동한 흔적이 없는 서류상의 체육특기자다).
이런 끼워넣기 비리는 금품수수 등의 기본적인 문제 외에 정작 혜택을 받아야 할 ‘돈 없는 집의 운동선수’가 대학에 가지 못하는 비극을 초래한다. 각 대학의 체육특기생 인원이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운동을 못해도 돈만 있으면 연세대 고려대 등 명문 사립학교(국립대인 서울대는 특기생제도가 없다)에 들어갈 수 있는 뒷문이 암암리에 열려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니 일부 재벌들이 이를 놔둘 리 없다. 공부를 못하는 재벌가 2세가 이 ‘끼워넣기’ 방식을 통해 명문대에 진학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논리일 수 있다. 특히 2000년 체육특기생 선발제도 개선 이전에는 전공학과를 고를 수 있었다(현재는 동일계열, 즉 체육관련 학과만 가능). ‘끼워넣기’ 한 번만 소문나지 않게 잘 하면 평생 명문대 명문학과 출신이라는 레테르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체육특기생 끼워넣기 형태로 명문대에 진학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재벌 2세는 위의 A 그룹 총수 외에도 여럿 있다. 워낙 암암리에 이뤄졌고, 또 사회 투명성이 지금보다 현저히 낮았던 70~80년대 집중됐기에 정확한 자료를 얻기 힘들지만 체육계에 나도는 소문만 취합해도 쉽게 두 자릿수가 된다. 역시 재벌 2세인 B 총수도 체육특기생 출신이다. 직접 운동을 했다고 밝히기도 한다. 재미있는 것은 창업주인 B의 부친이 당시 해당 경기단체의 회장을 맡았다는 사실이다.
이외에도 A 그룹 총수의 동생, 그리고 C 그룹 일가의 다수 재벌 2세들이 체육특기생으로 대학에 진학한 것으로 알려졌다. 종목도 농구 외에 럭비 아이스하키 승마 등 노출 위험이 적은 비인기종목까지 다양했다. 오히려 비인기 종목일수록 더 쉽다. 그리고 대학도 연세 고려 양대 사립은 물론, 운동부를 운영하는 서울의 주요사립대 대부분이 관련돼 있다.
재벌 2세들의 특례입학은 운동부를 운영하는 특정 고등학교에 편중돼 있는 것이 보통이다. 서울 강북의 S 고교는 70년대 재벌가들이 몰려 살았던 지역에 위치했다. 이 고등학교를 나온 재벌2세들의 모임이 있을 정도다. 이렇다 보니 학교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재벌 2세들의 체육특기생 특례입학이 이뤄졌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일요신문>은 S 고교를 찾아 확인 작업을 펼쳤지만 “오래전 일로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 확인해 줄 수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 대학이나 해당 경기단체도 ‘확인 불가’라는 입장을 취했다. 당시 S 고교의 감독이었던 농구계의 원로는 “그런 소문은 나도 들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모두 학교행정실에서 처리한 까닭에 나는 모른다”라고 말했다. 취재과정에서 S 고교의 고위관리자는 “옛날 일을 왜 캐러 다니냐?”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입시제도의 빈틈을 악용해 명문대 동문이 된 재벌 2세들은 현재 대부분 그룹을 승계받아 한국 사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위치에 있다. 그래서 그들의 ‘불편한 과거’를 확인하는 일은 더욱 힘들다. 비록 지난 일이지만 그들이 어떻게 명문대에 진학했느냐를 따지는 것은 유의미한 일이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