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호주에서 어학연수 중인 신진식은 호주 대학팀의 코치직을 맡으며 실력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 ||
선수 생활 동안 ‘갈색 폭격기’로 이름을 날리며 코트를 휘젓고 다녔던 신진식(33·전 삼성화재). 지난해 은퇴 후 호주로 어학 연수를 떠난 그가 오랜만에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 응했다. 이젠 어느 정도 호주 생활에 적응이 됐고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들이 굉장히 소중하다는 걸 새삼 절감하고 있다는 그는 ‘합숙, 훈련, 경기’란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 유학생활과 한국 배구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담담히 털어 놓았다.
# 만학의 어려움
“아내, 아이들과 이렇게 오랫동안 붙어 있기는 처음이에요. 그 전에는 은행 가서 돈 찾는 법도 몰랐는데 지금은 아내에게 맡기지 않고 제가 직접 다 합니다. 오랜만에 남편 노릇, 아빠 노릇하고 살고 있는 거죠. 그래도 가끔은 갑갑해요. 영어에 대한 스트레스가 무척 심하거든요.”
사람들과 일상적인 대화는 가능해도 학교 수업에만 들어가면 머리에서 쥐가 난다는 신진식. 전문 용어들이 많다 보니까 알아듣기가 어렵고 운동하면서 공부와는 담을 쌓고 지낸 탓에 늦깎이 학생의 캠퍼스 생활이 상상처럼 낭만으로만 다가오지 않는 모양이다
“처음에는 1년을 목표로 유학 생활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1년이란 시간 동안 영어를 제대로 배울 수 있을 거란 생각이 얼마나 개념 없는 계획이었는지 알게 됐죠. 지금은 기간을 따로 정하지 않기로 했어요. 2년이든, 3년이든 영어에 자신이 생겼을 때 귀국할 거예요. 마음을 그렇게 고쳐먹으니까 얼마나 홀가분한지 몰라요.”
# 한국의 ‘배구 도사’
신진식은 비록 한국에선 은퇴식까지 치르며 선수 생활을 마감했지만 호주에선 여전히 배구 코트를 누비고 있었다. 시드니대학의 배구팀을 이끌고 있는 조규남 감독(전 대한항공)을 도와 몇 차례 연습 시간에 참가했다가 아예 플레잉 코치로 전격 나서게 됐다.
“여기선 모든 수업과 일과들을 다 마친 후 일주일에 한두 차례 모여서 연습하는 게 전부예요. 대학팀이라고 해봤자 한국의 고등학교팀 수준 정도구요. 주말에 몰아서 게임을 하는 바람에 하루에 서너 게임을 치를 때도 있어요. 몸이 근질근질하던 차에 조규남 감독의 부름에 응했는데 은근히 재미있어요. 승부에 연연해하기보단 진짜 즐기면서, 재미있게 배구를 하거든요. 새삼 배구의 매력을 듬뿍 느끼고 있는 중입니다.”
신진식은 대학팀 선수로 뛰느라 안 하던 웨이트트레이닝도 시작했다고 한다. 배구팀 운영은 모두 선수들 호주머니에서 해결된다. 체육관 임대나 경기 참가비, 그리고 숙식 문제도 일체 선수들의 자비 부담이다. 하지만 신진식만은 열외다. 대학 배구팀에서 신진식을 초빙했기 때문이다.
|
||
워낙 기본기가 안돼 있는 선수들이다보니 한국에선 상상할 수조차 없는 해프닝이 곧잘 벌어진다고 한다.
“여긴 볼만 넘기면 무조건 점수가 나요. 배구도 스파이크랑 블로킹밖에 할 줄 몰라요. 서브리시브, 수비, 이런 건 아예 생각도 못해요. 멤버 교체도 제맘대로구^^. 마치 중학생들이랑 하는 것 같다니까요. 선수들이 처음엔 제가 한국에서 날고 기는 배구 선수였다는 조규남 감독의 소개에 호기심과 기대감이 엄청 컸어요. ‘얼마나 잘하는지 두고 보자’는 분위기였죠. 하지만 워낙 오랫동안 운동을 쉰 탓에 처음엔 제가 살살 움직였거든요. 볼도 가볍게 때리고. 금세 실망하는 눈치더라구요. 그래서 다음엔 이전의 강스파이크 실력을 뽐냈더니 한마디로 ‘대박’이었어요. ‘멋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때릴 수 있느냐’ ‘노하우 좀 알려달라’는 등 반응이 장난 아니었죠. 그 후로 시드니에 제 소문이 쫙 퍼졌다는 거 아닙니까. 체육관 가면 여기저기서 인사를 해 와요. 한국의 ‘그분’이 오셨다구(웃음).”
신진식이 대학팀에 들어가 다시 배구를 시작한 건 영어를 배우겠다는 목적도 포함돼 있다. 호주 대학생들과 어울리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다보면 강의실에서만 배우는 영어 수업을 보충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서다.
“제가 영어를 잘 못하면 이해 못하는 애들이 볼도 다른 데로 줘요. 배구하면서 영어 실력이 부쩍 는 것 같아 내심 흐뭇할 따름입니다.”
# 호주서 본 한국 배구
신진식은 배구대표팀이 올림픽 본선 진출 실패와 월드리그에서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 들고 귀국해야 했던 내용들을 자세히 알고 있었다. 한국에 대한 향수병이 생길까봐 아예 인터넷을 등지고 살았다는 그이지만 배구 관련 소식은 늘 관심의 중심에 있었다.
“대표팀 선수들이 모여서 연습할 시간이 지금보다 더 많이 필요하다고 봐요. 옛날처럼 보름 정도 손발 맞춰보고 국제대회에 나갔다가는 좋은 성적을 내기 힘들어요. 적어도 두 달 정도는 모여서 연습을 해야 감독님의 전술을 이해하고 감독님이 구상하는 작전을 소화할 수 있어요.”
신치용 감독이 다시 대표팀 사령탑을 맡았다는 소식을 듣고 내심 반겼다고 한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선수들을 혹독하게 조련시킬 수 있는 분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금 선수들은 기본기도 부족하고 체력도 떨어져요. 그리고 보이는 부분, 화려한 부분에만 집착을 하죠. 즉 공격에만 치중하고 되지도 않는 점프 서브를 넣으려고 해요. 제가 선수 시절 공격 포인트보다 블로킹과 수비가 더 많았다는 걸 아시는 분이 있을까요? 어려운 볼을 살렸을 때, 블로킹을 잡았을 때의 기분, 즉 ‘손맛’을 느껴봐야 선수들이 공격보단 수비에 더 치중하게 됩니다. 그 기분은 공격을 성공시켰을 때보다 몇 배는 더 큰 기쁨을 안겨 주거든요.”
삼성화재 시절 신진식은 여오현, 석진욱 등과 함께 누가 더 수비를 많이 잡는지 내기를 했을 정도로 수비 능력을 키우는 데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한다. 코트를 떠난 선배는 후배들이 화려함을 추구하기보단 내실을 쌓는 데 더 많이 집중하면서 실력있는 배구선수로 성장하기를 희망했다. 그러면서 독일에 진출해 있는 문성민에 대해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
||
# 삼성은 강한 팀
신진식은 지난 시즌 자신을 비롯해 김세진, 김상우 등이 은퇴한 삼성화재가 하위팀 전력으로 평가받다가 정규리그 우승은 물론 챔피언결정전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걸 보며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고 한다.
“삼성은 워낙 기본기가 탄탄한 팀이라 웬만해선 쉽게 무너지지 않아요. 거기다 안젤코라는 걸출한 용병이 합류하면서 이전보다 더 강한 팀으로 탈바꿈했어요. 요즘 배구를 보면 용병 싸움인 것 같아요. 이전 현대캐피탈이 우승할 수 있었던 건 숀 루니의 역할이 결정적이었잖아요. 삼성도 안젤코가 없었다면 쉽게 우승까지 내달리지 못했을 거예요.”
안젤코가 처음 삼성화재에 입단할 때만 해도 신치용 감독의 신뢰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쉽게 흥분하고 수비보단 공격에 치중하고 웨이트 트레이닝을 끔찍이 싫어하는 부분들이 신 감독에게 찍히고 말았지만 한국 배구에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한 선수의 피나는 노력과 신 감독의 강한 리더십이 지난 시즌 MVP 안젤코로 거듭나게 했다는 게 신진식의 분석 내용이다.
“호주 와서 삼성이 하는 경기를 우연히 본 적이 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빈틈이 보이지 않더라구요. 삼성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 근성과 정신력으로 똘똘 뭉쳐있어요. 선수 자원이 풍부하든 그렇지 않든 팀이 태생적으로 갖고 있는 색깔은 변하지 않는 것 같아요.”
# 황당한 복귀설
얼마 전 한 일간지에선 프로배구 제6구단인 우리캐피탈의 선수단 구성과 관련해서 이미 은퇴한 신진식이 우리캐피탈에서 뛸 가능성도 있다고 보도했다. 이 내용에 대해 신진식은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다.
“은퇴하고 어학연수 온 사람이 다시 프로배구에서 뛴다구요? 그것도 삼성이 아닌 다른 팀에서요? 말이 안 되잖아요. 전 선수 생활에 대해 전혀 미련이 없어요. 지금은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기보단 앞만 보고 나가기에도 벅찰 정돕니다. 이슈를 만들기 위해 그런 기사가 나간 것 같은데 전혀 복귀할 생각이 없습니다. 만약 다시 선수로 뛴다면 한 1년 정도는 몸을 만들어야 될 걸요?(웃음)”
신진식은 연수를 마치고 귀국한다고 해도 친정팀에서 지도자 수업을 받기보다는 대표팀에서 먼저 코치로 일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일본도 그렇고 한국도 전체적으로 아시아 배구가 완전 침체됐어요. 대표팀이 살아나야 프로배구도 흥행을 하고 팬들의 관심을 모으거든요. 한국 배구를 살리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순전히 혼자만의 생각인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가봐야 알겠죠.”
신진식은 마지막으로 아직까지 자신을 잊지 못하는 많은 팬들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남겼다.
“다들 잘 지내시죠? 언제 한국으로 돌아갈지 모르겠지만 이전에 보여준 여러분들 사랑을 잊지 않고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들어가면 반드시 배구계에 복귀할 겁니다. 선수가 아닌 코치로 말이죠. 응원 부탁드리구요, 다음 달이면 시즌이 시작되는 프로배구에도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