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는 3병 폭탄주는 무한대
―너무 어색해하니까 질문을 못하겠다. 먼저 가벼운 질문부터 하겠다. 주량이 어떻게 되나.
▲잘 못 마시는 편이에요. 소주 3병 정도? 소주는 잘 못 마시겠더라고요.
(이때 소주잔을 부딪히며 ‘원샷’을 외쳤던 기자는 순간 멈칫거렸다. 소주를 잘 못 마시는 사람한테 술을 강권한 게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소주가 부담스러우면 맥주를 시키는 게 낫겠다.
▲아니에요. 음…, 차라리 소주에다 맥주를 말아서 먹는 건 어떨까요?(알고 보니 소주만 3병 정도 마시고 ‘폭탄주’는 무제한 주량을 자랑한다는 거다^^. 채병용의 말을 듣고 탄력 받은 기자는 “아줌마, 여기 맥주 세 병 추가요!”를 외쳤다)
―연애 11년째 되던 해인 작년에 야구장에서 감동적인 프러포즈를 하고선 결혼을 했다. 도대체 부인을 몇 살때 만난 건가?
▲고1 때였어요. 그동안 두 차례의 이별과 만남이 반복됐었는데, 너무 어린 나이에 교제를 해서인지 제가 실수를 많이 했어요. 아내의 이해심 덕분에 결혼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2007년에 돌아가셨어요. 아내와 사이가 안 좋을 때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옆에 조용히 머물면서 위로를 해줬어요. 첫 사랑과 결혼한 셈인데, 후회요? 에이, 있다고 말하면 와이프한테 혼나요^^.
―한국시리즈에서 이겼을 때보다 지고 나니까 인터뷰 요청이 더 많다고 들었다. 왜 그럴까? 우승팀 선수도 아닌데 왜 인터뷰 요청이 쏟아진다고 생각하나.
▲아픈 몸을 이끌고 투혼을 발휘했다고 많이들 얘기하시더라고요. 전 투혼이었다고는 생각 안 해요. 어차피 수술하기로 결정 난 상태에서 한 타자라도 더 상대하기 위해 재활을 선택했던 겁니다. 그냥 수술 받고 군에 입대하면 너무 아쉬울 것 같았어요. 팀에 도움이 되고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했어요. 뱃속에 있는 아이랑 그동안 고생을 많이 해온 아내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솔직히 한국시리즈에서는 한 타자, 한 타자 상대할 때마다 ‘이번이 마지막이다’라는 심정으로 던졌어요.
―김성근 감독이 채병용 선수한테 많이 미안해했다. 어려운 여건에서 희생을 마다하지 않은 행동에 큰 감동을 받으신 것 같았다.
▲아마 감독님이 던지지 말라고 하셨어도 제가 던지겠다고 말씀 드렸을 거예요. 감독님께서 아주 어렵게 얘기를 꺼내셨어요. 먼저 ‘미안하다’고 하셨고요. 전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제가 던진다고 해서 팀에 도움이 될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야구장 안에 있고 싶었어요. 한국시리즈 4차전 선발로 올라갈 때도 제 몸이 아프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팀을 위해서만 던지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채병용 선수한테 김성근 감독은 어떤 분인가.
▲처음엔 솔직히 감독님, 별로 안 좋아했어요. 훈련을 너무 많이 시키시고 엄하단 얘길 들어서 일부러 삐뚤어지게 행동하고 피해다니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알면 알수록 빠져드는 분이에요. ‘야신’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더라고요. 누구도 흉내 낼 수없는 카리스마 이면에는 자상한 아버지 같은 인간적인 매력이 가득한 분입니다.
(혹시 군 입대 후 복귀를 염두에 둔 ‘아부성’ 발언 아니냐고 떠봤다. 벌써 폭탄주 3잔을 거푸 비우던 채병용은 ‘자기 인생에 아부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잘라 말했다)
―7차전에 투입됐을 때 몸 상태가 온전하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다.
▲온전한 게 이상하죠. 4차전 던지고 나니까 다음 날 팔이 안 올라가더라고요. 아침에 병원가서 치료받고 경기장 나와서 계속 맨소래담 마사지 받고 하니까 조금씩 팔이 올라갔어요. 7차전 마운드에 올라갈 때 팔이 아픈 걸 잊으려고 노력했어요. 그런데 마음 먹은 것과 내 몸 상태와는 일치하지 않더라고요. 마지막 경기라 무조건 막아야 한다는 생각밖에는 없었습니다.
―나지완 선수가 홈런을 날렸을 때 어떤 심정이었나.
▲자꾸 술을 마시게 하시네요(웃음). 딱 하는 소리가 들렸을 때 공이 가는 곳을 쳐다보지 않았어요. 손가락에서 공이 빠지는 순간, 맞겠다 싶었으니까요. ‘이젠 모든 게 끝났구나’하고 생각하니까 눈물이 쏟아지더라고요. 감독님, 선수들 모두 절 믿고 계셨을 텐데, 왜 그런 공을 던졌을까 하는 후회가 컸습니다. 너무 아쉬워서 더 눈물이 많이 났던 것 같아요.
(그날 야구장에는 채병용의 아내도 와 있었다. 남편이 우는 모습을 보고 관중석에서 소리없이 눈물을 흘렸던 아내는 경기 후 만난 채병용에게 ‘당신이 최고다’라며 환한 웃음을 보여줬다고 한다)
▲ 지난 28일 오후 인천의 한 고깃집에서 SK와이번스 채병용이 이영미 기자, 정유진 인턴기자와 취중토크를 했다.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
▲김동주 선배님한테는 제가 경솔한 부분이 있었어요. 2007년 한국시리즈에서 벌어진 일인데, 유리한 카운터에서 몸쪽 승부를 하려다가 그만 공이 몸에 맞은 거였죠. 그때 김동주 선배님한테 고의가 아니었다, 죄송하다는 제스처를 취했더라면 아무 문제가 안 됐을 텐데 제가 그냥 쳐다봤던 게 그 분을 자극하게 만들었던 거죠. 한국시리즈는 나름대로 양 팀 선수들이 치열하게 기 싸움을 벌이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고개를 숙이고 잘못을 구하기가 싫었습니다. 그러다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났고, 전 말리려고 나섰던 행동이 헤드락을 걸었다는 등 이상한 얘기가 나오더라고요. 솔직히 말해서 그걸(헤드락) 풀면 제가 맞아 죽을 것 같았어요(웃음).
―조성환 선수는 안면부 함몰 골절로 수술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당시 그 공을 던진 채병용 선수에 대한 비난이 엄청났다.
▲저도 그때 왜 그런 공을 던졌는지 모르겠어요. 조성환 선배님이 쓰러지셨는데도 캐치볼을 했어요. 그땐 제가 제 정신이 아니었거든요. 앰뷸런스에 실려 나가는 선배님을 보니까 제 손을 잘라버리고 싶을 정도로 죄책감이 컸습니다. 경기 끝나자마자 찾아갔더니 아주 많이 안 좋으시더라고요. 선배님은 그 상황에서도 괜찮다고 절 위로하셨지만 말로 형언하기 힘들 정도로 괴로웠습니다. 수술 마친 후 다시 찾아뵈었을 때 선배님은 고의가 아니란 걸 잘 알고 있다면서 이번 일로 제가 상처를 받고 이전처럼 공을 던지지 못하게 될까봐 더 걱정하셨습니다. 정말 선배님한테 감동받았어요. 평생 잊지 못할 분입니다.
―그 후로 공 던지는 것 자체가 두려웠을 것 같다.
▲벤치에서 사인을 내도 몸쪽으론 공을 던지지 못했어요. 그걸 조성환 선배님이 TV로 보셨나봐요. 다시 병문안을 갔을 때 선배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네가 지금 몸쪽 공을 던지지 못하면 평생 못 던진다. 설령 내가 회복해서 다시 타석에 선다고 해도 넌 나한테 몸쪽 공으로 승부해야 한다. 그게 승부의 세계다. 나 또한 그 공을 피하지 않을 것이다”라고요. 그 후엔 다시 몸쪽 승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11월 5일 일본에서 수술을 받는다. 수술 후 재활도 중요하지만 군 입대 생활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지금 가장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면?
▲2년 후 다시 팀에 복귀했을 때 과연 제 자리가 있을까 하는 점이에요. 그 사이에 팀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어떤 선수들이 뜨고 졌을지, 지금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에 미래의 제 모습에 대한 막연한 불안함이 사람을 힘들게 만듭니다. 그러나 마냥 불안해하고만 있진 않을 거예요.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열심히 몸을 만들어야죠.
―원정 경기 때마다 룸메이트였던 후배 김광현 선수가 힘든 시즌을 보냈다. 특별히 부탁하고 싶은 말이 있나.
▲다 잊고 몸 잘 만들어서 내년엔 형 몫까지 열심히 해줘라.
―이 자리는 ‘취중토크’다. 그런 모범 답안은 듣기 싫다. 진짜 부탁하고 싶은 것 한 가지를 말해 달라.
▲광현아! 노는 것도 좋은데 적당히 놀아. 넌 너무 잘 놀아서 탈이야^^ 하하.
후배 김광현에 대한 애정이 차고 넘쳤다. 인터뷰 중간 중간에 김광현이 이전의 모습을 되찾아야 SK가 다시 한국시리즈 정상에 도전할 수 있다는 말을 자주 곱씹었다. 그리고 채병용이 공익근무요원으로 군 생활을 하게 될 것이라는 기사는 아직 확정된 게 아니라는 것도 덧붙였다. 아직 재검 신청을 안 한 상태라 지금은 일단 현역 입대 신분이라는 것. 수술 후 재검 판정에서 현역병일지 공익근무요원으로 가게 될지 가려진다고 한다.
“고3 대통령배 대회 때였어요. 신일고 투수로 마운드에 올랐다가 부산고 타자로 나온 추신수를 타석에서 만나게 됐죠. 결국 추신수한테 홈런을 맞고 말았습니다. 그 친구가 미국 갔다고 해서 대충 하다 들어올 줄 알았는데, 지금은 엄청난 선수로 성장했네요. 다시 한 번 만나봤으면 좋겠어요. 신수가 들어오는 날(11월 3일), 제가 일본으로 떠나게 돼서, 갑자기 그 생각이 들어서요.”
채병용은?
출생 1982년 4월 25일
신체 키 185cm 몸무게 100kg 혈액형 A형
학력 신일고 포지션 투수 등번호 45
프로입단 2001년 SK 와이번스 경력 SK 와이번스(01~현재), 2008 프로야구 올스타전 동군 대표 수상 2008년 프로야구 승률상 2009 시즌 성적 경기 28, 승리 3, 패 3, 세이브 2, 홀드 3, 이닝 6 1/3, 피안타 66, 피홈런 11, 볼넷 25, 삼진 53, 실점 32, 자책 32, 방어율 4.70
스피드 일문일답
야구장 프러포즈 손발 오그라들어ㅋ
▲어휴, 그 말 자체가 영광이다. 던지는 스타일이나 실력면에선 감히 내 이름을 그 분 이름 옆에 꺼낼 수도 없다. 혹시 외모 때문에 그런 얘길 하는 건가?
―프로야구 선수들 중 몸무게가 세 자리 수인 선수들이 몇 명 있는데.
▲김태균, 이대호, 최준석 등이다. 김동주 선배는 내가 후배라 감히 체중 갖고 뭐라 할 수가 없다. 100kg이 넘는 선수들끼리 만나면 서로 살 빼라고 충고 아닌 충고를 한다.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타자는?
▲잠깐! 화장실 다녀와서 얘기하겠다.
(결국 화장실에 다녀와서도 채병용은 이에 대해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내년 초에 아이 아빠가 되는데, 소감은?
▲벌써부터 뱃속의 아기가 ‘아빠’하고 부르는 것 같다. 아무래도 딸일 것 같은데, 외모는 나만 안 닮으면 좋겠어다.
―지난해 야구장 프러포즈를 보고 많은 연인들이 감동받았다.
▲와이프가 제대로 된 프러포즈 안 하면 결혼 안 해준다고 해서 계획한 건데, 세상에 태어나서 그렇게 부끄러웠던 적은 처음이었다. 두 번 다신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남자친구한테 이벤트 바라는 여성 분들, 그거 정말 너무나 힘든 숙제라는 걸 알아주셨음 한다.
―몸무게가 세 자리 숫자가 된 건 언제부터였나.
▲중2 때부터. 고3 때 100kg 이하로 뺐다가 프로 데뷔 해에 다시 살이 찌더라.
―국가대표와는 이상하게 인연이 없었다.
▲내 탓이다. 내 실력 부족 때문이다. 그래서 전혀 아쉽지 않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