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경기대 4학년생인 문성민(22). 어느새 문성민이란 이름 앞에 달린 한국남자배구대표팀의 주공격수라는 말이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실제로 2008 월드리그 국제남자배구대회에 참가하는 16개국 중 팀은 조별 최하위를 맴돌지만 문성민은 득점랭킹 2위를 달리고 있다(7월 11일 현재). 2008베이징올림픽 본선 진출 실패 후 곧바로 월드리그대회를 뛰며 한국과 쿠바, 이탈리아 등을 넘나드는 강행군으로 체력 저하와 시차적응에 생고생을 하고 있는 문성민을 3일, 대표팀 숙소인 올림픽파크텔에서 만났다.
▶▶▶ 문성민과 김요한
문성민을 보면서 자연스레 김요한(23·LIG)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문성민과 함께 한국 스포츠스타의 ‘꽃미남’ 계보를 잇는 두 사람은 자라온 환경이나 성격, 여자친구의 존재를 당당히 공개하는 부분 등이 비슷하고 닮았다. 문성민도 이런 비교들에 익숙해서인지 웃음 띤 얼굴로 “내가 요한이 형 인기에 묻어 가는 것”이라며 자세를 낮춘다.
“요한이 형이 프로 들어가서 많이 달라졌어요. 더 긍정적이고 여유 있어지고 인터뷰 솜씨도 몰라보게 좋아졌고요. 프로 입단 전 마음고생을 많이 해 지켜보면서도 안타까웠는데 잘 적응해 가고 있는 것 같아요. 프로 데뷔 직후 요한이 형 몸값을 놓고 거품 운운했던 분들도 계셨어요. 부상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인 건데 그걸 잘 몰라주시더라고요. 다음 시즌부턴 정말 잘 할 겁니다. 어휴, 형 리시브 실력이 정말 많이 늘었어요.”
문성민은 김요한과 오랜만에 다시 대표팀 생활을 하면서 프로에 먼저 발을 내딛은 선배의 변화가 실감나게 다가온다며 김요한에 대한 부러움을 나타냈다. “요한이 형이 저보다 한창 앞서나간 것 같아요”라면서 말이다.
▶▶▶ 올림픽 연거푸 탈락
한국남자배구대표팀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 이어 2008 베이징올림픽 본선 진출에 거푸 쓴 잔을 마셨다. 기대를 모았던 여자배구대표팀과의 동반 탈락이라 배구계의 충격은 예상 외로 컸다. 1964년 도쿄올림픽 이래 남녀 모두 올림픽 본선에 오르지 못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올림픽 예선전에서 한국팀 주공격수로 뛰었던 문성민으로선 심경이 복잡하고 상당히 불편했을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일본에서 열린 예선전에서 일본 선수들보다 문성민의 인기가 더 폭발적이었다는 내용이다.
“팀 성적이 좋아야 인기를 제대로 느끼죠. 팀은 올림픽 본선행이 오락가락하는데 절 좋아하는 일본 팬들이 많다고 해서 즐거워할 수는 없잖아요. 돌이켜보면 사인 요청에 일일이 응해주지 못한 그분들께 죄송해요. 그래도 당시엔 그런 관심이 부담스럽고 어쩔 줄 모르겠더라고요. 선배들 눈치도 보이고요.”
문성민은 일본으로 출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올림픽 본선 진출에 대한 의지가 확고했다고 한다. 워낙 몸 상태가 좋았고 팀 분위기가 상승돼 있어 티켓 확보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4년 동안 일관된 행정과 일찌감치 전임 감독을 뽑아놓고 체계적인 선수 관리와 상대팀에 대한 치밀한 전력 분석 등을 완비한 일본팀의 전력이 만만치 않았고 실제로 일본은 아시아 1위로 한 장밖에 주어지지 않는 올림픽 티켓을 거머쥘 수 있었다.
▲ 러시아와의 월드리그 예선전에서 스파이크를 날리는 문성민. 연합뉴스 | ||
▶▶▶ 신치용·김호철 감독
2008월드리그 국제남자배구대회에 참가 중인 문성민은 2006년부터 이 대회와 인연을 맺었다. 2006년에는 김호철 감독이, 지금은 신치용 감독이 대표팀 사령탑을 맡고 있다. 배구계의 유명한 라이벌 지도자들 밑에서 훈련을 받고 있는 문성민. 그가 말하는 두 감독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처음에 신치용 감독님이 새로 오신다는 얘길 듣고 엄청 긴장했어요. 제 룸메이트가 태웅이 형인데 대표팀에 있는 삼성화재 소속 형들이 죄다 얼어 있더라고요. 삼성 형들 찾아다니면서 감독님의 지도법과 선호하는 선수 스타일 등에 대해 정보를 모았죠. 훈련할 때 파이팅 넘치게 소리도 지르고 뛰어다니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선수들을 좋아한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요즘 약간 오버하는 듯한 제스처를 써가며 훈련에 임해요. 반면에 김호철 감독님은 액션이 큰 스타일이라 선수들까지 그럴 필요는 없어요. 액션이 큰 대신 다정다감한 면이 있으셨고 신 감독님은 조용하면서도 카리스마가 넘치시고요. 배우면서 새로운 것들을 많이 알게 돼요.”
월드리그 일정상 문성민은 한국-쿠바-이탈리아-한국-러시아를 바쁘게 오가야 한다. 이미 이탈리아까지 점을 찍고 돌아온 그는 전주 대회를 마치자마자 바로 러시아행 비행기에 오른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시차 적응이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되었다.
“마치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에요. 잠을 자려고 해도 잠도 안 오고. 무엇보다 이코노미석에서 14시간에서 20시간 이상을 앉아 가다보면 허리 통증이 장난 아니에요. 비상구 옆 자리는 막내인 제가 언감생심 꿈도 못 꾸는 자리고요. 장거리 원정 경기를 치르다보니 정말 많이 힘들어요. 더욱이 지금까지 월드리그에서 8전 전패(7월 11일 현재)를 했거든요. 1승이라도 올려야 선수들 체면이 설 것 같아요.”
2006년 월드리그대회차 쿠바에 갔을 때의 일이다.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쿠바배구협회가 지정한 체육관에서 훈련을 시작하려는데 체육관 측에서 불을 켜주지 않았고 공도 사용이 불가능한 헌 공들뿐이었다. 다혈질의 김호철 감독도 몇 차례 체육관 측에 항의도 하고 부탁도 했지만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선수들을 철수시켰다는 것. 문성민은 “거의 대우를 받지 못한 느낌”이었다며 배구 강국의 중요성을 절감했던 대회였다고 설명한다.
문성민은 한국전력이 준 프로를 선언하기 전까지만 해도 모든 팀의 영입 영순위이자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러다 한전이 다음 시즌부터 프로리그에 참여하는 조건으로 1순위 지명권을 얻은 만큼 문성민이 한전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게 배구계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그러나 정작 문성민은 애써 그 ‘현실’을 피하고 싶은 모양이다. ‘아직까진 경기대 소속이고 대표팀 선수로 오래 생활하다보니 진로 문제에 대해 깊게 고민하지 않았다’는 게 ‘방송용 멘트’다. 자신의 배구 인생을 좌지우지할 프로행을 목전에 두고 깊이 생각하지 않을 선수가 누가 있을까. 그만큼 문성민은 예정된 수순으로 가는 자신의 진로가 꽤 불편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1년 선배인 김요한이 불합리한 계약금 문제를 놓고 LIG 입단을 유보하다 결국 백기를 들고 팀에 합류한 모습을 지켜본 그로선 자신의 진로에 대한 고민과 갈등의 폭이 더욱 깊고 넓어지는 걸 절감하는 중이다. 선택하기보단 선택당해야 하는 현실에서 문성민은 과연 어떤 반응을 나타내게 될까.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말이 없잖아요. 혼자 끙끙 앓느니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 먹었어요. 더욱이 지금은 대회가 계속되고 있어서 다른 생각할 틈도 없어요. 이렇게 시간이 가다보면 어느 순간 제 진로가 결정돼 있지 않을까요?”
프로선수가 되면 가장 먼저 해보고 싶은 게 무엇인지를 물었다. 문성민은 즉답을 내놓는다.
“신인왕이요. 그게 다음 시즌에 가장 큰 목표가 될 것 같네요.”
문성민을 찍던 사진기자가 “배구선수 말고 모델이나 연예계 쪽에는 관심이 없느냐”며 잘생긴 외모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자, “배구선수는 코트에 있을 때가 제일 멋있는 법이에요. 제가 만약 이 얼굴로 모델을 한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게 먹히겠어요? 실력이 있어야 인기도 있는 법이죠. 요즘 팬들이 얼마나 보는 눈이 정확한데요?”
초등학교 시절 높이뛰기 선수에서 배구선수로 전향한 문성민은 김호철 감독은 물론 칭찬에 인색한 신치용 감독마저 매료시킬 만큼 코트에서 발군의 활약을 선보인다. 아직은 수줍음 많은 스물두 살 청년이지만 올 한 해 문성민의 성장은 눈부시고 놀라울 정도다. 그래서인지 프로배구 코트에 바람을 몰고 올 문성민의 등장이 벌써부터 기다려지는지도 모른다.
참! 실제로 본 문성민은? 진짜 잘 생겼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