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지성과 김남일이 미니게임을 하며 공을 다투고 있다. 연합뉴스 | ||
#협회와 연맹의 진실게임
발단은 A매치 일정이었다. 지난달 대한축구협회(협회)가 9월 5일(호주전)과 10월 10일(세네갈전) A매치를 치른다고 결정하자 한국프로축구연맹(연맹)은 긴급 이사회를 열고 “K리그 일정을 무시한 협회의 A매치 추진을 받아들일 수 없다. 호주전과 세네갈전 일정을 변경하지 않는다면 대표 선수 차출을 거부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준하 연맹 사무총장은 “K리그가 연초에 협회와의 협의를 거쳐 9월 6일과 10월 11일에 K리그를 진행하도록 일정을 짜놓았는데, 협회가 일방적으로 이를 무시하고 평가전을 잡아 혼란을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협회는 “9월에는 5일(토)과 9일(수), 10월에는 10일(토)과 14일(수)이 국제축구연맹(FIFA) 지정 A매치 데이다. 이 기간에 리그 스케줄을 짜 놓은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맞섰다.
이에 연맹은 다시 “한국이 월드컵 본선 무대에 진출할 경우 9월과 10월에 있는 A매치 데이 중 K리그가 주말을 활용하고 대표팀은 주중을 활용하기로 연맹과 협회가 구두 합의한 바 있다”고 주장했고 협회는 “반박 자료가 있다”고 물러서지 않았다. 상황은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나’를 찾아내는 진실게임으로 흘러가는 듯했다.
마주보고 달리는 기차처럼 일촉즉발로 맞서던 양측은 협회가 세네갈전을 주중인 14일로 변경하면서 화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연맹도 “협회의 전향적 자세를 높이 평가한다”고 밝혀 연맹과 협회의 갈등은 해프닝으로 끝나는 듯 했다.
하지만 연맹이 호주전을 앞둔 대표선수 차출에 협조하지 않으면서 양측의 갈등은 2라운드로 접어들었다. K리그 일정이 있는 부산·포항 선수들을 제외한 나머지 K리그 출신 대표선수들을 1일 소집할 수 있게 해달라는 허정무 감독의 부탁을 연맹이 “대표선수 차출 규정에 맞춰 경기 48시간 전인 3일에 대표 소집에 응하겠다”며 사실상 거절하면서 양측의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여기에 해외파인 박지성과 이영표가 대표팀에 합류하며 연맹의 비협조를 비난하는 강경 발언을 하면서 협회와 연맹은 완전히 등을 돌리고 말았다.
▲ 지난 1일 파주NFC에서 해외파 선수들만 참가한 축구대표팀 훈련에서 허정무 감독이 허탈해 하며 공을 만지고 있다. 연합뉴스 | ||
협회와 연맹이 갈등을 벌이는 진짜 이유는 한국 축구의 헤게모니를 잡기 위한 파워게임이라는 분석도 있다. 한국 축구의 두 기둥이라 할 수 있는 협회와 연맹이지만 사실상 두 단체는 그동안 형님(협회)과 아우(연맹) 관계로 지내왔다.
당연히 연맹은 협회에 섭섭한 감정을 갖고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K리그 운영의 어쩔 수 없는 양보다. 연맹은 안 월드컵 우선주의 정책에 밀려 월드컵이 열리거나 한 해 앞둔 해에는 파행적인 리그 운영을 참아내야 했다. 최근에는 법인화 시도에 협회가 딴지를 걸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결국 참다 못한 연맹이 A매치 일정 문제를 화두로 형님인 협회를 향해 반란의 기치를 내걸었다는 얘기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미래
대표팀은 11월 유럽 전지훈련을 앞두고 있다. 내년 초에는 월드컵 개최국인 남아공을 포함해 장기 해외 전지훈련을 계획 중이다. 하지만 이 모든 계획은 협회와 연맹의 대타협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현재 상황으로는 협회와 연맹의 대타협은 요원해보인다. 한 건물을 사용하고 있음에도 양측은 얼굴만 붉힌 채 아직까지 대화 채널을 열지 않고 있다. 오히려 불신의 골만 깊어지고 있는 분위기다.
연맹은 박지성과 이영표의 강경 발언이 협회와 관계가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여론몰이를 위해 협회가 한국 축구의 간판 스타를 이용했다는 음모론을 제기하고 있다.
협회도 연맹에 이래저래 아쉬운 점이 많다. 특히 호주전을 대비한 대표팀 선발을 놓고 연맹 관계자가 허정무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해외파를 많이 뽑아 달라’고 얘기한 것은 도를 넘은 행동이라고 보고 있다. 대표 선수 선발은 감독의 고유 권한. 사실이 확인된다면 연맹이 공식 사과문을 발표해야 할만큼 민감한 사안이다.
#대화가 필요해
수습이 어려울 만큼 사태가 커졌지만 사실 협회와 연맹의 마찰 지점을 돌아보면 헛웃음만 나온다. 양측이 처음 대립한 A매치와 K리그 일정 문제는 내부적인 대화를 통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언론을 통해 공론화 할 문제가 결코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감정 싸움에 휘말린 탓에 양측은 ‘누구 잘못이 더 크냐’는 소모적인 논쟁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번 협회와 연맹의 논란이 잘잘못을 가리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은 옳지 않다. 어느 한 쪽의 승리로 마무리 될 사안이 아니다. 또 뒤끝을 남긴 채 서둘러 봉합하는 모양새도 좋지 않다. 언젠가 다시 터질 시한폭탄의 타이머를 뒤로 미룬 것과 같기 때문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솔직한 대화를 통한 협상이다. 서로 머리를 맞대고 앉아 한국 축구의 미래를 향한 논의로 말머리를 틀어야 한다. ‘얼차려를 받아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는 얘기처럼 2010년 남아공월드컵은 물론 2014년 브라질월드컵도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 또 K리그는 2010년에도 2011년에도 계속된다.
연맹은 협회에 원하는 바를 솔직히 밝히고 협회도 기득권을 놓치지 않겠다는 입장에서 벗어나 양보할 건 양보해야 한다. 물론 전제 조건은 한국 축구의 상생과 발전이다.
김종력 스포츠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