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찬희(23.경희대) | ||
# 프로농구
농구에서는 보기 드문 신인 포인트가드가 등장해 다음 시즌 활약이 기대되고 있다. 포인트가드는 상황 판단과 작전 이해 능력이 뛰어나야 하며 적재적소에 공을 공급하여 좋은 슛 기회까지 만들어야 한다. 그야말로 멀티 플레이어다운 역량을 갖춰야 하다 보니 포인트가드에 적합한 신인스타는 한 해 나올까 말까하다. 그런데 올해는 전 구단이 고개를 끄덕일 만한 ‘진주’가 등장했다. 다음 시즌 드래프트에서 최고 관심사로 떠오른 것은 박찬희(23·경희대)다.
포인트가드로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는 포인트가드 역사상 가장 우월한 키 때문이다. 현재 프로리그 ‘특A급’이라 불리는 신기성(35·부산KT), 이상민(38·서울삼성), 김승현(32·대구오리온스)이 185cm 이하의 키인데 비해 박찬희는 190cm의 장신으로 용병을 커버할 수 있는 체격조건을 갖춘 데다 뛰어난 속공능력과 저돌적인 돌파력까지 보여 스카우트들에게 ‘보기 드문 포인트가드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프로농구 구단에서 가장 오래된 경력을 가진 삼성썬더스 고상준 스카우터(경력 4년)는 “하승진, 김승현 같은 선수들이 등장했던 시기와 비교했을 때 전반적인 드래프트시장 흉년 속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포인트가드가 등장한 셈이다”라고 말한다. 키가 큰 선수들의 경우 스피드가 떨어지거나 패스워크가 부족한 등의 단점이 발견되기 마련이지만 박찬희의 경우는 그런 기존의 선입견을 모두 불식시킬 만한 활약을 아마추어 무대에서 꾸준히 보여 왔다.
오는 2월 열리는 드래프트에서, 선수 우선선발권을 가진 안양KT&G 역시 박찬희를 1순위로 검토 중이다. 신인 선수 스카우트 담당자인 이동환 코치는 “대학시절 잔부상이 많았던 점만 제외한다면 강점이 가장 많은 선수다”고 말했다.
반면 일부 스카우터들은 “뚜껑은 열어봐야 안다”고 입을 모으기도 한다. 아마추어 무대에서 주목받는 선수라고 해서 다음 시즌 기대에 걸맞은 활약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KBL 스카우터들에게 이러한 진리를 깨닫게 해 준, 아직까지 회자되는, 놓쳐서 아쉬운 ‘대어’로 함지훈(26·울산모비스)이 꼽힌다.
2007년 드래프트 당시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김태술(26·안양KT&G)과 양희종(26·상무)에게 쏠렸다. 드래프트 1, 2순위를 다투며 스카우터들 역시 그들의 영입에 사활을 걸었다. 당시 함지훈은 10순위로 센터로서 크지 않은 신장에 느린 발로 많은 기대를 모으지는 못했다. 그러나 막상 시즌이 시작되자 드래프트의 한을 풀 듯 예상을 깨고 신인답지 않은 플레이로 당당히 주전 자리를 꿰차며 소속팀을 우승으로 이끄는 주역으로 성장한 것이다. 한 스카우터는 “다른 무엇보다 프로무대 3년 동안 기복 없는 플레이를 보였다. 스카우터로선 그야말로 대박 선수를 놓친 셈이다”라고 짙은 아쉬움을 나타낸다.
드래프트 최대어가 다음 시즌의 최고 신인이 될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관건은 스피드와 패기가 우선인 아마추어 무대와 달리 흥미를 유발하기 위한 장치들이 많은 프로무대에 얼마나 적응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에 달렸다.
▲ 신정락(23.LG트윈스) | ||
야구에선 올 시즌 신인왕이 기대되는 특A급 투수가 등장했다. 주인공은 신정락(23·LG트윈스). 전체 드래프트 1순위로 LG 트윈스에 첫 번째 지명을 받았다. 최고 구속이 149km인데다 공식경기에서 홈런을 단 한 번도 맞지 않은 전력을 지니고 있어 스카우터들 사이에선 일찌감치 1순위로 손꼽혔다. 마무리 투수가 절실했던 LG로선 안성맞춤 신인을 낚은 셈.
LG 트윈스 김진철 스카우터는 “해외에서도 신정락 선수에게 많은 스카우트 제의를 보낸 것으로 안다”며 “다음 시즌 신인왕으로 기대될 정도의 A급 선수다”고 자신한다. 덧붙여 “올해 드래프트 시장에서 거물급 선수들이 대거 해외로 빠져나간 터라 신정락 선수가 국내에 남기로 결정한 부분은 굉장한 일”이라며 ‘가뭄의 단비’란 표현도 곁들였다.
물론 야구 역시 스카우터들이 발견하지 못한 ‘대어’가 시즌 시작과 함께 진가를 나타낸 경우도 많다. 농구 함지훈이 예상 밖의 ‘대박’으로 회자된다면 1998년 프로 입단 후 단 1년 만에 구속을 10km 늘려 스카우터들을 놀라게 한 반전의 주인공으로 김수경(31·히어로즈)이 꼽힌다.
인천고등학교 재학시절 구속은 135km 정도. 경기성적 만으로는 스카우터들 사이에선 그저 그렇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김수경을 당시 현대 유니콘스의 투수로 발탁하고자 했던 김진철 스카우터는 코치와 감독들의 반대에 부딪쳤다. 오랜 설득을 거듭하면서까지 김수경을 영입하고자 한 것은 곁에서 직접 지켜봤던 그의 무서운 연습량과 성실함 때문이었다. 김진철 스카우터는 “아마추어 선수의 역량을 판단할 때는 성적만이 아닌 사생활부터 가족관계까지 인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변수를 고려한다”며 김수경의 근성이 언젠간 대박을 터뜨릴 것을 예감했다고 한다. 결국 예상은 맞아 떨어졌고 데뷔와 함께 놀라운 구위를 선보이며 그해 신인왕을 거머쥐었다.
이같이 선발 당시에 주목받지 못했던 사례는 김수경뿐만이 아니다. 신인왕에 올랐던 박재홍(36·SK와이번스), 조용준(31·히어로즈), 이동학(29·히어로즈), 오재영(25·히어로즈) 역시 아마추어 시장에 있을 때는 1순위로 꼽히지 않았던 선수들로 1년 만에 대반전의 주인공이 됐다.
▲ 홍정호(21.조선대) | ||
올 K리그 최고 유망주는 드래프트 1순위로 제주유나이티드에 입단한 홍정호. 특A급 대어로 스카우터들의 몰표를 받았다. 이미 홍명보 감독의 청소년 대표팀 중앙수비수로 활약하며 세간의 이목을 끈 홍정호가 펼칠 플레이에 대해서 의심할 여지는 없는 상태. 전북현대 차종복 스카우터는 “볼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도 자기 자리를 잘 찾는 등 경기능력이 상당히 우수하다”고 호평하며 “탄력이 좋아 성장하면 J리그 올스타로 활약 중인 이정수 선수만큼의 기량을 보일 유망주다”라고 강조한다.
홍정호의 그늘에 가려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지만 스카우터들 사이에선 윤영선(22·성남일화)도 기대되는 유망주로 꼽힌다.
포항 스틸러스 남창훈 스카우터는 “홍명보의 대를 이을 만한 수비수”라고 극찬한다. 스피드와 공중 점프력이 특출한 데다 가공할 만한 헤딩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남창훈 스카우터는 “아직 공중볼 처리만큼 발 처리가 능숙하지 못하지만 나이가 어린 만큼 프로무대에서 잘 단련된다면 높은 성적향상이 기대된다”고 낙관적인 평가를 내린다.
축구의 경우 중학교 시절부터 될성부른 떡잎이 결정되는 종목이지만 올해 등장한 두 유망주의 공통점이 있다면 대학시절에야 제 빛을 발한 케이스란 점이다.
홍정호의 경우 중·고등학교까진 괄목할 만한 성적을 보이지 못해 별 볼일 없는 선수로 치부됐다. 고등학교 졸업 후 프로무대에 스카우트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그의 잠재력을 믿었던 고등학교 축구팀 감독 추천에 따라 조선대학교에 체육특기생으로 입학하며 서서히 진가를 발휘했고, 지난해 청소년 국가대표로 발탁, 홍명보 호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며 드래프트 0순위로 급성장했다.
윤영선 역시 단국대 입학 후 중앙수비수로서 헤딩 실력으로 주목받은 경우다.
# KLPGA
여자 프로골프에서는 신지애 못지않은 국가대표 에이스가 프로 진출을 기다리고 있다. 주인공은 한정은(17·제주중문상업고)으로 꾸준한 성적을 보이며 국가대표팀 선수로 3년을 뛰었다. 신지애가 같은 나이 대에 국가대표를 1년 동안만 했던 것과 비교한다면 그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을 터. 한정은은 주니어급 대회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퀸시리키트컵 우승, US 아마추어 8강, 오렌지볼 우승을 거둬 세계무대에 우뚝 설 만한 무서운 신예로 촉망받고 있다.
국가대표 한연희 감독은 “한정은이 세계적인 골퍼로 성장할 것은 틀림없다”며 “골퍼들은 17세가 되면 성적이 어느 정도 자리 잡는다. 정은이는 이미 세계적인 주니어 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 프로에서도 선배들 못지않은 성적을 낼 것으로 기대된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프러포즈보다 힘든 스카우트
이건 뭐, 거의 스토커 수준
프로무대에 괜찮은 신인을 등장시키기 위해 스카우터들이 아마추어들을 검증하는 시간은 최소 4년이다. 사생활부터 가족관계 등 주변정보를 샅샅이 뒤져 기량이 뛰어난 아마추어 선수들의 범위를 서서히 좁혀 나간다. 스카우터들은 ‘복덩이’가 돼줄 선수를 발견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이후 영입작업은 더더욱 만만치 않다고 말한다. 우수 선수가 스카우터의 말만 믿고 바로 대학 입학을 포기하고 프로에 입성하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스카우터들은 부모님 설득에만 오랜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선수 지명 전엔 선수들을 만날 수 없는 것이 규정이지만 부모와 주위 지인들과의 친분 맺기 경쟁은 신인 선발 전부터 일찌감치 시작된다. 스카우터들이 경험하는 부모님의 유형은 난이도에 따라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가장 난코스인 ‘성의 검증형’이다. 자녀를 믿고 맡길 만한 스카우터인지를 확인하는 방법이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새벽마다 집 앞에 찾아가는 정성을 보이는 동시에 가끔은 밤을 새며 기다리는 성의도 필요하다. 모 스카우터는 “자녀를 발탁하고자 하는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지 알아보려고 집 앞에서 기다리는 스카우터들을 몰래 관찰하는 부모도 있었다”고 말한다.
두 번째는 ‘겸손형’이다. 프로에 당장 올려놔도 손색이 없는 정점을 찍고 있는 선수지만 부모들 눈에는 아직 철없는 10대 청소년에 불과하다. 대학 입학 후 천천히 생각해 보는 게 좋겠다고 완곡히 거절할 때면 지난 4년 동안 노트에 빼곡히 적어 놓은 자녀의 우수한 경기력을 연일 프리젠테이션 수준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부모를 설득하고 나면 한시름을 놓지만 지명한 선수가 구단에 들어올 것인지 애매한 태도를 보이면 납치작전도 벌인다. 한 스카우터는 “선수의 병무청 신체검사 시간과 장소를 알아내 앞에서 기다렸다 일단 데려가 설득하는 일도 있었다”고 말한다. 기량이 우수한 선수를 설득할 수 있는 대화의 한 순간을 놓치면 한 시즌을 망치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신인 선발 시기가 오면 직접 찾아와 자녀를 선발해 줄 것을 청탁하는 학부모들도 많다. 한 스카우터는 “여기저기서 각종 유혹과 호소에 시달린다”고 토로하며 “경기 성적으로 말할 수밖에 없는 프로의 세계이기에 ‘냉혈한’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자녀를 프로무대에 올리고자 하는 부모들은 자녀의 성장 가능성을 지나치게 낙관하거나 당장 큰 돈을 벌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경우가 많아 스카우터들 입장에선 냉정한 프로 세계의 현실을 가슴 아프지 않게 이야기할 수 있는 화술을 익히는 것도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손지원 인턴기자 snorkle@par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