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이은석 프리랜서 | ||
인터뷰를 위해 녹음기를 꺼내들자, 임창용이 쓰고 있던 모자를 벗었다. 머리가 헝클어져 있기에 정리 좀 해달라고 부탁했더니 사진 잘 안 나와도 된다며 대충 머리를 쓰다듬었다. 언뜻 보기엔 내성적이고 말수 적고 까칠한 성격의 소유자로 보이지만 실제 임창용은 은근 털털하고 기사화된 뒤의 파장을 염려해 미리 계산해서 말하는 스타일이 아니다.그래서 인터뷰할 때는 기분 좋은데 정작 기사를 쓸 때는 머리가 아프다^^. 스트레칭을 굉장히 열심히 하는 것 같다고 말문을 열었더니 “20대 때는 공만 던지면 몸이 풀렸는데 30대 중반이 되다 보니 스트레칭의 필요성을 몸으로 느낀다”며 환하게 웃는다.
―지금까지(4월 15일 현재) 9게임을 치렀어요. 3세이브를 올리는 동안 단 한 점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피칭을 이어가고 있는데 일본에선 ‘미스터 제로’로 불린다면서요?
▲차라리 점수를 주고 싶어요. 투수라면 언젠가는 홈런도, 안타도 맞고 점수도 주게 돼 있는 거니까. 빨리 그런 상황이 왔으면 좋겠어요. 한국 팬들은 무실점 행진을 이어가길 바라지만 투수 입장에선 굉장히 부담스런 부분이에요.
―WBC 합류로 뒤늦게 소속팀에 합류했어요. 국가대항전을 치르고 오면 이런저런 후유증이 있기 마련인데 별로 그런 증상(?)이 나타나 보이지 않아요.
▲단순해서 그럴 거예요. 대표팀에 있을 땐 대표팀에서, 소속팀에 있을 땐 소속팀에서 충실하자는 주의거든요. 그런데 아무래도 대표팀보단 소속팀이 편해요. 물론 선후배들도 많고 말도 통하는 대표팀 생활이 즐겁긴 하지만 국가대항전을 치르다보면 스트레스가 굉장히 심하거든요. 특히 마무리 투수는 경기 결과에 따라선 총알받이가 될 수도 있어 1이닝에 운명을 걸다보니 그 스트레스 강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입니다. 이번에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됐죠(웃음).
―일본에서 용병 선수로 살아간다는 거…, 과연 어떤 느낌일까요?
▲전 여기 와서 용병이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선수들이나 감독이 워낙 잘 챙겨주니까 그들과 제 존재가 다르다는 걸 체감 못했어요. 전 의외로 잘 적응하는 스타일이에요. 나쁜 쪽이든 좋은 쪽이든 잘 섞이거든요. 그래서 적응이 빨랐나 봐요.
―어제(4월 14일) 이승엽 선수랑 인터뷰를 했어요. 많이 힘들어 보이더라고요.
▲승엽인 ‘국민타자’잖아요. 전 ‘평민’이고. 승
엽이가 안타나 홈런을 치고 못 치고에 따라 기사 방향이 달라져요. 지금 많이 힘들 겁니다.
―한국에선 두 사람의 맞대결에 많은 관심이 있어요. 선수 입장에선 많이 부담스럽죠?
▲언론이나 팬들이 그렇게 몰고 가는 것 같아요. 당사자들은 아무 느낌이 없는데 말이죠. 전 막아야 하고, 승엽인 쳐야 하고, 각자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에요. 굳이 둘의 맞대결로 보지 않으셨음 좋겠어요. 솔직히 승엽이랑 상대하기가 싫어요. 삼진을 먹거나 홈런을 쳤거나 둘 중 한 사람한테는 좋은 게 아니잖아요.
―투수로서 본 타자 이승엽은 어떤 선수일까요?
▲정말 위기에 닥쳤을 때 맞붙는다면 부담스런 타자죠. 워낙 잘 치니까. 시즌 개막하고 승엽이 경기를 계속 지켜봤어요. 상대 투수들이 중요한 상황이면 그냥 거르잖아요. 그만큼 일본 투수들이 승엽이에 대해 부담을 많이 갖고 있다는 증거죠.
―연고가 같은 도쿄인데 만나서 식사도 하고 그래요?
▲거의 안 만나죠. 밖에서 따로 만나 식사할 정도로 여유가 있지도 않고요. 아마 전화통화도 안 해봤을 걸요?
의외였다. 서른세 살 동갑내기인데다 삼성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선수들이 일본에서 교류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 속사정이 궁금했지만 서로 말을 하지 않아 짐작만 할 뿐이었다.
▲ 임창용이 WBC가 끝나고 팀으로 복귀 후 연습훈련을 가지면서 동료 투수 타카이 유헤이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출처=야쿠르트 스왈로즈 | ||
▲더 이상 물러날 때가 없었죠. 여기서 실패하면 야구 그만둔다는 각오였어요. 처음엔 배우려는 자세로 왔는데 막상 와 보니까 저보다 좋은 투수가 없더라고요(웃음). 그 당시 컨디션도 좋았고 수술에서도 완전 회복됐었고. 괌에서 개인 훈련을 하며 100% 정도 몸을 만들어서 왔으니까 펄펄 날 것 같았어요. 일본은 스프링캠프 들어가면 바로 게임 들어간다고 해서 즉시전력감으로 몸을 만들거든요. 입단 후 처음으로 피칭을 하니까 저보다 잘 던지는 투수가 없었어요. 속으로 우쭐거렸죠. 그런데 일주일, 이주일 정도 지나면서 다른 투수들의 몸이 회복되었고 공들이 너무 좋아지는 거예요. 제가 잠시 착각했던 거죠.
―고액 연봉의 선수가 아니라 부담이 덜했을 것 같아요. 물론 잘 던져야 하지만 못 던져도 ‘몸값 못한다’는 소린 안 들을 거 아니에요.
▲그래서인지 선수들이 절 별로 의식 안 했어요. 용병이라고 해도 워낙 싸니까 별 볼 일 없는 선수라고 생각했던 거죠. 투수들이 경계를 하지 않아서 쉽게 친해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시범경기 들어가면서부터 볼 스피드가 빨라지고 타자들이 연속 삼진으로 물러나니까 그때부터 보는 시선이 달라지대요. 어느 날 한 선수가 날 툭 치면서 뭐라고 하는 거예요. 왜 자길 속였냐면서. 연습 때는 130km 대를 던지더니 시합 때는 어떻게 150이 넘느냐고 밥 먹으면서 울더라고요. 그 상황이 너무 웃겼지만 속인 게 아니라 원래 그게 내 스타일이라고 설명해줬거든요. 그 선수는 지금 2군에 내려가 있어요(웃음).
임창용은 자신에 대한 선입견 없이 실력으로만 평가해준 다카다 시게루 감독과의 인연을 중요시했다. 그러면서 일본으로 오기 전 삼성에서 부진했던 모습을 보인 건 감독에게 신뢰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선수는 자신있었고, 감독은 그런 선수를 믿지 못했고. 그래서 일본행을 결심했다고 한다.
―지금도 WBC 관련 얘기가 나오면 마음이 아파요?
▲칭찬보단 비난을 더 많이 받았으니까 아무래도 후유증이 오래 가겠죠? 누구보다 후배들한테 미안했어요. 제가 잘했더라면 우승을 만끽하며 기분 좋게 추억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하지만 전 후회 없이 던졌고 정말 최선을 다했습니다. 결승전 당시의 사인 파동은 더 이상 언급하고 싶지 않아요. 그냥 제가 다 안고 갔으면 해요.
―그 사인 문제는 이미 정리가 됐잖아요. 벤치의 사인이 투수한테까지 전달되지 않은 것으로. 하지만 그래도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럼요. 지금도 그 결승전에서 이치로를 상대했을 때의 순간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아요. 그때 왜 포크볼이 안 떨어졌는지, 지금은 너무 잘 떨어지는데…. 정말 뭔가가 있었나 봐요. 실투였어요. 결정적인 실투였죠. 그 생각하면 잠이 안 와요. 마음속으론 실투를 인정했는데도 잔상들이 남아 있는 것 같아요.
―그 문제를 놓고 많은 의혹들이 제기됐었어요. 특히 삼성 김응용 사장이 감독 시절, 일부러 거르라고 사인내면 무시하고 가운데로 던져서 얻어맞은 적이 여러 번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었고요.
▲당시는 저도 나이가 어렸고 그 상황에선 감독님 사인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이해가 안 됐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선수들은 감독님 지시를 따랐겠죠. 하지만 전 그렇게 할 수가 없었어요. 도저히 용납이 안 되는데 어떻게 하겠어요. 그래서 무시했다가 후폭풍이 엄청났었죠.
임창용은 WBC 대회 이후 심적으로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고 있는 시기에 스승들로부터 ‘이해 못 할 선수’로 몰렸던 부분이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아직도 날 많이 싫어하시는 것 같다’라고 표현하면서 감정을 드러내다가 더 이상 말 길게 하면 좋은 소리 안 나올 것 같다며 입을 다물었다.
―이번 WBC 대회가 마지막 태극마크였을까요?
▲아무래도 마지막이겠죠. 그래서 후배들한테 모범을 보이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그런데 지고 나니까 할 말이 없어지더라고요. 우스운 게 일본전에서 만났던 선수들 있잖아요. 야쿠르트 유니폼을 입고 상대 선수로 만나는 요즘, 이상하게 의욕이 불타올라요. ‘얘는 꼭 잡아야 한다’ 뭐, 이런 생각들이 드니까. 그때의 한을 여기서 푸나 봐요(웃음).
임창용은 올시즌 목표를 우승으로 잡았다. 올해 창단 40주년을 맞이한 야쿠르트가 일본시리즈에서 정상의 자리를 차지했으면 하는 바람을 나타냈다. 그러면서 “작년에 방어율이 맘에 안 들었어요. 올시즌에는 1점대의 방어율을 마크하고 싶어요”라고 덧붙인다. 참으로 욕심이 많은 남자였다.
이영미 기자 도쿄=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