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전 시장(왼쪽)과 박근혜 전 대표의 ‘밑바닥 표심잡기’가 점차 치열해지고 있다. 지난 1월 한 모임에 참석한 두 사람. 가운데 배경은 지난해 7월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전당대회 전경. 연합뉴스 | ||
한나라당 경선준비위원회(경준위)는 활동 시한인 지난 3월 10일까지 경선 룰에 대한 대선 주자간 합의를 이루는 데 실패했다. 이에 따라 경준위의 활동시한 연장이 불가피하지만 “연장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회의론이 점점 짙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한나라당 내 분위기는 “당이 분열하면 대선도 없다”는 위기의식이 높아져가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경선은 실시될 가능성이 크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 캠프 진영에서는 경선이 치러질 경우 그 시기보다는 방식에 의해 승부가 결정 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일찍부터 치열한 물밑대결을 벌여왔다. ‘빅 투’의 ‘당심잡기’, 그 총력전을 들여다봤다.
현재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는 전국 조직망을 총 동원, 당심 잡기에 올인을 하고 있다. 두 캠프는 당 경선준비위원회가 ‘경선 룰’ 합의에 실패하자 경선 방식이 현행 규정으로 결정 날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고 보고 바닥표 훑기에 일찌감치 뛰어들었다.
현재의 한나라당 당헌 당규에 따르면 대선 후보는 전당대회 대의원 1만 명(20%), 당원 1만 5000명(30%), 일반 국민 1만 5000명(30%) 등 총 4만 명의 선거인단에 여론조사 결과를 1만 명으로 환산(20%)한 수를 더해 결정된다. 이 가운데 대의원은 양 캠프가 가장 중점적으로 ‘포섭’해야 하는 핵심층이다. 1만 명의 대의원은 현역의원, 중앙당 당직자, 당 소속 시·도지사, 구청장, 시·구의원, 시·도당 당직자 등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들은 당원들의 선택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핵심 지도층이다. 과거와 같은 줄 세우기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대의원들이 ‘오더’를 내려 당원들의 선택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
이들 대의원들은 당에 대한 충성도가 높고, 후보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특징을 갖고 있다. 그래서 선거 운동 기간이 짧아도 조직력만 잘 발휘하면 경선 승리를 위한 입지를 50%까지 굳힐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대의원 판세는 어떻게 될까. 지난해 10월까지만 해도 박근혜 전 대표가 당심에서는 확실한 우세를 차지하는 것으로 조사됐으나 최근에는 이 전 시장 우세이거나 박빙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3월 초 조사된 중앙일보 조사팀 결과는 이명박 전 시장이 42%, 박근혜 전 대표가 37%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같은 기간 한길리서치가 조사한 자료에서는 박 전 대표가 40.4%의 지지를 얻어, 39.2%에 그친 이 전 시장을 오차 범위 내인 1.2%p 차이로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양 진영에서는 자체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있는데 두 결과가 모두 자신들이 우세하게 나온다고 주장한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현재 한나라당 대의원들의 지지도가 지난 10월 이 전 시장에게로 첫 역전된 뒤 큰 변화가 없다고 보고 있다. 이는 이 전 시장이 민심에서 크게 앞서고 있어도 그 상승 추세에 비해 당심 지지도는 지난해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에 이 전 시장이 당심까지 장악했다고 보기에는 무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박 전 대표가 당심에서 우위를 잡았을까.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박 전 대표의 대의원 지지율은 크게 변화가 없다. 민심에서 뒤지고 있는 박 전 대표가 당심에서 5~10% 포인트 이상 앞서야 이 전 시장의 민심 격차를 따라잡아 볼 만하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계속 오차범위 내에서 혼전을 벌이고 있다. 별다른 모멘텀이 없이 이런 상황으로 6월이나 그 이후에 경선이 치러진다면 이 전 시장이 약간 우세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양측이 대의원 지지도 면에서 박빙의 승부를 벌이고 있는 것은 당심 우위론에 입각한 박 전 대표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이 전 시장 또한 기대만큼 당심 지지율이 오르지 않자 대의원 ‘포섭’에 적극 나서고 있다는 전언이다. 이 지점에서 양측의 대의원 잡기 경쟁이 불꽃을 튀기고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양측은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벌써부터 각 지역구에서는 대권 주자를 중심으로 세력이 급속하게 재편되면서 갖가지 추문이 나오고 있다. 벌써부터 지역구마다 ‘친이’ ‘친박’으로 갈려 경쟁과 갈등이 깊어지고 있는 것.
지난 3월 초 지방 대도시의 한 지역구에서 열린 한 관변단체의 정기총회에 ‘친이’ 성향의 지역 국회의원이 초청을 받아 강연회에 참석했는데 ‘친박’ 성향의 지역 시의원은 초청도 받지 못해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대선 주자들의 줄 세우기가 본격화되면서 각 지역구마다 주자들이 제각각 심어둔 ‘대리인’들이 난립하면서 ‘한 지붕 세 가족’ 아래에서 감정싸움을 벌이며 갈등을 빚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서울 근교의 한 지역구에는 중앙당이 임명한 위원장 이외에 ‘이명박, 박근혜, 손학규’의 대리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 등 모두 4명이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모두 지난 지방선거 때 공천을 받지 못했거나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사람들이다.
여기에 사고 당원협의회의 정비과정에서도 양측의 세 대결이 이어지고 있다. 한나라당은 당초 32개 사고 당원협의회 가운데 지난해 말까지 20여 곳의 정비를 마무리할 방침이었다. 그러나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아직 1차 작업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박’ 양측이 대의원과 당원의 표심을 결정적으로 좌우할 수 있는 위원장 선정을 놓고 치열하게 물밑경쟁을 벌이고 있다 보니 조직 정비도 지연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물밑 경쟁과 함께 이-박 양 캠프는 전국 지도를 놓고 그 판세 분석에 골몰하고 있다. 먼저 이 전 시장은 수도권 수성 전략과 함께 부산에서부터 대구경북 공략으로 그 포인트를 잡고 있다. 이 전 시장 측의 한 관계자는 “이 전 시장은 중도보수 성향층이 두터운 서울 수도권이 주요 지지기반이다. 그리고 지금은 부산 지역을 집중적으로 뚫고 있다. 부산에서 힘을 받아 상대적으로 열세지역인 대구경북 지역 공략에 나설 계획이다. 그리고 그 여세를 몰아 충청권에서 반타작 정도를 예상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수도권 수성과 부산에서 충청으로 이어지는 양동작전인 셈이다.
반면 박 전 대표는 자신의 텃밭인 대구경북을 확실하게 지키면서 충청권에서 이 전 시장을 따돌린 뒤 그 여세를 몰아 수도권을 공략하겠다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박 전 대표는 올해 초 충남지역을 방문했을 때 이완구 지사가 직접 승용차로 영접을 나온 뒤 하루 종일 밀착 행보를 보여줄 만큼 이 지역의 오피니언 리더들로부터 끈끈한 지지를 받고 있다고 자평한다. 그리고 충청권 지지율에서도 이 전 시장을 앞서고 있는 것도 고무적이다. 여기에 행정수도 이전에 반대했던 이 전 시장과 달리 그는 당 안팎의 반대를 무릅쓰고 찬성했던 인연을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다. 박 전 대표 측의 한 관계자는 “충청권에서의 확실한 우위를 바탕으로 수도권을 공략할 예정이다. 그렇다고 충청에 모든 힘을 쏟는 것은 아니다. 나라 선진화, 국정 정상화, 국민화합 등 우리가 세우는 비전과 주의 주장은 전국단위를 겨냥한 득표 전략을 세우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가 대의원 표심 잡기에 올인을 하는 까닭은 이들이 국민 참여 대상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일반 국민 중 자발적으로 한나라당 경선장에 나갈 사람은 많지 않다. 후보 간에 주변 사람을 동원한 자기 사람 등록하기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 뻔하다. 그래서 이 전 시장 측은 선거인단 수를 기존 4만 명에서 40만 명 수준으로 늘릴 것을 주장하고 있다. 참여자 수를 크게 늘리면 조직전보다 일반인 여론조사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주자들의 ‘당심 잡기’ 경쟁은 선거인단 수를 어떻게 조정하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전망이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