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창진 KT 감독(왼쪽)과 강동희 동부 감독. | ||
11월 6일, 부산에서 동부와 KT의 시즌 첫 대결이 펼쳐졌다. 별다른 이슈가 없는 프로농구계에서 두 사람의 맞대결은 굉장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결과는 전창진 감독이 이끄는 KT가 연장 접전 끝에 85-81로 승리했다. 경기 전 이에 대한 각자의 마음가짐을 들어봤다.
강동희(강): 감독 되고 나서 처음으로 ‘감독님’과 대결을 벌이는 거잖아요. 4년 동안 감독님 밑에서 많은 걸 배웠는데, 그에 부끄럽지 않게 경기를 펼쳐야한다고 생각했어요. 더욱이 양팀 다 성적이 좋아서 부담 없이 경기를 치를 수 있을 것 같아요.
전창진(전): 원래 연습할 때는 단점이 많이 보이는데 막상 시합에 들어가면 그 단점이 장점이 되거든. 동부가 LG랑 모비스한테 진 게임을 봤어. 한 마디로 엉망이더라고. 레이업 슛도 안 들어가고 챈들러는 완전 혼자 놀고 있고 김주성은 빠빠빠 룰라이고…, 내가 봤을 땐 그 게임에서 챈들러를 완전히 뺐어야 해.
강: 감독님, 전 그게 아직 잘 안 돼요. 감독님은 삐딱한 용병이 있으면 바로 아웃시키잖아요. 전 일단 뛰게 한 다음에 경기 끝나고 대화로 푸는 편이거든요. 챈들러가 만약 감독님 밑에 있었으면 끝장났을 거예요.
전: 난 제스퍼 존슨을 강하게 다루는 편이야. 변명을 하려고 하면 아예 안 들어. 대신 경기에서 보여달라고 말하지.
강: 내일 게임은 한수 배운다는 마음으로 하려고요. 제가 KT 경기를 분석해 보니까 한 게임에 어시스트가 19개가 나오더라고요. 5명이 완전히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거죠. (기자한테) 지난 시즌 꼴찌팀이라는 게 상상이 되세요? 감독님의 지도력은 정말 대단해요.
전: 동희야, 이러지 마. 내가 동부 게임을 보니까 정말 준비를 많이 해서 나가더라. 처음치고 이 정도면 정말 잘하는 거야.
강동희 감독은 개막전 상대로 허재 감독이 이끄는 KCC를 맞았다. 허재 감독과는 지금도 ‘허재 형’이라고 부를 만큼 선수 시절부터 막역한 관계를 유지했다. 절친한 선배를 상대로 데뷔전을 치렀고 그 경기에서 동부가 전년도 우승팀 KCC를 누르고 승리를 차지했다.
전: 그런데 동희 넌, 데뷔전을 너무 쎄게 치렀어. 허재가 그 게임에서 지고 부산 왔다가 ‘폭행’ 사건이 일어난 거잖아. 네가 원인 제공자야. 왜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렸냐고.
강: 어휴, 말도 마세요. 허재 형이 은근히 생각이 많은 사람이잖아요. 우리한테 진 것보다 선수들이 예상대로 잘 안 움직이니까 많이 속상했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술 한잔 하러 나갔다가 그런 일이 벌어졌더라고요.
전: 난 경기 보면서 대단하다고 생각했어. 상대는 지난 시즌 우승팀이란 말야. 상당히 부담이 많이 될 것이라고 봤는데 동희가 엄청 준비를 했더라고. 그러니까 이길 수밖에 없지.
강: 사실 그날 경기 앞두고 감독님께 전화 드렸잖아요. 부족한 부분이 보이면 바로 바로 알려달라고요. 그런데 신기하게 KCC한테 질 거라는 생각이 안 들었어요. 지난 시즌에 감독님이 저한테 다섯 게임을 온전히 맡기신 적이 있었죠? 그때 해봤던 경험이 크게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전: 에이, 내가 귀찮고 힘들어서 너한테 맡긴 거야.
강: 감독님이 어떤 분이신데요. 일부러 저한테 지도자 수업을 하게끔 기회를 주신 거잖아요. 원래 감독님들이 코치한테 그런 기회를 주지 않아요. 연습때부터 저한테 많은 걸 시키시더라고요. 처음엔 왜 저러실까? 싶었는데 아마도 감독님은 그때부터 저랑 헤어질 준비를 하셨던 것 같아요.
전: 사실 동희랑 나랑은 아무런 인연이 없지? 학연도, 지연도 없는 사이야. 하지만 내가 원주에 있을 때 코치로 부르니까 바로 오케이해줬어. 한 6개월가량 재정난으로 월급도 못 받고 일했는데, 불평 한마디 안 하더라고. 난 허재도 그렇고 동희같이 스타플레이어 출신들은 지도자로 농구 코트에 다시 서야 한다고 생각해. 그런 계보들이 이어져야 팬들도 늘어나고 볼거리가 풍부해지잖아. 만약 동희가 성실하지 않고 자기 이익만 챙기는 사람이었다면 나도 기회를 안 줬을 거야. 사실 내 모든 열정과 노력을 쏟아 부은 동부란 팀을 다른 사람한테 물려주고 나오기가 쉽지 않았어. 동희가 있었기 때문에 크게 고민하지 않았던 거야.
강동희 감독은 감독으로 취임한 뒤 기자회견에서 “전창진 감독과는 다른 색깔을 내겠다”고 말했다. 그 말의 의미를 묻자, “어휴, 감독님과 비슷한 농구를 하겠다고 하면 제가 너무 없어보이잖아요”라며 웃는다.
강: 4년을 감독님 밑에서 지냈기 때문에 훈련 내용이라든가, 그 과정들이 전 감독님과 거의 비슷해요. 수비적인 부분만 조금 변경했을 뿐 그 틀은 감독님이 하시던 대로 하고 있어요.
전: 그런데 내가 했을 때보다 훨씬 잘하잖아. 완전히 다르게 하는 걸 뭐.
강: 남의 떡이 커 보이나봐요. 전 KT가 대단해 보이는데.
전: 쉽게 설명해 줄게. 난 윤호영을 앞에 세웠어. 그런데 동희는 김주성을 앞에 세운단 말야. 그렇게 하면 수비 활동 폭이 커지잖아. 사실 그 얘길 오래 전부터 나한테 말했었는데 내가 동희 말을 안 들었지.
강: 감독님 스타일이 있으니까요. 사실 감독 맡고 나서 초반에는 선수들을 넓게 활용하려고 했었어요. 하지만 보세요. 그래봤자 5~6명이에요. 이광재랑 김주성은 빼서 쉬게 해주고 싶은데 뺄 수가 없더라고요.
잘 알려졌다시피 전창진 감독은 술을 전혀 못 마신다. 하지만 술자리를 사양하지 않는다. 강동희 감독이 코치였을 때는 ‘좌 동희, 우 승기’란 말이 있을 정도로 강동희, 김승기 코치가 ‘알아서’ 술상무로 나서줬다. 이렇다보니 강 감독의 말 못할 고충이 있었을 듯싶다.
강: 이제야 밝히지만 감독님 주무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잠드신 거 확인하고선 승기랑 몰래 술 마시러 나간 적이 있었어요. 감독님이 술을 못 하시니까 진짜 술 먹고 싶을 때 눈치를 보게 돼요. 안 마시는 분이 계시면 왠지 불편하잖아요. 말도 편하게 못 하고.
전: 내가 모를 줄 알았지? 나 쉽게 잠 들지 못하잖아. 너희들이 몰래 술 마시러 나가는 거 다 알고 있었다.
강: 정말요? 에이, 그럼 아예 미리 말씀 드릴걸.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죠? 코치 때 허재 형을 만나서 다음날 연습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술을 무진장 마신 거예요. 버스가 훈련장으로 출발할 시간에도 일어나질 못했어요. 20분 정도 지나서 체육관으로 허겁지겁 달려갔는데 너무 죄송하더라고요. 입에서 술 냄새는 나지, 정신은 못 차리겠지, 감독님께서 나중에 애들 운동하는데 술 냄새 나게 하는 건 아니라고 조용히 말씀하시더라고요. 그 이후로 절대 실수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전: 이런 일도 있었어. 내가 술을 안 마시니까 코치들이랑 회식을 하면 내가 운전을 하게 돼. 한마디로 대리운전기사지^^. 한번은 동희를 태우고 집에 데려다주면서 한참 농구 얘기를 했어. 동희도 네네 하면서 대답을 잘 하더라고. 그러다 동희네 아파트 앞에 도착을 한 거야. 내가 동희야, 이제 내려야지? 하니까 이 사람이 뭐라고 한 줄 알아? “저, 아저씨 얼마 드리면 돼요?” 하하.
강: 감독님이 운전하시니까 취한 척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물어보시는 말에 또박또박 대답을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정신줄을 놓은 거죠.
이젠 감독과 코치가 아닌 리더 대 리더로 코트에 서는 두 사람. 승부사의 길을 걷고 있는 그들이지만 지금도 종종 서로의 존재가 그립다고 말한다.
전: 강동희는 절대 사람을 배신할 스타일이 아니야. 여기 있는 모든 식구들이 다 그래. 남들은 ‘전창진 사단’ 운운하지만 정말 내가 인복이 많은 거야. 너무 좋은 사람들을 만났거든. 지금도 생각이 나는 게 내가 동희한테 헤어져야 할 때가 된 것 같다고 말했을 때야. 그런데 동희는 “예, 감사합니다”가 아니라 끝까지 자기가 감독님 모셔야 한다고 우기더라고. 내가 몸도 안 좋고 그러니까 자기가 모시겠다고. KT로 가기로 결정한 날도 동희는 ‘감독님이 불러주시면 저도 따라가겠습니다’라고 했어. 보통 사람 같으면 그런 마음 없지. 내가 떠나면 감독 자리가 공석인데, 욕심이 나야 하잖아.
강: 감독님은 제가 코치인데도 감독급 대우를 해주셨어요. 좀 더 인연을 이어가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감독이 되는 시기가 빠르냐, 느리냐의 차이인데 느리면 느린 대로 제가 더 배울 수 있고 받아들일 것도 많고요.
강동희 감독은 자신의 롤 모델로 선수 때는 유재학 감독, 지도자에선 전창진 감독이라고 말했다. 전 감독은 “동희가 겉으로 좀 더 강해보여야 해. 겉과 속이 너무 착하고 유해 보이면 이 살벌한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면서 강 감독만의 카리스마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마지막 질문은 두 지도자가 이번 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만난다면? 이란 내용이었다. 강 감독은 “이기든 지든 아프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이기면 진심으로 박수 치고 좋아해 주실 분이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했고, 전 감독은 “강 감독이 지도자로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 하지만 정정당당한 승부, 멋진 승부를 통해 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싶다”라고 설명했다. 보기만 해도 절로 흐뭇해지는 ‘리더 대 리더’의 만남이었다.
감독은 외로워
우리는 불량 아빠들
▲ 이제 아군에서 적군이 된 사이지만 서로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만큼은 한가득이라는, 전창진 감독(왼쪽)과 강동희 감독. 서로를 위하여 건배!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
가족들이 모두 캐나다에서 생활하는 전창진 감독은 결혼하고 20년이 넘었지만 가족들과 같이 산 날은 1년도 채 안 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지금은 아이들이 커서(승한이 17세, 승아 11세) 아빠와 떨어져 지내는 것을 이해하고 잘 받아들이지만 처음에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단다.
“오랜만에 애들을 만나면 무척 서먹해 한다. 한번은 승한이를 데리고 자고 싶어서 억지로 같이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까 엄마한테 가 있더라. 좀 서운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했지만, 내가 선택한 게 승부의 세계니까 이런 개인적인 외로움은 묻어둬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 살(민수)과 여섯 살(성욱) 난 아들만 둘을 둔 강동희 감독은 아직 아이들이 어리기 때문에 아빠를 많이 필요로 하는데 전혀 시간을 내지 못해서 미안함이 한가득이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지 못하는 게 항상 마음에 걸린다. 더욱이 감독 되고 나선 오랜만에 집에 가도 농구 생각으로 애들이랑 놀아주지 못한다. 감독님이 계실 때는 휴가 때 그냥 푹 쉬면 그만이었지만 내가 감독이 되고 나선 이런저런 복잡한 문제들이 어우러져 제대로 쉴 수가 없다. 그래서 요즘엔 멍 때리고 있을 때가 대부분이다. 집에 가도 혼자 있고 싶어하고. 그래도 와이프는 내가 감독이 돼서 좋아하는 것 같다. 가정을 챙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이라면 사회에서 인정받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아무래도 초보 감독 입장에선 모든 게 어렵고 어설프고 힘들기만 하다. 강 감독은 “감독이 왜 연봉을 많이 받는 지 이제야 알 것 같다”라고 한마디 더 덧붙인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