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축구협회장 선거를 앞두고 축구계가 두 진영으로 나뉘어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 출마가 예상되는 조중연 축구 협회 부회장(왼쪽)과 허승표 한국축구연구소 이사장. | ||
▶동지에서 적으로 만나
이번 축구협회 회장 선거에 ‘여권’은 조중연 축구협회 부회장을, ‘야권’은 허승표 한국축구연구소 이사장을 단일 후보로 내세울 것으로 보인다. 적으로 맞설 두 사람은 공통점이 많다. 62세 동갑내기인데다 축구인 출신이다.
지금은 ‘껄끄러운 사이’지만 예전에는 안 그랬다. 골프도 함께 치는 등 비교적 친하게 지냈다. 조 부회장을 협회로 데려온 것도 허 이사장이었다. 김우중 축구협회장 시절 부회장(1990~92년)을 지낸 허 이사장은 당시 조중연 중동고 감독을 협회 기술위원으로 불러들였다.
▶ ''총선''에서 압승한 여권
축구협회장 선거에서 투표를 할 대의원(16개 시·도협회장, 7개 축구연맹 회장, 5명의 중앙대의원) 28명 가운데 중앙대의원 5명은 현 집행부에서 결정한다. 속된말로 시작부터 여권이 먹고 들어가는 게임이 펼쳐지는 셈이다.
7개 축구연맹 회장도 여권 지지 세력이 장악할 전망이다. 최근 취임한 내셔널리그(한국실업축구연맹) 신임 회장은 송재병 현대미포조선 사장이다. 이의수 회장의 뒤를 이어 한국여자축구연맹을 맡을 회장은 오규상 미포조선 단장이다. 이들은 자타가 공인하는 ‘MJ(정몽준 회장)맨’이다.
지난 11월 26일 열린 대학축구연맹 회장 선거에서는 허 이사장을 지지하는 이용수 세종대 교수가 낙선하고 변석화 현 회장이 연임에 성공했다. 이를 두고 축구계에서는 “이 교수가 출마를 안했으면 회장이 다른 사람으로 바뀔 상황이었는데 허 이사장 쪽 사람이 출마하자 협회가 변 회장을 총력 지원해 당선시켰다”는 소문이 돈다.
유소년축구연맹 회장직의 경우도 도전을 준비해 왔던 김강남 축구지도자협의회 회장이 선거의 불공정을 지적하며 지난 14일 출마 포기를 선언해 단독 출마한 김휘 현 회장의 연임이 유력하다.
돌아가는 상황은 고등축구연맹도 마찬가지다. 고등연맹은 지난달 27일 선거관리위원회 심의를 거쳐 ‘박병주 후보가 사전 선거운동을 했다’며 후보 부적격 판정을 내렸다.
선거관리위원장인 정종선 고등축구연맹 전무는 “지난달 축구지도자협의회 워크숍 때 고교 지도자들에게 돈을 돌린 건 사전 선거운동 제한과 대의원과 회원을 상대로 한 금품 제공 금지를 규정한 후보자 준수사항을 위반한 것”이라면서 후보 자격 박탈이유를 설명했다.
이에 따라 오는 5일 강남구 역삼동 삼정호텔에서 열릴 회장 선거에는 유문성 현 회장이 단독 출마한다. 유 회장은 2001년 중·고연맹 회장에 당선된 뒤 2005년 고등연맹으로 분리되면서 재선에 성공해 8년간 협회를 이끌어왔다.
박병주 후보는 연맹 결정에 발끈하며 법적 대응을 준비한다. “당시 워크숍 때 출마하지 않은 상태였고 지도자협의회가 회원들에게 활동 경비를 제공한 것일 뿐 나와 상관이 없는 일이다. 연맹이 꼬투리를 잡아 내가 선거에 나서는 걸 막기 위한 것”이라면서 “법률자문을 거쳐 대응하겠다”고 흥분했다.
박 후보는 특히 “회장을 선출하는 대의원에 협회 이사진이 27명이나 포함된 불공정선거”라고 지적하고 “대한축구협회도 연맹을 감독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를 묵인하고 심지어 지원까지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협회장 선거를 앞두고 열린 각 연맹 회장선거에서 ‘허의 남자’들이 줄줄이 낙마한 건 대선을 앞두고 열린 총선에서 여권이 압승을 거둔 것과 비슷한 경우로 해석할 수 있다.
▶ 불붙은 과열선거
김재한 축구협회 상근부회장은 지난달 협회 홈페이지에 기명 칼럼을 실어 야권의 대권주자인 허승표 축구연구소 이사장을 겨냥한 듯한 발언을 했다. “어떤 사람은 ‘지금처럼 (회장이) 국제대회만 신경 쓴다면 한국 축구는 침체를 면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면서 회장에 출마해 총회에서 3표를 얻고 물러난 일이 있다”며 “축구를 사랑한다면 누구나 (차기)축구협회장이 될 수 있겠지만 과거 정권 아래 부당하게 협회를 탄압하는데 관련된 의혹이 있는 사람이 선거에 나서는 것은 곤란하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김 부회장이 참여정부 시절 국회가 축구협회에 대한 국정감사를 실시한 배경에 야권 인사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기명 칼럼을 통해 제기하자 야권은 노발대발했다. 지도자협의회가 발행하는 <사커21>은 김병윤 편집국장의 ‘김재한 부회장님 존경합니다’라는 제목의 칼럼으로 김 부회장을 조롱했다.
선거를 앞두고 오해를 살 만한 행동을 한 건 야권도 마찬가지다. 축구연구소와 축구지도자협의회가 지난달 31일부터 1박2일 일정으로 대전 R 호텔에서 연 워크숍에서 초·중고교 지도자 20여 명에게 ‘활동비’ 명목으로 200만 원을 건넨 것이다.
논란이 일자 박병주 지도자협의회 고문은 “행사에 참석했던 지도자 18명에게 교통비 및 식비로 200만 원을 준 것은 사실이다”며 “매년 워크숍을 열어왔고, 통상 50만 원씩 지급했는데 최근 오랫동안 회의를 하지 못해 수고비를 좀 더 많이 주게 됐다”고 해명하고 있다.
▶ 더욱 깊어질 불신의 골
여권이나 야권이나 축구계 통합을 외치지만 이번 회장 선거를 계기로 불신의 골이 더욱 깊어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아직 선거가 시작도 안됐건만 서로에 대한 존중과 참신한 정책 대결 대신 감정 싸움이 일고 있다.
실제로 대학축구연맹 회장선거에서는 자금결산 보고와 임시의장 선출 방식, 투표자 자격 등을 놓고 양 후보 지지세력 간 고성과 막말이 오가는 볼썽사나운 모습이 나왔다. 선거는 총회 시작 두 시간이 지나서야 간신히 열렸다.
불신의 골을 깊게 한 데는 여권의 책임이 크다는 얘기가 있다. 협회 홈페이지에 잠시 올랐다가 사라진 김재한 상근부회장의 칼럼이나 유소년축구연맹·대학축구연맹 회장선거 등에서 불거진 불공정 선거 논란의 원죄가 협회에 있다는 주장이다.
▶ 차기 회장 어떻게 뽑나
회장 입후보자는 대의원 2명 이상의 추천을 받아야 한다. 그러고는 총회에서 과반수 출석에 과반수 득표를 해야 당선된다.
만약 1차 투표에서 과반수에 미치지 못하면 상위 득표자 두 명에 대한 결선투표가 열린다.
전광열 스포츠칸 체육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