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의 통증은 주변의 다른 신체부위의 이상에 원인이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 ||
2년 전부터 가끔씩 생기는 귀의 통증으로 고생해 온 이민정 씨(여·34). 일을 하다가도 문득 문득 바늘로 귓속을 찌르는 듯한 통증이 찾아와 신경이 잔뜩 쓰였다. 참다못해 귀에 무슨 이상이 있나 싶어 찾은 이비인후과에서 몇 가지 검사를 받아보았다. 귀에는 별 이상이 없지만 축농증이라는 의외의 진단을 받고 축농증을 치료하자 귀의 통증이 말끔히 나았다고 한다.
이씨처럼 귀의 통증으로 고생하는 이들 중에는 귀가 아니라 다른 기관에 이상이 있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의학적으로는 귀 자체의 문제로 생기는 통증은 원발성 이통, 귀는 정상이지만 다른 주변 기관의 이상으로 생기는 통증을 ‘연관이통(聯關耳痛)’이라고 한다.
경희대병원 이비인후과 변재용 교수는 “연관이통으로 생기는 귀의 통증은 전체 귀 통증 환자의 50% 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본다”며 “정작 본인은 심한 통증으로 괴롭지만 귀 자체에는 큰 이상이 없으니 빨리 원인을 찾아내기가 어려운 것”이라고 말한다. 귀의 통증을 호소하는 이들 가운데 10명 중 5명은 다른 기관의 이상이 원인이라고 한다. 따라서 어디에 원인이 있는지를 빨리 찾아내서 치료해야 귀 통증도 사라지고 원인 질환이 만성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연관이통은 원인만 찾아 치료하면 괴로운 귀 통증을 쉽게 제거할 수 있는 만큼 정확한 진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연관이통은 원인이 치아나 코, 목 등의 질환으로 다양해 찾아내기가 쉽지 않은 것이 문제다.
귀의 통증이 있을 때는 환자나 의사 모두 귀의 통증과 동반되는 다른 증상은 없는지 자세히 체크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최근 감기로 급성 인후염이나 편도선염을 앓은 적이 없는지, 치아가 좋지 않다든지 목이 쉬거나 음식물을 삼키기가 어렵지는 않은지 등 다른 이상 증세가 있다면 의사에게 자세히 알려야 빨리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귀의 통증으로 병원을 찾아가면 일단 귀 자체부터 검사하는 것이 기본이다. 귀 내시경이나 현미경을 이용해 외이도나 고막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고 기본적인 청력검사와 귀의 압력을 재는 임피던스 검사 등으로 기능을 체크한다.
다음으로는 코와 인후의 이상을 보는데, 코 내시경이나 후두경을 이용하거나 부비동 방사선 촬영을 하기도 한다. 간단한 혈액검사를 통해 염증 반응을 확인하거나 기관지 이상이 의심되는 경우 흉부방사선 촬영을 하기도 한다. 여기에 별 이상이 없으면서 치아의 이상이 의심된다면 치과에서의 검사가 필요하다.
그래도 원인이 발견되지 않으면 코에 점막수축제를 포함한 국소마취제를 바른 후 통증이 줄어드는지 살펴보거나 구강 내에 국소마취제를 바른 후 관찰하기도 한다. 이렇게 해도 별 이상이 없을 때는 진통제를 2주 정도 먹는데, 통증이 사라지지 않으면 경우에 따라 내시경, 전산화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검사(MRI) 등의 정밀검사로 숨은 원인을 찾아내게 된다.
귀가 아닌 다른 기관의 질환이 어떻게 해서 귀에 통증을 일으키는 것일까.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귀에 분포되어 있는 신경이 치아나 코 목 부위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감기로 인한 인후염, 후두염, 편도선염 등에 걸리거나 치아에 이상이 있을 때, 위나 식도에 문제가 있을 때처럼 귀는 정상이더라도 관련 기관에 이상이 생기면 귀 통증이 나타날 수 있다.
가장 흔한 연관이통의 원인은 바로 치아다. 사랑니나 부정교합, 악관절 장애 같은 치과적 질환이 귀 통증을 만들 수 있다. 영동세브란스병원 이비인후과 이호기 교수는 “연관이통의 약 50%는 치과적 원인에 의해 생긴다. 어금니에 충치가 생기거나 잇몸병이 있어도 귀 통증이 생기기 쉽다. 또 이를 갈거나 악무는 습관이 있는 경우에도 턱관절에 이상이 생겨 귀 통증을 유발한다”고 설명한다. 이때는 적절한 치과 치료로 원인을 제거해야 귀 통증이 사라진다.
편도선염이나 인후두염, 설염 같은 구강 내 질환도 귀의 통증을 가져오기 쉽다. 최근에 급성 편도선염이나 인후두염 등을 앓은 적이 있거나 목의 통증이 있을 때 의심된다. 이비인후과 의사의 진찰만으로도 쉽게 알 수 있는데 약물치료를 통해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다. 편도선염이 고열을 동반하여 자주 나타난다면 수술을 고려할 수 있다.
축농증이 있거나 코 점막에 염증이 생기는 코 질환도 귀 통증을 곧잘 유발한다. 귀에 통증이 있으면서 콧물의 양이 많거나 코에서 냄새가 나는 경우, 코가 목 뒤로 넘어가는 후비루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면 귀보다는 코질환이 원인이기 쉽다. 드물게는 후두암이나 식도암, 식도염 등과 기관지의 질환도 귀 통증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목의 관절염이나 근육통 역시 귀의 통증을 만든다. 오랜 시간 같은 자세로(특히 컴퓨터 등을 장시간 이용하는 경우) 일하는 사람이 이유없이 귀가 아프다면 목의 관절염이나 근육통 등에 의한 연관이통을 의심해봐야 한다.
만약 흡연 음주를 많이 하는 사람이 목소리가 쉽게 변하거나 목이 쉰 후 좋아지지 않을 때, 체중이 감소하면서 귀에 통증을 느낀다면 후두암의 가능성이 있다. 음식물을 삼키기 어려운 연하장애가 동반된다면 식도암이 원인일 수 있다.
위산이 식도로 역류하는 위식도 역류가 있어도 식도의 자극으로 인해 귀의 통증이 생긴다. 변 교수는 최근 목의 이물감이나 만성적인 통증으로 이비인후과를 찾는 위식도 역류 환자가 늘고 있다고 말한다.
‘삼차신경통’이라고 해서 신경과 치료가 필요한 연관이통도 있다. 귀의 감각을 담당하는 뇌신경의 자극이 귀에 통증을 만드는 것으로, 입이나 코 주변 등에 찌르는 듯한 심한 통증을 느낄 수도 있다. 이 증상은 찬바람이 불면 더욱 심해지는 것이 특징.
되도록 찬 공기에 노출되지 않는 것이 좋다. 보통 약물치료를 하지만 심한 경우에는 신경차단술 등 수술을 고려할 수도 있다. 이외에 협심증 같은 심장병, 갑상선염 등이 귀의 통증을 만들기도 한다.
물론 귀 자체의 질환으로 인해 생기는 통증의 경우도 많다. 귀는 크게 바깥부분인 외이와 안쪽 부분인 내이, 그리고 중간 부분인 중이로 구분한다.
외이에서 생기는 통증의 원인으로는 귓구멍에 종기가 생기는 이절, 급성 외이도염이 대표적이고 급성 유양돌기염이 있을 때도 통증이 심하다.
중이 부분에서는 어린아이에게 많은 급성 중이염이 가장 흔한 원인. 감기나 코 안의 염증이 있을 때 잘 생긴다. 이 때는 귀속 깊은 곳에서 압박감이 느껴지기 시작해 통증이 30분 이상 점차 심해진다.
만성중이염은 통증이 없으나 갑자기 급성으로 바뀌거나 중이의 깊은 곳인 추체부에 염증이 생기는 등 합병증을 일으키면 귀의 통증 또는 두통으로 표현하는 통증이 생길 수 있다.
귀 건강 상식
▲급성 중이염, 유양돌기염 등은 감기 후에 오는 경우가 대부분.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건강관리를 잘 해야 한다. 과로는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주범인 만큼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한다.
▲목욕이나 수영 후 물이 들어갔다면 바로 물기를 제거하고 어려울 때는 병원을 찾는 게 좋다. 외이에 문제가 있거나 중이염이 잘 걸리는 경우라면 귀마개를 착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귀를 면봉이나 귀이개로 자주 후비지 않는다. 외이가 자극되어 손상되거나 세균이 들어가 염증이 생길 수 있다.
▲치아나 코, 목의 건강에 신경을 쓰면 연관이통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송은숙 건강전문 프리랜서
도움말/경희대병원 이비인후과 변재용 교수, 영동세브란스병원 이비인후과 이호기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