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은 인체 중에서 가장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도 가장 천대받는 기관으로, 특히 여름에는 온갖 세균들한테 갇혀 병을 얻는 경우가 많다. 사진은 무좀 검사를 하고 있는 을지대병원 이은주 교수. | ||
요즘 개봉한 외화 <트로이>에는 영웅 헤라클레스가 등장한다. 그는 천하무적의 힘과 무용을 과시하지만 발목 힘줄(아킬레스건)에 박힌 화살 하나에 힘없이 무너지고 만다.
이처럼 중요한 아킬레스건을 비롯하여 발에는 26개의 뼈와 1백개 이상의 근육인대들이 정교하게 결합되어 있다. 이중 어느 한 곳이라도 어긋나면 당장 걷거나 서는 데 문제가 생긴다.
여름은 이처럼 소중한 발이 고초(?)를 겪기 쉬운 계절이다. 무덥고 습한 여름, 온종일 답답한 신발 속에 갇혀 지내는 발은 괴롭기 그지없다.
여름이면 유난히 발이 고통을 당한다. 신발 속에 갇혀 땀이 나면서 무좀이 심해지고 냄새가 심해진다. 걸어다니며 활동하는 시간도 늘어나 엄지발가락이 안쪽으로 휘는 무지외반증이나 굳은살, 티눈 등 신발과 관련된 질환도 늘어난다.
여름이 괴롭기만 한 직장 여성 P씨(34). 아무리 더운 날에도 항상 양말을 신고 다녀야만 하는 그로서는 맨발에 샌들을 신어보는 것이 소원이다. 바로 무좀에 걸린 발 때문이다. 발톱마저 무좀이 생겨 누렇고 두껍게 변해버렸다.
무좀(족부백선)은 여름에 특히 문제가 되는 대표적인 발 질환이다. 특히 습도와 온도가 높은 여름철에 잘 생기거나 악화된다. 무좀균은 겨울에도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피부에 존재한다. 다만 균이 약해져 있을 뿐이다.
구두와 양말을 신고 생활하는 시간이 많은 사람일수록 발의 습도가 높아 무좀이 생기기 쉽다. 땀을 많이 흘리거나 밀폐된 신발을 오래 착용하는 운동선수, 군인 등에게 특히 많다. 공동생활을 하는 경우에는 전염이 쉬워 발병률이 더 높다. 여성이나 어린이보다는 남성에게 훨씬 많아,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성인 남자 2명 중 1명은 무좀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곰팡이균은 머리카락이나 손톱, 발톱 등 우리 몸 어디에나 기생할 수 있는데, 특히 발에 발생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피부의 각질을 녹여 영양분 삼아 기생, 번식하는 피부 질환이라고 보면 된다.
습도가 높아 발이 축축하게 젖으면 곰팡이균(진균)이 쉽게 침투한다. 주로 목욕탕, 수영장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발에서 발로 전염된다.
신발 외에도 영양부족이나 외상이 있을 때도 균이 쉽게 정착한다. 최근에는 노인 인구의 증가에 따라 면역결핍이나 당뇨병 같은 소모성 질환이 있는 사람에게서도 상대적으로 많이 발견된다.
무좀이 있어도 심하지 않으면 그대로 두는 경우가 많은데, 곰팡이균은 바르거나 먹는 항진균제에 의해 잘 치료된다. 그러나 발 관리에 주의하지 않아 다시 기생하기 좋은 환경이 되면 쉽게 재발하므로 주의한다.
무좀을 치료하겠다고 빙초산이나 식초에 정로환을 타서 발을 담그는 사람도 있다. 각질층을 녹여 무좀균을 없애려는 것인데, 이 경우 피부가 심한 화상을 입을 수 있으므로 절대 피해야 한다. 빈대를 잡기 위해 초가집을 태우는 것과 같은 짓이기 때문이다.
무좀과 증상이 비슷한 것으로는 습진이 있다. 무좀처럼 수포가 생기고 허물이 벗겨지며 매우 가렵다. 그러나 무좀이 발가락 사이에 잘 생기고 곰팡이균이 발견되는 것과는 달리 습진은 발바닥에 주로 생기고 균이 발견되지 않는다. 병원에서 피부의 각질을 긁어서 현미경으로 검사하면 쉽게 구분된다.
키가 작아 하이힐을 많이 신던 M씨(여·45)는 30대가 되면서 엄지발가락이 아프면서 안쪽으로 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조금만 걸어도 발의 통증이 심하다. 병원을 찾아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엄지발가락과 2, 3번째 발가락까지 변형돼 수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대로 두면 허리에도 통증이 와서 고생한다는 게 아닌가.
엄지발가락이 안쪽으로 휘는 무지외반증은 발 질환 가운데 가장 흔한 편이다. 인구의 5%인 약 2백만 명이 무지외반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본다. 이중 80%는 유전이며 젊을 때 앞이 뾰족한 신발을 자주 신으면 40대가 넘어서 발병한다. 30대 이상 여성의 70%가 무지외반증이라는 보고가 있을 정도로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훨씬 많은 편이다. 남성보다 폭이 좁은 구두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은 남자들도 구두 폭이 점점 좁아지고 키높이 구두 등 굽이 높은 신발을 선호하면서 발가락 변형을 호소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특히 뒷굽이 높고 앞쪽이 좁은 하이힐, 통굽구두, 키높이 구두 등은 몸무게를 앞으로 쏠리게 해 발가락에 무리한 무게가 실리게 만들므로 이런 신발을 신으면 발가락이 휘는 것을 막기 어렵다.
이런 신발을 자주 신는다면 평소에 엄지발가락이 둘째 발가락 사이를 벌리는 운동을 해주는 것이 좋다. 처음에 엄지발가락이 벌어지지 않더라도 반복하여 연습하면 발가락 사이가 조금씩 벌어지고, 약해진 발가락 근육이 튼튼해진다.
그러나 이 운동이 제대로 안 되는 경우에는 이미 무지외반증이 심화된 것이므로 치료가 필요하다. 발이 부자연스럽게 힘을 받으면 무릎이나 엉덩이, 허리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심하면 엄지발가락뿐 아니라 옆의 발가락까지 상하고 무릎, 허리의 손상을 가져오게 된다”고 을지병원 족부정형외과 이경태 교수는 설명한다.
신발을 자기 발의 모양과 크기에 맞는 편한 것으로 바꾸고 물리적인 운동을 꾸준히 해서 개선하되 아주 심하게 휘어 전신에 문제를 가져올 때에는 튀어나온 뼈를 제거하고 옆 발가락의 뼈를 바로잡아주는 수술을 받을 수도 있다.
발바닥 안쪽의 질긴 근막에 염증이 생긴 족저근막염도 흔한 발질환이다. 잘못된 보행자세가 원인. 한국인의 70% 정도가 보행자세가 바르지 못하다고 한다.
발바닥에 좋은 보행은 뒤꿈치가 먼저 땅에 닿고 발바닥이 닿은 다음 앞꿈치 순으로 떨어지는 3∼4박자 보행이다. 그러나 뒤꿈치가 땅에 닿는 순간이 아주 짧고 발바닥이 땅에 닿는 순간이 길어지는 ‘뚜벅이 보행’(평발보행)은 충격 흡수가 뒤꿈치에서부터 이루어지지 않아 발바닥에 충격이 많이 전달되게 하므로 45% 정도가 평발로 진행하게 된다. 즉, 발바닥의 움푹 들어간 아치 부위가 주저앉는 현상인데, 이로 인해 인대 근막 힘줄 등이 늘어나면서 족저근막통을 일으킨다.
발에 별 문제가 없더라도 당뇨환자처럼 특히 발 관리에 주의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혈당이 높아지면 혈액순환이 안 돼 발에 합병증이 잘 생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뇨 환자는 발에 상처가 나지 않게 조심하고, 발톱은 일자로 깎아 살을 파고들지 않도록 한다. 조이는 양말도 금물이다. 발을 씻은 후에는 잘 말리고 베이비오일이나 크림을 발라 갈라지지 않도록 한다.
송은숙 건강전문 프리랜서
도움말/영동세브란스병원 재활의학과 문재호 교수, 을지병원 족부정형외과 이경태 교수, 을지대학병원 피부과 이은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