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린우리당 분당이 현실로 다가오면서 계파별로 살길을 모색하느라 셈법이 분주하다. 지난 1월 24일 열린우리당 상임고문단 회의 모습.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천 의원이나 염 의원 그리고 김한길 원내대표의 탈당은 앞서 임종인 이계안 최재천 의원의 탈당과도 성격이 또 다르다. 천 의원이나 염 의원 모두 동조 세력이 만만치 않아 대규모 동조 탈당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초재선 그룹 및 민주당과 국민중심당 일부 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범여권 중도신당론’ 논의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여권발 정치권 새판짜기는 결국 유력한 차기주자들을 중심으로 재편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실제로 통합신당파 주변에서는 ‘정운찬 옹립론’이 재부상하고 있고 친노그룹에선 박원순·유시민 카드로 대반전을 꾀할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여권 핵심부가 ‘위장이혼 후 막판 재결합’이라는 치밀한 대권 마스터플랜을 가동하고 있을 것이란 의혹을 감추지 않고 있다.
열린우리당 분당 사태로 범여권 대선지형에 대지진이 일고 있는 가운데 대권주자들을 중심으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는 계파별 생존 플랜의 실체 및 그 실현 가능성을 진단해 봤다.
천정배 의원은 일요일인 지난 28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탈당을 공식 선언했다. 이미 예상되던 일이었지만 열린우리당 창당 주역의 한 명으로 원내대표를 거쳐 참여정부에서 법무장관까지 지낸 천 의원의 탈당은 또 다른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더구나 노무현 대통령이 25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나 때문에 탈당하는 것이라면 내가 탈당할 수도 있다”고 탈당 사태를 막아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와중이기 때문에 천 의원의 탈당은 외견상 노 대통령에 대한 정면 도전처럼 보일 수도 있는 행동이었다.
뿐만 아니라 노 대통령 당선의 일등공신으로 알려진 염동연 의원도 당초 천 의원에 이어 이날 오후에 순차적으로 탈당하려 했지만 일단 29일 중앙위원회 뒤로 미룬 상태지만 탈당은 기정사실이다. 여기에 김한길 원내대표의 탈당설은 마침내 탈당 폭풍이 당 지도부에까지 번졌음을 말해 주는 것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이들의 탈당이 앞서 일부 의원들의 독자 탈당과 달리 수십 명의 동조세력을 끌고 나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그렇게 될 경우 열린우리당 사태는 갈 데까지 갔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나온 노 대통령의 탈당 카드는 신당 논의를 사실상 인정하고 탈당파에 굴복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을 낳기도 한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탈당 카드가 노 대통령의 새로운 정치 공세의 신호탄이라고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더구나 야권 일부에서는 노 대통령의 탈당설과 천 의원의 탈당선언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왔다는 점을 주목하며 여권에 무엇인가 새로운 움직임이 시작된 것이 아니냐며 긴장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현재 열린우리당 신당추진파의 강경파들은 노 대통령의 탈당 움직임과는 관계없이 탈당을 행동으로 옮길 태세다. 천정배 의원의 전격적인 탈당선언과 김한길 원내대표의 탈당설은 이런 움직임에 박차를 가한 셈이다. 우선 김 원내대표는 그 당내 위치로 보아 충격이 아닐 수 없으며 천 의원이나 염 의원 모두 호남을 지역 연고로 하고 있고 한때 노 대통령의 핵심측근으로 분류됐던 인사들이기 때문이다. 또 천 의원과 염 의원이 각각 대망론과 호남 좌장을 꿈꾸고 있다는 사실에 비춰볼 때 두 사람이 탈당을 결행할 경우 20~30여 명의 의원들이 한꺼번에 움직이는 이른바 ‘기획탈당’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열린우리당 초재선그룹 및 민주당과 국민중심당 일부 의원들을 주축으로 한 범여권 중도신당론도 새로운 변수로 급부상하고 있다. ‘3당 중도통합 연합체’ 성격을 띤 중도신당파는 조만간 준비위원회를 공식 발족하는 등 세몰이에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여기에는 열린우리당 임종석 송영길 김부겸 정장선 최용규 이종걸 조배숙 의원, 민주당 김효석 이낙연 의원, 국중당 신국환 의원 등 10여 명이 당적을 유지한 채 참여한다는 방침이다. 이들은 3월 말까지 30∼40명 수준의 통합신당 주비위를 구성한 뒤 4월 재보선에 신당 깃발로 도전장을 내민 뒤 범여권 대안신당으로 도약한다는 플랜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 천정배 의원(왼쪽), 염동연 의원 | ||
이처럼 여권의 공중분해는 시간문제지만 문제는 이들이 갈 곳이 아직 분명하지 않다는 점이다. 잔류파나 탈당파나 누구를 중심으로 어떻게 생존을 모색할지가 아직 안개 속이기 때문이다. 흩어진 제 세력들이 나름대로의 유력한 대권후보를 만들어 내거나 찾아내지 못할 경우 ‘불임정당’으로 추락해 생존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잔류파나 탈당파 모두 기존 대권주자 외에 제3후보군과 접촉을 강화하며 치열한 영입 경쟁을 펼치고 있다.
먼저 당에 잔류하면서 통합신당 주도권 싸움을 벌이고 있는 김근태 의장계와 정동영 전 의장계는 대권주자인 두 사람을 정점으로 세력확산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이 과정에서 ‘김근태-정동영 연대론’이 재부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두 사람 모두 여전히 대권 꿈을 버리지 않고 있고 정치이념이나 성향에 다소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는 점 등을 미뤄볼 때 연대론이 성사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오히려 전당대회까지 두 진영이 주도권 싸움을 벌이다 밀린 쪽이 대규모 탈당 내지는 친노그룹과의 전략적 연대를 모색할 것이란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실제로 자신의 대권가도에 최대 걸림돌이었던 고건 전 총리가 퇴장한 이후 노 대통령과의 결별도 불사한다는 각오로 대권 마이웨이를 걷고 있는 정 전 의장은 당내 통합신당 주도권 장악이 여의치 않을 경우 탈당 후 독자 신당을 추진한다는 내부 방침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장계는 신당 주도권 장악에 성공할 경우 김 의장의 기득권 포기를 담보로 정운찬 전 총장을 대권주자로 영입한다는 구상을 재점화하고 있다는 것이 열린우리당 주변의 관측이다. 또 김 의장이 최근 노 대통령과의 관계복원에 주력하고 있는 배경에는 정 전 의장과의 주도권 싸움이 불리하게 돌아갈 경우를 대비한 친노그룹과의 연대 가능성을 염두에 둔 포석이 깔려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당 사수파의 주력부대인 친노그룹은 대규모 탈당으로 인해 열린우리당이 원내 2당 내지는 3당으로 추락하더라도 소수정예로 끝까지 열린우리당을 사수한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내부 경선 흥행을 위해 김혁규 의원, 유시민 장관, 진대제·강금실 전 장관 등 예비 잠룡들을 총출동시키는 동시에 유력한 제3후보군인 박원순 변호사와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을 영입하는 방안도 적극 추진한다는 복안이다.
중도신당 합류파와 탈당파그룹도 제3후보 영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들이 선호하고 있는 영입 1순위는 단연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다. 양 진영 모두 표면상 탈 지역주의와 중도개혁을 주창하고 있는 만큼 충청 출신에 개혁적이고 경제전문가인 정 전 총장을 대안으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고 있는 분위기다.
중도신당파 일부 의원들은 정 전 총장 외에도 한나라당 대권주자인 손학규 전 경기지사와 고진화 의원 등 한나라당 내 개형성향 인사들도 끌어안아야 한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어 3당 중도 연합체가 동력을 얻을 경우 여야를 망라한 정치권 빅뱅을 주도하는 세력으로 부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가능성은 미지수다.
천정배·염동연 의원의 탈당을 기점으로 제3지대 신당론에 박차를 가한다는 복안을 가지고 있는 탈당파그룹 역시 정 전 총장에게 뜨거운 구애를 하고 있다. 선도 탈당을 감행한 임종인 최재천 의원이 천 의원과 가까운 관계고 이계안 의원 역시 염 의원의 측근이라는 사실에 비춰볼 때 이들 세 사람이 탈당파 리더격인 천·염 두 의원과의 사전 교감하에 기획적으로 탈당했을 것이란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천·염 의원과 친노그룹이 위장이혼 후 막판 재결합을 견인하는 중추 역할을 담당할 것이란 이른바 ‘대권기획설’도 나돌고 있다. 열린우리당 간판으로는 정권재창출이 불가능하고 당내 계파간 생존 전략에 따른 이해관계로 분당을 피할 수 없는 만큼 차라리 노 대통령의 핵심측근이며 호남에 기반을 둔 천·염 의원이 탈당을 주도해 제3지대에서 신당을 창당해 독자적인 대권 경쟁력을 제고한 다음 친노세력을 대변하는 대권주자와 대선 막판에 극적인 연대를 모색해 대역전극을 꾀한다는 게 대권기획설의 골자다.
노 대통령의 핵심측근이었던 천·염 의원이 탈당과 당 해체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는 것은 대권기획설을 숨기기 위한 고도의 위장전술일 것이란 관측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선 여권 핵심부와 탈당파 주도세력이 공통적으로 ‘정운찬 옹립론’을 다시 부각시키는 등 정 전 총장의 대권합류를 유도하기 위한 비밀 프로젝트가 치밀하게 진행되고 있을 것이란 의혹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열린우리당의 현재 상황을 타이타닉호에 비유하며 모두가 살기 위해 저마다의 방향으로 바다에 뛰어들고 있지만 결국은 유력하다고 보는 대권주자를 향해 헤엄쳐 갈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아직 그 유력 대권주자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열린우리당의 현재 모습은 어지럽고 복잡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바야흐로 분당 국면으로 접어든 열린우리당과 사분오열된 범여권 대권지형에서 어떤 세력이 주도권을 잡고 또 누가 유력한 대권주자로 살아남게 될지 피 말리는 여권발 생존게임 열기가 한겨울 한파를 무색케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