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바둑교류협회가 주관한 ‘한국미술 대표작가 100인의 오늘전’ 개막식장에서 이수성 전 총리(맨 오른쪽), 유종하 대한적십자사 총재 등이 환담하고 있다. | ||
경제인 바둑축전의 조직위원장을 맡았던 이수성 전 총리가 이번에도 조직위원장을 맡았다. 이 총리의 바둑 사랑은 잘 알려진 사실. 바둑 두는 것 자체를 즐기는 것은 물론이고,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바둑을 통해 우리 사회에 뭔가를 구체적으로 기여하는 일에도 깊은 관심과 신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에 바둑을 포함시켜 청소년들에게 바둑을 배우게 하면 청소년 문제의 많은 부분을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 같은 것.
바둑과 경제의 만남을 내건 세계경제인 바둑축전은 처음 보는 바둑대회이긴 했지만 낯설지는 않았다. 경제인 중에도 바둑 동호인은 많고, 경제인 대회라는 이름을 내걸지 않았을 뿐, 경제인들끼리의 바둑대회도 많다. 세계경제인 바둑축전은 세계를 대상으로 했다는 규모의 특출함을 접어놓고 본다면 이를테면 연예인 바둑대회, 체육인 바둑대회, 방송인 바둑대회, 노인 바둑대회 하는 식으로 직종별 혹은 연령별 바둑대회의 하나였다.
그러나 ‘바둑과 미술’은 낯설다. 더구나 화단 인사 중에 바둑 두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바둑대회’가 아니라 바둑인들이 주체가 되어 미술 전람회를 기획한 것이니, 독특하고 신선하다.
예술 분야가 전반적으로 바둑 동호인이 적은 편인데, 미술계는 직종이나 직업별로 봤을 때 바둑 동호인 숫자가 제일 적은 순으로 손꼽히는 동네다. 바둑과 미술은 따지고 보면 조형미라든가 형태미라든가 구상(構想) 혹은 구도(構圖) 같은 개념들을 공유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관련이 있을 것도 같고, 그렇다면 바둑 두는 사람도 이 분야에서 꽤 있을 것 같은데, 아니다. 서예 쪽은 그래도 이름이 알려진 강자도 있다. 금기서화(琴棋書畵)라는 전통적 문화관의 영향일 것이다. 금기서화의 금이나 화는 예전엔 곧 시고 글씨였으니까.
몇 년 전에 여류화가 이숙형 씨가 바둑을 주제로 한 그림을 선보인 적이 있었다. 바둑계에서는 크게 반겼고, 전시회를 열심히 홍보해 주었는데, 기대했던 만큼의 반향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되며 이 화백도 그 후로는 바둑 그림을 그리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이 화백 말고는 가수 조영남 씨가 바둑을 그림의 소재로 등장시킨 사람이다. 개인전 전시작품에도 바둑이 들어간 그림이 있었다. 그래서 바둑도 아주 잘은 모르더라도 조금은 둘 줄 아는가보다 기대했는데, 여기도 아니었다. 그저 흑백의 바둑돌이 재미있게 보여서, 흑백의 상징성이 명료해 보여서 소재로 삼아보았다는 것이었다. 조영남 씨는 화투를 주제로 한 그림도 많은데, 바둑도 화투처럼 동양의 정서와 분위기를 전해 주는 제재의 하나로 받아들였던 모양이다.
어쨌거나 그래도 바둑과 미술에서는 희귀한 두 사람이 바둑을 둘 줄 알든 모르든, 배우든 배우지 않든, 바둑 그림을 좀 계속 그려 주었으면 좋겠다. 그리다 보면 배우게 되고 알고 싶어지게 될 것이니까.
바둑의 외연을 넓히는 것은 바람직한 작업이다. 다음엔 바둑과 음악의 만남 같은 것도 한번 기획해 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바둑과 미술의 만남도 계속되기를 바란다. 이번엔 바둑인들이 미술인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것이었지만, 다음엔 미술인들이 바둑을 주제로 한 그림을 출품해 주기를 또한 바란다. 바둑판의 모습, 한 판의 바둑이 끝난 시점에서 보이는 바둑판 위 돌들의 모양, 승부사의 얼굴과 표정, 그런 것들도 구상-추상의 소재가 되지 않을까. 바둑 그림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화랑에서 작품의 주인공들이 바둑을 두는 모습을 상상하면 즐겁다.
이광구 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