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두산에서 롯데로의 이적 첫 해, 햄스트링 통증으로 잠시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고 7번 지명타자로 뛰는 등 수모와 갈등을 겪었던 터라 홍성흔의 부활은 그 자신은 물론 롯데 팬들에게 가뭄의 단비로 작용했다. 홍성흔과의 인터뷰에 함께한 팬은 부산 출신으로 서울 압구정동에서 피부과를 운영하는 강승훈 씨(36·피부 성형외과 봄여름가을겨울 원장). 어린시절 부산 사직구장에서 살다시피했다는 강 원장은 롯데 ‘왕팬’인 데다 롯데 선수 외에 좋아했던 유일한 선수가 홍성흔이었다고 한다. 홍성흔이 두산에서 롯데로 이적한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좋아서 밤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다고. 성흔과 승훈이란 이름부터 외모까지 흡사해 형제라고 해도 믿을 것 같은 홍성흔과 강승훈 원장과 데이트를 소개한다.
홍성흔과의 인터뷰 일정이 정해진 날 평소 기자와 친분이 있는 강승훈 원장이 전화를 걸어왔다. 두산과 롯데의 3연전이 벌어지는 주말에 잠실구장에서 살다시피해야겠다는 그와 통화를 하면서 순간적으로 강 원장이 홍성흔의 열렬한 팬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스타와 팬과의 만남. 다소 진부한 주제지만 평소 ‘홍성흔 닮았다’란 소리를 많이 듣는 강 원장이라면 재미있는 시간이 될 것 같았다. 롯데 구단의 협조 아래 강 원장과 함께 홍성흔을 만나러 간 날, 강 원장은 큰 액자를 준비해 왔다. 단순히 홍성흔 사진이겠거니 했는데 알고 보니 남다른 사연이 있었다.
“2006년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WBC 예선전 때 대만과의 1차전 경기를 보러 갔었어요. 그때 관중석에서 제가 직접 찍은 홍성흔 선수 사진이에요. 국가대표 주전 포수로 처음 출전했던 모습이라 의미가 큰 것 같아 촬영한 건데 이렇게 직접 전해드리게 될지는 상상조차 못했어요.”
홍성흔이 너무 고마워했다.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찍은 사진이라 더더욱 소중하다면서 강 원장에게 감사함을 전했다.
홍성흔(홍): 생각지도 못했는데 이런 선물까지 받으니까 정말 기분 좋은데요. 요즘 팀 성적이 바닥을 헤매고 있어 살짝 의기소침했거든요. 사실 이런 상황에선 인터뷰 안하게 됩니다. <일요신문>이니까 하는 거예요(웃음).
강승훈(강): 제 친구랑 병원을 같이 운영하고 있는데 그 친구도 롯데 광팬이에요. 오늘 홍성흔 선수 만난다고 했더니 난리가 아니더라고요. 진료 예약 모두 취소하고 따라가겠다고. 간신히 앉혀놓고 왔습니다(웃음).
홍: 솔직히 롯데 팬들 만나는 거, 요즘은 좀 부담스러워요. 그동안 저에 대해 실망을 많이 하셔서 비난과 비판도 굉장히 많았거든요.
강: 그래도 지금은 홍성흔 선수가 없었으면 어떠했을까 싶을 정도로 잘 해주고 계시잖아요.
홍: 이건 처음 고백하는 건데, 4월과 5월 초까진 우울증에 걸렸더랬어요. 제가 타석에 나갈 때마다 관중석에서 ‘임마, 너 다시 두산으로 돌아가’라든지 ‘가서 이원석(롯데에서 두산으로 트레이드됨) 데리고 와’라는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제가 순하게 표현해서 그렇지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퍼붓는 사람도 있었었어요. 야구도 안 되고, 욕만 배가 부르도록 먹고, 정말 사면초가였습니다. ‘사람이 이래서 자살하는구나’ 싶었다니까요.
강: 이적 후 첫해였으니까 적응 기간이 필요한 건데, 롯데 팬들이 그걸 못 기다려주는 거죠.
홍: 어휴, 말도 마세요. 제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뭔지 아세요? ‘FA 먹튀’란 말이에요. 그런데 그 말이 관중석에서 들리면 환장할 것 같더라고요. 성적이 안 나다보니까 자꾸 큰 것만 노리게 돼요. 크게 치고 타점 많이 내고 싶은 욕심만 가득해졌죠. FA로 데리고 온 선수가 지명타자 7번이란 게 말이 되나요? 웃긴 거잖아요. 그러면서 자신감을 많이 잃게 됐죠. 그러다 부상으로 며칠 쉬면서 생각을 달리 하게 됐어요. 두산 있었을 때처럼 투수를 압박하는 포스도 없었고 크게 치려다보니 페이스를 잃게 된 걸 깨달은 거죠.
강: 롯데로 오면서 어느 정도 마음의 각오는 하셨을 것 같아요. 워낙 부산 팬들이 뜨겁다보니까 경기 결과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못해 데일 정도잖아요. 롯데 선수들이 조언 같은 거 안 해줬나요?
홍: 여기선 야구만 잘하면 ‘교주’ 대접 받아요. 그러다 못하면 테러 수준의 뭇매를 맞게 되죠. 선수들이 ‘잘만 하면 아무 걱정 없고 대신 못하면 조금 힘들 것이다’라고 했는데 그 ‘조금’이 이 정도인 줄 정말 몰랐어요. 한두 게임만 못해도 바로 ‘먹튀’ 운운하니까 서글플 따름이었죠. 그래도 위안이 되는 게 손민한 선배예요. 민한이 형이 그러더라고요. ‘성흔아, 니 뭐 고생하노. 국민 먹튀가 여기 있는데 신경쓰지 마라’ 라고요. 그런데 요즘 성적이 나니까 저에 대해 뭐라 하시는 분들이 거의 없어요. 조금 살만해진 셈이죠.
강: 롯데에서 가장 친한 선수가 누구예요?
홍: 주장 조성환 선수죠. 제 와이프가 시기할 정도로 친해요. 혹시 둘이 사귀는 거 아니냐면서. 성환이 형은 야구선수이기 전에 참으로 인간적이에요. 마치 잡아먹을 것 같은 눈빛을 하고 있지만 속마음이 따뜻하고 깊어요. 제가 롯데에 처음 인사하러 갔을 때 성환이 형이 ‘넌 진짜 우리집 자식이다’라며 반겨주더라고요. 지난 번 그 형 다쳤을 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울어봤어요.
강: 혹시 포수나 수비에 대한 욕심은 없어요? 지명타자란 자리가 결코 쉬운 자리가 아니잖아요.
홍: 수비하는 선수들은 방망이가 안 좋아도 호수비 하나로 인정을 받잖아요. 수비를 안 하고 지명타자로만 뛰다보면 타격 성적 외엔 어필할 게 하나도 없어요. 제가 롯데 오면서 지명타자만 할 거란 생각은 안 해봤거든요. 지명타자는 정말 생명이 짧은 자리예요. 방망이 힘 좋고, 잘 맞히기만 하면 아무나 할 수 있는 자린데, 그게 쉽지가 않아요. 전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정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해요. 리더십도 좋아야 하고 상대팀 투수에게 주눅들어서도 안되고, 스트레스가 많죠. 그래서 나만의 살 길을 찾는 거예요. 더그아웃에서 파이팅도 하고 선수들도 독려하면서 말이죠. 2~3년 안에 노력해서 제 자리를 만들고 싶어요. 수비를 해야 타격감도 더 살아나요.
▲ 우리 정말 닮았나요? 홍성흔과 열혈팬 강승훈. 이름부터 외모까지 흡사해 마치 형제 같았다. 참고로 홍성흔은 오른쪽이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홍: 아, 그러세요? 제가 악관절 때문에 많이 고생했어요. 심해지다보니까 그 영향이 어깨 뒤쪽으로 오더라고요. 친하게 지내는 형이 치과를 하는데 교정하면 비대칭이었던 얼굴이 반듯해질 거라고 해서 용기를 냈죠. 다음 달이면 이거 뺄 수 있어요. 1년 6개월 했네요.
강: 그래서인지 턱선이 부드러워지면서 완전히 ‘훈남’으로 거듭났어요. 잘하셨네요. 제 고향이 부산이거든요. 부산에선 지낼 만하세요?
홍: 알아보시는 분들이 너무 많아요. 야구가 잘 될 때는 괜찮은데 시합지고 우울할 때, 혼자 있고 싶을 때, 주위에서 인사 건네고 한마디씩 던지시면 자꾸 숨고 싶어지더라고요. 그것만 빼놓고는 부산에서 생활하는 거 너무 좋아요. 이건 절대로 ‘방송용 멘트’ 아닙니다. 전 롯데로 온 걸 후회해 본 적이 없어요. 롯데가 성적이 안 나도 팬들이 롯데를 외면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겠어요. 굉장히 매력 있는 팀이에요. 욕심이라면 롯데에서 선수 생활을 마치고 싶을 정도예요.
강: 요즘 정수근 선수의 징계 해제가 활발히 논의 중이에요. 개인적으로 친하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보세요? 이 문제를.
홍: 징계가 풀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풀리고 나서 정수근 선수의 행동이 더 중요해요. 얼마전에도 통화를 했는데 많이 반성하고 있더라고요. 험한 꼴도 봤고 잔가지, 나쁜 가지들이 많이 쳐진 것 같아요. 많은 팬들이 등을 돌린 상황에서 그들을 다시 자기 팬으로 만들려면 야구장에서 죽겠다는 각오로 뛰지 않으면 안 돼요. 더 이상 야구장에서 해프게 웃지도 말고 머리 숙이고 죄인이란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야 팬들이 돌아올 겁니다. 만약 다시 복귀해서 정신 안 차리고 있으면 쥐어 팰 거예요. 자식도 생겼고 와이프도 있고 한데 돈이 없어 힘들어 하는 걸 보면 정말 가슴이 아파요.
강: 마지막으로 이걸 꼭 묻고 싶어요. 롯데가 가을에도 야구할 수 있을까요?
홍: (웃음) 아직 안 늦었잖아요. 포기할 단계도 아니고. 전 정말 롯데가 우승하길 간절히 바라요. 제 개인 성적이 안 좋아도 롯데만 우승하면 돼요. 제가 악당으로 비춰져도, 재수없다고 욕을 먹어도 팀 성적만 좋으면 전혀 상관하지 않아요. 지켜봐 주세요. 아직 희망이 있잖아요.
인터뷰를 마치고 두 사람이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는데 사진기자가 깜짝 놀라며 이렇게 말한다. “두 분 정말, 너무 닮았어요!” 서로 잘생겼다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는 두 사람. 팬과의 만남인데도 진지하고 솔직한 모습으로 팬을 감동시킨 홍성흔. 이런 홍성흔한테 ‘홀딱’ 반한 강승훈 원장이 “시간될 때 피부 점검하러 한 번 병원에 오세요”라고 인사를 건네자, 홍성흔이 “롯데 성적 올라가면 시원한 맥주 한잔해요”라며 반갑게 받아들인다. 보기만 해도 훈훈한 스타플레이어와 팬의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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