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청은 초기에 잡지 않으면 치료가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때문에 소음성 난청이라도 며칠씩 계속되면 빨리 병원으로 가는 것이 좋다고. 사진은 청력검사 장면. 사진 제공=서울아산병원 | ||
시끄러운 도시 환경에서 소음은 어느 정도 감수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일시적인 소음 노출은 몰라도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사무실이나 가정이 도로변이나 공사장 같이 시끄러운 환경에 놓여있다면 대책을 세워야 한다.
젊은 나이라도 ‘가는 귀’를 먹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사회생활에 지장이 생기는 것은 물론 항상 귀속에서 잡음이 들리는 것과 같은 이명, 신경 피로에 따른 신경과민, 혈압장애나 소화불량 같은 만성적인 불편 증상으로 발전될 수도 있다.
시끄러운 곳에서 청각신경이 피로해졌을 때는 곧 소음이 차단된 곳에서 귀를 쉬게 해주어야 중증을 예방할 수 있다고 전문의들은 충고한다.
주변이 시끄럽지 않은 데도 남과 대화 중에 자꾸 이야기를 되묻게 되거나 전화기의 송화음을 잘 못알아듣는다거나 누가 갑자기 하는 말을 잘 놓치는 일이 잦다면 소음성 난청을 의심해 봐야 한다. 일상적인 환경소음에 의해 생기기 쉬운 소음성 난청은 멀쩡한 젊은 사람에게도 ‘가는 귀 먹은’ 증상을 가져온다.
매년 9월9일은 대한이비인후과학회가 정한 ‘귀의 날’. 숫자 9의 모양이 귓바퀴 모양을 닮아 귀의 날이 됐다. 지금 한국인들의 귀에는 어떤 일이 생기고 있는 걸까.
강북삼성병원 이비인후과 반재호 교수는 “소음성 난청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해마다 늘고 있다. 정기적인 직업병 건강진단에서 새로 발견되는 환자만 해도 매년 1천5백명씩이나 된다”고 말한다.
반 교수에 따르면 소음성 난청은 시끄러운 작업장에서 일하는 직업인뿐 아니라 주로 학생층인 청소년 사이에서도 많이 발견되고 있다. 발병 연령층이 낮아지고 있어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 전철 안이나 길거리 등 시끄러운 환경에서 음악을 듣느라 옆 사람에게 들릴 정도까지 이어폰 볼륨을 올리는 습관이 주 원인이라고 한다.
강한 소음에 많이 노출되는 직업인일수록 소음성 난청에 많이 걸린다. 철공소나 조선소, 건설현장 근로자, 굴착기 사용자 뿐 아니라 시끄러운 도로와 뗄 수 없는 길거리 상인, 도심을 운행하는 직업 운전기사 외에도 대형트럭 운전사, 비행기 조종사들이 소음에 주로 노출돼 있고, 이비인후과와 치과 의사, 사물놀이 연주자, 전화 교환수나 전화 상담원들 중에도 소음성 난청 환자가 특히 많은 편이다.
사냥을 즐기는 사람이나 군대에서 총기 소음에 많이 노출되는 젊은 남성들의 소음성 난청도 늘고 있다고 한다. 직업 운전사들의 경우 창문을 통해 소음을 직접 듣게 되는 왼쪽 귀에 주로 난청이 생긴다.
드물게는 단 한번 심한 소음에 노출된 후 난청이 되기도 한다. 제트기가 출발하는 소리를 바로 옆에서 들었다든지, 폭발물이 옆에서 터졌다든지 하는 경우처럼 아주 큰 소리를 들은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직업과는 관계가 없는 청소년의 소음성 난청도 크게 늘고 있다. 전철 안이나 길거리 등 시끄러운 환경에서 귀에 몇 시간씩 이어폰을 꽂고 시끄러운 음악을 듣거나 회화공부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게임방이나 노래방 공연장 나이트클럽 등도 소음환경이다. 청소년기에 시작되는 난청은 앞으로 사회생활을 많이 해야 하는 청장년은 물론 노년기까지 계속해서 사회생활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소음성 난청이 되면 처음에는 높은 음부터 못듣기 시작한다. 이때만 해도 본인은 잘 깨닫지 못하지만 병원에 가면 간단한 청력검사로도 쉽게 알 수 있다.
이후에도 소음에 계속 노출되면 일상적인 대화에서 몇 번씩 상대방이 한 말을 되묻는 불편이 시작된다. 직장에서 업무나 전화통화를 할 때 잘 못알아들어 실수하는 일도 생기기 시작한다. 집에서는 TV 소리를 좀더 키워야만 들리고, 모임이나 영화관 등에서는 남보다 앞에 앉는 습관이 생긴다.
난청 자체는 소리를 잘 못듣게 되는 것이지만 소음에 노출된 환경이 지속되면 소음성 난청에 따른 다른 증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초기에는 난청과 함께 귀울림(이명)이나 어지럼증이 생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항상 소리를 잘 들으려고 신경을 쓰느라 불안감이 커지고 성격은 예민해진다. 이는 전신피로나 수면장애를 가져오고, 나아가 순환기에도 영향을 미쳐 고혈압, 소화장애 같은 증상도 나타난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소음이 문제가 될까. 소리의 단위는 ㏈(데시벨)로 표시하는데, 90㏈ 이상의 높은 소리가 나는 환경은 청력에 이상을 가져다준다.
서울아산병원 이비인후과 정종우 교수는 “우리나라나 미국에서는 1일 8시간 근무자의 소음 허용한계를 90㏈로 정하고 있다. 90㏈ 이상의 소음에 8시간 이상 노출되면 난청이 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소음의 강도가 5 데시벨 증가할 때마다 노출 허용시간은 반으로 줄어든다. 이 기준에 따르면 오토바이의 굉음을 곁에서 듣고 있는 것 같은 정도의 95㏈에서는 4시간, 100㏈에서는 2시간이 노출 한계치다.
정 교수는 “소음으로 인한 청각신경 손상에는 개인차가 있어 소음에 민감한 사람은 그보다 적은 80㏈의 소리에서도 소음성 난청이 생길 수 있다”고 주의를 준다. 물론 기준치보다 심한 강도의 소음에도 견뎌내는 개인도 있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시끄럽다고 느껴지는 소리를 오래 듣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는 게 정 교수의 조언.
0∼26㏈의 희미한 소리도 모두 들을 수 있다면 정상이지만, 그 이상의 강도를 가진 소리만을 들을 수 있다면 일단 가벼운 난청이 있는 상태다. 70∼90㏈의 큰 소리로 말해야만 겨우 알아들을 수 있다면 심각한 난청에 속한다(오른쪽 그림 참조).
일상적인 환경에서 듣게 되는 소리의 크기는 대략 오른쪽 그림 아래에 있는<표>와 같다. 일정한 크기까지는 지속적으로 듣지 않는 한 크게 문제가 되지 않지만 총소리와 같은 140㏈의 소리에서는 통증을 느낄 수 있고 짧은 시간에 청력이 손상될 수도 있다.
심한 소음에 노출되면 일시적으로 청력이 뚝 떨어진다. 작은 소리를 잘 들을 수 없고 귀가 멍해지거나 기계음같은 귀울림이 생긴다. 그러나 그 직후 귀를 쉬게 하고 소음에 더 이상 노출되지 않으면 대개는 24시간 내에 회복된다.
그러나 이런 소음환경에 계속 노출된 채로 있어야 한다면 신경세포가 아예 망가져 청력이 다시는 회복되지 않는다. 점점 작은 소리를 들을 수 없고 정확한 음을 인식하지 못해 불편이 커진다. 음식점이나 백화점 등 주변 소음이 시끄러운 곳에서는 남과 대화하는 데 어려움이 느껴질 정도이다.
이때는 초기에는 휴식과 스테로이드, 혈관확장제 등이 도움이 되지만 치료하지 않은 채 3주 이상 지나면 정상적인 청력을 회복하기 어렵게 된다. 회복이 안될 때는 결국 보청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평소 소음 환경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청력이 떨어진 것 같거나 귀울림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면 신속히 이비인후과를 찾아 난청이나 청력피로도 정도를 체크해볼 필요가 있다. 소음이 심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사람은 정기적인 청력검사도 받도록 한다.
귀울림이나 어지럼증 같은 증상이 있는 사람, 큰 소리로 음악을 들으면 귀가 아파지는 사람, 소음에 노출된 상태에서 대화할 때는 귓속이 멍멍하거나 소리가 들려도 내용을 잘 알아듣기 어려운 사람, 같은 소리가 양쪽 귀에서 다르게 들리는 사람, 들리는 정도가 매일 다른 경우에는 의사와 상의한다.
소음에 의한 난청을 그대로 두면 회복이 어려운 만큼 소음성 난청은 예방이 가장 중요하다. 물론 강한 소음에 노출되지 않는 게 최선이다.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므로 의식적으로 소음을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헤드폰이나 이어폰을 끼고 큰 소리의 음악을 듣지 않는 게 좋지만 시끄러운 음악을 좋아한다면 귀에 휴식시간을 주면서 듣는 게 요령. 1시간 음악을 들은 후에는 반드시 5∼10분 이상 조용한 상태로 쉬어야 한다. 공연장이나 노래방, 나이트클럽 등 시끄러운 장소에 다녀온 후에도 마찬가지로 조용한 환경에서 귀를 쉬도록 한다.
또 주변의 소음이 많이 전달되는 귀걸이형 이어폰보다는 차단 효과가 있는 헤드폰을 사용하면 조금 낫다. 큰 소리의 음악에 주변 소음까지 동시에 듣다 보면 청각신경이 그만큼 피로해지기 때문이다. 나이트클럽이나 공연장 등에서 고음 스피커 앞에 노출되는 것도 피한다. 갑자기 큰 소리가 들린다면 귀를 막는 것이 좋다. 지하철 역사에서도 차가 진입할 땐 귀를 잠깐 막아 소음을 줄여준다.
만약 직업적으로 심한 소음을 피할 수 없는 환경이라면 귀마개 등 소음방지 기구를 착용하는 게 안전하다. 솜만으로는 소음을 방지하는 데 별 소용이 없다. 외이도를 완전히 가리는 귀마개는 소음을 10∼30㏈ 정도 줄여준다.
작업환경에서 오는 소음성 난청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작업장의 소음을 정확히 측정해 그 기준에 맞게 작업시간을 제한해야 한다. 소음이 5㏈ 올라갈 때마다 작업시간을 반으로 줄이는 ‘5 데시벨 규칙’을 지키고 소음이 심한 기계에는 방음시설을 해서 35㏈ 이하로 감소시켜야 한다.
건강검진에서 소음성 난청의 초기 증상이 나타나면 안정을 취하면서 소음에 노출되지 않도록 신경써야 한다. 항생제나 이뇨제, 진통제, 항암제 등 귀에 독성이 있는 약은 함부로 사용하지 말고 쓰기 전에 반드시 전문의와 상의해야 한다.
송은숙 건강전문 라이터
도움말/반재호 교수(강북삼성병원 이비인후과) 정종우 교수(서울아산병원 이비인후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