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기사내용과 관계 없음.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말씀하신 건은 맡을 수 없습니다. 불가능합니다.” 미국의 한 한인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의 말이다. 유학을 목적으로 미국에 사는 친척 집에 입양시키고 싶다고 문의하자, 단호하게 ‘불가’ 입장을 밝혔다. 그는 “입양도 이민법의 한 분야라 업무를 본다. 다만 가정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형편이 어려운 것도 아니라면 입양법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며 “유학이 목적이라면 정석대로 하라”고 조언했다.
미국 대도시 한인 변호사 사무실에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위장입양 업무에 대해 문의했다. 총 20여 곳 중 거절하는 곳은 안타깝게도 앞서의 사무장이 근무하는 변호사 사무실이 유일했다. 대부분 말이 끝나기도 전 “필요한 서류를 보내주겠다”거나 친절하게 입양 절차와 비용에 대해 설명했다.
앞서의 사무장에게 기자임을 밝히고 위장입양 실태를 묻었다. 그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사무장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부터 위장입양을 문의하는 학부모들의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2000년대 초반 조기유학 열풍이 불 때는 하루 40~50통의 상담 전화 가운데 평균 5건은 입양 관련 전화였다고 했다. 몇 년 주춤하다 최근 다시 그만큼 문의가 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특히 LA 지역 한인 변호사들의 경우 문의가 워낙 많아 어쩔 수 없이 일을 맡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입양은 인도적인 제도라서 미국 법원에서 그다지 팍팍하게 굴지 않는다. 그 점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입양이란 친부모가 없거나 혹은 친부모가 양육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인 어린이가 안락한 가정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마련된 인도적 제도다. 미국은 고아가 아니어도 친부모가 키우기 어려운 형편이라면 만 16세 미만의 어린이에 한해 입양을 허가하고 있다. 결국 위장입양은 제도를 악용한 ‘편법’이다.
미국의 한인 변호사 사무실과 유학원 관계자들에 따르면 일부 부모들이 ‘위장입양’을 문의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미국 영주권과 시민권을 취득해 학업 비용을 줄이려는 것이 첫 번째, 취업비자 없이 미국에 취직할 수 있는 ‘좋은 장래’를 보장받으려는 것이 두 번째다. 국내의 한 유학원 관계자는 “입양을 위해 친권포기각서를 쓰고 호적에서 자녀를 정리해야 하는데도 미국에 연고가 있는 가정을 중심으로 위장입양이 음성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학부모 A 씨는 위장입양에 대해 “확실하고 안전한 유학 방법”이라고 말했다. A 씨는 3년 전, 미국 동부지역에 사는 처제에게 초등학교 4학년 딸을 입양시켰다. 그는 “당시 딸이 다니는 학교의 한 학부모가 위장입양에 성공했다. 공짜로 공립학교에 다닐 수 있다는 말에 미국에 사는 처제가 떠올랐다”고 말했다.
A 씨는 생각보다 간단한 절차에 놀랐다고 말했다. 먼저 딸과 아내가 관광비자로 미국에 들어갔고, 현지에서 한인 변호사를 선임했다. 입양 사유를 밝혀야 했지만, 변호사가 써준 영문 서류에 사인만 하면 됐다고 한다. 그는 “자세히는 모르지만 ‘친부모는 경제적 능력도 없고 아이를 키울 만한 정신상태도 아니다’고 쓰여 있었던 것 같다”고 귀띔했다. 그는 “큰돈이 필요할 줄 알았지만 생각보다는 적었다. 입양재판 변호사 수임료 2000달러(약 230만 원)에, 양부모 가정 방문 조사, 이민국 심사비, 신체검사 비용 등 5000달러(약 590만 원) 정도가 들어갔다”고 말했다.
미국 시카고에서 활동하는 한 한인 변호사도 위장입양이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A 씨의 증언과 마찬가지로 미국에 ‘위장입양’을 오는 아이는 주로 방문비자나 전자여행허가(ESTA)를 통한 무비자로 온다고 전했다. 이후 양부모 가정에서 2년 동안 지내면서 입양 절차를 밟게 된다고 했다. 동시에 양부모는 친부모가 작성한 친권포기 서류를 포함해 입양신청서를 거주지 법원에 제출한다.
앞서의 변호사는 “미국 가정법원은 입양 심사 과정에서 사유보다는 양부모가 아이를 키울 여건이 되는지에 비중을 더 크게 둔다. 신청이 접수되면 가정방문조사가 진행되는데, 양부모와 아이를 면담하는 과정에서도 양부모의 범죄 전력 등 가정 내 위험요소는 없는지, 거주할 만한 방은 마련돼 있는지, 가족 구성원은 어떤지 등을 조사한다. 사유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후 법원에서 서류상의 진술이 모두 사실이라는 점을 구두 진술하고, 간단한 질문에 답하면 입양이 승인된다. 이 과정을 거쳐 2년 동안 아이가 정상적으로 입양생활을 하면 미국 영주권 및 시민권을 신청할 자격을 부여 받는다.
이렇게 얻는 미국 영주권과 시민권이 위장입양의 가장 큰 목적 중 하나다. 자격이 부여되면 일반 유학과 비교해 경제적 이점이 뚜렷이 드러난다. 미국 영주권을 취득하면 외국인 입학이 허용되지 않는 공립학교에 무료로 다닐 수 있다. 거주지 인근에 위치한 주립대학 등록금도 저렴해진다. 외국인 신분으로 취업을 하는 것보다 ‘선택의 폭’이 훨씬 넓어지며, 이후 정착하는데도 큰 문제가 없다는 점도 위장입양 목적 중 하나다.
유학원 관계자들에 따르면 일반 유학의 경우 보통 연간 3만~4만 3000달러(약 3500만~5000만 원)가량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된다. 사립학교 수업료, 기숙사비, 자녀 용돈은 기본이고, 부모 대신 아이의 대소사며 교사와의 상담, 학교행사 참가, 병원 동행, 비자 연기 신청 등을 현지에서 챙겨줄 보호자 비용도 필요하다. 여기에 부모 가운데 한 사람이 자녀와 함께 미국에서 머문다면 비용은 배가될 수밖에 없다. 한 유학원 관계자는 “미국 시민으로서 공립학교를 다니고 주립대학에 입학하면 일반 유학비용과 비교해 최대 3분의 1 수준으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시카고에 사는 동생에게 중학생 아들을 입양시킨 B 씨도 “공립학교에 다니는 아들에게 매달 급식비 70∼80달러와 약간의 용돈을 부치고 있다. 이 정도면 한국에서 서너 개의 학원을 다니는 것보다 훨씬 저렴한 데다, 영어실력도 자연스레 갖추게 됐다”며 “아이도 스스로 가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고, 종종 동생 집에 가서 아이와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성(姓)이 바뀐 것만 빼면 특별히 달라진 것도 없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위장입양’의 부작용은 치명적이다. 13년 전, 고모에게 위장입양을 갔다가 5년 만에 파양을 하고 한국에 다시 돌아온 경험이 있는 C 씨(26)는 “돌이켜보면 자아가 형성되는 청소년 시기에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많이 느꼈다”고 말했다. 자신의 부모가 누구인지, 한국인인지, 미국인인지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는 것이다. 운동을 좋아하고 활동적이었던 C 씨의 성격은 청소년기에 겪은 혼란으로 소극적이고 내성적으로 변했다고 했다.
양부모와의 갈등도 컸다고 한다. C 씨는 “아무리 가족이라고 해도 불편한 게 있다. 친부모와 갈등이 생겼을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학교에 적응하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고 말했다. 여기에 친부모와 고모의 갈등도 깊어졌다고 했다. C 씨가 전화로 고모와의 갈등이나 외로움 등에 대해 토로하면, 친부모는 다시 고모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다그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결국 C 씨는 영주권과 시민권 모두 포기했으며, 최근 군 입대를 앞두고 있다.
미국인 선교사와 결혼한 이모에게 입양 된 D 군(18)은 여전히 적응하기 힘든 문화 차이에 고민이 많다고 토로했다. 그는 “한국서 가출도하고 술을 마시는 등 나쁜 행동을 많이 했다. 이러다 아무것도 안될 것 같다는 생각에 고생하더라도 미국에 오고 싶다고 생각했다”며 “3년이 지났지만 이모 가족과의 생활은 여전히 쉽지 않다. 미국인 동생, 이모부와는 자라온 환경과 문화가 달라 대화도 잘 통하지 않는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많지만 잘못되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순종하면서 살고 있다. 요즘엔 샤워하면서 몰래 많이 운다”고 말했다.
가족과의 갈등뿐만 아니라, 입양 후 영주권, 시민권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아이의 입양이 유학 등 편법 입양임이 드러났을 때다. 시카고에서 활동하는 앞서의 한인 변호사는 “미국 이민국에서는 입양아의 영주권을 심사할 때 입양생활에 대해 꼼꼼히 검토한다. 친부모가 금전적 지원을 하거나, 아이의 거주지 인근에서 살거나, 아이와 함께 살아온 것이 들통나면 허위 입양으로 여겨 영주권 신청을 거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여기에 해외 다른 나라에서 입양을 통해 가족 전체가 이민 오려는 입양 사기가 크게 늘고, 한국인의 위장입양이 미국 현지 언론에 적나라하게 보도되는 등 논란이 불거지면서 미국 정부가 까다로운 심사를 하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영주권을 못 받으면 불법체류자가 된다. 불법체류자가 되면 미국 시민권자와 결혼하는 방법 외엔 영주권을 취득할 길이 없다. 앞서의 변호사는 “합법적으로 결혼을 하면 문제가 다소 해결되지만, 불법체류자로 남아 살거나 위장결혼 등 또 다른 서류 조작을 시도하는 경우도 있었다. 결국 위장입양과 비슷한 행태가 반복된다”고 말했다. 이러한 부작용이 생겨도 친권을 잃은 친부모는 법적으로 아이를 도울 방법은 전혀 없다.
브로커가 낀 ‘대가성 위장입양’도 경계 대상이다. 입양절차와 양부모를 찾는 광고비, 양부모가 괜찮은 사람인지 신원 조회하는 비용 등 총 경비를 계산해 광고하는 일부 유학원과 업체들도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들은 친부모가 친권포기각서만 써주면 현지 변호사와 협력해 모든 서류 작성과 절차를 진행한다. 또 다른 한인 변호사는 “이러한 업체들은 보통 미국 은퇴 부부를 대상으로 광고를 한다. 신원 조회를 해서 괜찮다고 안심시키지만 이렇게 찾은 부모에게 아이에 대한 책임감을 기대할 수 있겠나”라며 반문했다.
위장입양 실태에 대한 공식 통계는 아직 없다. 입양 과정에서 유학 목적으로 입양시킨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숨길 뿐 아니라, 입양 허가를 받아도 그 사실을 한국에 통보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심사가 진행되기 때문에 국내법으로 다루기도 쉽지 않다.
앞서의 변호사는 “유학을 목적으로 한 입양은 입양법의 본래 취지에서 벗어난다. 또 양부모가 입양아를 양육할 권리와 책임을 동시에 지게 되는데, 위장입양의 경우 친부모가 양육비용을 거의 전적으로 부담하므로 양부모가 입양에 따른 책임을 다하지 않을 수 있다”며 “입양 전후로 자녀들은 친부모를 앞에 두고 부모라 부를 수 없으며, 부모가 아니라고 거짓말을 해야 한다. 학업과 장래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일들이 정말 자녀를 위한 일인지에 대해 깊게 고민하고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