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
지난 24일, 잠실야구장. LG와 히어로즈와의 경기를 앞두고 김석류 아나운서가 LG 박용택과 미니인터뷰를 진행한다.
뙤약볕 아래서 촬영을 하는데도 얼굴엔 미소가 한가득. 그러나 약속된 인터뷰 시간을 초과하자 LG 홍보팀 관계자가 담당 PD에게 빨리 끝내달라고 재촉한다. 경기 전인데다 김재박 감독이 더그아웃에서 지켜보고 있는 탓에 구단 담당자로선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상황. 20분을 훌쩍 넘긴 인터뷰가 끝나자 김석류 아나운서의 얼굴이 벌겋게 익었다. 박용택 선수가 너무 말을 잘해서 딱 자르지 못했다”며 미안한 얼굴이다.
경기 전 할 일을 모두 끝낸 김석류 아나운서를 이번엔 기자가 인터뷰하기 시작했다. ‘김석류와 스포츠’란 내용으로 그가 현장에서 보고 겪고 느낀 것들을 알아보기 위함이다.
야구는 어려워
김석류 아나운서의 인터뷰 때마다 등장하는 질문들 중 한 가지. 가장 좋아하는 종목이 무엇인지를 묻는 내용이다.
“다 좋다고 말하면 재미없겠죠? 근데 정말 그래요.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배구는 워낙 키가 큰 선수들이 많아서 인터뷰하기가 힘들었다는 거죠. 항상 우러러 봐야 했으니까^^. 그리고 배구선수들이 프로라는 타이틀을 달았지만 다른 종목에 비해 연봉도 적고 굉장히 힘들게 운동해요. 그러다보니 배구선수들에 대해 더 애틋해지는 것 같아요. 야구는 좀 어려워요. 워낙 인기 있는 종목이라 작은 실수도 크게 부각되고 선수들과 인사만 나눠도 이상한 소문이 나더라고요. 처음엔 뭣도 모르고 반바지 입고 더그아웃에 들어갔다가 싫은 소리를 듣기도 했어요. 지금은 무조건 긴 바지만 고수합니다^^.”
안타까운 선수들
선수들을 가까이서 접하다보면 방송에 노출되지 않는 인간적인 면을 많이 보게 된다. 아무리 억대 연봉을 받는 선수들이라고 해도 경기 성적에 따라, 부상 여부에 의해, 또는 주전 경쟁 등으로 매일매일 평가를 받는 부분은 제대로 호흡하고 살기 힘들 만큼 스트레스를 안겨준다.
그동안 만났던 여러 선수들 중 김석류 아나운서는 두산의 임태훈 선수에 대해 조심스럽게 거론한다.
“임태훈 선수가 지금은 잘하고 있지만 베이징올림픽 때부터 수난이었잖아요. 중간에 윤석민 선수랑 교체되는 바람에 금메달의 혜택을 받지 못했고 WBC 대표팀에도 중간에 교체돼 들어갔지만 제대로 된 활약을 펼치지 못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절하지 않고 올시즌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어 오히려 제가 기분이 좋더라고요. 시련을 딛고 이겨나가는 선수들을 지켜보면 감동먹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에요.”
선수와의 스캔들
김석류 아나운서는 최근 KBS 인터넷 전용 스포츠쇼 ‘이광용의 옐로우카드’에 출연해 “취재 과정에서 선수들의 대시를 받았다는 소문이 사실이냐”는 MC의 질문에 “한두 명보다 쫌 많았다”고 답한 것과 관련해 포털사이트에서 실시간 인기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그 일 이후로 인터뷰 자체를 부담스러워했다. 말 한마디가 뉘앙스에 따라 굉장히 다른 느낌을 준다는 걸 새삼 절감해야 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 얘긴 지난해에도 나왔었거든요. 그때도 검색어 1위에 올랐었죠. 그걸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아나운서와 운동선수와의 관계에 대해 흥미를 갖고 있구나 하는 걸 깨달았습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아나운서가 선수들을 따로 만나 밥 먹고 차 마시고 한다는 게 쉽지 않아요. 서로 시간 내기가 힘들고 주위의 눈이 있기 때문에 만남 자체가 조심스럽거든요. 처음엔 연락을 해오던 선수들이 있었지만 그냥 그뿐이에요. 솔직히 저도 선수들을 만나서 많은 걸 알고 싶어요. 그래야 다양한 질문들을 만들 수 있으니까. 하지만 순수한 의도라고 해도 주위에서 이상하게 볼 수도 있고 일하면서 구설수에 오르내리는 게 결코 도움이 안 되기 때문에 자제하는 편이죠. 밖에서 보는 것처럼 선수들과 별로 친하지 않아요.”
두산과의 징크스
김석류 아나운서는 두산 경기에 투입될 때마다 내심 긴장을 하게 된다. 이상하게도 두산전을 앞두고 미니인터뷰를 할 경우 그 선수가 부진하거나 팀의 패배로 이어진다는 징크스 때문이다.
“정말 희한한 일이죠. 잘나가던 선수가 인터뷰 후 부진에 빠지거나 팀이 석패를 하는 등의 결과가 나오면 괜히 마음이 안 좋아요. 두산 팬들이 절 많이 싫어하세요. 저랑 인터뷰하고 나면 성적이 안 좋다고. 너무 속상해서 기록을 찾아가며 확인을 해봤는데 승률이 그렇게 나쁜 건 아니라 더욱 억울했죠^^. 자꾸 그런 얘길 들으면 좀 위축되는 것도 사실이고 두산 경기를 앞두고선 유독 예민해지더라고요.”
인터뷰가 어려워
▲ LG 박용택과 인터뷰 하고 있는 김석류 아나운서. | ||
“안젤코의 공격점유율이 많은 부분에 대해 질문했는데 신 감독님께서 표정이 별로 좋지 않으시더라고요. 그 후론 안젤코 관련 질문만 나오면 민감하게 받아들이셨어요. 저 또한 감독님의 반응을 보면서 마음도 안 좋고 무섭기도 하고 좀 그랬거든요. 그러다 우연히 경기 끝나고 식사할 기회가 생겨 밥을 먹는데 사석에선 마치 이웃집 아저씨마냥 유머도 곁들이시고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끌고 가시는 거예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감독님이랑 아버지랑 동갑이신데다 이전에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살았더라고요. 따님인 혜인 씨가 저랑 동갑이고요. 그때부터 감독님이 조금은 편하게 느껴졌어요.”
지방 출장의 추억
지방 경기를 다니다보면 숙소가 대부분 모텔이다. 결혼도 안 한 젊은 여성이 모텔을 집처럼 들락거리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처음엔 출장만 잡히면 모텔에서 잘 생각에 부담이 한가득이었다고.
“진짜 많이 울었어요. 모텔에 혼자 누워있다보면 별의별 생각이 다 들거든요. 전 방송 스태프 중 일원이고 여자라고 해서 특별 대우를 바랄 순 없잖아요. 모텔 생활도, 술자리도 씩씩하게 이겨내야 했어요. 카드명세서를 보면 모텔 이름만 잔뜩이에요. ‘여자가 이게 뭐냐?’ 하는 생각도 들고 ‘카드사에서 이걸 보고 날 어떻게 생각할까?’ 싶기도 하지만 이게 내 운명이라면 받아들여야 한다고 마음을 다독였어요. 지금은 모텔 주변의 맛집이나 사우나 등을 찾아다니면서 지방 출장을 즐기고 있습니다.”
스포츠 캐스터를 꿈꾸는 김석류 아나운서가 꼭 인터뷰해 보고 싶은 선수가 있다고 한다. 바로 맨체스터유나이티드에서 활약하는 박지성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스포츠스타잖아요. 형식적인 인터뷰가 아니라 박지성 선수의 희로애락을 제대로 펼쳐 보일 수 있는 인터뷰를 하고 싶어요.”
요즘 김석류 아나운서한테는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언론에 자주 거론되다 보니까 주위에서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 자신은 그대로인데 ‘건방지다’ ‘잘난척 한다’는 등등의 말들이 자신의 귀를 어지럽힌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너무 속상해요. 전 인기와는 관계없는 사람이잖아요. 제가 의도한 것도 아니고 전 그저 열심히 일을 하고 있을 뿐인데 이상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절 그냥 있는 그대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래서인지 말 한마디 한마디를 굉장히 조심스러워했다. 행여 자신의 생각과 다르게 전달될까 걱정된 나머지 대답을 하면서도 기자에게 자꾸 자문을 구해왔다.
스포츠를 사랑하고 스포츠 현장을 좋아하고 스포츠 세계를 즐기게 됐다는 김석류 아나운서한테 스포츠는 ‘애인’이나 다름없었다. 그 ‘애인’이 배신을 때리지 않는 한 그의 미래는 항상 스포츠 속에 현재진행형으로 움직일 것이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