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일 오전(한국시간) 독일 베를린 올림피아 슈타디온에서 열린 2009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여자 800m 결승에서 성별 의혹 속에 1분55초45의 기록으로 우승한 캐스터 세메냐(남아공)가 코너를 돌아 결승선을 향하고 있다.연합뉴스 | ||
만일 세메냐의 성별에 정말 이상이 있다고 가정할 경우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경우를 의심해 볼 수 있다.
먼저 선천적인 유전자 결함으로 인해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남성 염색체, 즉 XY 염색체를 갖고 태어나는 ‘안드로겐불감증후군(Androgen Insensitivity Syndrome)’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신체가 체내에서 생성되는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에 반응하지 않기 때문에 남성 염색체를 갖고 태어나도 평생 여자로 살게 된다. 외모 또한 완벽한 여자이기 때문에 육안으로 보면 일반 여성과 다를 바 없다. 단 여성 생식기인 자궁이 없어 임신은 할 수 없으며 생리도 하지 않는다.
실제 여자 선수들 중 AIS 질환을 앓는 선수들이 더러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도 익명의 한 여자 테니스 선수가 성별 논란에 휩싸여 출전을 저지당한 사례가 있었다. 훗날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그녀 역시 AIS를 앓고 있었다.
같은 이유로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는 2406명의 여자 선수들 가운데 다섯 명이 성별 검사 결과 ‘남성’이라는 판정을 받았는가 하면,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는 3387명의 여자 선수들 중 8명가량이 AIS라는 의심을 받았다.
가까운 예로는 지난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땄던 인도의 산티 순다라얀이 있다. 여자 800m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던 그녀는 대회 전부터 끊임없이 남자라는 의혹에 시달려왔다. 결국 그녀는 대회 후 실시된 성별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고 은메달도 반납해야 했다. 그 후 절망감에 빠진 그녀는 2007년 자살을 기도했다가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으며 현재 고향인 인도에서 후진을 양성하는 지도자로 활약하고 있다.
스페인의 허들 선수였던 마리아 파티노도 AIS 때문에 선수 인생을 접어야 했다. 특히 세계대회에 출전하기 전까지는 본인이 남성 염색체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테스트 결과는 그녀에게도 충격이었다. 1985년 고베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에 출전했던 그녀는 성별 테스트 결과 남성이라는 판정을 받고 대회조직위로부터 출전을 포기하라는 압력을 받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60m 허들 경기에 출전해서 우승을 했다.
▲ 인도중거리-산티 순다라얀[염색체상 남자], 폴란드 단거리-스텔라 월쉬[양성인] | ||
이와 달리 한 몸에 여성 염색체인 XX와 남성 염색체인 XY를 모두 갖고 있거나 혹은 XXY와 같은 염색체 변형으로 여성과 남성 생식기 둘 모두를 갖고 태어나는 양성자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의 경우 여자라고 할 수도, 그렇다고 남자라 할 수도 없기 때문에 성별 자체를 감정하는 것이 모호하다.
이와 관련해서 가장 충격적인 일화를 남겼던 선수는 1930~40년대 최고의 단거리 육상선수로 이름을 날렸던 스텔라 월쉬였다. 폴란드 출신으로 훗날 미국으로 망명했던 그녀는 1932년 LA 올림픽과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각각 금메달과 은메달을 땄으며, 18개의 세계기록과 8개의 유럽기록을 보유하고 있던 단거리 여왕이었다.
은퇴 후에도 결혼해서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살았던 그녀가 양성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그녀가 죽은 뒤였다. 1980년 클리블랜드의 한 쇼핑센터에서 발생한 총격사건 현장에 있다가 총에 맞아 숨졌던 그녀의 시신을 부검한 결과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던 것이다. 당시 그녀의 몸에서는 여성과 남성 생식기가 모두 발견되었으며, XX와 XY 염색체도 각각 한 쌍씩 보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브라질의 유도 선수인 에디난치 실바는 얼굴만 봐서는 남자라고 해도 속을 정도로 남성미가 물씬 풍기는 여자다. 그녀 역시 여성과 남성 생식기를 모두 갖고 태어났던 양성인이었다. 하지만 90년대 중반 고환 제거 수술을 받아 완전한 여성으로 다시 태어났으며, 그 후 1998년, 2000년 올림픽을 비롯한 세계대회에 여자 선수로 출전했다. 당시 성별 테스트는 모두 통과했지만 익명의 제보자에 의해 수술 사실이 들통이 나서 구설에 올랐다.
60년대 활동했던 폴란드의 육상선수 에바 클루부코브스카는 올림픽 사상 최초로 성별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선수로 기록되었다. 1964년 도쿄 올림픽 400m 계주 금메달, 100m 동메달에 이어 1966년 부다페스트 유럽선수권대회에서도 각각 금메달과 은메달을 땄지만 1967년 키예프 유럽선수권대회에서는 성별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 그 전까지는 여의사들 앞에서 벌거벗고 중요 신체 부위를 보이는 것이 테스트의 전부였기 때문에 그녀처럼 변형 유전자를 가진 경우에도 무사히 성별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었다. 하지만 1967년부터 도입된 정교한 유전자 검사는 달랐다.
당시 정확히 그녀가 어떤 염색체 변형을 가졌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XXY 염색체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런 경우 외모 상으로는 완벽하게 여자이기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여자라고 굳게 믿고 자랐던 그녀에게 검사 결과는 충격이었다. 그 후 은퇴했던 그녀는 보란 듯이 아들을 낳고 평생 여자로 살았다.
▲ 동독 투포환-하이디 크리거[스테로이드], 독일 높이뛰기-도라 라트옌[실제 남자] | ||
1986년 유럽여자투포환에서 우승했던 동독의 하이디 크리거는 성전환수술을 받은 후 안드레아스로 개명하고 남자로 살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스테로이드제를 과도하게 복용했던 그는 남자와 다를 바 없는 외모 때문에 혼란을 겪어야 했다. 은퇴하고 난 후에 주위로부터 “도대체 남자냐, 여자냐?”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받자 한때 대인 기피증까지 생겼다는 그는 “나는 동성애자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더 끌렸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이런 혼란을 참지 못하고 1997년 성전환 수술을 받았으며, 현재 동독 여자수영선수였던 우테 크라우제와 결혼해서 남자로 살고 있다.
1999년 유럽선수권대회 3위 및 2000년 시드니 올림픽 6위였던 독일의 장대높이뛰기선수인 이본느 부쉬바움 역시 여자의 몸으로 사는 것에 지쳐서 스스로 성전환수술을 했다. 2007년 은퇴와 동시에 성전환수술을 할 것이라고 발표했던 그는 “남자인데 여자의 몸속에 갇혀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라고 이유를 밝혔다. 스테로이드제 복용 탓이라는 주위의 의혹에도 그는 자신은 절대 약물을 복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며, 현재 발리안으로 개명하고 남자로 살고 있다.
이와 달리 완전한 남자인데도 불구하고 여자선수로 출전한 황당한 경우도 있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높이뛰기 선수로 출전했던 독일의 도라 라트옌은 이상하게 다른 여자 선수들과 함께 샤워하는 것을 꺼려했으며, 목소리도 굵고 낮아서 종종 남자로 오인을 받았다.
1938년 유럽선수권대회에서 세계기록을 수립하면서 우승할 때만 해도 설마 그녀가 남자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대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역에서 치마를 입고 있던 그녀의 콧잔등에 거무스름하게 난 수염을 보고 수상하게 여긴 몇몇 사람들이 대회조직위 측에 성별검사를 요청했다. 검사 결과는 완벽한 남자였다.
그 후 모든 대회에서 출전을 금지 당했던 그는 1957년 자신이 남자였다는 사실을 공개 시인했다. 본명이 헤르만이었던 그는 “독일의 영광과 명예를 위해서 여자 행세를 하라는 나치의 명령에 따라 여자로 속이고 출전했다”고 말하면서 “3년 동안 여자로 살아야 했다. 나 역시 고통스러웠다”고 털어 놓았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