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백병원에서 혈당을 측정하는 모습. 한국인은 친인척 중 당뇨병 환자가 없는 경우가 드물 정도로 흔해 가히 ‘국민병’이라 할 만하다. | ||
그런데 우리나라 당뇨병 환자의 60%는 자신이 당뇨병이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지낸다는 보고도 있어 당뇨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요구되고 있다.
당뇨병이 무섭다는 것은 당뇨병 자체도 그렇지만 그에 따른 합병증 때문이다. 이미 당뇨가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면 고혈압 동맥경화 뇌졸중 심근경색 백내장 신부전 등 위험한 합병증이 더이상 남의 일만은 아니다.
우리나라 당뇨 인구는 성인 10명 중 1명꼴. 대략 4백만 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발병율이 5~6%인 미국보다 두 배나 높은 8~12%나 된다. 40대 이후 잘 걸리는데 연령이 높아질수록 발병률이 높다. 60대가 넘으면 2명 중 1명이 해당된다고 한다.
비교적 젊은 30대도 안전하지 않다. 30대의 10%가 당뇨병이고 다른 10% 정도는 당뇨병의 전 단계인 내당능 장애로, 30대 인구 10명 중 2명은 이미 당뇨에 노출되어 있다는 보고도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당뇨병과 관련된 사망자 비율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 당뇨병은 1992년 한국인의 사망 원인 7위였으나, 현재는 당뇨가 원인이 된 뇌졸중과 심근경색까지 합하면 단연 사망 원인 1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당뇨는 그 자체보다도 합병증이 더 무섭다. 당뇨 합병증은 어느 특정 부위에만 나타나지 않고 눈(망막)이나 신장, 신경 등에 동시다발적으로 많이 생기는 것이 특징. 그 중에서도 망막이 손상돼 실명되거나 발에 염증이 생겨 절단하는 경우가 가장 흔하다.
철저한 관리를 요하는 당뇨지만, 진단은 비교적 간단하다. 정기 검진 때 사용하는 소변검사 키트만으로도 이상 반응을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30세 이상이 되면 매년 받는 정기검진을 소홀히 여기지 말아야 한다.
일단 당뇨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그것이 저절로 원상회복되지는 않으므로 전문의를 찾아가 상태를 제대로 진단받고 더 이상 악화되지 않도록 꾸준히 관리를 해야 한다. 의사는 환자에게 식사나 생활습관에 대해 조언을 하게 되며, 상태에 따라서는 혈당강하제나 인슐린주사를 처방한다.
강남경희한방병원 체질의학센터 이의주 과장에 따르면 당뇨를 극복하는 데는 약물치료와 식이요법, 운동요법 못지 않게 스트레스 조절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당뇨가 한국인에게 흔한 질환인 만큼 잘못된 상식도 많다. 당뇨에 대한 잘못된 상식은 치료 시기를 놓치거나 잘못된 관리로 합병증 발생을 더욱 부추기는 결과도 가져올 수 있다. 대부분의 종합병원에서는 당뇨 환자와 가족을 위한 당뇨교육을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므로 여기에 적극 참여해 올바른 관리요령을 배우는 것도 바람직하다. 환자 동호회에 참가하는 것도 스트레스 관리나 정보교환에 도움이 된다. 흔히 널려있는 잘못된 상식들을 짚어봤다.
▲뚱뚱한 사람만 걸린다?
당뇨는 발생 빈도에서 비만인 경우와 연관성이 없지 않지만, 한국인의 경우는 꼭 그렇지가 않다.
당뇨는 췌장에서 인슐린이 제대로 분비되지 않거나(제1형 또는 소아당뇨), 분비된 인슐린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해(제2형 또는 성인당뇨) 혈액 속의 당이 에너지로 이용되지 못하고 혈액 속에 쌓여 고혈당이 되면서 소변과 함게 배설되어 생기는 질병이다.
음식을 많이 섭취하면 혈중 포도당의 양이 늘어나, 포도당을 에너지로 변화시키는 데 필요한 인슐린 소모량도 늘어난다. 살이 찌면 몸에서 필요로 하는 인슐린 필요량이 증가해 당뇨병에 잘 걸리게 되는 것. 보통 비만인 사람의 당뇨 발생율은 정상체중을 가진 사람보다 8배나 높은 것으로 분석돼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비만과 관계없이 마른 당뇨 환자가 많고, 서양인보다 체질적으로 당뇨병에 걸리기 쉽다는 새로운 사실이 지난해 강남성모병원 내분비내과 손호영 교수에 의해 밝혀졌다.
손 교수가 학계에 보고한 바에 따르면 한국인은 서양인보다 인슐린을 분비하는 췌장의 베타(β)세포 수가 훨씬 적다. 또 뚱뚱한 사람일수록 베타 세포가 많고 마른 사람일수록 적어, 뚱뚱한 당뇨 환자보다 마른 당뇨 환자가 훨씬 많은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45세 이하 환자가 드문 서양과 달리 한국에서는 30~40대 초반의 젊은 당뇨환자들이 많은 것도 베타세포 수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식생활이나 운동에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당뇨병이 쉽게 생기는 것이다.
유전적인 요인도 많이 작용한다. 부모 중 한 사람이 당뇨병이면 자식이 당뇨병에 걸릴 확률은 25%, 부모 모두 당뇨병이면 50%에 이른다.
▲증상 없으면 치료 필요없다?
다음 다뇨 다식 등은 당뇨환자에게서 나타나는 주요 증상들이다. 많이 먹으면서도 체중은 줄어드는 것도 특징이다.
그러나 당뇨병의 전 단계인 내당능 장애에서는 이 같은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공복혈당 110~126mg/dL 미만이거나 경구 당부하검사에서 2시간 후 혈당이 140~200mg/dL 미만이면, 정상보다는 높아도 당뇨병보다는 아직 낮은 내당능 장애로 분류된다.
그러나 심장과 순환계 등에 미치는 손상은 이미 내당능 장애 단계에서 시작되므로 이때부터 본격 관리를 받아야 한다. 당뇨 환자의 심혈관계 합병증 위험은 정상인보다 2~4배 정도 높고, 내당능 장애인 경우에도 1.5배가 높다.
한양대 구리병원 내분비내과 박용수 교수는 “내당능 장애에서 혈당조절이 잘되면 2형 당뇨병을 예방하거나 진행을 늦출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45세 이상이면서 비만인 경우, 가족 중 당뇨 환자가 있는 경우, 임신성 당뇨병을 겪은 여성, 4kg 이상 아기를 분만한 여성, 고혈압, 고지혈증(250mg/dL 이상)이 있는 경우에는 혈당을 잘 체크하도록 한다.
▲단 음식이 당뇨병 원인이다?
당분의 혈중 농도가 높아지고 오줌으로 당이 배설되다 보니 흔히 설탕이나 단 음식을 많이 먹으면 당뇨병에 걸리기 쉬운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단 음식은 비만체질을 만들어 당뇨 발생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는 있겠지만 직접적인 원인이 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단 것을 많이 먹지 않는다고 당뇨가 예방, 치료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당뇨환자의 경우 단 음식이 먹고 싶을 때는 혈당, 체중에 영향을 적게 주는 아스파탐, 슈크라로즈 등의 인공감미료를 쓰는 게 좋다.
▲당뇨에 좋은 식품 따로 있다?
당뇨병이라는 진단을 받으면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할지가 걱정이다. 물론 콩처럼 혈당을 빨리 상승시키지 않는 식품을 먹는 것이 좋다. 콩은 당뇨병의 합병증으로 오는 심혈관 질환의 위험도 줄여준다.
그러나 당뇨병에 특별히 좋은 식품을 찾는 것보다는 식사량과 시간을 지켜 5가지 식품군이 고루 들어간 식사를 하는 것이 최선이다. “당뇨에 좋은 식품을 먹는다고 이런저런 식품을 먹다 생각지 못한 부작용으로 고생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서울백병원 내분비내과 임경호 교수는 충고한다.
바쁘고 입맛이 없더라도 아침은 제대로 먹는 것이 혈당조절에 도움이 된다. 아침을 거르면 전날 밤부터 시작해 8~12시간 이상 공복상태가 이어지게 되므로 점심을 과식하기 쉽다. 이런 식습관은 콜레스테롤이나 체중 증가를 가져온다는 것이 여러 연구에서 밝혀졌다.
영양이 균형 잡힌 메뉴가 좋고 과식하지 않도록 한다. 기름기가 많은 음식이나, 소스에 당분 열량이 높은 중국요리 등은 삼간다. 식사시간이 늦어진다면 우유, 과일, 비스킷 등을 조금 먹어 혈당이 떨어지지 않도록 한다. 떨리고 식은 땀, 현기증 등 저혈당 증상이 올 때는 쉬면서 당분이 함유된 음료수나 음식을 먹는다.
당뇨가 있는데 술을 계속 마셔도 괜찮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먹지 않는 것이 가장 좋고, 굳이 마시고 싶다면 혈당조절이 잘 되는 경우에 한해 주 1~2잔 정도에 만족해야 한다. 술은 당뇨병 관리를 어렵게 만드는 대표적인 요인으로 꼽힌다. 특히 단순당과 당분이 많은 과실주, 포도주, 칵테일 등은 삼가야 한다.
송은숙 건강전문 프리랜서
도움말/강남경희한방병원 체질의학센터 이의주 과장, 서울백병원 내분비내과 임경호 교수, 한양대구리병원 내분비내과 박용수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