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투가 과연 바둑 보급과 바둑 동호인 증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느냐는 질문에 대해 조 9단은 “우리 바둑계에 새로운 변화의 계기가 필요하다는 것에는 모두 동의하고 있다고 본다. 바투가 바둑 발전에 일조를 할지는 아직 단언할 수는 없지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변화가 필요하다면 어떤 식으로든 움직여 보아야 할 것 아닌가”라고 대답했다.
바투에 대해선 찬반양론이 있다. “재미가 있다. 젊은 층에 어필할 것으로 보인다. 바둑 발전에 새로운 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고, “별로 의미가 없다. 바둑의 정체성에 혼란을 가져올 뿐”이라고 일축하는 사람이 있다.
두고 볼 일이다. 다만 바투를 지지하는 쪽에서는 한 가지 시급히 해결할 문제가 있다. 바둑은 입문이 어렵다. 일단 알고 나면 그 맛에 빠지게 되지만, 알기까지의 과정이 다른 게임에 비해 좀 길고 지루하다. 바투는 컴퓨터 게임의 요소를 바둑에 접목해 입문을 쉽게 하겠다는 것인데, 어차피 바둑을 알아야 바투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니, 자체로 모순인 것.
바둑의 미래에 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이미 10여 년 전 일이다. 오래된 화두다. 견해와 주장이 다양한데, 그동안에 나왔던 의견 중에서는, 바투처럼 구체적이지는 않고 다소 포괄적이며 추상적인 개념이지만 ‘교육과 복지’라는 것이 가슴에 와 닿는다. 특히 ‘복지’가 그렇다. 예컨대 이런 얘기다.
교육은 바둑을 가르치며 보급하는 일. 복지는 바둑을 아는 삶과 바둑을 모르는 삶의 차이를 인식시키면서 이른바 ‘삶의 질’의 향상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일이다. 그를 통해 바둑이 우리 사회에 기여하는 길을 찾는 일이다.
‘교육’은 지금도 바둑교실이나 방과 후 특기적성교육 등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열정적으로 연구하고 있으니 갈수록 좋아질 것이다. 바둑이 어린이 청소년들의 지능개발과 정서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는 바이지만 아직은 심정적인 인정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니, 더 구체적인 ‘물증’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복지’에 관해서도 몇 년 전에 당시 바둑계 인사 한 사람과 보건복지부 사이에 교감이 이루어져 노인들의 복지후생 향상을 위한 바둑 교육 사업을 위해 20억인가 30억인가를 후원받기로 되었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결국은 성사되지 못해 안타까움을 산 일이 있었다.
당시 보건복지부가 그만한 규모의 후원을 결정하는 단계에까지 갔다는 것은 바둑의 효용을 인정했다는 얘기다. 그 불씨를 살려야 한다. 처음에는 정부가 지원하는 형태가 되겠지만, 그게 자리를 잡으면 지자체들이 나설 것이고, 기업이 참여할 것이다. 현재 우리의 대기업들은 바둑에 참여하지 않고 있거나, 소극적으로 참여하고 있거나, 참여했다가 물러서는 중에 있다. 대기업들은 음악이나 미술 같은 예술 쪽에는 기꺼이 후원자를 자원하고 있다. 예술이 우리 삶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고 믿기에 그렇다. 바둑도 그들에게 명분을 주어야 한다. 대기업이 바둑을 봐 준다는 생각에서가 아니라 바둑의 가치와 효용을 인정해 동참하면 이후엔 수많은, 이른바 파생 상품이 등장할 것이다.
우리도 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다. 우리가 당면한 문제다. 앞으로는 평균 수명이 90에 이를 것이라는데, 60 언저리에 일선에서 물러나면 나머지 30년은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 바둑은 그 30년을 동행할 좋은 친구 가운데 하나다. 경제력이나 체력에 상관이 없다. 그걸 알게 해야 한다.
이것과는 별개면서도 같은 얘기로 여겨지는데,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바둑은 영어권에 들어가지 못하면 미래가 없다. 특히 미국 시장에 들어가야 한다. 가령 미국 시장에 프로기전 같은 게 본격적으로 생긴다면 일단 볼륨이 지금 우리 것의 최하 100배는 될 것이다.”
동감한다. 그런데 영어권에, 미국 시장에 들어가는 길은? 10여 년 전에 바둑을 좋아하는 미국 교포 한 사람이 잠시 한국에 들어와 바둑을 미국에 수출하는 길을 모색했었다. 그의 얘기는 다음과 같았다.
“주 정부 관리를 만나고 상원의원을 만났다. 그들에게 바둑을 제안했다. 노인들에게 바둑을 가르치자는 것이었다. 더구나 바둑을 두면 치매에 걸리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는데, 말한 내가 깜짝 놀랄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그들에게 ‘노년의 고독’이라는 사회 문제를 일정 부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반가운 얘기였을 것이다. ‘표’하고도 직결되는 것이니까. 일차적으로는 교재를 만들면 되는 것이다. 교재나 바둑판이나 일단 발동이 걸리면 무조건 최소한 1000만 부, 1000만 세트 아닌가. 나는 주 정부와 상원의원으로부터 ‘교재나 바둑판 사업은 우리가 밀어 주겠다’는 약속을 받는 데까지 성공했다. 그러나 한국에 들어와 보니 나의 제안에 호응해 주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당시 교포의 얘기는 금방 확인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또 그 자신이 바둑보급보다는 바둑교재나 바둑판 같은 자신의 사업에 더 주안점을 두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노인 복지를 주제로 하는 기여-기부를 통해 미국 사회, 미국 시장, 세계 사회, 세계 시장에 들어가고, 바둑이 먼저 기여하면 사업성도 창출할 수 있다는 그 착상은, 바둑의 미래를 준비하는 방법의 하나로 경청할 만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광구 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