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7월 27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홈구장에서 만난 박찬호는 연륜만큼 야구인생의 깊이가 묻어났다. -홍순국 메이저리그 사진전문기자 | ||
―어제 경기 전 관중석에 있는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어린아이와 캐치볼을 하는 등 팬들과 교감을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필라델피아 팬들 사이에서 ‘친절한 찬호씨’로 불린다고 들었다.
▲내가 만약 선발투수였다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불펜은 선발보다 여러 가지 면에서 여유가 있다 보니 그런 행동들이 가능하다. 더욱이 요즘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팬들에 대한 고마움이 점점 커진다. 팬들을 통해서 내 존재감을 느낀다고나 할까. 미국 팬들 뿐만 아니라 운동장을 찾는 한국 팬들에게 항상 감사함을 갖는다. 이전처럼 규모가 크거나 많은 팬들이 오진 않지만 적으니까 더 소중하고 마음에 새기게 된다. 무엇보다 아이들한테는 최선을 다해서 사인을 해주려고 한다. 선수 입장에선 그냥 지나가는 어린 팬들이 되겠지만 그 아이들은 메이저리그 선수한테 사인을 받는 게 굉장한 경험이 될 수도 있다.
―박찬호하면 ‘영웅’ ‘특급선수’ 등 최고의 수식어가 따라 다녔다. 그러다보니 아무리 가까이 하려고 해도 거리감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특히 기자들도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
▲지난 번 귀국 때 ‘1박2일’이란 방송을 통해 사람들이 야구선수 박찬호가 아닌 인간 박찬호를 본 것 같다. 박찬호는 슈퍼스타이고 특별한 스타플레이어라고 생각하는 선입견들이 그 방송을 통해 일부 사라진 걸 느꼈다. 미국에서 많은 교포들이 그 방송을 본 후 ‘생각보다 많이 다르다’ ‘평범한 보통 사람의 이미지를 느껴서 반가웠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내가 한창 야구를 잘했을 때, 특별한 대우를 받았을 때, 내가 사람들에게 어떤 ‘벽’을 만들었다는 것도 절감했다. 사실 내가 벽을 만든 것도 있지만 나로 하여금 벽을 만들도록 한 외부적 요인도 있었다. 영웅이니, 리더니 하면서 뒤로는 날 자꾸 깎아내리고 흠집 내고…. 그로 인해 상처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이젠 세월의 흐름과 함께 야구 외에 다른 부분을 돌아볼 줄 아는 여유가 생긴 것 같다.
―지금도 선발투수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았나. 앞으로 선발로 복귀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거라고 예상하는지 궁금하다.
▲내가 야구하는 목적은 선발투수였다. 그러나 나이와 팀 사정상 불펜투수를 맡아야 하는 게 현실이었다. 야구 인생을 연장시키기 위해선 그 보직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 될지, 아니면 앞으로 영영 선발 기회가 없을진 몰라도 언젠간 선발 기회를 다시 잡아서 과거처럼 많은 이닝을 소화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어쩌면 그건 욕망이면서 집착일 수도 있다. 나이가 있다 보니 무리하다 다칠 수도 있다. 그러나 건강한 몸 상태로 다시 한 번 내 목표에 도전하고 싶다. 박찬호하면 야구선수이듯 야구선수 박찬호는 선발투수다.
―김병현도 선발투수를 고집하다가 지금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잠시 야구장을 떠나 있다.
▲성인이라면 때론 사회에 적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야구도 마찬가지다. 내가 선발만 고집한다면 지금 난 버림받았을 것이다. 다른 것도 채워가야 한다. 팀에서 원한다면 말이다. 세월이 흐르면 타협할 줄도 알고 적응해 가는 부분도 필요하다. 그게 아마 나이가 주는 지혜가 아닌가 생각한다.
▲ ▲ 박찬호는 필라델피아 필립스 중간계투로 보직을 전환하며 환상의 피칭을 보여 주고 있다. | ||
―지금 선발투수로 120승을 기록하고 있다. 123승이면 노모가 이룬 동양인 최다승을 깬다. 욕심이 생기나.
▲기록이란 단어 자체가 깨지기 위해 존재하는 거 아닌가. 후배들에게 새로운 목표를 갖게 해주기도 하고. 그러나 메이저리그에서 동양인 최다승이란 큰 의미가 없다. 그래도 은퇴하기 전에 그런 타이틀을 갖게 된다면 기분은 좋을 것 같다.
―메이저리그 특급투수로 6500만 달러를 받았던 선수가 2008년 LA 다저스에선 25인 로스터에 포함될 경우 연봉 50만 달러를 지급받는다는 계약을 맺은 바 있다. 그것도 친정팀인 LA 다저스에서. 당시 그런 참담한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그 당시엔 그것조차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개런티 계약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의 모습을 보여줬을 때나 가능했던 계약이다. 나한테는 마지막 도전의 기회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것들이 날 다시 한 번 일으켜 세운 것도 사실이다. 사실 다른 팀도 아닌 친정팀에서 그런 대우를 받는다는 게 좋은 기분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그곳엔 날 기억하는 많은 팬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 계약 조건이 크게 와 닿진 않았다.
―잘나갈 때는 팀이 필요로 했던 선수였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부상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면서 어느 순간부턴 팀을 찾아다니는 게 현실이 됐다. 어떻게 받아들이나. 그 부분을.
▲마이너리그든 메이저리그든 야구판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게 어떤 형태이든지 다 수용하고 받아들여야 했다. 그런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야구를 접어야 했기 때문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계속 도전하는 것 외엔 아무 것도 없었다. 여기서 안 되면 한국에서 야구 생활을 이어가고 싶은 바람도 있었다. 나를 응원하는 한국 팬들 앞에서 지금까지 메이저리그에서 해왔던 야구를 한국 프로야구 경기장에서 펼쳐 보이고 싶었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이라는 생각은 안 했고 큰 두려움은 없었다.
―팀에서 좋은 대우를 받지 못하면서도 굳이 야구 생명을 연장시키는 걸 보고 일부에선 이미 벌 만큼 벌었는데 비참하게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것보단 깔끔하게 그만두는 게 낫지 않느냐 하는 말들도 있었다. 알고 있었나.
▲그런 얘기 많이 들었다. 지저분하게 미련 두지 말라는 얘기도 들었다. 사실 지금도 야구를 하는 건 뭔가를 더 채우기 위한 게 아니라 여기서 포기하면 내가 설계한 야구인생의 길에서 벗어나는 거라고 생각한다. 혹시 그런 거 아는지 모르겠다. 가진 사람이 더 힘들고 참혹한 인생을 산다는 것을. 부족한 사람은 희망이라도 있다. 그러나 가진 사람은 그걸 지켜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엄청나다. 2002년 LA 다저스에서 텍사스 레인저스로 갔을 때 많은 부와 명예를 챙길 수 있었다. 그런데 그걸 지켜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계속해서 수렁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언젠가는 무너지게 돼 있다. 그게 무너지는 순간 떠나야 한다. 그런데 그걸 미리 두려워했던 모양이다. 밑으로 떨어지는 데 대한 두려움, 그런 것들 때문에 힘든 인생을 살았다. 결국은 용기다.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용기. 어느 순간엔 과감해야 한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하루에 수십 번도 흔들린다. 그럴 때마다 자신을 돌아보고 난 할 수 있다고 세뇌시키는 훈련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날 괴롭힌 건 한결같을 줄 알았던 팬들이 나한테 악플을 달고 비난하고 손가락질하던 순간들이다. 그러나 다시 용기를 낸 건 그런 사람들을 상대로 맞섰던 또 다른 팬들 덕분이다. 그런 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운동장에 박찬호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악플 때문에 상처를 받은 적이 있나?
▲어휴, 나도 공인인 데다 많이 알려진 사람으로서, 또 많은 걸 이루고 가진 사람으로서 공격의 대상이 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처음엔 그걸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야구만 못했을 뿐인데, 마치 죄인인 양 비난을 받고 그런 오명을 뒤집어쓰고 살아가는 게 억울했다. 내가 항상 힘을 얻었던 팬들로부터, 그리고 미디어들로부터 상처를 받았던 게 고통스러웠다. 그래도 그걸 이길 수 있었던 건 변함없이 날 지켜주는 가족들, 날 변함없이 지지하는 팬들, 그리고 조국이었다.
▲ ▲ 더그아웃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박찬호. | ||
▲과거에 날 가장 힘들게 했던 말이 ‘코리안’이었다. 여기 선수들이나 구단 관계자들은 신인 시절 내 이름 대신 코리안이라고 불렀다. 김치 냄새가 나거나 실수를 할 경우 부정적인 이미지로 코리안으로 호칭했다. 당시엔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게 싫게 느껴질 정도로 코리안이란 호칭이 날 힘들게 했다. 만약 지금 누군가가 나한테 그렇게 부르면 맞서서 싸울 만큼 의사 소통도 되고 용기도 있기 때문에 당당히 얘기하겠지만 그땐 영어가 안 되니까 뭐라고 항의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여기 선수들과 함께 생활하는 부분이 이전에 비해 훨씬 편안해졌겠다. 어느 누구도 박찬호란 선수를 이름 대신 ‘코리안’이라고 부르진 못하지 않나.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지 15년 동안 단 한 번도 내가 이곳 선수들과 ‘같다’는 느낌을 가진 적이 없다. (때마침 타월을 두르고 지나가는 동료 선수들을 쳐다보며) 백인, 흑인들이 존재하는 이곳에서 난 영원한 이방인일 수밖에 없다. 그런 현실을 인정하고 극복해 가는 게 야구 외적으로 노력해야 할 부분이었다.
―지난 번 WBC 대회를 앞두고 대표팀 은퇴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다. 당시 그 눈물의 의미에 대해 해석이 분분했다.
▲그건 괜히 ‘마지막’이라는 기분 때문에, 그리고 내가 야구를 그만둔다면 아마도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니까 나도 모르게 울컥 하는 기분이 들었다. 가끔 야구선수들이 은퇴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기분이 궁금했었다. 아쉬울지 슬플지 시원섭섭할지…, 떠난다는 마음이 들지 벗어난다는 생각이 들지….
―좀 전에 한국 프로팀에서 야구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냥 하는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태극마크를 달고 대표팀에서 뛸 때마다 한국 프로팀에서 선수생활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대학 때처럼 같은 한국 사람들끼리 동지애를 주고받으면서 경쟁도 하고 정을 나누는 생활이 그리웠기 때문이다. 지금 몸 상태가 점점 더 좋아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본다. 나를 필요로 하는 구단이 있다면 한국 프로야구에 도전해 보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 시기가 언제일지는 잘 모르겠다. 분명한 건 힘 떨어지고 던질 수 없는 몸 상태로 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욕심내진 않겠다는 사실이다.
(박찬호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데 필리스의 매니저가 다가와선 경기 전에 미디어가 라커룸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지났다고 귀띔을 하자, 이번엔 박찬호가 의자를 들고 라커룸 밖으로 나온다. 자긴 괜찮으니까 인터뷰를 계속 하자고 말하면서 말이다^^. )
―요즘 한국에선 추신수의 병역 문제가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국민들도 추신수한테는 어떤 혜택을 줘야 하는 게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외국에서 생활하다보면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애국심이 생긴다. 더욱이 메이저리그에서 한국 선수라는 타이틀을 달고 주전으로 뛰는 건 대단한 국위선양이다. 그런 부분들을 정부에서 알아야 한다. WBC에서 준우승을 했다면 해당 선수들한테는 병역혜택을 주는 게 당연하다. 아무리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들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대변인의 역할을 정부가 해야 한다. 선수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제도에 얽매여서 뒤로 가는 행정을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만약 메이저리그에서 성공 가능성이 아주 높은 선수가 야구 인생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다면 과연 우리가 그를 향해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참으로 서글프고 답답한 현실이다.
―필라델피아 필리스는 월드시리즈 챔피언팀인 데다 현재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1위를 달리고 있다. 올 시즌 또 한 차례의 우승을 점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야구하면서 동부 쪽에서 생활을 하고 싶은 바람이 있었다. 그런데다 필리스는 정말 잘나가는 팀이었고 선수들도 이때까지 있어 본 팀들 중 가장 착한 사람들만 모여 있는 것 같다(웃음). 여기 팬들은 마치 부산의 롯데 자이언츠 팬처럼 굉장히 열정적이다. 무엇보다 구단주의 마인드가 대단하다. 여기 구단주랑 전 LA 다저스 구단주이자 나의 ‘가드 파더’ 역할을 맡았던 피터 오말리 씨와 절친하다. 내가 이곳에 입단하자 구단주가 오말리 씨한테 편지를 받았다며 반가워하더라.
인터뷰 말미에 박찬호한테 은퇴 얘기를 꺼냈다. 야구할 수 있는 날이 많이 남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하루하루, 매 시즌은 그래서 더욱 소중한 것 같았다. 박찬호는 “실력이 안 돼서가 아니라 육체가 그만해야 된다고 말해 줄 때가 야구를 그만두는 날이 될 것”이라고 대답했다.
박찬호는 어떤 질문에도 흔쾌히 대응했다. 다소 까칠하고 불순한(?) 의도가 보이는 질문에도 진지하게 반응했다. 야구 선후배들보다 연예인들과 더 가깝게 지내는 것 같다거나 정치인과 재계 쪽에 인맥이 두텁고 발이 넓다고 알려져 혹시 야구 그만두고 정치할 생각이 있느냐고도 물었다. 연예인과의 인맥은 그들이 유명인이라 부각되는 것일 뿐 실제로 많은 연예인을 알고 있지는 못하다면서 요즘엔 직접 만나서 사인 받고 싶은 연예인이 많이 생겼다고 대답했다. 정치는 전혀 관심 밖의 사항이었다. 미국에서 야구한 선수가 무슨 정치를 하겠느냐는 게 박찬호의 ‘정답’이었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을 만나러 가는 미국 여정 중 가장 걱정했던 인터뷰가 가장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듯한 느낌이다. 한 꺼풀 벗고 다가온 박찬호한테선 ‘1박2일’에서 봤던 인간미 물씬한 ‘친절한 찬호씨’가 존재하고 있었다.
애리조나=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