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성흔 | ||
지난 6일, 부산 해운대 달맞이고개의 한 일식집에서 만난 홍성흔은 소주보다는 부드러운 사케가 더 입에 맞는다며 사케를 주문했다. ‘취중토크’라는 타이틀 때문인지 단단히 각오를 하고 나온 그와 사케를 마시며 취중진담 속으로 들어갔다.
―정말 시즌 끝나고 술 한 잔 안 마셨나? 선수들이랑 ‘홧김에라도’ 술을 마셨을 것 같은데.
▲진짜 안 마셨어요. 술 마실 분위기가 아니잖아요. 그런 기분으로 술을 마시면 열 받을 것 같아서 먹지 못하겠더라고요. 텐트 쳐 가며, 새벽이슬 맞으면서, 어렵게 표를 구해 들어오신 롯데 팬들에게 정말 미안했습니다.
―많이 허전해 하는 모습이다. 아직도 그 기운이 가시지 않아 보인다.
▲뭐 한 것도 없이 시즌이 끝난 느낌이에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화장실에서 일 보고 제대로 닦지 않은 기분…. 되게 많이 허전해요. 어쩌면 4강까지 올라간 것도 기적이었죠. 팬들도 포기했고 좌절했는데 기적적으로 4위에 올랐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제대로 ‘삽질’을 했어요. 참, 할 말이 없어요.
―두산에서 뛰다가 롯데 유니폼을 입고 두산을 포스트시즌에서 상대한 소감은?
▲이거 ‘취중토크’죠? 솔직히 말할 게요. 준플레이오프 때뿐만 아니라 시즌 내내 두산이 정말 강팀이란 생각을 했어요. 제가 두산에 있을 땐 잘 몰랐는데 막상 상대팀이 되어 보니까 아주 센 팀이더라고요.
―4차전 끝나고 김경문 감독을 찾아가 인사를 했다. 무슨 말을 주고 받았나.
▲‘감독님, 수고하셨습니다. 두산 정말 세네요. 올해 꼭 우승하십시오’라고 말씀 드렸죠. 그랬더니 ‘니네 팀이나 우리 팀이나 허점이 너무 많다. 고생했다’라고 하시더라고요. 대단한 분이세요. 두산에 있을 땐 잠시 감독님을 오해한 적도 있었는데 나와서 보니까 당신은 얼마나 힘드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반면에 4차전 이후 로이스터 감독이 두산 더그아웃을 찾아가 선수와 코치를 껴안고 인사를 나눈 행동에 대해선 비난이 들끓었다. 관중들에게 한복을 입고 인사를 한 부분에 대해서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정서의 차이예요. 로이스터 감독은 포스트시즌을 축제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선수들한테 결과를 두려워하지 말고, 졌어도 인상 쓰지 말고 웃으라고 강조하셨어요. 그분도 사람인데 왜 화가 안 나겠어요. 시합 때 얼마나 욕을 많이 하시는데요. 하도 ‘퍽’ 자 들어가는 욕을 많이 하셔서 선수들이랑 몇 번을 하는지 세어보자고 내기 한 적도 있어요(웃음). 한복 인사요? 그분은 입고 싶어서 입었겠어요? 구단에서 한복을 준비했고 이기면 입겠다고 약속했는데, 경기에선 졌어도 추석 때 경기장을 찾은 팬들을 위해서 서비스를 하는 게 도리라고 믿었을 거예요. 조금 과해서 아쉬운 부분은 있고 팬들도 받아들이기 힘든 행동도 있었지만 그분의 정서라고 이해해주실 순 없을까요?
“아줌마, 여기 사케 한 병 더 주세요!”
―이번엔 평소 홍성흔에 대해 팬들이 궁금해 하는 질문들을 해보겠다. 먼저, 타석에 섰을 때 자리를 잡으면서 자꾸 1루 코치를 쳐다보는 일이 잦다. 이런 행동을 두고 타 팀에선 1루 코치를 통해 포수와 투수가 주고 받는 사인을 전달 받는다고 의심할 수도 있다.
▲그거 정말 잘 물어보셨어요. 언젠가 SK랑 게임할 때 정상호가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성흔이 형은 왜 자꾸 1루 코치를 쳐다보시는 거예요?’라고. ‘코치를 보는 거 아니니까 네 것만 신경 써’라고 대답했지만 은근히 기분이 나빴어요. 그런데 나중에 모니터를 해보니까 오해할 만도 하더라고요. 코치를 보고 바로 투수를 보니까요. 사실 왼쪽 어깨가 열릴까봐 1루 베이스쪽으로 각을 맞추거든요. 그런 행동이 마치 코치를 보는 듯하겠죠. 공필성 코치님께서 미치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조금만 움직여도 사인을 보내는 걸로 오해할 수 있다면서 말이죠. 와, 말 하다보니까 자꾸 술이 당기네.
▲ 지난해에 이어 타격왕 자리를 안타깝게 내준 홍성흔. 2인자의 자리를 즐길 줄 아는 그에게 ‘포기’란 없다. 취중토크 시작에 앞서 남긴 ‘부산 인증샷’.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
▲전 저보다 (박)용택이가 1년 내내 잘해놓고 막판에 욕 먹는 게 마음 아팠어요. 만약에 용택이랑 정면 승부를 펼쳤어도 제가 졌을 거예요. 진심으로 하는 말이에요. 잠실 두산전(9월 20일)에서 제가 친 타구에 왼쪽 복숭아뼈를 맞고 밸런스가 왕창 무너졌거든요. 그런데 용택이는 정말 잘 쳤어요. 언론에서 자꾸 마치 진정한 1등은 홍성흔이라고 부각시키니까 너무 미안해지는 거예요. 진정한 타격왕은 박용택입니다. 용택이는 실력으로 먹은 거예요.
(홍성흔은 앞으로 은퇴 전까지 타격2위만 하겠다며 웃음을 터트렸다. ‘야구계의 박명수’로 2인자 생활을 즐기겠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하늘의 뜻이 작년엔 김현수였고, 올해는 박용택이었다며 마음을 털어내려 애썼다. 720ml의 사케 2병이 순식간에 바닥을 드러냈다.)
―해마다 겨울에 수비 연습을 한다. 그런데 정작 시즌이 시작되면 수비하는 모습을 보기 어렵다.
▲지난 6월 28일 대전 한화전이었어요. 그날 전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1루수로 선발 출전했죠. 투수는 ‘괴물’ 류현진! 당시 제가 19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딱 1루에 서 보니까 ‘여기가 어디냐?’ 싶더라고요.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너무 어색하고 불편했어요. 그런데 그때 김민재가 번트댄 공이 저한테 오는데 보기엔 아주 여유있게 처리할 수 있는 공이었거든요. 그런게 그 공이 마치 시속 150킬로미터의 속도를 내면서 오는 것 같았어요. 결국 ‘알까기’를 하며 공을 놓쳤죠. 그날 경기에서 19경기 연속 안타 기록도 깨지고 로이스터 감독님도 절 더 이상 수비로 내보내지 않으셨어요.
―다소 거북한 질문일 텐데…, 반쪽짜리 선수라는 평가를 받는다. 발이 빠른 것도 아니고, 홈런이 많은 것도 아니고, 또 팀 공헌도가 높은 선수도 아니다. 원래 장타자였던 선수가 어느 순간부터 ‘똑딱이 타자’로 변모하더라.
▲저, 반쪽짜리 선수 맞아요. 왜냐하면 뭐든지 어정쩡하거든요. 어정쩡한 파워에 어정쩡한 수비, 스피드도 마찬가지고요. 그렇지만 공을 맞히는 재주는 남들보다 더 많다고 판단했어요. 그런데 장타를 치면서 맞힐 수는 없어요. 홈런 20개를 치면서 2할5푼을 치는 것보다 3할대를 유지하면서 안타가 많이 나올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한 거죠. 다 먹고 살기 위해서입니다. 제 보직이 지명타자잖아요. 지명타자가 매번 나가서 홈런을 칠 순 없어요. 꾸준히 출전하고 싶으면 안타를 많이 쳐야 해요. 젊을 땐 홈런 18개씩 치고 80타점을 올리면서 포수란 붙박이 보직이 있었기 때문에 맘껏 휘두를 수 있었어요. 지금은 절대 그렇게 못해요. 홈런 욕심 냈다간 밥 그릇이 없어질 수도 있거든요.
―두산에 있을 때나 롯데로 옮겨와서도 여전히 ‘오버맨’이란 타이틀에선 벗어나질 못한다. 좀 지겹지 않나?
▲솔직히 말할게요. 두산에서 오버할 때는 팬들에게 어필하고 싶었고, 스타가 되고 싶기도 했어요. 처음엔 작게 시작한 게 조금씩 호응이 좋아지니까 저도 모르게 오버하는 데 빠져들게 되더라고요. 나이를 먹고 두 아이의 아빠가 되니까 창피했어요. 롯데에 와선 오버를 좀 줄이자 하는 생각도 했는데 천성이 가만히 앉아있질 못하는 것 같아요.
(벌써 3병째다. 홍성흔이 “전 1년 내내 보약을 먹어서 그런지 술이 잘 안 취해요. 술을 좋아하지 않지만, 한번 시작하면 끝장을 보거든요. 오늘 각오하셨죠?”라고 기자의 취중 상태를 가늠하려 한다. 녹음기는 돌아가고 있고, 지금부터는 제정신으로 인터뷰를 하지 못할 것 같다. ㅠㅠ)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많이 술을 마신 적이 있다면?
▲아버지 어머니가 이혼하셨을 때였어요. 야구하면서 합숙 생활이 대부분이라 집이 어떤 상황인지 잘 몰랐어요. 그런데 어느날 부모님이 이혼을 하신다는 거예요. 전 어머니랑 사는 게 좋았거든요. 아버지는 권위적이고 많이 엄하셔서 무서웠어요. 그런데 어머니가 집을 나가시면서 형이랑 저, 그리고 아버지 이렇게 세 남자만 남게 됐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야구에 더 매달리게 된 계기가 됐어요. 몇 년의 시간이 지난 후 어머니는 다른 남자랑 재혼을 하셨더라고요. 이미 다른 분의 아내가 되신 어머니를 만나고 싶지 않았어요. 프로 입단 전에 통화했던 게 마지막이었습니다.
―올해 일명 ‘갈매기타법’으로 재미를 많이 봤다. 그러나 상대팀 포수들한테는 싫은 소리를 많이 들었을 것 같다.
▲장난 아니었어요. 시즌 초반부터 해보려고 했는데 ‘저 새끼 또 오버한다’고 할까봐 자제하다가 워낙 공이 안 맞으니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했던 거예요. 처음에 진갑용 선배가 제 폼을 보시곤, ‘야, 그거 뭐야? 손 치워! 사인이 안 보이잖아’하며 뭐라고 하시더라고요. 김동수 선배는 물론 박경완 선배도 ‘야, 왜 이래? 왜 안 하던 짓하고 그래? 사인이 안 보인다니까’하시며 한말씀 하셨어요. 그때 제가 ‘형, 저 수비도 안 되고, 공도 안 맞고, 이거조차 안 하면 먹고 살 게 없어요. 제발 좀 봐주세요’라고 사정을 했었어요.
―춤을 잘 춘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이 얘긴 꼭 한국야구위원회(KBO)관계자분들께서 관심있게 봐 주셨음 좋겠어요. 제가 한댄스하거든요. 안무가 홍영주 씨도 제 춤 실력에 감탄했을 정도예요. 올해 골든글러브 시상식 때 저한테 기회를 주신다면 랩과 댄스로 현란한 무대를 보여드릴 자신있어요. 가수 비의 ‘레이니즘’은 정말 끝내주게 할 수 있는데^^.
사케 4병(2880ml)을 깨끗이 비운 뒤에야 1차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술이 점점 깬다는 홍성흔 앞에서 술이 심하게 취해가는 기자는 할 말이 없었다. 2차는 녹음기를 끄고 홍성흔이 입이 닳도록 자랑했던 댄스 실력을 확인하기 위해 노래방으로 향했다. 와우~ 홍성흔의 댄스 실력에 흠뻑 취한 나머지 소리를 질러대다 목이 쉴 정도였다. KBO에서 골든글러브 시상식 때 홍성흔에게 무대를 제공한다면 아마도 ‘대박’이 날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