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머리를 짧게 민 최향남은 한국 사람이 그리웠던 듯 기자 일행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홍순국 메이저리그 사진전문기자 | ||
피부병으로 고생 중
최향남은 요즘 이상한 피부병으로 심하게 고생 중이었다. 지난해 도미니카에서 생활할 때 벌레에 물린 곳이 몸 전체로 퍼져 지금은 손만 대면 온 몸이 간지러울 정도라고 한다. 앨버커키에서 이미 두 번이나 병원을 방문해 치료를 받았지만 상태가 나아지지 않는다고. 몸이 가렵다 못해 지금은 두통까지 심해져 고통스럽다고 토로했다.
“간지러움을 참는 게 여기서 생활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 같아요. 한 번 긁기 시작하면 전체로 퍼지니까 겁이 나서 손도 못 대요. 야구에만 집중해도 어려운 판에 몸까지 이러니까 미칠 지경입니다. 처음엔 동료 선수들이 절 피해 다녔어요. 여기저기 긁은 자국들 때문에 ‘왕따’ 아닌 ‘왕따’를 당했었죠. 지금은 그래도 많이 나아진 편이에요.”
LA 다저스의 트리플A팀인 앨버커키에서 생활하는 최향남은 요즘 동료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가 좋다고 한다. 이유는 선수들이 한국에 대해 굉장한 반응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선수들이 한국행에 대해 꿈을 갖고 있어요. 메이저리그에 대한 기약이 없다 보니까 대우 잘해주는 한국으로 가고 싶어 하더라고요. 어떤 투수는 공 잘 던지고 들어온 날 더그아웃에서 저한테 이렇게 말해요. ‘나 이정도면 한국에서 통할 것 같아?’하고요. 재밌는 게 이 팀에 중국, 일본 선수가 있거든요. 그들한테는 관심조차 두지 않아요. 오로지 나한테만 집중해서 관심을 보이는 거예요. 한국의 스카우트들한테 자기 얘기 좀 해달라면서. 인생 재밌죠. 누군 미국에 오고 싶어서 별 짓을 다했고, 누군 한국에 가고 싶어서 안달이고….”
3년 전 클리블랜드 트리플 A팀인 버팔로 바이슨스에 있을 때만 해도 마이너리그 선수들한테 한국은 ‘먼 나라’였다고 한다. “한국은 어떤 곳이냐? 혹시 사람들이 총 같은 거 갖고 다니냐?”는 질문을 했었는데 한국에서 야구를 경험한 선수들이 늘어나고 WBC대회와 올림픽 등으로 한국 야구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마이너리그에 한국 야구를 동경하는 선수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마이너리그 선수들은 교통수단을 제외하고는 모든 경비를 각자가 내야 해요. 밖에서 식사는 것은 물론 클럽하우스에서 식사하는 것부터 트윈 룸을 싱글로 쓰려면 돈을 따로 지불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한국에선 용병들에 대한 대우가 너무 좋잖아요. 집 구해주고 통역 붙여주고 식사도 챙겨주고…, 그걸 여기 선수들이 알게 된 거죠.”
앨버커키는 뉴멕시코 지역이라 교민들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그래서 최향남은 원정 경기 가는 게 오히려 더 즐겁다고 한다. 경기장까지 와서 응원해주는 교민들을 직접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텍사스주에 위치한 오스틴에원정 갔을 때 한국 선수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목사님을 만났어요. 4일 내내 한국 식당 데려가셔서 밥 사주시고 옷도 사주시고 심지어 용돈까지 주셨어요. 편지에다 기도까지 해주시면서. 그 목사님은 경기장에 플래카드를 들고 오셨어요. 제 사진에다 성조기와 태극기를 양쪽에 그려 넣었고요. 선수들이 ‘와 저게 뭐냐? 너 한국에서 스타냐?’라고 묻더라고요. 정말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얼마 전 LA 다저스의 라소다 전 감독이 앨버커키를 방문했었다. 트리플A에 있는 선수들을 직접 체크하고 경기하는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라소다 감독이 온 줄 전혀 모르고 있었던 최향남은 클럽하우스에서 우연히 그와 대면한 후 크게 놀랐다고 한다.
“라소다 감독이 처음에 저한테 뭐라고 한 줄 아세요? ‘곤니찌와’하면서 인사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전 한국인이라고 했더니 그냥 휙 하고 지나가더라고요. 전 (박)찬호 얘기라도 나올 줄 알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라소다 감독이 지켜보는 가운데 8회에 투입됐어요. 1이닝은 무실점으로 잘 막았는데 9회에 동점 상황에서 끝내기 안타 맞고 내려왔죠. 제 인생이 뭐 그렇죠. 매번 결정적일 때 잘 안 풀리잖아요. 감독이 오고 간 뒤 2명의 선수가 메이저리그로 올라갔어요.” 최향남은 그때 자신의 ‘현실’을 절감했다고 한다.
“여기까지 올 때만 해도 나만 잘하면 분명 기회가 있을 거라고 믿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자신감이 없어지네요. 제가 다른 선수들보다 실력이 월등한 건 사실이거든요. 투수 코치도 인정하는 부분이고요. 그런데 메이저리그에 올라가는 선수들을 보면 저보다 못한 선수들이 올라가요. 이유가 뭘까요? 나이가 가장 큰 걸림돌이에요. 제가 다른 선수들보다 실력이 세 배 이상은 뛰어나거나 엄청난 액수의 몸값을 받고 계약하거나…. 둘 다 불가능한 내용들이죠.”
하늘을 믿고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스스로 포기하지 않고 기다린다면 올해가 미국 야구의 마지막이 될지, 내년 스프링캠프를 기대할 수 있을지, 알게 될 것이라면서. 팀에서 내년에도 함께 뛰어 줄 것을 기대하고 있는 눈치인데, 그게 메이저리그가 될지, 마이너리그가 될지, 그 또한 알 수 없는 부분이다. “제 인생인데도 제가 잘 모르겠어요. 어떻게 풀릴지 전혀 모르겠어요.”
▲ 앨버커키 아이소톱스의 홈구장에서 기자와 만난 최향남. | ||
최향남은 자신의 야구 인생을 ‘아리송하다’고 표현했다. 계속 기회가 주어지긴 하는데 지름길보단 돌아서 가야 하는 길들의 연속이 심신을 지치게 할 때도 있다고 한다.
“세인트루이스와 메이저리그 계약을 맺을 때만 해도 서광이 비추는 듯했어요. 그러다 한 달 만에 잘렸지만^^. 스프링캠프였지만 메이저리그에서 무실점 호투를 펼치며 좋은 인상을 심어줬거든요. 그런데 잘린 거예요. 전 거기서 야구 인생이 끝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애리조나의 루키군에 합류하게 됐잖아요. 지난 번 세이트루이스 트리플A팀인 멤피스 레드버드스와 경기를 벌인 적이 있었어요. 그때 멤피스 감독이 절 찜해뒀다고 하더라고요. 진작 좀 그러지. 지금 세인트루이스에 있었다면 전 당장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섰을 거예요. 거긴 지금 투수가 너무 부족하거든요. 실력만 놓고 보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봐요. 그런데 지금 다저스는 선발, 중간, 마무리가 차고 넘쳐요. 제가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없을 정도로. 그래서 제 인생이 꼬이는 것 같기도 하고 풀리는 것 같기도 해요. 만약 끝내야 했다면 이전 세인트루이스에서 쫓겨났을 때 끝났을 텐데 허덕거리면서도 간신히 끈을 이어왔거든요.”
LA 다저스가 아닌 클리블랜드나 워싱턴, 샌디에이고 등 즉시전력감 투수들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팀에 최향남이 속해 있었다면 그의 인생도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특히 추신수가 뛰고 있는 클리블랜드는 최향남도 욕심을 낼 수밖에 없다. 2006년 트리플A팀에 있을 당시 굉장히 좋은 성적(8승5패, 방어율 2.37)을 냈었고 현재 클리블랜드 불펜진이 형편없이 무너진 상태라 최향남이 존재한다면 큰 자원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추)신수한테 전화 한 번 해볼까요(웃음)? 같이 뛰면 너무 좋겠죠. 관심도 많이 받게 될 것이고. 이 기자님, 제 야구 인생이 럭키한 인생으로 끝날까요? 아니면 이렇게 꼬이기만 한 인생으로 마무리될까요? 정말 답답해요.”
가끔 미국의 스카우트들을 만나면 최향남에게 “왜 이렇게 힘든 생활을 하느냐”고 물어본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안간힘을 쓰고 있는 최향남은 맥이 빠진다고.
“그래도 뭔가 희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도전하는 거잖아요. 아무런 기약이 없다면 이렇게 살 수 있겠어요? 만약 제가 메이저리그에 대한 꿈을 갖고 있지 않았다면 이미 야구를 포기했을지도 몰라요. 한국에서도 방출당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잖아요. 그 꿈과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야구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전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후회스럽지 않아요. 메이저리그에 도전한 지 7년째이거든요. 한두 달 안에 승부를 내야 하지 않겠어요?”
최향남을 보고 있으면 ‘고군분투’라는 말이 절로 떠올려진다.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들이 즐비한 가운데서도 ‘목표’를 향해 모든 걸 극복해 나가는 부분들이 그를 대단한 사람이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게 한다. 최향남은 7일 현재 6승1패에 방어율 1.83. 39.1이닝을 던져 삼진을 무려 54개나 낚아낼 만큼 알찬 투구 내용을 보여준다. 최근 나선 세 번의 경기에선 모두 승리를 거머뉘었다. 지난 10경기의 성적이 4승1패에 평균자책점 1.61이다. 최향남이 앨버커키에서 자기보다 잘하는 선수는 없다고 자신할 만한 부분이다.
앨버커키에서 만난 최향남은 기약 없는 도전자가 아닌 꿈을 좇아 자신의 모든 인생을 건 ‘투사’였다.
앨버커키=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