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도훈 연합뉴스 | ||
#태풍의 핵이었던 전창진
올해 감독 인선의 ‘태풍의 핵’은 단연 전창진 전 원주 동부 감독이었다. 구단 주무와 프런트직원을 거쳐 코치와 감독에 이른 전 감독은 농구단의 모든 생리를 속속들이 꿰뚫고 있는 소위 전문가다. 동부 코치와 감독으로 재직하면서 세 차례나 우승을 이끌면서 지도력도 인정받은 전 감독은 현 프로농구 감독 중 최고의 명장으로 손꼽히고 있다.
동부와 계약만료를 앞두고 전 감독은 자연스레 각 구단의 영입 영순위로 이름을 올렸다. 시즌 초반 9위까지 추락했던 KCC가 전 감독을 구원투수로 지목하기도 했고, SK 역시 차기 감독 후보로 전 감독을 올렸다. 당사자인 전 감독의 마음이 농구단에 대한 투자가 인색한 것으로 유명한 동부를 이미 떠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전 감독의 낙점을 받을 구단이 어디일지에 모든 관심이 집중됐다.
그러나 KCC가 시즌 후반 가파른 상승세를 타면서 허재 감독의 재신임을 확정하고 SK 역시 김진 감독의 계약기간을 채워주기로 하면서 전 감독의 선택폭은 급격히 좁아졌다. 결국 전 감독은 가장 적극적으로 러브콜을 보낸 KTF를 선택했고, 10년 원주 생활을 청산하고 부산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서게 됐다.
#코치로의 회귀 유도훈
2008~09시즌 개막 전 돌연 KT&G에 사표를 던진 유도훈 전 감독 역시 올해 감독 인선에서 가장 많이 이름이 오르내린 인물이다. 실제로 KTF 감독 후보로 전창진 감독과 함께 최종까지 이름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고, 오리온스도 유 감독에 대한 러브콜을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팀을 골라서 갈 입장’이라고 알려질 정도로 유 감독은 각 구단의 군침을 흘리게 하는 지도력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됐다. 명 포인트가드로 이름을 날리던 선수 시절부터 경기 운영이 워낙 뛰어났고 명장 신선우 감독 밑에서 코칭스태프 수업을 제대로 받았기 때문이다. KT&G를 이끌면서도 국내 프로농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완성된 팀워크를 선보였다.
그러나 유 감독은 처음부터 감독직에 욕심이 없었다. 오히려 젊은 나이(42세)답게 코치 수업을 더 쌓은 뒤 감독을 맡고 싶어 했다. 주위에서도 “언제든지 자리만 나면 감독을 맡을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유 감독이 올해 감독직에 욕심을 낼 이유는 없었다.
유 감독은 러브콜을 보낸 모 구단에 “이전에 모셨던 신선우 감독님을 모시고 코치로 가고 싶다”는 제안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끝내 이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유 감독은 자신을 코치로 받아줄 수 있는 구단, 인천 전자랜드를 최종 낙점하게 된다.
전직 감독, 그것도 최고의 차세대 감독으로 꼽혔던 유도훈을 코치로 들어앉힌 전자랜드는 구단 역사상 최고의 인선을 해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벌써부터 다음 시즌 6강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고개 숙인 50대 노장
지난 시즌을 끝으로 LG 지휘봉을 내려놓은 신선우 감독과 올 시즌 전자랜드와 계약이 만료된 최희암 감독은 시즌 초부터 부지런히 주위 인맥을 동원해 ‘일자리’를 알아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김진 SK 감독 | ||
최 감독의 경우 전자랜드를 플레이오프에 올려놓은 공을 인정받아 재계약도 가능했다. 전자랜드를 떠나더라도 최소한 1개 팀과는 계약서에 사인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KCC와의 6강 플레이오프 막판 분을 참지 못하고 경솔한 언행을 한 것이 끝내 발목을 잡았다.
경기를 마친 뒤 공식 인터뷰 자리에서 “KCC가 돈이 많은 건지, 전자랜드가 돈이 없는 건지”라고 외친 최 감독의 말은 부메랑이 돼 자신에게 돌아왔다. 이익수 전자랜드 사장은 경기 후 취재진과의 저녁 자리에서 “최 감독의 말이 틀린 게 뭐가 있느냐”며 전폭 지지를 보냈지만 결국 전자랜드 구단주인 홍봉철 회장은 장고를 거친 끝에 재계약 불가를 통보했다.
# KT&G·SK 현감독 신임
감독 교체가 유력시되던 KT&G와 SK는 현 감독에게 신임을 보내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6강 플레이오프 진입에 실패한 KT&G는 몇몇 감독 후보들이 끊임없이 그룹 고위층을 통해 이른바 ‘작업’을 했고 이 과정에서 유력 후보의 이름이 거론되기까지 했다. SK는 두 시즌을 치른 김진 감독의 계약 내용이 ‘2+1’(2년 보장에 1년 옵션)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나머지 1년을 채우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줄을 이었다.
그러나 KT&G는 유도훈 전 감독의 갑작스런 사퇴 이후 팀을 맡아 한 시즌을 잘 이끈 이상범 감독대행의 지도력이 검증된 상태. 이환우 코치 역시 젊은 선수들을 하나로 똘똘 뭉쳐 최고의 팀워크를 빚어낸 일등공신으로 평가됐다. 결국 각종 외압에도 불구하고 이상범 감독대행은 ‘대행’자를 떼고 정식 감독으로 4월 30일 선임됐다. 이 감독은 이환우 코치를 수석코치로 격상시키고 보조코치 후보를 물색하고 있다.
SK는 김 감독의 3년 계약기간을 보장하는 대신 강양택 코치에게 성적부진의 책임을 물리기로 해 빈축을 사고 있다. 강 코치는 전임 이상윤-김태환 감독 시절부터 6년 동안 줄곧 SK 코치를 맡아왔다. 그러나 감독 대신 코치가 책임을 짊어지고 사퇴하는 모양새를 띠게 된 것은 비난의 여지를 남겨놓고 있다.
#잠 못 이룬 3주
하루가 1년, 일주일이 10년과도 같았다. 밤잠을 못 이루고 뜬 눈으로 밤을 새기 일쑤. 김남기 오리온스 신임 감독과 김유택 코치는 지난 4월 중 3주를 그렇게 지냈다.
유도훈 전 KT&G 감독, 추일승 전 KTF 감독과 함께 오리온스의 신임 감독 후보에 이름을 올린 김남기 전 국가대표팀 감독은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오리온스 고위층의 마음이 김 감독 쪽으로 기울어진 상황에서 지난 4월 2일 언론보도가 먼저 나가버린 것이다. 아직 그룹 담철곤 회장의 최종 결재를 받지 못했던 오리온스는 크게 당황했고 모든 감독 인선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다시 유도훈 카드가 거론되기 시작했고, 암 투병 중인 부인에게 새 직장을 얻었다는 소식을 알렸던 김 감독의 불안감은 커지기만 했다. 대한농구협회에 대표팀 코치 사직서를 제출한 김유택 코치 역시 마찬가지. 예상치 못했던 언론보도 하나가 두 명의 지도자를 하루 아침에 실업자로 만들 수 있었던 셈이다.
6월 8일 개막하는 아시아농구선수권대회를 앞둔 대한농구협회 역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4월 15일까지 최종 답변을 줄 것을 김 감독 측에 요구했지만, 오리
온스의 반응은 묵묵부답이었다.
결국 언론보도가 나가고 3주나 지난 4월 23일, 오리온스는 김남기 감독-김유택 코치 체제로 다음 시즌을 치른다는 공식발표를 하기에 이르렀다. 꼬박 3주, 김 감독과 김 코치의 잠 못 이루는 밤들이었다.
▲ 강동희 원주 동부 감독과 전창진 KTF 감독이 나란히 챔피언결정전 5차전을 관전하고 있다.사진제공=원주 동부 | ||
강동희 동부 신임감독의 취임은 올해 감독 인선의 가장 큰 화두라고 볼 수 있다. 한국 농구 역사상 최고 포인트가드 계보를 잇는 대형선수였기 때문에 언젠가는 감독을 맡을 것이 확실시됐지만 전창진 감독이 KTF로 말을 갈아타는 바람에 예상보다는 빨리 감독직을 맡게 된 것이다.
전 감독이 등을 돌린 동부로서는 강동희 감독이 최선의 선택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강 감독 본인은 적지 않은 고민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유도훈 코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벌써 감독이라는 부담스러운 감투를 쓸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 성적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이 없는 코치를 더 맡으면서 전 감독의 노하우를 전수받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동부의 러브콜과 전 감독의 권유가 워낙 강했고, 김주성이 버티고 있는 동부가 감독 경력을 시작하기에 결코 나쁘지 않은 구단이라는 점이 강 감독의 마음을 움직였다. 전 감독이 자신을 위해 자리를 비워준 것처럼, 자신도 자리를 비워줘야 김승기 코치가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다는 판단도 ‘홀로서기’를 결심한 배경이 됐다.
강 감독의 감독 영전은 프로농구판에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전창진(KTF)-허재(KCC)-강동희(동부)-김유택(오리온스 코치)으로 이어지는 얽히고설키는 인맥 대결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박종천의 억울함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전자랜드의 신임 감독으로 임명된 박종천 감독은 한동안 주위의 수군거림에 시달려야 했다. LG 시절 보필했던 김태환 감독이 사령탑을 내놓을 때도 코치에서 감독으로 승격된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주위에서는 ‘감독 잡아먹는 코치’ ‘배신을 밥 먹듯이 하는 코치’라며 박종천 감독을 흘겨봤다.
그러나 박 감독은 이런 소문들이 억울할 수밖에 없다. 본인 역시 최희암 감독의 ‘돈 없는 팀’ 발언 이후 재계약을 포기하고 신변정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끝까지 감독 제의를 거절하고 최희암 감독과 같은 배를 탔어야 하지 않았나’라는 지적도 있지만, 홍봉철 구단주를 비롯한 구단 고위층의 러브콜이 그만큼 강했다. 그리고 최 감독 역시 박 감독에게 자신의 뒤를 이어 구단을 맡아줄 것을 적극적으로 부탁했다는 후문이다.
과정이 어찌 됐든, 박종천 감독은 ‘유도훈’이라는 든든한 코치를 휘하에 두게 돼 천군만마를 얻은 격이 됐다. 서장훈과 유도훈, 두 거물과 함께 ‘전자랜드호’를 이끌게 된 박 감독의 앞날은 더없이 맑다.
#삼성과 KCC의 갈 길은
이제 마지막 두 구단. 챔피언결정전까지 치른 삼성과 KCC가 남았다. 일단 정규리그 4위, 챔피언결정전 진출의 호성적을 거둔 삼성은 이달 말로 계약이 만료되는 안준호 감독-서동철 코치와 재계약이 확실시된다. 그냥 재계약이 아니라, 역대 최고 대우를 뛰어넘는 대박이 기대된다. 시즌 전만 해도 약체로 분류됐지만 막강한 가드진과 최고 외국인선수 테렌스 레더를 적극 활용하며 특유의 팀컬러를 만들어냈다.
KCC 역시 올 시즌 성적은 기대 이상이다. 시즌 한때 팀이 붕괴될 뻔 한 위기도 있었지만 어쨌든 KCC의 올 시즌은 성공이었다. 계약기간이 1년 남은 허재 감독은 다음 시즌에도 변함없이 KCC의 지휘봉을 잡을 것으로 유력시된다. 그러나 계약기간이 만료되는 김광 코치의 재계약 여부는 미지수. 이미 구단 내부에서도 김 코치가 허 감독의 신임을 잃은 것으로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어 올 시즌을 끝으로 팀을 떠날 가능성이 높다. KCC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인 조성원 전 국민은행 감독이 차기 코치로 유력한 가운데, 과연 허 감독을 보필해야 하는 만만치 않은 KCC 코치 자리가 누구에게 돌아갈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허재원 한국일보 체육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