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심삼다수 선수단이 유남규 감독의 복귀에 반발하며 집단 이탈, 파문이 일고 있다. 작은 사진은 김봉철 코치. | ||
사건을 이해하는 핵심은 간단한 데 있었다. 즉 꼭 2년 전인 2007년 11월 유남규 감독의 해임에 반대했던 선수들과, 이번 유 감독의 영입을 저지하려는 선수들은 크게 달랐다. 2년 전에는 유남규 감독이 선수들의 처우개선 등을 내걸고 구단 측에 맞섰다가 해임됐다. 농심 측은 유남규 감독 대신 이재화 총감독(64) 및 김봉철 코치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이정우 조언래 고재복(현재 고준형) 한지민이 반기를 들었다. 이 사건은 결혼을 1개월 앞둔 유남규 감독의 사퇴와 이탈한 선수들의 전원 팀 복귀로 일단락됐다.
지난 11월 5일 유남규 감독의 재영입에 반대해 팀을 이탈한 선수는 조지훈 고준형 최원진 이재훈 등 4명이다. 그 사이 이름이 바뀐 고준형을 제외하면 모두 2년 전과는 얼굴이 달라졌다. 2년 전 멤버 중 조언래는 상무로 입대해있고, 이정우는 상무입대를 준비 중이다. 그리고 한지민은 ‘친(親) 유남규계’로 이번 이탈에 동참하지 않았다.
고준형의 경우 유남규 감독은 “내가 감독이 되면 아무래도 이정우를 더 높게 평가하기 때문에 자신이 코치가 되는 데 지장이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입장변화의 이유를 진단했다.
2년 전에는 유남규 감독이 선수단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다 ‘경제 상황을 고려, 회사 측 안을 따르자’고 한 이재화 총감독과 갈등을 빚었고, 이 과정에서 농심이 유 감독을 해임한 것이다. 당시 선수들은 전원 팀을 이탈해 유 감독의 복귀를 요청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반면 이번 갈등은 ‘유남규 감독의 복귀’가 핵심이다. 이재화 총감독은 지난 10월 31일자로 이미 농심 탁구단에서 사퇴했다. 그리고 유남규 감독을 따를 수 없다면 사표를 쓰라는 회사의 요구에 김봉철 코치도 이미 사표를 낸 상태다. 이에 주축선수 4명이 지난 5일 팀을 이탈하고 기자회견을 연 것이다.
김봉철 코치는 “나와 선수들은 정말 농심을 사랑하고, 또 농심마크를 달고 열심히 운동하고 싶어한다. 지금 당장이라도 운동하고 싶다. 처우 등 구단에 대한 불만도 없다. 단지 지난 2년간 농심에 불만을 품고, 팀을 깨겠다고 공언하고 다닌 유남규 감독이 농심에 오는 것에 반대하는 것이다. 정말 농심을 사랑하고, 마음으로 우리를 지도할 감독님이 온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 집단행동이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우리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극단적인 대응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또 왜 농심 구단이 선수들이 반대하는 유남규 감독을 재영입하기로 결정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회사 임직원들이 모두 탁구단 속사정을 다 알지는 못한다. 최근 인사로 탁구단 내부사정을 잘 모르는 분들이 탁구단 일을 맡게 됐다. 이 과정에서 생긴 잘못된 감독선임”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유남규 감독은 “농심은 내가 선수로 뛰었던 동아증권 탁구단을 모체로 출발한, 즉 내게는 친정팀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사람이기 때문에 2년 전 갈등으로 인해 불편한 감정이 생길 수도 있지만 그런 갈등을 딛고 다시 내가 농심으로 들어가는 것이 좋은 모습이 아닌가? 각자의 이해에 따라 의견을 피력할 수는 있지만 극단적인 대응이나, 특히 나에 대한 인신공격은 좀 지나치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아시아선수권 출전을 위해 13일 출국한 유남규 감독은 “2년 전에도 늦장가를 앞두고 심적 고통이 심했지만 결국 내가 선수들을 다독여 팀으로 돌려보냈다. 이번에도 시간을 두고 지켜보겠다. 구단도 선수들이 복귀할 경우 그 어떤 책임도 묻지 않을 방침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이재화 전 총감독에게 수차례 전화를 하고, 음성메시지를 남겼지만 인터뷰는 성사되지 않았다.
다른 종목도 그렇지만 탁구계는 유독 사과가 두 쪽으로 갈라지듯 두 파벌로 나뉘어 대립이 심했다. 협회 회장을 누가 맡느냐에 따라 협회 주요보직과 국가대표 지도자, 선수스카우트에까지 영향이 미쳤다. 문제는 이것이 실업팀 내부까지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농심삼다수는 지도자는 물론이고, 선수들까지 두 쪽으로 나뉘었다. ‘욕 하면서 배운다’고 탁구 선배들의 파벌싸움을 어린 현역선수들이 그대로 답습한 셈이다. 결국 실업팀을 운영하는 농심의 보다 세련된 스포츠단 운영이 아쉬운 대목으로 지적받고 있다. 탁구를 제외하면 스포츠단 운영 경험이 없는 농심의 ‘갈지자 행보’가 팀 내 갈등의 단초를 제공한 것이다.
농심 탁구단의 곽영민 과장은 “탁구단 업무를 맡은 지 이제 겨우 한 달이다. 현재 회사로서는 유남규 감독 영입 외에는 아무것도 결정한 것이 없다. 시간을 갖고 선수들과 접촉하면서 해결책을 모색하겠다”고 원칙적인 답변만 내놓았다.
이번 팀 이탈 파문으로 국가대표 상비군인 조지훈은 아시아선수권과 동아시아대회도 결장하게 됐다. 팀 내부를 넘어 한국탁구 전체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대한탁구협회는 이탈한 선수들에 대한 징계를 심각히 고민하고 있다. 자칫하면 관례화가 될 수 있는 농심삼다수 선수들의 집단이탈을 이쯤에서 근절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