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물게는 말기암 진단을 받고도 완치되는 환자들이 있기 때문에 어떠한 경우에도 투병의지를 잃어서는 안된다. 드라마 <장밋빛 인생>의 한 장면. | ||
하지만 드라마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한국인 사망원인 1위를 차지하는 암. 국민 5명 중 1명은 암으로 죽고 있는 만큼 가족이나 친지 중에 암환자가 없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이 중에는 초기에 발견돼 완치되는 운 좋은 경우가 있는가 하면 병원으로부터 시한부선고를 듣고 하루하루 힘겨운 삶을 이어가는 말기 환자와 이를 같이 지켜보아야 하는 가족들도 있다.
희망보다는 절망스러운 상황에 처한 말기 암환자와 그 가족들. 어떻게 보다 지혜롭게 어려운 과정을 극복해야 할까.
흔히 말기 암환자 하면 식사를 거의 못하고, 거동이 불편하며, 기력이 없어서 활동이 어려운 경우를 상상한다. 또 체중이 너무 줄어들어 보기에도 안타까운 상태의 환자들을 연상하기 쉽다.
보통 병원에서 ‘말기’라는 진단이 나왔다면 암 세포가 이미 다른 장기로 전이되어 뚜렷한 치료방법이 없거나 재발되어 병의 진행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경우를 말한다. 하지만 말기 암환자 중에도 겉으로 봐서는 알 수 없을 정도로 건강해 보이는 이들도 있다.
물론 체력이 급격히 약해진 말기 환자이든, 비교적 체력을 유지하고 있는 환자든 이미 ‘말기’에 다다랐다면 희망보다는 절망스러운 치료상황에 접해있는 만큼 매사 ‘죽음’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 대부분 내면에서는 정신적으로 매우 황폐해지거나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한 상태를 보이는 것이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 스스로 정신적인 안정을 찾거나, 주변이나 가족이 그렇게 되도록 돕는 일”이라는 게 을지대학병원 정신과 이창화 교수의 조언이다. 그래야만 남은 기간을 조금이나마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다. 말기 암환자와 가족에게 도움이 될 만한 몇 가지 투병지침을 소개한다.
투병의지를 갖는다 신앙을 갖고 있는 말기 암환자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정서적으로 훨씬 강한 편이다. 현재 신앙을 갖고 있지 않는 경우에는 가족과 상의하거나 아니면 환자 스스로 종교를 선택해 믿음의 생활을 하는 것이 투병을 하는 데 큰 힘이 된다.
지금은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누구든 한 번은 죽는 것이고, 죽음은 삶의 새로운 형태라는 믿음을 갖게 되면 좀 더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마음이 편해지지 않으면 남은 시간을 보다 소중하고 가치 있게 보낼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된다.
그렇다고 암 말기라는 판정을 받았다고 해서 곧 죽음과 연결하여 생각하기보다는 투병의지를 잃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투병의지를 버리지 않는다면 병원에서 말기 암환자 진단을 받았어도 기적이라고 할 정도로 놀랍게 회복되는 사례들도 종종 있다.
말기 방광암이었지만 9년째 누구보다 건강하게 살고 있는 ‘한국 암을 이겨내는 사람들’의 이정갑 회장은 “드물게는 말기라는 진단을 받고도 완치되는 환자들이 있으므로 끝까지 최선을 다해 투병한다는 확고한 신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체력을 유지한다 어떤 경우에도 체력이 더 떨어지지 않도록 잘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암환자들은 약물치료 등의 원인으로 입맛이 없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먹지 않아 체력을 잃기 시작하면 병으로 인해 쓰러지기 전에 영양실조로 위험해지기도 한다. 따라서 아무리 힘들어도 매끼 식사하는 것은 약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또 식사를 잘하고 몸 상태가 허락한다면, 의사가 금지하는 활동이 아니라면 평소에 하던 일상적인 생활을 어느 정도 유지하는 것이 좋다. 정상적인 수면, 배변 등의 생리활동도 유지되고 심리적으로 불안, 우울해지는 것도 막을 수 있다. 물론 신체적인 제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병이 없을 때처럼 무리한 활동을 하려고 하는 것은 말려야 한다. 3년 전 대장암 4기 진단을 받았던 외과의사 L씨도 몇 번의 수술과 항암치료를 거쳐 다시 업무에 복귀해 다시 환자를 보고 있다. 암을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자신도 방사선 치료를 받아가며 환자를 본다.
검증된 것만 먹는다 암환자 가족들은 순간순간 많은 유혹에 빠진다. 하지만 주변에서 좋다고 하는 식품을 모두 먹다가는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암환자에게 좋다는 각종 건강보조식품의 경우 믿을 만한 기관의 임상시험 결과 등을 통해 효과가 확실히 입증된 것만을 먹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다면 환자를 위해 가족들이 할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일까. 말기 암환자는 암이라는 질병과 싸운다고 하기보다는 내면에서는 죽음과 싸우고 있다. 이런 마음을 가족들에게조차 쉽게 표현하지 못한다. 말기라는 사실을 알게 된 환자의 머리 속에는 모든 생각의 출발이 죽음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그렇기 때문에 환자에게 ‘가족들이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는지’를 보여 주거나 인식시켜 줄 필요가 있다.
환자의 심리 상태를 이해하려는 가족의 노력도 중요하다. 이창화 교수는 “다른 사람보다 의지가 약하거나 미숙해서가 아니라 대부분의 말기 암환자는 많은 감정변화를 겪는다”며 “이럴 때 가족들은 환자가 보이는 심리적 반응이나 행동을 그대로 인정해 주고 받아들여주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화를 내면 그대로 들어주고, 아이처럼 굴더라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급하게 달래거나 설득하려 하면 역효과를 내는 경우가 많다. 만약 환자가 심한 우울이나 불안을 보일 때는 전문가의 치료를 받도록 권유하는 것이 좋다.
도움말=을지대학병원 정신과 이창화 교수, ‘한국 암을 이겨내는 사람들’ 이정갑 회장
송은숙 건강전문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