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4일 한나라당 상임고문 주최 오찬에 참석한 이명박 전 시장(왼쪽)이 박근혜 전 대표를 찾아가 “인사 안하면 싸운다고 오해한다”며 인사를 건네고 있다. 연합뉴스 | ||
정치권에서는 노 대통령이 ‘선거 구도’라고 말한 대목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선거를 좌우하는 3요소를 구도, 인물, 캠페인이라고 말할 때 현재 대선 지형은 ‘인물’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대세론으로 흘러가고 있다. 하지만 선거 승패는 대부분 그 구도에서 판가름난다는 게 정설이다. 인물의 요소로 대변되는 이 전 시장 대세론을 뒤집을 구도의 변화를 눈여겨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2007년 대통령 선거의 구도는 어떻게 짜이게 될까.
선거는 구도 싸움이다. 후보자의 경쟁력과 자질도 중요하고 효율적인 선거 캠페인도 당락을 결정짓는 결정적 요소이지만 선거판에서는 그 구도가 승패의 60% 이상을 결정짓는다는 게 정치권의 정설이다. 이런 점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선거 구도’를 언급한 것은 심상치 않은 대목이다.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의 ‘선거 구도’ 언급에 대해 “열린우리당이 사분오열하고 있는 상황을 보다 못한 노 대통령이 개헌 추진을 시작으로 자신이 직접 나서 싸움(대선)의 구도를 잡아나가는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노 대통령이 선거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구도를 어떻게 잡으려고 하는 것일까. 정보통을 자처하는 한나라당 정형근 최고위원의 발언을 통해 그 단초를 찾아보자. 그는 최근 한 모임에서 “들은 바에 의하면 청와대 높은 분이 ‘한나라당에서는 반드시 두 사람이 같이 나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 비방 자료도 각 진영에 건네준다는 그런 얘기도 있다. 그쪽이 노리는 것은 두 사람이 싸우고 대립하게 한 다음에 비장의 후보를 내 승리한다는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정 의원 측은 “노 대통령은 한나라당의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를 분열시켜 두 후보 모두 대선에 올려 3자 구도로 선거를 치르려는 속셈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노 대통령의 3자 구도 조성 속셈은 여권 관계자들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청와대 정무팀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여당의 한 전략 관계자는 이에 대해 “오래 전부터 여권에서는 2007년 대선의 시뮬레이션을 해오고 있는 것으로 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지지율 1위를 차지할 때만 해도 여야 단일 후보간의 양자 대결 위주로 시뮬레이션을 했다. 그런데 이 전 시장이 지지율 1위로 올라서며 대세론이 확대되자 대선 전략에도 변화가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특히 이 관계자는 “그 변화의 핵심은 이 전 시장의 한나라당 이탈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는 것이다. 여권이나 청와대가 파악하기로는 이 전 시장이 여전히 대중 지지도에서 박 전 대표를 압도적으로 이기고 있지만 한나라당 경선에서는 박 전 대표가 아직도 유리하다고 본다. 그렇다면 이 전 시장이 민심과 당심의 괴리 때문에 다 잡은 대어를 놓칠 리가 있겠는가. 여권에서는 이-박의 분열 가능성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3자 구도에 대한 본격적인 시뮬레이션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최근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 간의 검증 논쟁 등이 예상 밖으로 거세지며 이런 관측이 더욱 힘을 얻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3자 구도로 대선이 치러질 때는 어떤 결과가 나올까. 여러 가지 시나리오 중 여권이 기대하는 것은 여권 필승론이다. 2007년 대선이 3자 구도가 되면 그것은 1987년 대선의 재판이 될 것이라는 해석 때문이다. 당시 민주화 바람을 타고 그 어느 때보다 야당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높았다. 이는 최근 이명박 전 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의 지지율 우세와 유사한 그림이다. 하지만 김영삼-김대중 후보는 끝내 단일화에 실패, 노태우 민정당 후보가 어부지리로 당선된 바 있다. 현재 이-박의 인기가 아무리 높다고 하더라도 단일화에 실패한다면 1987년 대선 때처럼 약한 여당 후보가 어부지리로 당선될 가능성이 크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영남 중심 동부벨트의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시장, 그리고 호남 중심 서부벨트의 여권 후보가 맞붙는 3자 구도가 되면 영남 표 분산으로 서부벨트 후보가 이길 것이다. 이런 점에서 동부벨트 후보들의 단일화 여부가 대선 승리의 관건이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두 번째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측이 주장하는 ‘다자필승론’이 있다. 앞서의 여권 전략 관계자는 이에 대해 “박 전 대표가 이 전 시장에 대한 ‘후보 검증’ 전술이 실패로 끝날 경우 경선을 치르지 않을 명분을 찾게 된다. 원칙을 중시하는 박 전 대표는 받아들이지 않으려 할 가능성이 있지만 2008년 총선을 앞둔 현역 의원들에 떠밀려 당을 뛰쳐나갈 가능성도 있다. 이들의 이탈에 대한 근거는 ‘다자필승론’에 있다. 앞으로 나설 후보가 약체로 평가받는다는 전제 하에 이명박-박근혜-여권 후보 구도에서는 충성도 높은 지지층을 가지고 있는 박 전 대표가 유리하다는 것이다. 이 전 시장은 지지층에서도 여권 후보와 겹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박 전 대표의 어부지리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 지난 25일 노무현 대통령이 신년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또한 김 교수는 3자 구도와 관련해 “지금으로선 누가 제2의 이인제가 될 것인가는 물음에 박 전 대표가 그 가능성이 높은 것 같다. 현재 박 전 대표가 이 전 시장을 상대하는 전략이 과거 이인제 후보가 노무현 후보에게 했던 패턴 그대로다. 처음에 지지율이 높았다가 역전당한 것도 비슷하고 이인제 후보가 지지율로 역전당하고 나서 노무현 후보에 대해 사상검증을 하겠다고 나선 것도 박 전 대표의 후보 검증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처음에 앞서가다가 역전을 당한 사람은 초조함이 생겨 무리수를 두게 된다. 박 전 대표는 탈당할 ‘성품’이 아니지만 그의 주변에 포진한 의원들이 ‘주군’을 거세게 몰아쳐 뛰쳐나갈 명분을 만들려고 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런데 앞서 살펴본 3자 구도에서의 한나라당 후보 승리 가능성이 가장 실현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정치권의 관측이다. 한나라당의 한 초선 의원은 “한나라당의 두 유력 후보가 모두 나오는 3자 구도를 놓고 보면 이 전 시장이나 박 전 대표 모두에게 손실이다. 단일화 실패에 따른 국민들의 실망감이 여권 후보 역선택의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 또한 여권에서 영남후보를 내세울 경우 영남표는 그야말로 사분오열돼 영남지역에 기반을 둔 두 사람 모두에게 치명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3자 구도 성립은 한나라당 두 후보에게 불리하다. 그러면 과연 두 주자의 분열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먼저 박 전 대표가 뛰쳐나갈 가능성을 살펴보자. 국민대 김형준 교수는 이에 대해 “이-박의 지지층은 서로 겹치지 않는다. 그런데 이는 축복인 동시에 재앙이다. 두 사람이 단일화를 한다면 필승 시나리오이지만 오히려 분열을 재촉하는 내재적 요소가 되기도 한다. 각각 독자적인 지지층을 가지고 있어 본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에 오히려 분열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현재 지지도가 낮은 세력(박근혜 전 대표)들이 그 유혹에 빠질 가능성이 더 높다”라고 밝혔다.
이명박 전 시장이 나갈 가능성도 있다. 이 전 시장 측은 압도적인 국민 지지도 때문에 당내 경선 통과도 무난할 것이라고 자신한다. 하지만 정치권 일각에서는 박 전 대표가 2년 반 동안 대표직을 수행하면서 당내 기반을 튼튼하게 닦아놓았기 때문에 당내 경선에서도 승리할 가능성이 ‘여전히’ 높다고 보고 있다. 보수적인 대의원들이 ‘결점 많고 위험성이 큰’ 이 전 시장보다 안정적인 박 전 대표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여기에 박 전 대표의 ‘선거 승리 신화’도 대의원들의 표심을 여전히 묶어 두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철저한 실리주의자인 이 전 시장이 지는 게임에 들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오픈 프라이머리가 논의되고 있다. 그런데 오픈프라이머리는 현재 한나라당의 역학 구도를 볼 때 실시 여부가 극히 불투명하다. 또한 박 전 대표는 지난해 9월 경선 참여를 선언했지만 이 전 시장은 아직까지 참여선언을 하지 않았다. 이 전 시장은 여전히 오픈프라이머리 실시 여부에 따라 당을 뛰쳐나갈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아직 두 사람의 분열 징후는 크지 않으며 모두 그동안 몇 차례나 경선 승복을 다짐했다. 더구나 당을 뛰쳐나가 실패한 ‘이인제 학습효과’가 있다. 그러나 아직도 후보 검증과 오픈프라이머리 실시, 개헌 정국 등의 영향으로 언제든지 독자 출마의 깃발을 들 가능성도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두 후보의 분열에 따른 3자 구도는 한나라당에게 또 다른 희망의 단초를 줄 수도 있다는 견해도 있어 흥미롭다.
국민대 김형준 교수는 “오는 2007년 대선은 3자 구도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지난 2002년 대선 때처럼 3자 구도로 가다가 선거 한 달을 남겨두고 노무현-정몽준 후보가 극적인 단일화를 이루었던 것처럼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가 정권 교체를 명분으로 극적 타협을 이루어낸다면 그 파괴력은 2002년 노무현 신화 탄생 이상의 극적인 반전이 있을 것으로 본다”라고 밝혔다. 이런 점에서 2007년 대선의 3자 구도는 한나라당에게 위기이자 기회라고 볼 수 있다.
과연 한나라당은 분열할 것인가. 그리고 분열돼 3자 구도가 되더라도 열세를 극복하고 2007년 대선의 새로운 신화를 쓸 수 있을까. 여권이 정계개편을 놓고 지리멸렬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한편에서 벌어지는 새로운 한나라당 내 움직임에도 눈길을 떼기 어려운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