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이징에서 돌아온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은 남북 스포츠 교류에 힘을 보태고 싶다고 밝혔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올 초부터 꾸준히 제기된 사면설이 현실로 이뤄진 8월 15일, 김 전 총재는 <일요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 야인 생활을 하며 가슴 속에 꾹꾹 묻어 두고 있었던 여러 가지 ‘진실’들에 대해 하나 둘씩 꺼내놓기 시작했다.
77세란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정정한 모습으로 기자 앞에 나타난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은 “베이징에서 바쁜 일정을 보냈을 텐데 아주 건강하게 보인다”는 기자의 인사에 “겉으론 건강하게 보여도 속은 많이 곯았다”는 대답으로 인터뷰를 유쾌하게 만들었다.
국회의원, 세계태권도연맹 총재, 국기원장에다 IOC 부위원장까지 내놓은 뒤 ‘자유인’으로 4년여의 시간을 보낸 세월들. 그중에 1년 2개월은 업무상 횡령 혐의로 구치소에서 보내야 했다. 2003년 프라하 IOC 총회 때 김 전 총재는 IOC 부위원장 당선을 위해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방해했다는 극심한 비난을 받았고 결국 이런 논란들이 김 전 총재를 구속까지 연결시키는 데 큰 작용을 했다.
사면이 확정된 날 김 전 총재는 그동안 ‘설’로만 떠돌았던 ‘3각 빅딜설’에 대해 처음으로 말문을 열었다. ‘3각 빅딜설’은 청와대가 김 전 총재의 IOC 부위원장직 자진 사퇴를 전제로 가석방을 약속하고 IOC는 2014년 동계올림픽의 한국 유치를 지원키로 했다는 내용으로 당시 한 월간지에서 이 같은 내용을 내보내려다 삭제 외압 등의 의혹이 제기되며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구치소에서 복역 중에 고혈압 증세가 심해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어느날(2004년 5월 3일) 김정길 대한체육회장과 김우식 청와대 비서실장이 병원으로 찾아왔더라. 몇 차례 구치소 면회 요청을 했지만 내가 계속 거절하니까 결국 병원으로 찾아온 것이다. 단순한 병문안이 아니었다. IOC 위원을 자진 사퇴한다고 각서를 써주면 가석방시켜 주겠다고 회유하기 위함이었다. 구속된 상태에서 사표를 쓰는 건 국가 이미지 차원에서도 좋지 않을 것이라고 거절하며 옥신각신했었다. 하지만 내가 사표를 써야 평창이 동계올림픽을 유치할 수 있고 IOC 위원도 나올 수 있다며 물러서질 않았다. 그래서 할 수 없이 6월 15일자로 각서를 써줬는데 나중에 퇴원 후 구치소로 돌아갔더니 윤우석 비서관이 다시 찾아왔다. 날짜를 좀 당겨달라고. 5월 15일자로 고쳤는데 또 충분히 않다면서 5월 9일자로 바꿔달라고 했다.”
결국 IOC 자진 사퇴는 ‘자진’이 아닌 청와대의 압력에 의한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는 게 김 전 IOC 부위원장의 설명이다. 이후 앞서의 월간지에서 이런 사실을 알고 기사화하려다 청와대와 삼성은 물론 자크 로게 IOC 위원장까지 나서 성명서를 발표하게 됐고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청와대-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자크 로게 IOC 위원장의 ‘3각 빅딜설’로 확대된 것이다.
당시 청와대에선 ‘청와대 비서실장과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 간의 IOC 부위원장 자진사퇴-가석방 약속설’은 사실무근이라면서 “김우식 비서실장과 김 전 부위원장은 이전부터 잘 알고 지내온 사이로, 김 실장은 단순 문병차 병원을 찾아간 것”이란 입장을 밝혔었다.
김 전 IOC 부위원장은 평창의 동계올림픽 유치를 IOC 부위원장에 당선되기 위해 방해했다는 이른바 ‘김운용 방해설’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해명에 나섰다.
“2003년 체코 프라하 총회 때 사마란치 IOC 위원장이 날 방으로 불렀다. 그분 말로는 평창이 밴쿠버나 잘츠부르크에 비해 크게 뒤떨어지니까 1등을 하려고 노력하기보단 2등을 해서 4년 뒤에 1등을 할 수 있는 시나리오를 생각해보라고 조언해줬다. IOC 부위원장 도전은 사마란치 위원장의 제안이었다. 난 이미 부위원장을 해봤기 때문에 나갈 필요가 없었다. 한 번 했는데 뭐하러 또 하겠나. 그러나 사마란치 위원장은 다른 생각이었다. 내가 부위원장이 된 후 4년 뒤 제1부위원장이 되면 2007년 과테말라 총회 때 평창이 개최지로 결정되는 데 큰 힘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다음날 프라하에서 고건 총리를 만나 이 같은 IOC 내의 분위기를 전하며 사마란치 위원장의 제안을 설명해줬다. 고건 총리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아 사마란치 위원장을 직접 만나 얘기를 들어보라고 했고 고 총리는 그때 사마란치 위원장을 만나 평창이 어렵다는 얘길 전해 들었다.”
▲ 2003년 횡령 혐의 등으로 서울지검에 소환됐던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 | ||
북한에 50만 달러를 지원한 데 대해서도 억울함을 호소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때 남북 동시 입장이 이뤄졌다. 동시 입장을 위한 조건은 아니었지만 북한 측에 고마움을 표현하는 차원에서 50만 달러를 만들어서 장웅 IOC 위원에게 전달했다. 그 돈은 부산조직위원회와 몇몇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나온 액수였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도 정치를 떠나 남북한의 체육 교류와 협력을 위해선 북한을 도와줘야 한다고 말씀하신 터라 시드니올림픽 이후 평양에 태권도 시범단을 만들어 방문하면서 또 다시 50만 달러를 넘겨줬다. 올림픽에서 남북한 동시 입장이 이뤄졌고 그 다음은 단일팀으로 올림픽에 참가하는 것이 나와 장웅 위원의 목표이자 꿈이었다. 단일팀을 이루려면 북한의 경기력이 올라와야 했고 물질적인 지원이 절실한 시점이었다. 그러나 나중에는 이런 순수한 행동들이 국가의 허락 없이 이뤄졌다며 실정법 위반으로 걸더라. 내가 개인적으로 횡령한 돈이 아닌데도 난 재판을 통해 추징금으로 모두 10억여 원을 내놓아야 했다.”
김 전 부위원장은 정치적인 문제로 남북 교류가 급속히 얼어붙은 가운데 이번 올림픽에서 북한 선수단과의 인터뷰가 완전 차단된 상황에 대해서 “베이징에서 장웅 위원을 만나 좋은 얘기들을 많이 나눴다. 북한과의 접촉이 완전 차단된 게 아니라 잠시 중단된 거라고 보면 맞을 것이다. 시드니, 아테네올림픽에 이어 베이징에서도 남북한 동시 입장이 이뤄지지 않은 건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앞으로 기회가 주어지면 남북 체육 교류 증진을 위해 다시 한번 노력을 기울이고 싶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김 전 부위원장은 2002 한일월드컵 공동 개최가 결정된 데 대해서도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줬다.
“한일 공동 개최는 실제로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거나 마찬가지다. 당시 정몽준 축구협회장도 큰 역할을 했지만 김영삼 대통령의 의지가 워낙 강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내게 한국의 월드컵 유치를 위해 적극적으로 뛰어 달라고 부탁했고 난 사마란치 위원장에게 한국의 유치를 도와달라고 말했다. 그때 사마란치는 FIFA 아벨란제 회장이 말을 잘 듣지 않는다며 한일 공동 개최를 제안했는데 결국 아벨란제가 공동 개최를 받아들이자 사마란치 위원장이 즉시 내게 연락을 취해왔던 것이다.”
내년 10월 코펜하겐 IOC 총회에서 태권도가 올림픽 종목에서 퇴출될 수도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 김 전 부위원장은 “태권도가 퇴출되는 걸 지켜만 보고 있겠나. 다시 (IOC 위원으로)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면 여러 IOC 위원들을 만나 설득할 것이다”면서 “그 전에 ITF(북한태권도연맹)와 WTF(세계태권도연맹)의 통합이 우선시돼야 한다. 1개 종목에 2개의 단체는 IOC 위원들에게 좋지 않은 이미지만 남길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김 전 부위원장은 자신이 태권도에 관심을 갖게 된 최초의 동기와 어렸을 때부터 태권도 유도 복싱 육상 스모 선수로 활동했던 경력, 그리고 수준급의 피아노 실력에 대한 얘기로 화제를 옮기다 한때 비리 등의 혐의로 구설수에 올랐던 장남 정훈 씨(미국서 사업)와 큰딸 혜원 씨(영국에서 변호사), 막내딸 혜정 씨(미국에서 피아니스트로 활약 중)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이유를 묻자 “애들이 워낙 큰일을 많이 당해서인지 언론에 자기들 얘기가 거론되는 걸 싫어한다. 그런 반응을 접할 땐 내가 잘못 산 것 같기도 하고 애들한테 미안하기도 하다”며 안타까운 부정을 드러냈다.
두 시간 가까운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려는 김 전 부위원장은 “오늘 솔직하게 꽤 많은 얘기들을 했다”면서 “논란이 일어나길 바라는 것보단 진실을 밝히고 싶었을 뿐”이라는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