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희경이 한국여자프로골프 투어 ADT캡스 챔피언십 등 8월 이후에만 6차례나 우승을 차지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
170cm의 훤칠한 키와 귀여운 외모로 벌써부터 많은 팬을 두고 있는 서희경은 신지애가 미국에서 100만 달러의 상금을 벌어들인 날 시차를 두고 제주에서 열린 마지막 KLPGA대회에서 우승컵을 거머쥐며 시즌 6승을 챙겼다. 서희경은 지난 8월 KLPGA 하반기 개막전인 하이원컵 SBS채리티여자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을 시작으로 3주 연속 우승 행진을 벌였고 그 후 잠시 숨고르기를 하다 신지애의 7승에 1승이 모자라는 6승으로 상금만 6억 원(상금 랭킹 2위)을 벌어 들였다.
모든 대회가 끝나고 오는 12월 6~7일 제주에서 열릴 한일 여자프로골프 대항전만 앞둔 상태였지만 서희경은 밀린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정신이 없다면서도 얼굴 가득 미소를 띄웠다. 프로 데뷔 후 3년여를 무명 선수로 지내다 올시즌 하반기부터 연일 맹타를 휘둘렀던 서희경을 지난 11월 27일 오후 강남 도산공원 부근에서 만났다.
“어휴, 너무 힘들어요. 삭신이 쑤시고 근육은 뭉치고…, 춤이 그렇게 힘든 줄 몰랐어요.”
오는 12월 11일 KLPGA 대상 시상식에서 오프닝 공연을 위해 ‘원더걸스’의 ‘노바디’를 준비 중이라는 서희경. 서희경 외에도 김하늘, 홍란, 유소연, 최혜용 등 5명이 골프계의 ‘원더걸스’로 분한다. 이 공연을 위해 지난 25일부터 하루 2시간씩 맹연습 중이라는 서희경은 평소 안 쓰던 근육을 사용하고 굳은 몸을 유연하게 움직이려다보니 춤 연습을 마치고 나면 온몸이 쑤신다고 하소연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프로골퍼들이 선보이는 ‘노바디’. 과연 의상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을까.
“‘원더걸스’랑 비슷한 분위기의 의상을 준비 중이라고만 들었어요. 마음 같아선 ‘원더걸스’의 옷을 빌려 입고 싶지만, 그 옷이 우리 몸에 들어가기나 하겠어요?”
서희경은 댄스 연습을 하면서 유독 한 선수가 생각났다고 한다. 바로 두 살 아래인 신지애다. 두 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같이 훈련을 다니며 절친한 관계를 유지했다.
“지애가 보기완 달리 몸이 굉장히 유연해요. 춤도 아주 잘 추고요. 지애가 바쁘지 않았다면 우리랑 같이 했을 텐데, 많이 아쉬워요. 지애의 댄스 실력을 보여드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을 텐데요.”
2006년부터 프로에서 뛰기 시작한 서희경은 지난 8월 이전까지 우승 경험이 한 차례도 없었다. 심지어 프로 데뷔 후 첫 출전한 대회에선 컷오프로 탈락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그때의 컷오프가 1년 내내 경기하는 데 영향을 미쳤어요. 조금만 실수해도 ‘또 다시 컷오프되면 어떡하나’하는 걱정으로 스윙이 제대로 안 됐으니까요. 처음이라 마음의 여유가 없었나봐요. 데뷔 첫 해에는 웃음보다 울었던 기억이 더 많아요.”
서희경은 프로 데뷔하자마자 일대 파란을 일으킨 신지애의 활약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더더욱 마음이 움츠러 들었다고 한다.
“아버지들이 가까이 지내시는 바람에 지애랑도 친하게 된 케이스예요. 골프연습장도 같은 곳을 다니며 연습을 했었죠. 그런데 지애보다 더 많은 시간을 연습에 투자하고 골프장에서 머문 시간도 훨씬 많은데 지애는 우승을 밥 먹듯이 하고 전 우승 근처에도 가기 어려운 거예요. 도대체 왜 그럴까? 지애랑 내가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하고 고민을 하게 됐죠. 지애는 연습을 능률적으로 하더라구요. 스윙의 감만 잡은 뒤 부족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연습해요. 반면에 전 스윙에만 집착했어요. 솔직히 플레이 전체에 신경 쓸 여유도 없었거든요. 오로지 스윙만 생각하니까 다른 부분이 엉망이 된 거예요.”
“그만큼 지애가 노력을 많이 하는 거예요. 효과적으로 말이죠. 지애랑 같이 다니면서 사람들이 지애를 알아보고 사인을 요청하는 모습을 보면서 굉장히 부러웠던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게 저한테 좋은 자극제가 된 것 같아요. 지애가 저보다 나이는 두 살 어려도 어른스러운 점도 많아요. 2년 반 넘게 투어에서 헤매다 가까스로 제 중심을 잡게 된 부분에 지애의 영향이 컸죠. 올 한 해는 지애랑 제가 상금 1위와 2위를 나눠 가져 정말 기분 좋아요.”
서희경이 거둔 6승 중 신지애와 동반 출전해서 얻은 우승은 단 한 번뿐이라고 한다. 그러다보니 주위에선 신지애가 없어야 서희경이 우승한다며 서희경의 성적을 애써 깎아내리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서희경은 신경 쓰고 싶지 않다.
“저도 인정하는 부분이에요. 지애가 해외 투어를 하지 않고 국내에서만 머물렀다면 제 성적이 지금과 같진 않았겠죠. 그래서 지애가 내년에 LPGA에 진출하는 게 기분 좋기도, 섭섭하기도 해요. 지애랑 좀 더 많은 대회를 통해 실력을 겨루고 싶었거든요. 방법은 제가 국내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쌓은 뒤 LPGA로 진출하면 되는 거잖아요.”
또 다른 시각에선 서희경이 후반기에만 6승을 올린 걸 두고 ‘반짝 성적’ 운운하기도 한다. 과연 내년 시즌에도 지금과 같은 상승세를 보여줄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는 것.
“그런 부분도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이번 동계훈련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요. 서희경이 ‘반짝 스타’가 아니라는 걸 꼭 증명해 드릴 거예요.”
서희경의 이름 앞에는 ‘역전의 여왕’이란 수식어가 붙는다. 6번 우승 중 역전으로 우승한 게 3번이다. 특히 마지막 대회였던 ADT캡스챔피언십 최종 라운드에서 서희경은 선두에 5타나 뒤진 채 경기를 시작했지만 홀마다 ‘버디 쇼’를 벌이며 단숨에 선두로 치고 올라갔다. 15번홀에서 우승에 쐐기를 박는 9번째 버디를 터뜨린 서희경은 3라운드 합계 2언더파 214타로 출전 선수 중 ‘나홀로 언더파’를 기록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제 성적을 보고 선수들이 ‘미친 거지?’ 하고 놀라더라구요. 처음으로 역전 우승할 때도 선두와 2타차로 뒤지고 있다가 따라 잡은 거였어요. 그때 경험을 통해 자신감이 붙었나봐요. 5타차 이상 되면 저절로 포기가 되는데 전 그렇지 않아요. 충분히 잡을 수 있다고 마인드 컨트롤을 해요. 정말 간절히 원하면 이뤄진다고 하잖아요. 제가 그래요. 이전에는 마음 속으로 ‘난 할 수 있어’라고 외치면서도 ‘과연 될까’ 하는 부정적인 생각이 끼어들곤 했거든요.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아요. 이게 정말 큰 차이로 나타나요.”
3연승 후 잠시 주춤했던 상황에 대해서도 설명이 이어졌다. 첫 우승할 당시엔 어리버리한 상태로 우승을 거둔 거라면 2승, 3승을 연속해서 이뤄냈을 때는 주위의 관심과 매스컴의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면서 갑자기 ‘스타’로 탈바꿈해 있었다고 한다.
▲ 우승 트로피를 받고 기뻐하는 서희경. 사진제공=KLPGA | ||
서희경은 올시즌 매스컴에서 ‘필드위의 모델’ 운운하며 자신을 비롯해 박시현 김하늘 윤채영 등이 집중 조명되자 갑자기 외모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고 토로한다. 아무리 관심을 두지 않으려고 해도 골프보다 외적인 부분을 두고 비교하다보니 체중 조절과 의상, 액세서리 등에 과도한 관심을 기울였다는 것.
“요즘은 뭐든지 비주얼이 좋아야 하잖아요. 은근히 의식을 하게 되거든요. 골프는 체중 조절 신경 안 써도 되는 운동이지만 여자들끼리 모이다보면 살찌는 데 대해 굉장히 민감해져요.”
서희경은 낙생고 동기인 홍란과 가장 가까운 사이다. 워낙 절친한 까닭에 대회에 나가도 별다른 경쟁 의식을 느끼지 않지만 홍란은 프로 데뷔 후 3년차이면서도 우승 경험이 없는 친구 서희경이 늘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홍란은 올시즌 상반기 마지막 대회인 레이크사이드여자오픈에서 2번째 우승을 거둔 후 서희경을 불러 빨간색 우승 재킷을 입혀주며 힘을 불어 넣어줬다.
“란이가 그 우승 재킷을 입으면 저한테 행운이 올 거라며 주차장 부근에서 무조건 입고 한 바퀴 돌라고 하더라구요. 자기도 김보경 프로 우승 재킷을 입은 후 우승을 차지했다면서요. 그때만 해도 아무 생각없이 하라는 대로 했는데 하반기 첫 대회에서 생애 첫 우승을 차지한 거예요. 재밌는 건 제가 첫 우승을 차지한 뒤 입소문이 나면서 선수들이 제 우승 재킷을 입어보려고 줄을 섰다는 거죠. 그런데 그 다음 대회에서 제가 또 우승을 거뒀어요.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그때 선수들이 우승 재킷을 모두 입어보는 바람에 기가 분산돼 결국 주인한테로 돌아온 모양이에요(웃음).”
서희경은 존경하는 골프 선수로 박세리와 줄리 잉스터를 꼽았다. 박세리와는 두 차례 정도 국내 대회에서 마주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워낙 대선배인데다 진심으로 좋아하는 마음이 있다 보니까 감히 박세리한테 다가가 말을 붙일 엄두가 안 났다고 고백한다.
“너무 좋아하는 분이라 그런지 옆에만 있어도 가슴이 떨리더라구요. 같이 라운딩을 한 적도 있는데 절로 ‘와~’하는 감탄사만 나왔어요. 어떤 제스처를 해도 다 멋있어 보였구요, 선배의 아우라와 남다른 분위기가 정말 근사했어요. 한두 마디라도 말을 섞고 싶었지만 심장이 두근거려 가까이 다가가기도 어렵더라구요. 참으로 닮고 싶은 모델이에요. 저도 나중에 그분처럼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올해 벌어들인 상금 6억 원의 사용 용도에 대해 묻자, 서희경은 “그 돈은 전부 아빠 통장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전 손도 못 댔어요”라고 말하다 “그런데 아빠는 아직 ‘본전’ 뽑으려면 멀었다고 말씀하시던데요?”라며 활짝 웃는다. 딸의 성공을 위해 헌신적인 뒷바라지와 희생을 마다하지 않은 부모님의 수고 덕분에 오늘의 서희경이 있다며 어른스럽게 인터뷰를 마무리하는 그와 마지막으로 ‘반말 토크’를 벌였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