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계 관련 인사 및 바둑 담당 기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아마 7단의 강자로 바둑계에 이름이 널리 알려진 SBS 신병식 해설위원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공청회에서는 김영순 인하대 교수, 최일호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송석록 경동대 교수 등이 주제를 발표했고, 김진환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와 바둑 담당 기자단 간사인 <스포츠칸>의 엄민용 기자가 토론자로 나섰다.
첫 번째 발제자 김연순 교수는 ‘문화콘텐츠로서의 바둑의 가치’라는 제목으로 “바둑은 국가 브랜드를 높일 수 있는 훌륭한 문화상품이니 바둑의 콘텐츠를 개발, 문화산업으로 육성하는 한편 세계 각국에 한국적 바둑 사이트를 구축하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이어 등단한 최일호 교수는 “한국 바둑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바둑 교육과 제도의 표준화, 인터넷 기반의 통합화, 국제협력의 주도화 전략 수립 등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송석록 교수는 “바둑이 이제 스포츠로 공인을 받았으므로 바둑의 보급과 세계화에도 발상의 전환을 통해 스포츠적 마인드로써 국내외 스포츠 마케팅의 기법을 도입하고 실천하는 방안을 연구·검토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주제 발표가 끝난 후 토론에 나선 김진환 교수는 “바둑의 종주국화-세계화 사업에는 정부의 지원이 절실함”을 강조했고, 엄민용 기자는 “‘종주국’이라는 용어 사용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전제한 후 “지금은 한·중·일이 바둑의 세계 보급에 역점을 두어 공동보조를 취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어떻게 우리가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느냐를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 바둑 종주국화 사업’은 대한바둑협회가 이미 2년 전부터 시작해 정부의 지원금도 받고 있는 프로젝트인데, ‘종주국’ 혹은 ‘종주국화’라는 용어 사용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지적은 맞다.
바둑의 발상지는 중국이라는 게 오랜 통설이었기는 하지만, 지금은 그게 많이 흔들리고 있다. 중국도 한국도 아닌 ‘고대 동북아 지역’이라고 하는 것이 무난하다는 설이 공감대를 이루어가고 있는 것.
나아가 고대 동북아가 아니고 인도 북쪽, 네팔 인근이라는 설도 꽤 오래 전부터 일정 부분 설득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용어를 좀 바꾸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가 세계에 천하무적을 자랑하는 것으로 ‘양궁’이 있다. 이에 대해 “우리를 옛날에 동이족(東夷族)이라 했는데, 이(夷)는 큰(大) 활(弓)이다. 우리 민족이 옛날부터 활을 잘 쏘았다는 증거이고, 우리 DNA 속에 활을 잘 쏘는 인자가 각인되어 있어 그런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사실은 우리가 바둑도 종주국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우리가 현대 바둑 불과 반세기 만에 400년 역사의 일본, 15억 인구의 중국을 제치고 세계 최강을 구가하는 것은 우리 DNA 속에는 활뿐 아니라 바둑도 각인되어 있어서 그런 것이라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러나 그건 아니다. 한·중·일의 공동보조는 바람직한 일이다. ‘우리가 종주국’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공동보조에 걸림돌이 된다.
공청회 같은 게 자주 열리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기왕이면 이제는 각론도 좀 나왔으면 한다. 바둑이 문화 콘텐츠, 문화 상품으로서 가치가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요는 바둑의 무엇을 어떻게 문화상품으로 만들 것이냐다. 바둑의 표준화 작업이나 정부 지원 등이 필요하다는 것도 다 아는 얘기다. 요는 어떻게 표준화를 할 것이며 어떻게 지원을 받아낼 것이냐다.
2003년 무렵 프로기사 유건재 7단이 한국기원 사무총장으로 재직할 때 국회에서 ‘바둑문화진흥법’을 만들도록 하자고 제창한 적이 있었다. 그런 게 하나의 좋은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 법이 만들어지면 구체적, 체계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근거와 기준도 생길 것이므로. 바둑문화사업은 어느 개인이 독자적으로 혹은 한국기원이나 대한바둑협회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핵심은 정부나 대기업의 지원이다. 그걸 법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리고 제도권 밖에서는 한국 바둑 세계화를 위해, 위에서 거론된 문화콘텐츠, 표준화, 인터넷 기반, 스포츠 마케팅 등을 연구하며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끌어들여 공청회 같은 데에도 참석을 시켜야 한다. 총론만 되풀이하고 있기에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이광구 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